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85

7세기의 2호2룡55(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5(손진길 소설) 다음날이 되자 계백은 흑치무와 함께 깊은 논의를 한다. 두사람은 어떻게 하면 신라의 독산성과 동잠성을 쳐서 점령할 수가 있는지를 의논하고 있지만 별다른 묘수가 없다; 따라서 계백 대장군이 단안을 내린다; “일단 제가 1만명의 원정군을 이끌고 나가 신라 김흠순 대장군이 지휘하고 있는 1만명의 군대와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어 보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흑치무 성주가 말한다; “제가 보기에는 분명히 신라군이 밀릴 것입니다. 1대1 대결에서 지금까지 진 적이 없는 계백 대장군이니까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 계백의 답변이 명쾌하다; “도망가는 적을 쫓아 독산성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이지요. 성안에서 결판을 내면 됩니다!”. 그 말을 듣자 흑치무 ..

7세기의 2호2룡54(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4(손진길 소설) 7. 좌백과 유기룡이 맞이하고 있는 백제의 운명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을 방어하고 있는 서남쪽의 요새지가 주류산성이다. 그곳의 성주인 계백 대장군은 국왕 부여의자가 다스린지 16년 곧 서기 656년에 왕궁에서 발생한 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시 상좌평 성충이 연일 흥청망청 연회에만 빠져 있는 국왕에게 직언하다가 그만 반역죄로 몰려서 감옥에 갇히고 단식투쟁 끝에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상소를 올렸는데 그 내용을 전해 들은 계백 성주는 통곡을 멈출 수가 없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내우에 시달리고 있는 백제는 멀지 아니하여 외적의 침입을 받게 될 운명이다. 그때에는 부디 탄현 좌우산지에 미리 군사를 매복하여 그 유일한 협곡 고..

7세기의 2호2룡53(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3(손진길 소설) 책귀는 황금성을 차지하고서 재빨리 전쟁의 상처를 지운다. 전사자의 시신을 당일 매장하고 적들로부터 수거한 모든 병장기를 무기고에 모아 엄중하게 관리한다. 만약 포로들이 무기고를 침범하여 병장기를 탈취하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귀는 임시 막사에 수용한 1만 5천명의 포로들의 관리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 사실 1만 5천명의 포로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의 군사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책귀는 황금성에 그 정도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황금성에 머물면서 대군을 거느리고 있으면 야마토의 번왕부에서 위기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책귀 사령관은 어쩔 수 없이 부사령관인 구자신 장군을 동쪽에 있는 길비성..

7세기의 2호2룡52(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2(손진길 소설) 서기 655년 2월에 길비성에 자리잡고 있는 서부 야전사령부의 회의실에서는 책귀 사령관이 휘하 6명의 장군과 함께 중요한 문제를 상의하고 있다. 그날의 토의안건은 서쪽에 있는 신라식민왕국 3개성에 정탐꾼을 파견하는 문제이다. 책귀 사령관이 먼저 말한다; “3년전 9월에 우리는 신라식민왕국 4개성에 대한 정탐을 실시한 바 있어요. 그리고 그해 11월에는 정탐자료를 이용하여 지금 우리가 주둔하고 있는 길비성을 효과적으로 정복하였지요. 그런데… “; 휘하의 6명의 장군들이 경청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사령관 책귀 상장군이 이어서 말한다; “벌써 2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어요.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한번 남아 있는 3개의 적성을 정탐하여 그 변화를 확인한 다음에 구체적인..

7세기의 2호2룡51(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1(손진길 소설) 백제국왕 부여의자가 다스린지 13년째가 되는 서기 653년 9월 소위 ‘결실의 계절’ 가을이 되자 왜의 번왕국 ‘서부 야전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는 길비성(吉備城)에서 하나의 희소식이 그 동쪽 멀리 떨어져 있는 신주성(信州城)의 책윤(策允)성주 부부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은 며느리인 천부장 사오리(思吾理)가 임신을 하였다는 기쁜 소식이다; 당시 번왕국의 책사이며 사령관인 책귀(策貴) 상장군의 나이가 29세이고 아내 사오리가 28세이다. 집안에서는 책귀가 외아들이고 부친인 책윤 대감 역시 독자이다. 한마디로 자손이 귀한 백제의 귀족가문이 그들이다. 따라서 책윤 성주 부부는 손주가 빨리 태어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한 실정이므로 그 소식을 듣자 책윤 성주 부부는 ..

