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선더말 아재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7. 09:56

선더말 아재8(작성자; 손진길)

 

경주지역에서 가장 먼저 개척이 된 ‘경주제일교회’는 경주사람들에게 상당히 친숙한 곳이다. 그 이유는 해방 후 서양의 구제물품이 주로 경주제일교회를 통하여 주민들에게 전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성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민들이 그 교회의 예배와 행사에 참석만 하면 미국의 귀한 옷가지를 공짜로 얻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경주제일교회’가 참으로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노동동 주택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앞에는 ‘경주제재소’가 있고 그 길을 따라 서진을 하면 시장통이 나타난다. 그 시장이 성건동에 있는 아랫시장까지 연결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경주제일교회에서 동쪽으로 진행하여 다시 북쪽으로 나아가면 그 다음에 사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이 경주시의 중심이다. 그 코너에 ‘귀로다실’과 유명한 중국식당인 ‘열래춘’이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사잇길에 ‘월성군청’과 ‘경주소방서’가 마주보고 있다. ‘경주소방서’와 ‘경주경찰서’는 서로 인접하여 있다. 그리고 ‘귀로다실’에서 서진을 하면 ‘경주법원’이 있고 동진을 하면 ‘근화여중’을 지나 ‘경주역’에 다다르게 된다.

‘귀로다실’ 사거리에서 남진을 하게 되면 한참을 가서 ‘경주시청’에 이르게 된다. ‘경주시청’을 지나 계속 남진을 하게 되면 ‘첨성대’와 ‘계림 숲’ 그리고 ‘반월성’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동의 ‘경주제일교회’야 말로 경주시의 중심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오래된 이정표와 같은 건물이다. 돌로 지어져 있는 예배당 건물이 매우 튼튼해 보이고 이국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노동동의 개구쟁이들인 김상완과 송원호 그리고 손진길이 ‘경주제일교회’의 담을 넘어 그곳으로 들어가서 놀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들의 눈에는 그 교회에 색다른 것이 세가지나 있기 때문이다;

첫째가, 하나의 양옥집이 그곳에 있다. 예배당 석조건물 맞은 편에 양옥집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색다른 것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기와집과는 다른 모양의 집이며 특히 정원이 아름다운 것이다.

둘째가, 교실같은 것이 교회 뒷마당에 있다. 김상완의 집 담을 넘어가면 교회당의 뒷마당이 시작되는데 그곳에 목조로 된 건물이 있다. 교실처럼 보이는데 그곳에서 젊은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아마 성경을 배우는 학교일거라고 꼬마들이 생각하고 있다;

셋째가, 교회의 종탑건물이다. 그 종탑이 꼬마들에게 가장 재미가 있는 놀이터이다. 교회에서 가장 높은 곳이 종탑인데 그곳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당시의 사진을 구할 수가 없어서 훗날의 것을 첨부하면 다음과 같다;

 그래서 그것이 개구쟁이들에게는 하나의 모험적인 놀이터가 되고 있다. 석조건물인 예배당의 뒷부분에 종탑건물이 높이 자리를 잡고 있는 이유는 그 소리가 주택가에 두루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뜻밖에도 동네 꼬마들을 끌어 모으는 매력이 되고 있다.

나무로 된 가파른 계단을 타고 지그재그로 한참 위로 올라가면 종이 있는 곳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 종을 울리자면 둥근 바퀴에 연결되어 있는 쇠줄을 잡아당겨야 하는데 꼬마들이 그것을 한번도 당기지를 못하고 있다. 종소리가 나면 교회사찰이 금방 달려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경주제일교회’의 규모는 상당이 크다. 건물이 여럿이다. 꼬마 손진길이 골목친구인 송원호 및 김상완이와 함께 상완이네 집의 담을 넘어 교회당 안으로 침투를 한다. 버젓이 경주제재소 앞에 교회의 정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문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골목의 꼬마들이 구태여 담을 넘어 교회로 들어간다.

그렇게 비밀리에 침투를 하는 것을 꼬마들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모험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담을 넘어가면 가장 먼저 성경공부를 하는 교실을 보게 되고 그 다음에 교회의 후문을 보게 된다. 그 후문은 골목길로 연결이 되어 있다. 그 골목을 빠져나가면 경주시내의 점포들이 모여 있는 상가거리가 전개된다.

