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선더말 아재6(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7. 08:35

선더말 아재6(작성자; 손진길)

 

1956년 여름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한창 ‘간 디스토마’ 치료로 힘들어할 때에 내남 너븐들에 살고 있는 그의 형제들이 몸에 좋다는 여러 가지 것들을 마련하여 가지고 온다. 그 가운데 ‘오소리’가 있다. 오소리를 푹 고아서 먹으면 간에 좋다고 하는 속언이 있는 모양이다;

오소리를 잘 손질하여 큰 솥에 넣고 푹 고아서 탕으로 만들어 먹는다. 오소리는 당시 ‘작은 곰’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므로 그 약효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맛이 그다지 좋지가 못하므로 ‘오소리탕’을 다른 반찬과 더불어 순대국처럼 먹는다;

 그 진한 국물을 탕약으로도 마신다. 그때에는 선더말 아재가 코를 손으로 쥐고서 겨우 반 사발 마신다. 그래도 어렵게 그것을 구해온 형제들의 정성을 생각하여 끝까지 복용한다.

어쨌든 자신이 병석에서 빨리 일어나야만 한다. 아직 34살에 불과하다. 자신이 꼭 이룩해보고 싶은 경제건설을 위한 사업은 아직 시작도 해보기 전인데 이렇게 쓰러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악물고 몸을 회복하고자 악전고투를 계속하고 있는 선더말 아재이다.

그러한 사위를 격려하기 위하여 장인 고천석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매 마을에서 경주 노동에 살고 있는 딸네를 방문하고 있다. 그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있으며 수염이 제법 길다. 옛날 훈장의 모습을 아직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생계를 위하여 장매 마을에서는 농사를 짓고 있다. 아직 막내딸 고순옥이 18살의 처녀로 미혼이므로 그가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고천석이 사위집을 찾아올 때마다 딸 고복수가 언제나 술상을 내온다. 그러면 그는 노동 기와집의 툇마루에 앉아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그 술을 맛나게 마신다. 고천석은 둘째딸이 경주시내 한복판에서 그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이 흐뭇하다. 그래서 사위 손수석이 빨리 병마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마음속으로 희구하고 있다.

그가 낮에 딸네집에 올 때마다 국민학교 2학년인 손자 손진목은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어 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5살 꼬마인 손진길은 골목에서 동무들과 열심히 놀다가 점심 때가 되어야 집에 돌아온다. 둘째 손자는 툇마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외할아버지를 신기한듯이 쳐다본다.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손으로 수염을 한번씩 쓰다듬고 있는 그 모습이 관찰대상인 모양이다. 그리고 돌이 지난 아기 손진학은 방안에서 혼자 놀고 있다.

딸 고복수는 언제나 걸레를 들고서 방과 마루 그리고 장독대까지 깨끗하게 닦고 있다;

부엌일은 주로 연자가 하고 있으므로 그녀는 집안 곳곳을 깨끗하게 청소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면서 빨리 남편이 낫기를 기원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서 고천석은 딸이 살림에 재미를 크게 붙이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아무쪼록 그 좋은 복을 딸이 오래 잘 누리기를 소망하고 있는 친정아버지이다.  

하루는 그렇게 딸네 집에 갔다가 막 골목길을 벗어나고 있는데 큰길 위에서 꽃상여가 하나 내려오고 있다. 여러 명의 청년들이 그 꽃상여를 매고 있는데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상주들과 삼베치마를 입은 부녀자들의 수가 상당히 많다. 그 모습으로 보아 지금 칠성판에 누워 있는 고인은 유복한 노마님이신 모양이다;

경주 ‘산내여관’과 ‘경주제재소’가 마주 보고 있는 그 길을 통과하여 아랫시장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장례를 치르고 있는 집안은 아랫시장에서 오래 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번 것으로 보인다. 그 꽃상여가 상당히 화려하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고천석은 자신의 나이도 적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환갑과 진갑을 모두 지난 나이이다. 이제는 완전히 노인이 되어버린 자신이다. ‘앞으로 몇 년이나 장매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 수가 있을까?’ 하나밖에 없던 아들 호달이가 군에 나가서 일찍 전사를 해버린 사실이 새삼 가슴에 아린다. ‘내가 좀더 살아서 막내 딸 순옥이라도 좋은 혼처를 찾아 시집을 보냈으면 좋겠는데…’. 그러한 소망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장매 마을로 돌아가고 있는 고천석이다.

선더말 아재는 아내인 고복수가 지극정성으로 보양식을 만들어 먹이고 형제들이 간에 좋다고 하는 민간의 약재를 구해서 가져다 주고 또한 장인어른이 노상 방문하여 격려를 해주어서 그런지 차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그래서 1956년 겨울이 지나가기 전에 ‘간 디스토마’가 완치가 되었다고 하는 판정을 노동의 ‘화생병원’에서 받게 된다.

