선더말 아재48(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는 1977년 2월 7일 오전에 국민은행 경주지점장실에 들린다. 아침부터 매우 추운 겨울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지점장실에 들어서니 히터가 잘 작동이 되고 있는지 따뜻하다. 그리고 지점장이 여직원을 시켜서 가지고 온 차를 한잔 마시니 갑자기 몸이 노곤해진다.
바깥 날씨가 무척 추운데도 불구하고 선더말 아재는 오토바이를 타고서 시내에서 일을 보다가 국민은행 경주지점에 들린 것이다. 매서운 추위 다음에 갑자기 따뜻한 열기가 몸에 퍼지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옆으로 쓰러지고 만다.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오른쪽 팔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픽 쓰러져 있다.
그것을 보고서 지점장이 매우 놀란다. 그는 급히 ‘엠블런스’를 불러서 ‘경주기독병원’ 응급실로 선더말 아재를 옮기고 수산회사 사장실로 연락을 취한다;
회사의 박총무가 윤서기와 함께 기독병원으로 가서 보니 손사장이 의식은 있는데 몸 오른쪽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독병원에서는 진찰과 검사를 한 결과를 박총무에게 설명한다; “환자분은 평소 고혈압으로 약을 들고 계셨는데 그만 추운 날씨에 갑자기 따뜻한 방으로 들어서서 ‘중풍’에 걸리신 것입니다. 우반신을 못 쓰시고 계시는데 여기 병원에서는 딱히 조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댁으로 모시고 가셔서 편히 쉬게 하십시오. 그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그 말을 듣자 박총무와 윤서기가 병원 엠블런스를 사용하여 성건동 자택으로 선더말 아재를 모시고 간다. 부인 고복수와 맏며느리 김선생이 깜짝 놀라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안방에 이부자리를 펴고서 몸조리에 최선을 다한다. 박총무와 윤서기가 수산회사에 가서 사장님의 위중한 상태를 말했더니 여러 사람이 중풍에 좋다는 약재를 구해서 병문안을 온다.
그런데 3일간 집에서 몸조리를 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다. 드디어 4일째가 되자 그만 선더말 아재가 의식을 잃고 만다. 깜짝 놀란 부인과 며느리가 급히 수산회사로 연락을 취한다. 그때 박총무는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이 근무하고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 건설사무소 공정공무과로 급하게 전보를 친다. 그리고 기독병원에 연락하여 엠블런스를 부른다;
‘부친위독, 경주기독병원 응급실’이라는 급전을 받고 손진길은 열차편으로 경주로 간다. 그 다음에 택시를 타고서 기독병원에 들어선다. 응급실에 물으니 방금 2층에 있는 중환자실로 옮기고 있다고 한다. 호실을 물어서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그 방으로 들어서는 부친의 침대를 목격한다.
부친은 혼수상태이다. 링겔 병을 매달고 있으나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상태이다. 주치의로 배정된 의사에게 문의를 했더니 언제 의식이 되돌아올지 모른다는 답변이다. 병명을 물었더니 ‘뇌졸중’이라고 말한다. 뇌에 있는 모세혈관을 핏덩어리가 막아서 우반신에 마비가 왔는데 그 핏덩어리가 자체 흡수되지 아니하고 도리어 커져서 이제는 환자를 혼수상태로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손진길이 좌우를 살펴보니 모친 고복수와 형수가 그 방에 있기는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그래서 모친에게 말하여 형수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이제 돌을 지난 딸아이가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일주일을 기다려도 부친 선더말 아재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하도 답답하여 손진길이 주치의에게 묻는다; “언제 깨어날지 전혀 모르십니까?”. 젊은 주치의가 성심성의껏 답변한다;
“보통 환자의 잠재적인 의지가 크게 작용을 합니다. 현재 더 이상 상태가 악화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니 며칠 더 지켜 보시지요”. 손진길이 더 묻는다; “깨어나시게 되면 우반신 마비가 풀릴까요?”.
