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48

선더말 아재8(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8(작성자; 손진길) 경주지역에서 가장 먼저 개척이 된 ‘경주제일교회’는 경주사람들에게 상당히 친숙한 곳이다. 그 이유는 해방 후 서양의 구제물품이 주로 경주제일교회를 통하여 주민들에게 전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성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민들이 그 교회의 예배와 행사에 참석만 하면 미국의 귀한 옷가지를 공짜로 얻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경주제일교회’가 참으로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노동동 주택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앞에는 ‘경주제재소’가 있고 그 길을 따라 서진을 하면 시장통이 나타난다. 그 시장이 성건동에 있는 아랫시장까지 연결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경주제일교회에서 동쪽으로 진행하여 다시 북쪽으로 나아가면 그 다음에 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선더말 아재7(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7(작성자; 손진길) 경비계장인 손수석 경사가 퇴근하여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에 이따금 야간에 공무를 수행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경주극장’에 가서 ‘임석경관’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손수석 계장이 그 일을 좋아했다. 매주 경주극장에 가면 영화를 한편 씩 무료로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년이 지나자 지겨워진다. 그래서 그는 차남인 손진길을 자전거에 태워서 함께 저녁에 경주극장에 간다. 6살 짜리 꼬마인 손진길은 당시의 ‘미국의 서부극’이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절대로 졸지를 않는다. 따라서 손수석은 임석경관의 자리에서 잠을 자면서 만약에 극장 안에서 웅성웅성하는 일이 발생하면 즉시 자신을 깨워 달라고 아들에게 단단히 말해 놓는다. 차남인 손진길은 부친의 말이라고 ..

선더말 아재6(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6(작성자; 손진길) 1956년 여름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한창 ‘간 디스토마’ 치료로 힘들어할 때에 내남 너븐들에 살고 있는 그의 형제들이 몸에 좋다는 여러 가지 것들을 마련하여 가지고 온다. 그 가운데 ‘오소리’가 있다. 오소리를 푹 고아서 먹으면 간에 좋다고 하는 속언이 있는 모양이다; 오소리를 잘 손질하여 큰 솥에 넣고 푹 고아서 탕으로 만들어 먹는다. 오소리는 당시 ‘작은 곰’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므로 그 약효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맛이 그다지 좋지가 못하므로 ‘오소리탕’을 다른 반찬과 더불어 순대국처럼 먹는다; 그 진한 국물을 탕약으로도 마신다. 그때에는 선더말 아재가 코를 손으로 쥐고서 겨우 반 사발 마신다. 그래도 어렵게 그것을 구해온 형제들의 정성을 생각하여 끝까지..

선더말 아재5(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5(작성자; 손진길) 신부 김영숙의 부친인 김기태는 장녀의 결혼식을 경주 포교당에서 신식으로 올리기를 원한다. 그는 경주에 아는 지인들이 많아서 그들이 모두 축하객으로 쉽게 올 수 있도록 시내 서부동에 있는 포교당 건물을 예식장으로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도 동의를 한다; 그래서 1956년 1월 중순에 선더말 아재의 막내동생인 손수태와 김기태의 장녀 김영숙의 신식 결혼식이 경주일원에 불교를 전파하는 중심지 포교당에서 있게 된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신식결혼식을 구경하기 위하여 경주 포교당으로 찾아온다. 신랑신부 앞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서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날 아침에 손수태는 새로 맞춘 신사복을 입고서 말끔한 신랑의 모습으로 형 손수석의 집에서..

선더말 아재4(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4(작성자; 손진길) 2. 선더말 아재의 형제들 내남 너븐들 사람인 손수석은 고향과 그 주변에 천 마지기나 되는 전답을 소유하고 있는 대지주이다. 자신이 경찰관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답의 관리를 고향에 살고 있는 큰형 손수정과 바로 아래 동생 손수권에게 맡겨 두고 있다. 따라서 매년 가을이 되면 동생 손수권이 소작관계를 기록한 장부를 가지고 지주인 형 손수석을 방문한다; 그러면 손수석은 그 소출이 얼마인가를 확인한 후에 자신의 농지에서 소작료로 거두어 들인 양곡을 동생에게 강원도 어느 석탄회사로 얼마를 열차편으로 보내라고 지시한다. 그 사실을 손수석이 미리 석탄회사에 통보하고 나중에 겨울이 한창일 때 수금에 나서게 된다. 그 이유는 석탄회사가 겨울 한철 호황을 크게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

선더말 아재3(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3(작성자; 손진길) 손수석 경사가 1954년 4월 10일부터 경주경찰서 수사계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동안 그는 경찰정복이 아니라 주로 신사복으로 사복을 착용한다. 수사를 일선에서 지휘하기 위해서는 형사들과 함께 행동을 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민간인들 사이에 파고들어야 한다. 요컨대, 수사계장은 이웃사람과 친해야 하며 동네유지들과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손수석은 무엇보다도 경주의 중심지 노동동 자신의 집과 이웃하여 살고 있는 동네 유지들과 안면을 트고서 지낸다. 그 가운데 유독 세사람과 친하다; 그들이 장학사인 김상협, 철도공무원인 이재훈, 그리고 경주읍 중심지에서 큰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송성태이다. 그들은 노동동에 자리를 잡은 지가 제법 오래이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벌써 동..

선더말 아재2(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2(작성자; 손진길) 1953년 10월이 되자 경주경찰서장이 정기인사를 실시한다. 정기인사의 주안점은 일선의 지서장과 본서의 계장들에 대한 수평적인 인사교류에 있다; 따라서 7개월간 본서의 보안계장으로 일하고 있던 손수석 경사가 이번에는 외동지서장으로 발령이 난다. 인사가 10월 3일자이지만 업무의 인수인계가 있으므로 실제로 부임 날자는 10월 10일이다. 일처리가 빠르기로 소문난 손수석 경사는 이틀만에 모든 인수인계절차를 끝낸다. 마침 외동지서장인 후배 김순재 경사가 본서 보안계장 자리로 오게 되므로 서장이 손경사와 김경사의 자리를 맞교환한 인사이다. 따라서 두사람은 이틀만에 인수인계를 얼른 끝내고 각자 5일 동안 자유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그 시간에 이사준비도 하고 개인적인 볼일도 보고자 ..

선더말 아재1(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1(작성자; 손진길) 1. 휴전협정을 전후하여 발생하고 있는 일들; 봉천 할매 정애라가 별세를 한 때가 1953년 6월 11일이다. 그녀의 셋째 아들인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6월 13일에 모친의 발인과 매관행사에 참여를 하고 곧바로 직장인 경주경찰서로 되돌아온다. 휴전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어 경찰이 비상근무를 하고 있는 시국이라 보안계장인 그가 오래 자리를 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5일이 지나자 뜻밖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 6월 18일 자정을 기하여 원용덕 헌병사령관을 통하여 거제, 영천, 대구, 부산, 부평 등 8개 수용소에 갇혀 있던 3만 7천명의 포로 가운데 약 2만 7천명의 반공포로를 일시에 석방하는 과감한 조치를 취하고 만다; 당시 포로수용소의 전경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