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4(작성자; 손진길)
2. 선더말 아재의 형제들
내남 너븐들 사람인 손수석은 고향과 그 주변에 천 마지기나 되는 전답을 소유하고 있는 대지주이다. 자신이 경찰관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답의 관리를 고향에 살고 있는 큰형 손수정과 바로 아래 동생 손수권에게 맡겨 두고 있다. 따라서 매년 가을이 되면 동생 손수권이 소작관계를 기록한 장부를 가지고 지주인 형 손수석을 방문한다;
그러면 손수석은 그 소출이 얼마인가를 확인한 후에 자신의 농지에서 소작료로 거두어 들인 양곡을 동생에게 강원도 어느 석탄회사로 얼마를 열차편으로 보내라고 지시한다. 그 사실을 손수석이 미리 석탄회사에 통보하고 나중에 겨울이 한창일 때 수금에 나서게 된다. 그 이유는 석탄회사가 겨울 한철 호황을 크게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연탄공장들이 서민의 난방용 연탄을 생산하기 위하여 가장 바쁜 계절이 겨울이다. 매서운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서민들이 겨울에 연탄을 많이 소비하고 있으므로 석탄수요가 가장 큰 시기이다;
그러므로 탄광에서는 석탄이 없어서 못 파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그에 따라 대금을 미리 받고서 연탄회사에 석탄을 공급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손수권은 자신의 농토에서 생산한 추곡을 형에게 사달라고 매년 요청한다. 그는 젊은 시절 형 손수석을 따라 일본 북해도에 건너가서 삼판에서 일꾼으로 일하고 돈을 많이 모아 그것으로 고향의 전답을 사 모은 바가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논에서 생산한 소출이 적지가 않다. 그것을 형에게 팔려고 하면서 그 대가를 형의 전답으로 받으려고 한다;
손수권은 매년 형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그 대가로 거의 절반 값으로 형이 소유하고 있는 전답 가운데 좋은 것을 달라고 한다. 대지주인 손수석은 동생 손수권이 하자는 대로 해주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손수석은 형제들 가운데 자신만이 조모 이채령의 배려로 심상소학교에서 공부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공부를 더하고 돈을 번 사실이 형제들에게 조금은 미안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형들은 모르겠지만 아우인 손수권이나 손수태는 머리가 좋은 편이다. 그들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면 어떠한 인생을 살 것인가를 늘 생각해본다. 그 결과 손수석은 동생들에게 참으로 어진 형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바로 밑의 동생 손수권이 원하는 대로 기꺼이 응해주고 있다. 그리고 막내 동생 손수태에 대해서는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손수권의 경우에는 아들을 계속 얻으면서 부부간에 열심히 농사를 지어 자신들의 농토를 넓히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그러므로 손수석은 매년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고향의 전답 가운데 동생부부가 원하고 있는 문전옥답을 그들이 제시하는 싼 값에 그대로 주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나중에 고향에서 손수권 부부가 큰 지주가 되고 있다.
손수석의 큰형인 손수정은 동생인 지주 손수석의 전답을 관리하면서 매년 그가 수고비로 받은 돈으로 생활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는 모친 봉천 할매가 준 돈으로 80마지기의 전답을 사서 따로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생활이 넉넉하여 고향에서 부농으로 살고 있으니 그것으로 그는 만족하고 있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동생 수석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벌어온 돈으로 자신이 얻게 된 재산이다. 따라서 큰형인 손수정은 부부간에 동생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손수석의 둘째 형인 손수상은 일찍이 백부집에 양자로 들어갔기에 그 집에서 물려 받은 재산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동생 손수석을 따라 일본 북해도로 가서 삼판일꾼으로 일하면서 벌어온 돈도 상당하다. 따라서 그 역시 고향에서 잘 살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 것이다. 그렇지만 손수상보다 머리가 더 좋은 아내 박재순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남편에게 우리도 경주시내에 가서 한번 살아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손수상은 고향이 편하고 좋다. 왜냐하면 고향 너븐들에는 자신 소유의 농토가 상당히 있어 남부럽지 아니하게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타고난 농사꾼인 그는 매우 건강하여 농사를 짓는 일이 쉽다. 그리고 함께 자란 동무들과 어울려서 농한기 한철 술잔을 나누면서 살기에는 자신에게 익숙한 고향 그것도 인정이 넘치는 시골이 훨씬 좋은 것이다;
한편,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지리학과에 다니고 있는 손수태는 졸업반이 되자 중학교에 가서 교생실습을 하고 있다. 그는 고향인 내남에 있는 중학교를 선택하여 그곳에서 교생실습을 한다. 그때가 1955년 이른 가을이다. 그는 내남중학교가 있는 용장에 방을 하나 얻어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손수석의 막내동생인 손수태의 나이가 어느덧 25세이다. 그는 교생실습만 끝나면 중학교 선생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모친 봉천 할매가 준 돈이 상당히 남아 있다. 앞으로 가정을 꾸민다고 하면 월급과 더불어 그 돈으로 잘 살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주변에 좋은 신부감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
그러한 손수태의 눈에 내남에서 국민학교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는 젊은 김선생이 들어오고 있다;
그녀는 경주 시내 웃시장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부자집의 딸이다. 심성이 착하고 순종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하루는 손수태가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본다; “김선생께서 시간이 되시면 제가 차를 한잔 대접하고 싶습니다만?...”.