주치의가 자신의 견해를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것까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기적을 바라야 하겠지요…”. 그 말을 듣자 손진길이 결단을 내린다. 그는 회사에 6개월간 ‘휴직계’를 송부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기도로 매어 달린다. 그때 선더말 아재의 입술이 움직인다.
선더말 아재가 무의식 상태에서 중얼거린다; “내 땅은 비옥한 토지입니다. 첨성대 주변에 있는 문전옥답인 저의 농지 3천평을 정부가 ‘불모지’라고 주장하면서 헐값으로 수용해가는 것은 잘못된 행정행위입니다. 부디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에 당한 가장 가슴 아픈 일이 그것인 모양이다. 사람이 의식이 없는 가운데 중얼거리고 있는 그 말이 가장 진심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손진길이 계속 기도로 매어 달린다. 아직 할 일이 많은 부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니 집안을 위해서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하여 다시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는 간절한 기도이다. 기독교인인 그는 의사가 고칠 수 없는 병을 창조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고쳐 주신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의식을 잃은 지 13일이나 지나서 1977년 2월 23일에 비로소 선더말 아재가 중환자실에서 눈을 뜬다.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평소 총기가 넘치던 그 모습이 아니다. 갑자기 늙어버린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차남 손진길은 슬픔이 밀려온다. 아직 55세의 한창인 중년인데 그만 한쪽을 못 쓰시고 병상에서 지내게 되었으니 그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 다음날 선더말 아재가 차남 손진길에게 말한다; “길아, 나는 죽지 않는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서 안방 서랍에 들어 있는 서류와 장부를 살펴보아라. 그리고 박총무와 윤서기에게 말하여 결재할 서류를 집으로 가지고 오라고 해라. 그것을 나를 대신하여 네가 집에서 결재를 해라. 그리고 간단하게 그 결과를 내게 말해다오”;
그 말을 듣자 손진길은 모친에게 병상을 잘 지켜 달라고 말하고 집으로 간다. 형인 손진목이 일본에 유학을 간다고 집을 떠나 있고 바로 밑의 동생인 손진학은 군대에 복무 중이다. 그리고 여동생 손정애와 남동생인 손진웅은 대구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막냇동생인 손진희는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차남인 손진길이 부친의 사장 결재를 당분간 대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을 모친 고복수와 형수가 무심하지 않게 보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손진길이 3일간 부친을 대신하여 서류를 결재하고 저녁에 병실에 들린다. 그 순간 그는 복도 한 켠 긴 의자에 앉아 있는 한사람의 노인을 본다. 그는 사장어른인 김경암이다.
그래서 반갑게 인사를 하려고 했더니 그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염불과 같은 말이 먼저 손진길의 귀에 들려온다; “손서방이 빨리 일본에서 한국에 들어와야만 하는데 큰일이다. 늦어지면 손사장의 모든 재산이 차남에게 넘어가고 말 것이다. 우리 손서방이 빨리 와야만 한다. 빨리 와야만 이 재산을 차지할 수가 있다…”;
그 말을 듣자 손진길은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이제 겨우 부친 선더말 아재가 의식을 회복하여 눈을 감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그 복도에 앉아서 재산 타령을 하고 있다. 어째서 사돈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럴까? 손진길 자신이 한번도 상상해보지 아니한 경우를 그 사람은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손진길은 자신의 것과 남의 것에 대한 구분이 확실한 사람이다. 부친의 것은 어디까지나 부친의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손으로 버는 그것만이 자신의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 충실한 손진길을 어떻게 보고 사장어른이 그러한 염불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며칠 후에 일본에서 귀국을 한 선더말 아재의 장남인 손진목이 갑자기 병실에 들어서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이놈의 의사들, 모조리 때려죽여버릴 테다. 우리 아버지를 이렇게 죽게 만들어 놓고 손을 놓고 있으니 그들이 의사인가?..”. 그러자 모친 고복수와 형수가 급히 손진목을 말리는 시늉을 한다.