7세기의 2호2룡50(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0(손진길 소설) 서부 야전사령부를 책임지고 있는 대장군 책귀가 서기 652년 9월 중순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24명으로 구성된 4개조 정탐부대를 신라식민왕국의 4개성으로 출발시킨다. 그 조장이 제1조 책귀 대장군, 제2조 시라손 장군, 제3조 강온수 천부장, 그리고 제4조 사오리 천부장이다; 그들의 정탐대상이 가장 멀리 큐슈 동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북구주성에서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길비성까지이다. 그 중간에 물론 본섬 서단에 있는 황금성과 남섬에 있는 송산성이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출발하기 이틀전에 책귀 대장군이 자신의 아내인 제4조장 사오리 천부장에게 특히 강조하고 있다; “여보, 4개의 정탐조의 임무가 전부 중요하지만 특별히 당신이 인솔하고 있는 제4조의 임무가 ..

7세기의 2호2룡49(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49(손진길 소설) 백제의 국왕 부여의자(扶餘義慈)가 즉위한지 12해가 되는 서기 652년에 들어서자 정월에 사비성 조정에서는 국왕의 친서를 야마토의 번왕 부여용(扶餘勇)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 내용이 중요한지 백제의 사비성에서는 일부러 사자를 왜의 야마토로 보내어 직접 친서를 번왕부의 조정에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번왕 부여용은 제1좌평 계백호(階伯虎)가 읽어주는 국왕의 친서의 내용을 들으면서 그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그 친서의 내용이 한마디로, 번왕의 독자적인 권위를 훼손하고 있으며 내정간섭이 심한 것이다; 그 주요내용이 다음과 같다; “번왕 부여용은 들으라. 짐은 작년에 좌평을 역임한 책윤과 수비대장을 지낸 무상을 야마토의 번왕부로 보내어 각각 신주성과 동북성을 맡아서 다스..

7세기의 2호2룡48(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48(손진길 소설) 참으로 오래간만에 만난 외아들 책귀이다. 그가 혼자서 신주성으로 부모님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무장을 하고 있는 여성부관과 함께 온 것이다; 그런데 외아들 책귀가 부모님을 만나서 예를 갖추어 절을 하고 있는 그 자리에 그 여성부관이 그냥 배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책귀와 나란히 서서 책귀의 부친인 신주성주 책윤과 성주부인 가화란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고서 책윤 부부가 크게 당황해 한다. 따라서 일단 큰절이 끝나자 책윤이 급히 아들 책귀에게 묻는다; “책귀야, 너는 어째서 여성부관이 너와 함께 우리에게 큰절을 올리는 것을 금하지 아니한 것이냐?... “; 그 말을 듣자 책귀가 조용하게 대답한다; “아버지, 어머니, 외람된 말씀이지만..

7세기의 2호2룡47(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47(손진길 소설) 백제의 국왕 부여의자(扶餘義慈)의 통치 11년인 서기 651년 6월에 사비성의 조정으로 왜의 번왕 부여용(扶餘勇)이 정식으로 보낸 전령이 도착한다. 그가 보고한 내용은 고구려식민왕국이 보유하고 있는 왜의 7개의 성 가운데 벌써 4개의 성을 정복하였다는 것이다. 그 보고를 받고서 백제 사비성의 조정이 얼마나 축하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상좌평으로부터 그 보고를 받고 있는 국왕 부여의자의 태도가 상당히 이상하다. 그는 겉으로는 왜의 번왕 부여용의 놀라운 활약에 대하여 크게 축하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속은 그것이 아니다. 내심 8남 부여용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극히 싫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부여의자의 마음에 불을 짚이고 있는 왕자가 한사람 왜에 있..

7세기의 2호2룡46(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46(손진길 소설) 서기 650년 9월 중순에 일로(日路) 장군과 두한(頭漢) 장군이 책사 책귀(策貴) 대장군의 밀명을 받고서 5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동북쪽에 있는 삼산성(三山城)으로 출발한다. 그들은 밤에는 행군하고 낮에는 숲 속에 들어가서 쉬고 있다. 그 이유는 원정군의 수를 노출시키지 아니하기 위한 것이다. 무려 5일을 행군한 다음에 멀리 삼산성이 보이는 지점에 도착한다. 일로 장군과 두한 장군은 숲 속에 군대를 숨긴다. 그리고 책사 책귀 대장군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당시 삼산성에서는 무영 대장군이 지휘하고 있는 인자부대에 의하여 성주와 수비대장이 벌써 제거가 된 상태이다. 따라서 임시 성주와 수비대장의 권한을 수비부대장인 검창곤(儉昌坤) 장군이 대행하고 있다. 그는 변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