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3(작성자; 손진길)
손수석 경사가 1954년 4월 10일부터 경주경찰서 수사계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동안 그는 경찰정복이 아니라 주로 신사복으로 사복을 착용한다. 수사를 일선에서 지휘하기 위해서는 형사들과 함께 행동을 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민간인들 사이에 파고들어야 한다. 요컨대, 수사계장은 이웃사람과 친해야 하며 동네유지들과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손수석은 무엇보다도 경주의 중심지 노동동 자신의 집과 이웃하여 살고 있는 동네 유지들과 안면을 트고서 지낸다. 그 가운데 유독 세사람과 친하다;
그들이 장학사인 김상협, 철도공무원인 이재훈, 그리고 경주읍 중심지에서 큰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송성태이다. 그들은 노동동에 자리를 잡은 지가 제법 오래이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벌써 동네유지의 대접을 받고 있다.
본서의 수사계장인 손수석 경사가 동네의 이웃이므로 그들은 필요한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따라서 손수석은 그들과 사귀면서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많이 얻고 있다. 예를 들면, 장학사인 김선생은 경주시내의 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읍내 이발소를 오래 운영하고 있는 송선생은 시내를 주름잡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정보에 밝다;
그리고 철도공무원인 이선생은 경주역 주변의 정보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 그러므로 손수석 계장이 그들과 개인적으로 사귀면서 친구가 되어 술잔을 나누게 되면 수사상으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가 있다. 그런데 손수석은 그들과의 사귐을 그러한 공직생활의 필요에 국한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므로 그들과 잘 사귀고 좋은 이웃으로 서로 소통을 하며 지내자고 하는 그의 생각이 먼저이다.
그러한 손수석의 생각을 그들이 알아서인지 스스럼 없이 친구로 잘 대해주고 있다. 사실은 그러한 친화력이 손수석 계장의 인간적인 장점이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에 늘 웃는 인상이다. 손수석은 청소년시절에 일본 동경에서 홀로 고학을 하면서 일찍 사회생활을 했다. 그때 그는 손님을 웃으면서 반기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청년시절에 형성이 된 그 미소가 경찰관생활을 하면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경주 읍내는 그리 넓지가 않다. 종과 횡으로 각각 10리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자전거를 타고서 이동을 하게 되면 한 시간 정도에 대충 한바퀴를 돌 수가 있다. 그 한시간 동안에 많은 지인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손수석이 팔우정과 황오동 근처로 이동을 하게 되면 처가 쪽의 인척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황오동 초입에 ‘동화 양조장’이 있는데 그 주인이 두사람이다. 한사람은 교리 최부자의 집안 사람이고 또 한사람은 고병대 아재이다. 그 양조장은 한옥을 멋있게 고쳐서 사용하고 있다;
건물내부에서 볼 수 있는 양조용 옹기들이 다음과 같다;
그리고 팔우정 안 동네에는 넓은 밭에 박하를 많이 심어 놓은 고민달의 집이 있다. 그는 소달구지로 남의 짐을 자주 운반하고 있기에 그 주변에서 더러 만나게 된다. 그리고 황오동에서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고중달의 가족도 있다.
손수석이 수사계장으로 일하는데 그 처가 쪽의 친척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그 일대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과 요주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수석이 팔우정 방면으로 가게 되면 때로 큰길가 큰집에 살고 있는 최민호를 찾는다. 10살이나 연상인 최민호는 손수석을 반긴다. 왜냐하면, 최민호의 조부인 최사권이 손수석의 조부인 서배 할배 손상훈의 재종 매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수석의 사촌 누이들 집안이 그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경주 읍내 아랫시장에는 그의 제일 위 사촌 누나인 손수자의 아들이 생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손수석보다 10살이 어린 청년인데 매우 부지런하다. 그의 이름이 ‘최해구’이다. 그가 성건동과 아랫시장의 사정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손수석의 사촌 여동생들이 경주 일원에 살고 있다. 한사람이 서악에 살고 있는 손영옥이고 또 한사람이 사리에 살고 있는 손자옥이다. 특히 손자옥과 그녀의 남편인 ‘장기동’은 일본 북해도에서 손수석과 함께 고생을 같이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 집에 들리면 꼭 식사를 함께하자고 한다. 그렇게 옛날 일본에서 입은 손수석의 도움을 잊지않고 있는 그들이다.
손수석은 멀리 남천내에 수사를 할 일이 있어 가게 될 때에는 틈을 내어 외삼촌인 정한욱의 집을 방문한다. 외삼촌은 작년에 환갑을 맞이하자 웃시장에서 오래 운영하던 식당을 접었다. 자식들이 그 일을 맡지 않으려고 하기에 식당을 정리하고 이제는 교리집에서 편하게 살고 있다. 그동안 오래 식당을 경영하여 돈을 많이 벌었기에 생활이 넉넉한 편이다.
