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85

7세기의 2호2룡75(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75(손진길 소설) 서기 673년에 들어서자 신라의 군부에서 전략을 책임지고 있는 김관수 대장군이 자신을 실무적으로 보좌하고 있는 백제출신 장군 유기룡을 집무실로 부르고 있다. 김관수는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유기룡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공식적으로 한가지를 지시하고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아직도 우리 신라군이 고구려의 옛 땅에서 당군과 말갈전사들에게 밀리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전세를 역전하고 우리 신라군이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보고하세요”. 유기룡이 작성하여 김관수 대장군에게 보고하고 있는 책략이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첫째로, 지난 668년 9월에 고구려 평양성을 점령한 당군의 사령관 이적이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개선한 이듬해 66..

7세기의 2호2룡74(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74(손진길 소설) 10. 나당전쟁과 좌룡 유기룡의 활약 서기 668년 9월 하순에 평양성을 접수한 당의 원정군 사령관 이적은 평양성내의 모든 재물을 약탈하고 주민 20만명을 포로로 삼아 당나라로 끌고 간다. 그리고 평양성을 불태워 버림으로써 모든 기록이 사라지고 고구려의 흔적이 역사가운데 지워지도록 조치하고 있다; 그렇지만 당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있지 아니한 고구려의 각 지방에서는 외세인 당나라에 저항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75세의 노장 이적은 아주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벌써 원정을 떠나올 때에 당의 조정과 합의한 그대로 평양성 외곽에 얼른 안동도후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고 자신은 주력군을 이끌고 일찍 당나라로 개선하는 것이다. 이적 사령관은 수하인 대장군 ..

7세기의 2호2룡73(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73(손진길 소설) 유기룡 장군이 김관수 대장군과 어떻게 하면 부여풍을 잡아서 죽일 수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상의한다. 김관수가 깊이 생각을 하다가 말한다; “유장군, 방법은 하나뿐인 것 같아요. 그대가 신라의 사신단과 함께 장안으로 들어가세요!... “; 유기룡이 의아하여 고개를 갸웃하자 김관수가 설명한다; “평양성을 함락하였으므로 우리 신라에서는 사신단을 황제에게 보낼 것이요. 그러니 유장군은 장안에서 은밀하게 부여풍을 색출하여 죽이도록 하세요. 그리고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아니하면 우리 신라가 훗날 당군을 몰아낼 때에 토번제국을 움직여서 장안으로 들어가세요. 그리고 부여풍을 잡아서 죽이도록 하세요!... “. 그 말을 듣자 유기룡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관수에게 절을 하면서 말한다; “대장..

7세기의 2호2룡72(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72(손진길 소설) 9. 부여풍을 추적하는 유기룡과 귀실집사 서기 668년 7월 하순 평양성에서 크게 멀지 아니한 사수(蛇水)에서 나당연합군과 고구려군 사이에 전투가 치열하다. 그런데 그 전투에는 신라군의 장군인 유기룡이 참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사치로 변장한 귀실집사가 군상(軍商)이 되어 당나라의 대장군 글필하력(또는 계필하력, 契苾何力, 677년 사망, 몽골의 유목민 철륵부,鐵勒部 추장의 후손)이 지휘하고 있는 말갈인들의 진영에 머무르고 있다; 여기서 말갈인이라고 하는 말은 말갈전사들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유목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말갈사람은 언제나 말을 달리며 자유자재로 무기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장정들이 곧바로 전사들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말갈군사 또는 말갈전사라고 부르지 ..

7세기의 2호2룡71(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71(손진길 소설) 무왕인 무영은 애초에 군부에 약속한 그대로 새로 얻은 청백성의 성주로 대장군 노하덕(盧下德)을 임명한다. 그리고 1만명의 군사를 노하덕 성주에게 준다. 무왕과 좌백 상장군의 판단으로는 동부 국경지역에 있는 청백성에 그 정도의 군사가 있어야 북동부 북해도의 원주민이 쳐들어올 경우 자체 방어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무왕은 왕부(王府)를 동북성(東北城)으로 옮긴다. 그는 그곳에서 무왕국의 5개의 성을 다스리고자 한다. 그리고 전방사령부를 서부로 옮겨 국경지역에 있는 삼산성(三山城)에 둔다. 그곳에서 전방사령관 좌백 상장군으로 하여금 3만명의 군사로 서쪽에 있는 번왕국에 대한 방어를 확실하게 담당하도록 조치한다. 그렇게 결정이 되자 좌백 상장군은 대군을 이끌고 ..