뜻밖에 이름이 김영숙인 그녀가 미소를 띄면서 조용하게 대답한다; “이곳 내남에서는 선생인 청춘남녀가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없지요… 제가 집이 경주 시내이니 그러면 경주로 가서 그곳 외곽에서 차를 한잔 마시도록 해요”. 경주 시내에서 자란 탓인지 차를 한잔 마시는 정도는 그녀가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그렇게 손수태는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내남 이조의 국민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는 처녀 김영숙은 진작에 대구에서 공부하고 용장의 중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고 있는 노총각 손수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경주 웃시장에서 돼지 국밥집을 오래 경영한 정한욱 부부의 식당을 김영숙의 부모가 재작년에 인수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정한욱은 가게를 물려받게 되는 김영숙의 부모에게 자신의 누나가 내남으로 시집을 갔으며 그 아들 가운데 경찰공무원도 있고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도 있다고 자랑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김영숙의 부모는 손수석 경사와 대학생 손수태의 이름을 딸에게 말해준 것이다. 그런데 그 대학생이 김영숙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국민학교 이웃의 중학교에 교생실습을 온 것이니 그의 신상에 대해서 그녀가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22살의 처녀인 김영숙이 볼 때에는 손수태 선생이 키도 크고 미남자이다. 그러므로 은근히 신랑감으로 마음에 드는 것이다.
흔히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가을에 경주 시내 외곽 탑동에서 차를 한잔 나누어 마신 다음부터 25세의 총각선생 손수태와 22살의 처녀선생 김영숙은 급격하게 가까운 연인사이가 된다;
손수태는 김영숙과 친해지자 하루는 그녀가 진작에 손수태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말을 듣게 되니 그것도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손수태는 부모님이 모두 별세하고 고아와 같은 자신에게 하늘이 맺어준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서 그해 가을에 김영숙에게 개인적으로 청혼을 한다. 두사람은 평생을 서로 아끼며 일편단심으로 사랑하면서 백년해로를 하자고 굳게 약속한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내남 용장에 손수태가 얻어서 살고 있는 방에 그들만의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그렇게 가을과 겨울을 함께 지내면서 살고 있는 사이에 그만 김영숙의 배가 불러오기를 시작한다. 손수태는 이제는 집안에 말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주시내 노동으로 찾아가서 형 손수석에게 말을 한다.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서 아내 고복수와 함께 그 이야기를 듣던 손수석의 눈에 은근히 노기가 비치고 있다.
그 눈치를 보고서 고복수가 먼저 말을 꺼낸다; “여보, 도련님의 나이가 벌써 25살이예요. 노총각이지요. 그러니 지금 살림을 하고 같이 살고 있는 여자가 임신을 했다고 해도 어린 나이에 철모르게 불장난을 한 것은 아니예요. 그러니 그 허물을 덮어주고 그냥 결혼식을 올리도록 선처를 해주는 것이 좋겠어요. 부모님이 아니 계시고 그동안 혼자 객지인 대구에서 외롭게 공부만 한 도련님이니 그 외로운 처지를 한번 헤아려 주시지요?… 네?”.
아내가 그러한 설득을 하고 있지만 손수석은 내심 막내동생 손수태가 마음에 썩 들지가 않는다. 그가 제멋대로 혼전 동거를 하고 임신을 시킨 것은 그동안 집안이 잘 되는데 일조를 하라고 그에게 재정적인 후원을 아끼지 아니한 가주 손수석의 기대와 신뢰를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만 일종의 배신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학까지 공부를 시킨 막내 손수태의 그릇이 그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손수석은 그에 대한 큰 기대를 이제는 접고자 한다.
손수태는 가주인 형 손수석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형제 간에 나이 차이가 8살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손수태가 보아온 셋째형 손수석은 감히 범접할 수가 없는 상대이다. 벌써 10년전에 고향에서 천석꾼이 된 젊은 부자가 형 손수석이다. 그 형 덕택에 팔자를 고친 고향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손수태 자신이 볼 때에는 부모님보다 더 의지가 되고 있는 자가 바로 셋째 형인 것이다.
그래서 손수태는 형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한참 시간이 지나자 형이 입을 연다; “일이 이왕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 막냇동생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나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그러니 수태 너는 그 처녀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먼저 용서를 구하고 그 다음에 결혼허락을 정식으로 받아서 나에게 말해 다오. 그러면 내가 결혼식장을 한번 알아보겠다. 일이 성사가 되면 수태 네가 일가 친지들에게 정식으로 청첩장을 내도록 해라”.