그 상가거리에는 재봉틀 상회가 있고 안경점이 있으며 맛있는 만두를 파는 만두집이 있다. 그리고 학생모를 파는 상점이 있고 또 안과의원도 있다;

상가거리와 인접하여 경주로 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여관들이 여럿 있다. 그 서쪽에는 ‘월성국민학교’가 있으며 그 거리를 벗어나 남쪽으로 진행하면 ‘금관총’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모든 영역을 뛰어다니면서 하루 종일 놀고 있는 꼬마들이 그 세 친구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신나게 매일 놀 수 있는 연령은 7살까지이다. 8살이 되면 너나없이 국민학교에 입학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1958년 한해 손진길은 그 마지막 놀이의 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매일 반복이 되는 그 일상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동무들과 함께 하루 종일 이 거리 저 거리를 뛰어다녀보아도 이제는 별로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이 되자 손진길은 경주 월성국민학교 앞에 있는 논에서 동무들과 함께 썰매를 타다가 혼자서 ‘월성국민학교’ 안으로 몰래 들어가 본다.

이제 꼬마 손진길에게 있어서 신기한 곳은 논 썰매장이 아니라 그 학교이다. 그곳에서 형과 누나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자신은 한번도 책과 노트와 연필을 가지고 무엇을 배워본 적이 없기에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 동경의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손진길은 단층으로 되어 있는 교실들을 바깥에서 유심히 창문을 통하여 하나씩 차례로 들여다본다. 한 교실에 한사람의 선생이 교단에 서서 책상 하나에 두 사람씩 앉아 있는 그 오십 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분명히 꼬마인 자신이 뛰놀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다. 그는 그 수업하는 광경을 오래 보고 싶어한다;

그렇게 이 교실 저 교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수업을 받던 학생 중에 하나가 손진길을 발견하고서 선생에게 말한다; “선생님, 저기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는 꼬마가 손진목의 동생이예요”. 그 말을 듣자 선생이 창밖의 꼬마 손진길을 발견한다. 그리고 갑자기 창문을 열고서 바깥에 서있는 손진길에게 말한다. 교실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손진길은 처음에는 도망을 가려고 생각했다가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 교실에 형 손진목의 얼굴이 보인다. 그래서 도망을 가지 아니하고 그 교실 안으로 들어간다. 그 남자선생이 썰매를 손에 잡고 서있는 손진길을 교탁 옆에 세우고서 놀린다; “네가 손진목 학생의 동생이냐? 그 녀석 똘똘하게 생겼구나. 어디 여기 교실에서 한번 썰매를 타보거라”.  

손진길은 농담인 줄 모르고 선생의 얼굴을 보면서 진지하게 대답한다; “선생님, 여기는 얼음이 없잖아요. 그러니 썰매를 탈 수가 없지요”. 그 말을 들은 그 선생은 ‘허허’라고 웃는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실언을 했구나. 이제 바깥에 나가서 열심히 놀아도 된다. 자 또 보자꾸나”. 그 말을 들은 손진길은 뒤에 앉아 있는 형 손진목의 얼굴을 힐끗 보고서 그대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다.

1958년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보직이 변경된다. 이제는 손수석 경사가 36세의 중년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주경찰서장이 만년 고참경사인 손수석을 힘든 경비계장 자리에서 다소 편한 정보계장 자리로 보내어 준다. 이제 손수석 경사는 정복을 벗고 칼빈 총을 반납한다. 그 대신에 사복을 입고서 경찰서로 출퇴근을 한다;

그리고 근무도 일과중으로 국한이 된다. 참으로 편한 보직이다. 그래서 선더말 아재 손수석 경사가 생각한다; “진급시험을 치르지 않고 오래 경사자리에 남아 있으니 이렇게 편한 보직도 내게 돌아오는구나. 그것참 동기가 경찰서장 자리에 있으니 이러한 편리도 보게 되는구나. 그러나 이제 오래 경찰관생활을 하기는 어렵겠다. 동기가 서장인데 내가 무슨 염치로 계속 경찰에 남아 있겠나…”.

하지만 이승만 정권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부수어진 곳을 아직 복구하는 작업이 완전히 끝나지를 아니하고 있다. 경주와 대구 그리고 부산지역이야 인민군이 들어오지를 못하여 멀쩡하지만 전국적으로 다른 지역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 파괴가 된 지역을 전부 복구해야 진정한 경제개발의 시대가 시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선더말 아재는 그때까지 경찰에 남아 있으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해 여름에 처가에서 급보가 날아든다. 장인어른 고천석이 주무시다가 그만 별세를 하셨다는 것이다. 편안한 임종을 맞이하셨으니 그것은 위로가 되지만 아직 고희가 한참 남은 연세인데 일찍 별세를 하셨으니 그것이 안타깝다. 그리고 양자를 들이겠다고 말했는데 그 일을 추진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으니 그것이 안스럽다. 손수석은 천북에 살고 있는 윗동서 손태호와 함께 장인의 장례를 치르느라고 경찰서에 5일간 휴가를 내고 있다.  