7세기의 2호2룡70(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70(손진길 소설) 서기 666년 11월 3일에 청백성(靑白城)에서는 양시백(梁是伯) 성주가 수비대장인 강월주(姜越州) 대장군 그리고 고구려에서 건너온 3명의 장군 곧 가가혁(價可赫), 을치수(乙治水), 정동명(鄭東明) 등과 함께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그들의 회의분위기가 상당히 무겁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서쪽에 이웃하고 있는 무왕국(無王國)의 신궁산성(神宮山城)에서 무왕(無王)이 좌백(佐伯) 상장군과 함께 3만명의 원정군을 이끌고 청백성을 정복하고자 동진하고 있다는 척후의 급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내용을 먼저 양시백 성주가 좌중의 제장(諸將)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 말을 듣자 수비대장 강월주 대장군이 발언한다; “성주님,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청백성에는 2만명의 ..

7세기의 2호2룡69(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9(손진길 소설) 서기 666년 음력 5월에 고구려의 독재자 연개소문이 병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가장 먼저 대장군 귀실집사가 귀왕 책귀에게 예방을 신청한다. 책귀는 그가 찾아올 것이라고 벌써 짐작하고 있다. 따라서 순순히 그를 만난다; 조심스럽게 귀실집사가 말문을 연다; “귀왕 전하, 일찍이 소신에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귀왕께서는 소신을 신하로 거두는 대신에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일조를 할 것이며 동시에 그곳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풍장왕의 처리를 소신에게 맡겨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이제는 연개소문이 죽고 말았으니 그때가 무르익고 있다고 봅니다!… “. 그 말을 듣자 귀왕 책귀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렇지요. 군사강국인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

7세기의 2호2룡68(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8(손진길 소설) 번왕국의 책사이며 서부 야전사령관이었던 책귀(策貴) 상장군이 서부지역에 있던 신라의 식민왕국을 완전히 정복하고 그곳에 자신의 왕국인 귀왕국(貴王國)을 건설한 시기가 서기 659년 6월초이다. 그때는 당시 ‘해 뜨는 본국’ 곧 일본(日本)으로 불리고 있던 한반도의 본국인 백제(百濟)가 망하지 아니한 시점이다; 그러므로 본국인 백제에서 유일하게 인정하고 있는 열도 왜(倭) 지역에서의 백제의 식민왕국인 번왕국에서는 귀왕(貴王) 책귀에 대한 성토가 대단했다. 야마토의 번왕부 조정에서는 대좌평인 계백호(階伯虎)가 앞장서서 책귀를 반역자라고 규탄했다.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번왕 부여용이 책귀를 처벌하려고 했지만 마땅한 수단이 번왕국에는 없다; 번왕국의 그 누가 감히 전략과 전술의..

7세기의 2호2룡67(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7(손진길 소설) 검무룡(劍舞龍) 수비대장은 그 대결에서 물러설 수가 없다. 자신마저 무릎을 꿇게 되면 동북성(東北城)이 적에게 넘어갈 지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전신의 내력을 창에 쏟아 부은 후 자신이 타고 있는 군마에 채찍을 가하면서 곧장 좌백(佐伯)에게 정면으로 돌진한다. 그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적장 좌백을 죽여버리고 나면 자신이 없더라도 수비병의 수가 더 많은 동북성이 적에게 넘어가지는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좌백은 무예가 출중할 뿐만 아니라 전투경험이 너무나 풍부하다. 검대장의 의도를 단숨에 파악하고서 좌백은 정면승부가 아니라 슬쩍 옆으로 피하면서 재빨리 군마를 돌려서 상대방의 뒤를 따라 붙는다. 그리고 자신의 군마가 상대방을 거의 따라잡는 순..

7세기의 2호2룡66(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6(손진길 소설) 서쪽에 있는 섬 큐슈의 북구주성(北九州城)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의 동부에 있는 신탕성(新蕩城)까지는 그 거리가 자그마치 3천리나 된다. 그 먼 길을 5천명의 원정군이 이동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군사작전이다; 군사들은 한달을 행진해야 하며 그들의 마차에는 임시 막사를 지을 재료는 물론 길양식과 생수까지 싣고 가야 한다. 게다가 중간에는 번왕국(藩王國)의 북쪽 성들을 지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귀왕인 책귀(策貴)는 대장군 좌백(佐伯)에게 사전에 장사치로 변장하고서 부관들과 함께 그 길을 답사하고 오라고 지시한다. 좌백 대장군이 부관은 물론 20명의 특수부대원과 함께 장사치가 되어 그 길을 두루 탐사하고 돌아오는데 무려 3개월이 걸린다. 그는 새해 664년 정월 보름에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