손수석은 자신이 다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는구나 하고 느낀다. 지난 봄부터 겨울까지 참으로 힘든 투병생활을 나름대로 한 그이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다고 하여 경찰서 경비계장의 직무를 쉴 수도 없다. 그래서 매일 경찰서로 출근하면서 동시에 치료를 병행했으니 그것이 힘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이번에 병마에서 떨치고 일어 났으니 앞으로는 좀더 건강에 신경을 써야만 하겠다고 생각한다.

1957년이 되자 다시 지리산을 중심으로 공비들이 준동한다. 그래서 경주경찰서 경비계장인 손수석도 바쁘다. 매일같이 칼빈 총을 어깨에 매고서 출퇴근을 한다.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가도 비상이 걸리면 곧바로 숟가락을 놓고 옆에 세워 둔 칼빈 총을 다시 어깨에 매고서 자전거를 타고 본서로 가야만 한다.

어느 지서에서 비상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급히 파악한 후에는 곧장 경비대 순경들을 이끌고 전투현장에 지원을 나간다;

그렇게 비상과 출동이 반복이 되고 있는 위험한 보직이 경비계장이다. 따라서 전투경험이 많은 경사 손수석이 3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경비계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동네골목에서 열심히 동무들과 뛰놀고 있는 6살짜리 꼬마 손진길은 그 칼빈 총이 신기하다. 그것으로 전쟁도 치고 산짐승도 문제 없이 잡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은 점심식사를 하면서 부친이 벽에 잠시 세워놓은 그 칼빈 총을 손으로 만지려고 한다. 그것을 보고서 모친 고복수가 깜짝 놀라고 부친 손수석이 크게 야단을 친다.

그래서 꼬마 손진길은 그 칼빈 총을 손으로 만져보려고 하는 생각을 확실하게 접었다. 그는 꾸지람을 들었기에 얼른 식사를 마치고 다시 골목으로 나간다. 그곳에서 동무들이 빨리 점심식사를 끝내고 골목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윗집에 살고 있는 이은환이와 김상완이 그리고 옆집에 살고 있는 이장우와 송원호가  차례대로 골목으로 나온다.

그들 5명이 1956년부터 1958년까지 3년동안 경주 노동 제일교회 옆 골목길에서 열심히 함께 놀던 개구쟁이들이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어째서 계집아이가 하나도 없을까? 그 이유는 유독 그 또래의 여자아이가 그 골목길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참 기이하다. 분명히 남자와 여자의 구성비는 비슷하다고 하는데 그 골목에서는 그것이 아닌 것이다.

당시 6살짜리 남자 꼬마들이 골목에서 즐기고 있는 놀이가 여러가지이다; 첫째가 ‘땅따먹기’이다. 땅에 구간을 그려 놓고 그 구간을 놀이를 통해서 서로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가 ‘비석치기’이다. 돌로 세로 세워놓은 상대방의 돌을 맞추어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셋째가 ‘낫데롱’이다. 나무 막대기로 작은 나무토막을 멀리 쳐내는 것이다. ‘골프’의 원조쯤 된다. 넷째가 ‘구슬치기’나 ‘딱지치기’이다. 다섯째가 ‘제기차기’이다. 여섯째가 ‘말타기’ 놀이이다. 일곱째가 ‘달리기’이다;

꼬마 손진길은 그런 놀이들을 또래의 동무들과 하루 종일 즐기고는 있는데 하루 해가 너무 길다. 다른 동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도 손진길은 매일 똑같은 그 놀이들이 슬슬 지겨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동무들에게 골목에서 그만 놀고 각자 집으로 한번씩 놀러가자고 제안한다. 다들 좋다고 하여 먼저 김상완의 집을 찾아간다.

상완이의 부친은 교육자이며 장학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집에는 책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상완이가 조심스럽게 자기 형과 누나가 보는 것이라고 하면서 만화책을 내온다. 손진길은 만화책을 처음으로 본다. 그림이 그려져 있고 거기에 글이 함께 적혀져 있는데 애석하게도 아직 손진길은 한글을 모른다. 그런데 상완이는 교육자 집안이라서 그런지 벌써 한글을 배워서 읽고 있다;

상완이가 만화책을 읽어주면 다른 동무들은 열심히 그림을 보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런데 손진길이 생각하기에는 자신이 글은 모르지만 상완이가 읽어주는 내용하고 그 그림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때마다 그는 상완이의 얼굴을 쳐다본다.