장인과 장모는 오래 장매 마을에 살고 있기에 동네회의에서 공동묘지가 있는 뒷산 곧 장산의 좋은 터를 산소로 사용하라고 허락하여 그것이 다행이다. 묘지가 가깝기에 3일장으로 하려고 했더니 경주에 살고 있는 제주 고씨 문중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충청도 음성과 괴산에 살고 있는 고향일가들이 도착하자면 5일장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위 두사람이 상주가 되어 5일장으로 장례를 치루게 된다;

장례가 끝나자 손수석이 장모 전혜숙과 처제 고순옥에게 말한다; “며칠간 저희 집에 오셔서 쉬시는 것이 어떻겠어요?”. 그러자 장모가 반대한다; “아들이 없으니 내가 막내딸과 함께 장매 마을 우리집에서 조석으로 자네 장인에게 49일간 상식을 올리고 싶네. 그 일을 끝내고 나서 그 다음일을 생각해보고 싶구만… 그러니 사위들은 집으로 먼저들 돌아가시게나.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장모 전혜숙이 참으로 강단이 있고 꼿꼿하다고 생각한다. 일찍 대구에서 요리공부를 하고 경제적으로 자립을 해서 그런지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는 성격이다. 그러므로 손수석은 처제에게 생활비를 주면서 아무쪼록 모친을 잘 보살펴 달라고 말하고 아내 고복수와 함께 경주 노동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 부부들이 5일간이나 집을 비웠기에 그렇게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해 가을이 되자 오래 안방마님 고복수를 도와 부엌일을 함께 하던 ‘연자’가 시집을 간다고 고향 천북으로 돌아간다. 그 대신에 연자의 동생인 ‘호야’가 그 일을 맡고자 온다;

‘호야’는 손진목보다 서너 살이 많다. 손진목이 국민학교 4학년인데 호야는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로 진학을 못한 채 경주로 온 것이다.

선더말 아재는 천북에서 자신의 전답을 관리하고 있는 윗동서 손태호에게 연자가 시집을 잘 갈 수 있도록 일체의 비용을 지원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연자의 동생을 데리고 오는 조건으로 그 집에 소를 두 마리 더 사주라고 말한다. 그렇게 일을 처리하던 손태호가 하루는 선더말 아재인 동서를 찾아온다. 그는 천북 화산 고향에 나와 있는 매물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손태호가 말한다; “동서, 우리 동네에는 기와를 굽는 큰 공장이 하나 있는데 지금 매물로 나와 있어. 우리 화산에는 좋은 황토 흙이 생산이 되고 있어 기와공장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그 주인이 팔겠다고 하는 거야. 연세가 많아서 그것을 팔고 대처에 있는 아들네 집으로 가려고 하는 모양이야. 도시로 진출한 아들들이 그 시골의 공장을 처분하고 싶어하는 거지. 그것을 동서가 사면 내가 관리를 하고 이익을 낼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해줄 수 있겠나?…”;

 

손수석은 그 공장을 한번 보고자 한다. 그래서 손태호와 함께 방문을 하고 면밀하게 살펴본다. 그 결과 그 기와공장을 사서 손태호에게 관리를 맡긴다. 그때부터 손태호는 천북 화산에서 일약 ‘손 사장’이라고 불린다. 그는 동서를 잘 둔 덕분에 화산 일대에서 수많은 전답과 산을 관리하고 이제는 화산에서 가장 큰 사업체인 그 기와공장의 사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강원도 탄광에 매년 추곡과 갱목을 납품하면서 돈을 많이 수금했다. 그 돈을 주로 윗동서인 손태호가 물고 오는 그곳의 전답과 산지 그리고 기와공장을 사들이는데 사용한다. 그래도 돈이 남는다. 따라서 손수석은 다른 투자처를 찾고 있다. 그의 눈에 1956년초부터 굴러다니고 있는 시발택시가 들어온다. 그래서 그는 시발택시를 사서 전적으로 운전수에게 맡겨 이익을 얻는 사업을 구상한다. 손수석의 운수업은 그렇게 1958년 시발택시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