손수석은 본서 수사계장의 직책이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그가 평소에 알고 지내는 많은 친지들을 만나고 길거리에서 그들과 인사를 나눌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듣게 되는 경주 읍내의 이야기가 많은데 그것이 유익하다. 훗날 무슨 사업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손수석의 식견을 넓혀주고 있는 것이 그러한 정보들이다.
고참 경사이며 수사계장이기에 손수석은 나름대로 공직생활에 있어서도 다소의 여유가 있다. 그래서 고향 내남 너븐들에도 자주 들린다. 그 사이에 조카와 질녀들이 여럿 태어나고 있다;
큰형인 손수정이 둘째 아들을 얻고 있다. 손진화의 남동생인 ‘손진걸’이 1954년 12월 15일생이다. 그리고 둘째 형인 손수상이 또 딸을 얻고 있다. 이름이 ‘손영희’인데 1953년 12월 3일생이다. 1953년 2월에 결혼한 동생 손수권이 아들을 얻고 있다. 그 이름이 ‘손진호’인데 1954년 2월 1일생이다.
그리고 1955년 봄이 되자 손수석의 집에 경사가 난다. 아내 고복수가 순산을 하여 3월 11일에 아들을 낳은 것이다. 셋째 아들을 얻은 손수석은 기뻐하면서 그 아들이 앞으로 공부를 잘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름을 ‘손진학’이라고 부른다. 아내가 아들만 내리 셋을 생산하였으니 얼마나 장한 지 모른다. 그래서 손수석은 아내에게 참으로 수고했다고 칭찬한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연자는 안방마님이 몸조리를 잘하도록 군불을 계속 지펴주고 좋은 음식을 많이 만들어 준다. 아내 고복수가 순산을 했다는 소식을 손수석이 처가에 전해주자 하루는 장모 전혜숙이 10리길을 걸어서 방문한다. 그리고 연자와 함께 부엌에서 참으로 맛이 나는 요리를 만든다. 그것을 딸과 사위에게 차려내는 것이다. 그 음식솜씨가 정말 일품이다. 장모 잘 만난 덕에 손수석이 일품 요리를 맛보고 있다.
그렇게 지내는 사이에 1955년 4월초가 되자 손수석 경사가 인사이동이 된다. 이번에는 ‘강동지서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강동은 경주의 북동쪽 끝에 있는 지역이다. 포항이 가깝다. 따라서 공비들의 활동이 뜸하기는 있지만 아직 남아있는 곳이다.
손수석 경사는 그곳 지서장 관사에 혼자서 입주한다. 그리고 경찰정복에 매일 칼빈 총을 어깨에 매고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지서장인 그는 차석과 순경들에게 항상 무장상태를 유지하라고 지시한다. 언제든지 동네에 공비가 나타나면 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동지서에 근무를 하면서 관내를 순찰하다가 보니까 물이 좋고 산에 나무가 잘 자리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따라서 손수석은 그 지역의 산지에 있는 삼판회사를 방문하여 목재의 값을 알아본다. 강원도의 삼판에 비하여 갱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의 값이 상당히 싼 편이다. 경주 일원에는 탄광이 없으므로 그 정도 길이와 굵기의 자재는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여름에 며칠 휴가가 났을 때 손수석은 강원도 탄광을 방문하여 수금을 하면서 갱목이 더 필요한 수요처를 알아 본다. 그러한 석탄회사를 추가로 확보하자 강동 지역의 삼판회사에서 갱목을 사서 그곳에 납품할 수 있도록 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그 석탄회사에 미곡을 양식으로 납품하는 계약까지 체결한다. 그 양식은 가을에 강동지역에서 생산이 되는 추곡을 수매하여 열차로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손수석 경사가 지서장의 업무에도 만전을 기하고 휴가철에는 강원도를 방문하여 개인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다가 보니까 어느새 겨울이 다가온다. 그런데 그해 가을 곧 1955년 9월 1일부로 법률 제390조에 의거 ‘경주읍’이 ‘경주시’로 승격이 되고 ‘경주군’이 ‘월성군’으로 그 이름이 바뀌고 있다.