그 다음에 부친 손수석을 힐끗 본다음에 그만 집으로 가고 만다. 선더말 아재도 눈을 뜨지 아니하고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자 모친이 집에 다녀와서 차남 손진길의 귀에 속삭인다; “길아. 너의 형이 결재할 서류를 찾고 있다. 네가 며칠 전에 결재를 하고 서류를 모두 어디에 두었는지 내게 묻고 있다. 그러니 집에 가서 회사서류를 전부 네 형에게 넘겨주고 오너라”.
손진길이 모친 고복수의 얼굴을 한참 본다. 그리고 말을 한다; “어머니의 뜻이 그렇다면 제가 모든 서류를 넘겨 주지요. 어차피 저는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하여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온 사람이니 아버지가 온전히 병상에서 일어나시게 되면 다시 직장에 복직을 합니다. 그러니 장남인 형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회사일을 맡아서 해야 하겠지요”.
집에 도착하여 손진길이 형 손진목에게 서류를 찾아서 넘겨 주고 부친의 장부에 대하여 설명을 해준다. 손진목이 장부 일체를 얼른 자기 방에 감춘다. 그리고 이제는 서류를 결재하는 방법을 설명해달라고 한다. 손진길이 형의 얼굴을 뻔히 본다. ‘어째서 그는 아직 서류를 결재하는 방법도 모르는가?’.
손진길 자신은 무엇보다 부친을 간호하고 빨리 병상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이 그의 책무이다. 그것 하나만을 생각하고자 한다. 그래서 순순히 결재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가르쳐준다. 그러자 형은 부친의 사장직인과 결재인 도장을 모두 손에 가지고서 이제부터는 자기가 전적으로 회사서류를 결재하고 회사일을 볼 것이니 너는 가서 부친 병간호나 잘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자 손진목이 병실로 찾아와서 아주 잠시 부친의 병세를 살핀 다음에 조용히 동생 손진길의 소매를 끌고 바깥으로 간다. 그리고 말한다; “생각보다 결재가 어렵다. 그러니 네가 집에 가서 내게 한번 더 설명을 해다오”. 손진길이 그 말 대로 해준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형은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회사일도 모르고 서류결재도 잘하지를 못한다. 과연 부친을 대신하여 경영을 할 수가 있는 사람일까?”.
그리고 며칠 후에 손진목이 동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와 함께 병실에 들린다. 그리고 주무시고 있는 선더말 아재의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묻히고 동서기 친구와 함께 서류대장에 지장을 여러 개 찍는다. 손진길이 눈 여겨 그 행위를 보고 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지만 제지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인감증명을 끊어보아야 아버지의 재산을 전부 가로채지는 못할 것이다. 그 정도의 규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2주일이 지나자 기가 막힌 일이 발생한다. 의사와 함께 병실에 들어온 손진목이 갑자기 대구로 부친을 옮긴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곳 경주기독병원에서는 이제 더이상 ‘뇌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대구의 ‘제한한방병원’에 가서 한방으로 치료하는 것이 낫다”;
모친 고복수가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 차남 손진길의 팔을 잡는다. 손진길은 부친의 얼굴을 본다. 그러자 선더말 아재가 그 순간 눈을 감고 만다. 그 뜻은 그냥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그 뜻을 손진길이 따르고자 한다. 그래서 선더말 아재는 1977년 3월 14일에 대구 수성구에 있는 ‘제한한방병원’으로 가서 그 병실에 입원하고 만다;
7월 1일까지 한방병원에 있는 동안 손진길이 고생을 좀 한다. 때로는 형이 입원비를 늦게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친 선더말 아재의 병이 별로 차도가 없다. 그래서 부친을 제한한방병원이 아니라 대봉동에 있는 주택을 하나 구입하여 그곳에 모시고 가까운 한의원의 의사에게 왕진을 받고자 한다. 이제는 오래 치료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대봉동 ‘경북고등학교’ 후문 건너편 골목에는 해방촌이 있다. 해방촌에 이르기 전 방천가에 있는 그 주택에는 방이 작은 방까지 합쳐서 4개가 있다. 그래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손정애와 손진웅도 그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곳에서 선더말 아재는 인근에 한의원을 가지고 있는 ‘이두영’ 원장을 집으로 불러서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그 사이에 손진길이 3가지의 경험을 한다; 첫째, 형 손진목이 반년에 한번씩 새 차를 끌고 대구로 오고 있다. 게다가 부친은 대구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들 부부는 해외여행에 나서고 있다. 둘째, 경주에서 은밀하게 들려오는 소식에 형 손진목이 부사장이 아니라 스스로 사장자리에 올라서 회사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셋째, 때때로 생활비를 주지 않고 애를 먹이고 있다.