가주인 형의 허락을 받은 손수태는 망서리지 아니하고 김영숙과 함께 저녁에 사정동으로 가서 장인 장모가 될 두분에게 큰절을 올린다. 두사람은 딸이 배가 불러 있는 것을 보고서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런데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딸을 임신시킨 자가 불한당 같은 자가 아니다. 내남 월성 손씨 양반이라고 한다. 그리고 교생실습을 나온 대학생이라고 한다. 마누라 밥걱정을 시킬 작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영숙의 부친인 김기태가 손수태에게 말한다; “세상에 혼자서 아기를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집 맏이인 딸이 혼전에 임신을 했다고 하는 것은 자네와 내 딸의 공동책임이다. 그 시작은 분명이 유교사회 양반의 집안에서 있어서는 아니되는 잘못이다. 우리 집안도 경주 김씨 왕족에 속하는데 후대에 와서 이러한 잘못을 범하고 있으니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두사람이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니 이번 한번만은 내가 눈을 감아줄 터이니 차후로는 일편단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뱃속의 아기를 낳아 잘 양육하기를 바란다”.
가까스로 허락을 받은 두 사람은 그때서야 시내 노동동으로 찾아와서 가주 손수석 부부에게 인사를 드린다. 손수석이 막내 제수가 될 사람을 보니 아담한 체구에 예쁜 인상이다. 고등교육까지 받은 인텔리이니 남편의 내조는 잘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친정집이 경주 김씨라고 하니 그것도 인연이리라 생각하고 결혼식 준비를 해준다.
손수태의 결혼식 일자가 1956년 1월 중순이다. 그때 손수석의 장남인 손진목은 9살이고 차남인 손진길은 5살이며 삼남인 손진학은 2살인 아기이다. 손진목은 벌써 월성국민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이제 2학년이 된다. 손진학은 모친 고복수의 등에 업혀 있다. 그런데 손진길은 5살에 불과한데 벌써 멀쩡하게 사리분별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그는 막냇삼촌 손수태에 대하여 어린 나이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가 않다.
그 이유는 작년 여름에 집에 혼자 남아 있는데 갑자기 막내삼촌이 자기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여 부채로 자신의 볼기를 막 내리쳤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갑자기 구타를 당했는데 그 이유가 워낙 이해가 되지를 않아서 너무나 억울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울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주위에 호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 따라 어째서 부엌일을 거들고 있는 연자 누나도 집에 없었는지 모른다.
형 진목은 바깥에 놀러 나가고 부모님은 막내 손진학을 업고서 계중에 가신 모양이다. 연자 누나는 잠시 고향에 다니러 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집에 혼자 남게 된 손진길을 손수태에게 좀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을 한 것 같은데 그 삼촌이 자기 편한 대로 지내다가 손진길이 무언가 부탁을 하자 그만 화가 나서 매를 손에 든 것으로 보인다.
4살 짜리 꼬마에 불과한 조카 손진길이 무엇을 알까 싶어서 안심을 하고 부채로 볼기를 제 마음껏 쳤는데 그것이 아니다. 손진길은 오전에 시작한 울음을 저녁이 될 때까지 그치지를 않는다. 손수태는 나중에는 울음을 얼른 그치라고 계속하여 부채로 아이의 볼기장을 쳤다;
그럴 수록 꼬마는 ‘꺼이 꺼이’ 울기를 계속한다. 처음에는 ‘앙앙’ 울다가 오후가 되자 울음이 막혀서 ‘꺼이 꺼이’ 울고만 있는 것이다.
사실은 4살짜리 꼬마에 불과한 손진길이 벌써 사리분별을 하고 자신이 억울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손수태가 진작에 눈치를 챘더라면 그러한 횡포를 아예 부리지 아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꿈에도 몰랐기에 괜히 객기를 부렸다가 그만 자신의 소인배적인 성향을 조카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어쨌든 그대로 형 집에 있다가는 나중에 문책을 당할 것만 같다. 그래서 손수태는 얼른 고향으로 피신하고 만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모친 고복수가 깜짝 놀란다. 집에 둘째 아들 4살짜리 꼬마 손진길만 있는데 그 볼기장이 벌겋게 부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굴에 눈물이 말라 붙은 채로 말을 못하고 ‘꺼이 꺼이’ 거품만 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 옆에는 대나무살이 쪼개지고 기름종이가 너풀거리는 부채 하나가 놓여 있다. 그것을 보고서 손수석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금방 파악한다. 그래서 혼자 속으로 생각하고 만다; “조카 하나도 제대로 돌보지를 못하는 참으로 속이 좁은 동생이 막내 손수태이구나. 대학공부까지 시켰지만 나중에 어른 구실을 하고 대소가에 큰 도움을 주기는 힘이 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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