‘읍’이 ‘시’로 승격이 되는 만큼 그 지역이 넓어지고 있다. ‘경주읍’에 인접하고 있던 ‘경주군’의 ‘내동면’이 그대로 흡수가 된다. ‘천북면’ 가운데 인접한 3개리 곧 황성, 용강, 동천리가 ‘경주시’에 편입이 된다. 그리고 ‘내남면’의 탑리도 경주시에 들어오게 된다. 그들은 이제 시골의 ‘리’가 아니라 시내의 ‘동’으로 탈바꿈이 되고 있다. 따라서 경주시는 무려 2개의 출장소와 39개의 법정동을 가진 도시이며 경상북도에서는 대구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두번째의 도시가 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다소 작아진 ‘경주군’의 명칭이 ‘월성군’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한 행정적인 변화가 관련법률에 따라 가을에 발생하자 그에 발맞추어 경주경찰서에서는 추운 계절 12월에 인사이동을 단행한다. 이번에는 손수석 지서장이 경주경찰서 경비계장으로 전보가 된다;
손수석 지서장의 이사는 심히 간단하다. 혼자서 관사에서 지냈기에 별로 이삿짐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12월 초순에 경주 노동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서 10일부터는 다시 본서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그 사이 1955년 8월달에는 동생 손수권이 둘째 아들을 얻었다고 기별이 온다. 8월 21일에 차남을 얻자 손수권은 그 이름을 ‘손진현’으로 지었다고 한다. 현명한 아들이 되라고 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집안에 좋은 일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해 8월달에 예천 용궁에 가서 살고 있던 손수석의 누나 손해선이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친정으로 되돌아 왔기 때문이다. 1945년 8월에 해방이 되자 남편 이도성을 따라 시집으로 들어간 손해선과 그녀의 딸 이문자이다. 그 사이에 남편 이도성과의 사이에 아들까지 낳고서 살았다.
하지만 장성한 아들 셋을 두고 있는 전처의 수모와 괄시가 보통이 아니다. 십년 간을 참고 살았지만 도저히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 딸과 아들을 데리고 무작정 친정동네로 온 것이다. 남편 이도성이 처자식을 따라 너븐들에 와 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손수석은 만사를 젖혀 놓고 고향을 방문한다. 그리고 이도성과 담판을 짓는다.
이도성이 손수석보다는 많이 연상이지만 죄인이 된 심정으로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다시 맹세를 한다; “처남, 내가 정말 할말이 없네. 조선사람들은 해방이 좋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지옥이야. 십년간 한집에 두 아내를 두고서 살 수밖에 없는 내가 죄인이야. 그렇지만 문자 엄마가 그동안 나의 처지를 생각하여 오래 참고 살았어. 그런데 더 이상은 도저히 안되는 가봐. 나도 이해를 해. 그래서 이제는 차라리 이곳 친정동네에서 마음 편하게 살도록 해주고 싶어”.
손수석은 매형 이도성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본다. 일찍이 도저히 본부인과 살 수가 없어서 일본으로 밀항을 한 이도성이다. 조선과는 영원한 이별인 줄 알고서 돈을 벌어 고향에 송금만 하고 북해도에서 새로 결혼을 한 이도성이 느닷없이 해방이 되자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의 아내가 된 손해선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이도성이 손수석 앞에서 다짐을 한다; “처남, 내가 돈을 조금 가지고 왔으니 이곳 너븐들에서 문자 엄마가 살 수 있도록 조치를 좀 해주게. 나는 고향 예천으로 돌아갔다가 그곳의 자식들이 성가를 하게 되면 다시 이곳으로 올 생각이네. 나의 처지를 한번 헤아려 주기 바라네. 그래도 내가 자식들에게 애비가 된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되지 않겠나?...”.
내남 월성 손씨의 가주인 손수석이 누나 손해선에게 묻는다; “누나는 내가 자형의 말 그대로 그렇게 처리를 하면 이의가 없겠어요? 다른 이견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해주세요. 나는 누나의 뜻대로 처리를 해줄 생각이오”. 손해선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답한다;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까지 둔 내가 어떻게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겠어... 나는 평생 남편 이도성의 아내로 살다가 죽을 거야. 그러니 남편의 뜻대로 그대로 조치해주면 돼, 나는 평생 이도성 씨를 기다리면서 살 테니까…”.
그것으로 결론이 났다. 손수석은 이도성을 떠나 보내고 누나 손해선을 위하여 너븐들 동네와 선산 사이에 있는 대나무 숲의 일부를 정지 작업한다. 그리고 그곳에 초가집을 지어서 누나와 질녀 그리고 조카가 함께 기거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해준다;
그 숲에는 옹달샘이 하나 있어서 일년사철 샘물이 마르지가 않는다. 그리고 경관이 좋은 편이다. 그곳에서 손해선은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마음 편하게 살게 된다. 집과 밭을 동생인 손수석이 전부 대가없이 제공해주었기에 그녀는 남편 이도성이 맡기고 간 그 돈으로 그곳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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