마침내 수산회사의 박총무가 병문안을 와서 장남에게 전권을 맡긴 것이 과연 선더말 아재의 뜻인지를 묻고 있다. 그때 선더말 아재가 눈을 질끈 감고 묵묵부답이다. 손진길은 부친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장남의 잘못을 지적해보아야 ‘누워서 침 뱉기’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러한 선더말 아재의 행동에서 손진길은 부친의 마음이 이미 재물을 떠나 있음을 읽고 있다. 평생 형제와 가문을 위하여 헌신한 자수성가자가 바로 부친이다. 그런데 이제 우반신을 사용하지 못하고 치료 중에 있으니 그 장남이 모든 것을 제멋대로 차지하고 만다. ‘그것을 꾸중해보아야 무엇 하겠는가?’.
그러나 선더말 아재는 지차들에게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라도 해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유언장을 꾸미려고 장남 손진목에게 자신의 비망록과 장부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손진목이 번번이 묵살을 하고 만다. 그 모습을 보고서 하루는 선더말 아재가 조용히 차남에게 자신이 구술하는 내용을 글로 적으라고 말한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부인 고복수에게는 은하여관을 준다. 차남 손진길에게는 황오동 집을 준다. 3남 손진학에게는 사정에 있는 요정 ‘희정’을 준다. 4남 손진웅에게는 팔우정에 있는 제일부로크 땅을 준다. 5남인 막내 손진희에게는 쪽샘에 있는 요정 ‘별궁’을 준다. 그리고 고명딸 손정애를 포함하여 모든 아들들에게는 손진목이 다른 재산을 모두 차지하는 대신에 공부를 끝까지 시켜주고 결혼식을 잘 치루어 준다”.
그렇게 구술한 다음에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그렇게 배분을 하더라도 장남인 손진목이 내 재산의 7할 내지 8할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니 그 정도의 양보는 할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동생들이 커서 너무 적게 받았다고 하면 길이 너는 형제간에 다툼이 나지 않도록 부디 그들을 말려다오. 그것이 내 부탁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나의 유언은 정확하게 지번을 넣어야 효력이 있어서 내가 비망록을 가지고 오라고 했더니 너의 형이 눈치를 채고서 결코 가지고 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할 수 없어서 이렇게 글로만 남긴다. 그러니 너는 그 점을 알고 있어라”.
그때서야 손진길은 부친 선더말 아재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깨닫는다. 장남 손진목의 뒤에서 그를 조종하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벌써 알고 계시는 눈치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먹이감을 엄청 주고 있다. 그렇지만 지차들에게 최소한의 재물이라도 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소원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니 참으로 허무한 인생이다.