상완이도 고개를 약간 갸웃하면서도 입으로는 쉬지 않고 잘 읽고 있는 시늉을 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 눈치를 채고 있다; “자신보다 한살이 어린 상완이가 한글을 완전히 아는 것이 아니구나…”. 그렇지만 만화책의 그림을 보고서 그 내용을 유추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가 있다. 그래서 손진길은 김상완이와 친하게 지내면서 가급적이면 동무들에게 오늘도 상완이네 집에 가서 만화책을 보자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동무들은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오히려 이장우의 집에 가자고 한다. 그곳에는 서울에서 그의 부친이 보내왔다는 신기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총과 자동차 그리고 선박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신기한 것은 큰 물총이다. 그 큰 물총에 장우가 물을 많이 넣어서 발사를 하면 동무들이 물벼락을 맞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낄낄거리면서 좋아한다;

그 집에서는 단연코 이장우가 왕이고 대장이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가 서울에 살고 있고 가끔씩 경주 집에 오는데 그때마다. 그렇게 장난감을 어린 장우를 위해서 많이 사 오기 때문이다. 장우의 엄마는 항상 곱게 화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에 살고 있는 남편이 경주에 자신과 아들을 보러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더니 다음 해가 되자 장우가 동무들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 엄마와 함께 서울에 가서 아빠와 함께 살게 되었어. 서울에 가서 학교를 다닐 거야. 내일 이사를 가”. 그 말을 들은 손진길이 순진무구하게 말한다; “야, 장우 너는 좋겠다. 서울에 가서 살게 되었구나. 그 서울이 바로 미국이 아닌가?...”. 다음날이 되자 동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플라스틱 장난감을 가지고 있던 이장우가 진짜 이사를 가고 말았다.

그 다음에 동네 꼬마들이 가서 놀기를 좋아하는 집이 이은환이의 집이다. 부친이 철도공무원인데 그 집에는 큰 ‘깨양나무’가 한 그루 있다. 마치 감처럼 생긴 조그만 깨양이 대추처럼 큰 나무에 주렁주렁 열려 있다. 그 나무에 동네 꼬마들이 함께 올라가서 그 달고도 단 깨양의 맛을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집에는 그 ‘깨양나무’ 또는 ‘고욤나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 은환이의 집에만 그 깨양나무가 있는 것일까?... ‘;

동네 꼬마들이 깨양나무에 모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고서 깜짝 놀란 은환이의 누나가 이제 부모님이 올 때가 되었으니 빨리들 내려오라고 야단이다. 그러나 개구쟁이들이 그 깨양의 단맛에 빠져서 말을 듣지 아니하다가 일찍 귀가한 은환이 엄마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때부터는 동네 꼬마들이 은환이네 집에 놀러가지를 못하는 금족령을 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이은환이네 가족이 전부 이사를 가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할 수없이 손진길은 김상환이와 함께 자기보다 한 살이 많은 송원호네 집에 놀러간다. 그 집은 넓기는 한데 별로 놀 만한 도구가 없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시내에서 이발소를 하고 있는 그의 부모가 돈을 버느라고 너무 바빠서 원호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는 동무들이 원호에게 물었다; “원호야, 너는 어떻게 집에 놀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니? 우리는 심심한데…”. 그랬더니 송원호가 천만뜻밖의 대답을 한다; “나는 고아원에서 이집에 양자로 들어왔거든. 나에게는 이제 부모님이 계신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야”. 그 말을 듣고 동무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의 말이 사실일까 아닐까…’

하지만 원호가 그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부모는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 언제나 원호가 구김살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꼬마는 여전히 사이 좋게 그 긴 골목이 짧다고 생각하면서 이리 저리 뛰어 다닌다. 그러자 하루는 ‘딱따구리 할머니’ 집에서 구수한 냄새가 난다. 그것은 밀떡을 찌고 있는 냄새다;

배가 고픈 꼬마들이 ‘우’하고 그 집으로 뛰어들어간다. ‘딱따구리 할머니’는 동네 아줌마들을 보면 참견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연세에 비해서 말이 많으시다고 하는 의미에서 동네 부인들이 그 별명을 ‘딱따구리 할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니 아이들도 모친의 말을 따라 그 노인을 ‘딱따구리 할머니’라고 부른다. 혼자 작은 집에 사시면서 아랫시장에서 야채장사를 조금 하신다.

가난하게 홀로 사신다고 하여 정부에서 정기적으로 밀가루 배급을 주고 있다. 그날은 딱따구리 할머니가 배급 받은 밀로 모처럼 막걸리를 넣어서 밀떡을 찌고 있다. 그런데 처음으로 자기 집에 동네 꼬마들이 몰려든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딱따구리 할머니가 기뻐한다. 그리고 얼른 밥솥에서 밀떡을 칼로 떼어내어 꼬마들에게 나누어 준다.

손진길은 그 밀떡이 참으로 달고 맛있다. 이은환이네가 이사를 가고 나자 그 집의 깨양 맛을 보지 못하여 아쉬웠는데 그것만큼 맛이 있는 밀떡을 그날 얻어 먹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골목에서 뛰놀고 있는 아들 손진길을 선더말 아재는 자기의 자전거 뒤에 태워서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기를 좋아한다;

말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차남을 좋아하고 있는 손수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