그 정도의 소원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만 하는가? 시련 가운데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천명을 깨닫고 있다. 자신이 55세의 중년의 나이에 이렇게 병석에서 꼼짝을 못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를 못했다. 그런데 장남이 모든 것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지차들이 눈에 밟혀서 질타하지를 못하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동네가 창피한 일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독백과 같은 말을 한다; “내가 한 십년만 더 살면 막내 진희가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볼 텐데…”. 1977년이 저물기 전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길아, 나는 5년이라도 더 살고 싶다. 그래야 막내 진희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눈을 감을 수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 말씀이 벌써 천명을 아시는 것만 같다. 그것이 안타까워서 손진길이 말씀을 드린다; “아버지 제가 ‘주기도문’을 가르쳐 드릴 것이니 식사를 하실 때나 주무시기 전에 꼭 그것을 한번씩 외우십시오.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창조주의 능력으로 하신답니다. 그 소원을 어떤 모양이라도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거예요”;
선더말 아재는 차남 손진길이 가르쳐준 그 ‘주기도문’을 마치 염불처럼 외우신다. 그리고 식사 때와 주무시기 전에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하나님께 간구를 드린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손진길이 생각한다; “젊은 시절부터 자수성가의 삶을 악착같이 살아오신 강건한 부친이시다. 그러나 몸이 병들고 꼼짝할 수가 없으니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구나. 인간이란 그렇게 연약한 존재인가 보다…”.
해가 바뀌어 1978년 1월이 되자 부동산 값이 오른다. 그러자 손진목이 대구에 다니면서 부동산을 구입하고 있다. 물론 부친 선더말 아재의 재산을 처분하여 이제는 자신의 이름으로 대구의 부동산을 사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손진길이 하루는 자신이 살고 있는 대봉동 앞집이 매물로 나와 있다고 그에게 말한다.
손진목이 그 집을 한번 보고서 동생 손진길이 관리를 하면 쉽겠다 싶어서 얼른 구입을 하여 관리를 맡긴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서 부친 선더말 아재가 장남 손진목과 차남 손진길을 동시에 불러서 말한다; “진목이 너는 왜 내 비망록을 끝까지 가지고 오지 않는게냐?”. 손진목이 구차하게 변명한다; “아버지는 신경을 쓰시면 해롭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 가지고 옵니다”.
그 말을 듣자 선더말 아재가 말한다; “그렇다면 집에 가서 그 장부를 한번 보아라. 그곳에는 나의 ‘채무란’이 있다. 내가 아직 갚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채무가 바로 길이가 내게 맡긴 돈이다. 그 돈이 합계 50만원인데 내가 천북에 나와있는 길가의 밭 800평을 100만원에 사면서 내돈 50만원을 보탰다. 그랬더니 운이 좋아서 그런지 그 다음해에 모두 대지로 지목변경이 되었다”.
선더말 아재가 잠시 숨을 돌리고서 이어서 말한다; “그 결과 그 길가의 밭이 집을 지을 수 있는 8필지의 대지가 된 것이다. 그러니 집 4채를 지을 수 있는 땅이 길이의 것이다. 그것은 여기 대구의 집 2채를 충분히 살 수가 있는 돈이다. 그러므로 여기 대봉동 집 2채는 누가 무어라고 해도 ‘손진길’의 것이다. 그가 맡긴 돈을 내가 그렇게 불려서 주는 것이니 너는 앞의 집도 길이 이름으로 등기를 해주어라 그것이 맞다”.
그 말을 들은 손진목은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 자신은 부친의 돈을 가져다 쓰기에 바빴는데 동생은 돈을 부친에게 맡기기에 바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손진길의 이름으로 등기를 한 그 2채의 대봉동 집이 나중에 지차들이 전부 사회에 진출을 하게 되자 그들의 종자돈이 된다.
요컨대, 요지로 변한 그 집 2채를 10여년 후에 좋은 값에 팔아서 지차인 4형제가 공평하게 나누어 자신들의 몸을 일으킨 것이다. 결국 선더말 아재의 이름으로 된 재물은 모두 장남 내외가 차지하고 만다. 그것이 하늘의 뜻인가 보다.
사람이 아무리 수고를 하여 농사를 지어도 그 소출을 거두어 가는 자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특히 선더말 아재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그가 자녀들에게 몸소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그 생전의 교훈이 참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자녀들이 오래 살면서 선더말 아재의 삶의 교훈을 지금도 다음과 같이 추모하고 있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의 산소는 경주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내려다보이는 경주 율동 마을 초입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비석에 들어있는 내용 중 중요부분은 다음과 같음; “선생 휘수석 자민원 호석초야(先生諱秀碩字民源號石樵也, 선생의 이름은 ‘수석’이었고 어릴 때의 또 다른 이름인 자는 ‘민원’이다. 호는 고향인 경주 월성군 내남면 상신리 ‘넓은 돌’ 광석 마을의 나무꾼이라는 뜻으로 ‘석초’라고 불렀다). 손씨관월성 신라대수촌지후(孫氏貫月城新羅大樹村之後, 손씨 성을 가지고 있는데 본관이 월성이고 신라 육촌 중의 하나인 대수촌 집안의 후예이다). 계해시월팔일 생선생 우내남상신리제(癸亥十月八日生先生于內南上辛里第, 계해년 음력 시월 달 팔 일에 내남 상신 동네에 있는 집에서 맏이가 아니라 지차로 태어났다). 자유재기과인 총명절륜(自幼才器過人聰明絶倫, 어려서부터 재주와 그릇이 보통이 아니었으며 총명하기가 그지없었다). 입우신학이 수료년한후 도일고학(入于新學而修了年限後渡日苦學, 서당을 다니다가 보통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과정을 수료하고서는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고학을 했다). 선생 자수성가후 차제헌성 선대분묘 미황지사(先生自手成家後次第獻誠先代墳墓未遑之事, 선생은 자수성가를 하게 되자 정성을 들여서 조상들의 분묘에 남겨진 일들을 다듬고 마무리하였다). 극력보조 형제생계 위자립(極力補助兄弟生計爲自立, 형제들의 생계를 적극 도와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경재주급 인아족척(傾財周給姻女亞族戚, 재물을 기울여서 온 집안을 도왔는데 친가와 외가, 처가와 동서집안까지 두루 경제적으로 도왔다). 솔선원조 어지방발전사업(率先援助於地方發展事業, 지방발전사업에 앞장서서 원조를 하고 또한 투자를 했다. 참고로 대구와 경주를 연결하는 경북여객 경주사무소 설립과 버스 운영, 경북상호신용금고 설립과 운영, 경주상공회의소 설립 및 운영, 경주수산제빙냉동공장의 건설 및 운영, 경주 손가 대표로서 신라 육촌제의 참여 등이 이에 속한다). 배 제주고씨천석녀 생오남일녀(配濟州高氏千錫女生五男一女, 배우자는 제주 고씨인데 고천석씨의 딸이고 부부 사이에 아들 다섯과 딸 하나가 있다). 경주 및 월성지역발전에 공헌한 바 다대하며 특히 선생의 인격과 덕망은 늘 깨끗하고도 높아 기업인이면서도 세인(世人)으로 하여금 청부(淸富)의 도리를 깨닫게 했다. 인생은 필연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감)할지라도 선생은 이와 같이 많은 공(功)과 덕(德)을 남겼을 뿐 아니라 온 가문에 대하여서도 찬란한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니 그 생애가 후인에게 길이 살아 남을 것이며 특별히 만년의 투병생활 중 선생은 기독교에 귀의하여 천국의 시민으로 또한 영생하였으니 금생(今生)의 공덕이 하늘 나라에서 더욱 빛날 것이다. 아들(子) 진목(晉睦), 진길(晉吉), 진학(晉學), 진웅(晉雄), 진희(晉熙), 딸(女) 정애(丁愛), 며느리(婦) 김정옥(金貞玉), 신경자(申京子), 최선숙(崔仙淑), 손주(孫) 민영(敏英), 태익(太翼), 평익(平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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