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85

7세기의 2호2룡65(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5(손진길 소설) 그런데 서기 663년 8월말에 백제부흥운동이 완전히 실패로 끝나자 왜(倭)에 있는 귀왕국(貴王國)으로 한사람의 무장(武將)이 찾아오고 있다. 그자가 32세인 귀실집사(鬼室集斯)인데 그는 7살 연상인 귀왕(貴王) 책귀(策貴)를 찾고 있다. 책귀는 그 자가 귀실복신(鬼室福信)의 아들이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있기에 그를 대전으로 불러서 대화를 시도한다; 귀실집사가 귀왕 책귀의 면전에서 자신의 소개를 정식으로 한 다음에 본론을 말한다; “저는 아버지의 원한을 갚고 싶습니다. 풍장왕이 저의 아버지 귀실복신을 암살하고서 그만 주류성이 위험해지자 비겁하게도 고구려로 망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고구려를 멸하고 풍장왕을 잡아서 죽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십시오. 문무에 두..

7세기의 2호2룡64(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4(손진길 소설) 서기 659년 5월말 야마토의 번왕부 조정에서는 서부 야전사령관인 책귀 상장군에 대한 성토가 한창이다. 먼저 제1좌평 곧 대좌평인 계백호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우리 조정에서는 책귀 상장군이 요청하는 대로 전적인 지원을 해주었어요. 왜냐하면, 그가 우리 번왕부의 서부전선을 견고하게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 순간 대좌평의 목소리가 분통이 터져서 떨리고 있다; “이제 보니 그것이 아니군요. 전부 책귀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한 방법이었어요. 막상, 때가 되고 보니… “. 너무 흥분해서 그런지 상당히 이지적인 인물 계백호가 한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그의 오른팔인 달솔 하상도가 슬며시 나서서 대신 말한다; “대좌평의 말씀이 맞..

7세기의 2호2룡63(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3(손진길 소설) 강귀수 장군이 성아래로 내려다보니 책귀의 군사는 그 수가 2만명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큰소리로 휘하의 장수들에게 지시한다; “적의 군사가 단지 우리의 2배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수성작전에 철저를 기하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각자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라!... “; 그러나 강귀수 장군은 적장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인식하지를 못하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책귀는 선봉대를 내세우면서 특수훈련을 받은 침투조를 앞장 세우고 있다. 먼저 일반 선봉대가 사다리를 가지고 나가서 적의 성벽에 설치한다. 그리고 그 사다리를 타고서 올라가는 흉내를 낸다; 그것을 보고서 성벽에서 수비병들이 바위와 목재 그리고 기름을 아래로 던지고 화살을 날리고 있다. 그러면 사다리를 오르..

7세기의 2호2룡62(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2(손진길 소설) 8. 왜로 간 좌백과 책귀 및 무영의 활약 소정방(蘇定方, 592- 667년)은 본래 이름이 소열(蘇烈)이다. 정방은 그의 자인데 일반적으로 소정방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고향이 기주(冀州)이다. 기주의 위치는 하북의 남부이고 산동의 서부이다; 그곳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그 옛날 삼국시대의 영웅 조조(曹操)의 근거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주 출신인 소정방의 출세는 굉장히 늦은 편이다. 서기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하였을 때에 그는 중랑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西)돌궐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장군이 되고 60대 후반의 나이에 대장군으로 출세하여 13만 대군을 이끌고 바야흐로 백제와의 전쟁에 사령관으로 참전하게 된 것이다. 소정방은 자신보다 무려 22살..

7세기의 2호2룡61(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1(손진길 소설) 서기 663년 8월이 끝나기 전에 왜의 번왕부에서 온 1천 척의 함선 중 600척 정도가 겨우 파손을 면하고 서해로 빠져나간다; 가눌치 사령관은 나당연합군의 해군이 추격하기 전에 빨리 왜로 돌아가고자 계속 사령선에서 북소리를 울리며 퇴각명령을 내리고 있다. 다행히 추격하는 당과 신라의 해군 함정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바다에서 왜의 군선과 전투를 벌일 의도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저 적선들이 왜로 확실하게 돌아가는지를 확인하고자 뒤따라오면서 그 항로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 반면에 나당연합군의 육군은 그것이 아니다. 그들은 왜의 지원군을 조기에 물리쳤기에 그 여세를 몰아서 부흥운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주류성과 임존성을 함락하고자 나선다. 나당연합..

7세기의 2호2룡60(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0(손진길 소설) 시간을 일년전으로 되돌리면 신라의 왕도인 서라벌에서는 신왕 김법민(金法敏, 626-681년)이 군부의 최고지도자인 김유신(金庾信, 595- 673년)을 만나고 있다; 작년 서기 661년 6월에 신라의 국왕으로 등극한 태자 김법민이다. 그러므로 서기 662년 8월인 지금은 훗날 문무대왕이라고 불리게 되는 36세의 국왕 김법민이 신라를 통치한지 1년하고도 2달이 지났기에 일국의 국왕으로서 그 위세가 뚜렷하다. 특히 김법민은 문무에 밝아 태자시절부터 당나라 장안에서 외교업무를 곧잘 처리했다. 그리고 부왕과 함께 백제정벌에 나서서는 당군과의 협조를 원활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재작년 곧 서기 660년 7월 18일에 백제국왕을 사로잡은 이후부터 당나라 원정군 사령관 ..

7세기의 2호2룡59(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9(손진길 소설) 백제의 국왕 부여의자가 서기 660년 7월 13일에 왕도인 사비성(오늘날의 부여)을 차남인 부여태에게 맡기고 자신은 태자 및 왕자들을 데리고 제2의 수도인 웅진성(오늘날의 공주)으로 피신한다. 부여의자는 국왕인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수도 사비성에 집중되고 있는 나당연합군의 총공세를 80리 동쪽에 떨어져 있는 웅진성으로 분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이 부여의자의 착각이다. 왜냐하면, 왕도인 사비성은 몰라도 제2의 수도인 웅진성에는 왕가와 척을 지고 있는 구(舊) 귀족 세력이 우세하여 국왕 일가의 안위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주인 예식진이나 웅진성의 귀족들은 백제의 국왕보다 구 귀족의 중심인물이며 한때 상좌평을 지낸 바 있는 사택천복을 더욱 환영하고 있다. 그 때..

7세기의 2호2룡58(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8(손진길 소설) 한편 중앙군 2만명을 이끌고 백강하류의 언덕으로 달려간 상좌평 의직은 큰 걱정에 휩싸인다. 그 이유는 백강의 하구 기벌포(伎伐浦)로 들어오는 적의 함선을 그 좌우의 고지대에서 공격하여 침몰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인데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4년 전에 옥중 상소문을 올린 성충이나 금년 초 유배지에서 상소문을 올린 흥수의 진언이 그것이다. 기벌포로 들어오고 있는 적선을 깨부수는 방법은 양쪽 언덕에 많은 투석기를 설치하여 집중적으로 큰 돌을 퍼붓는 것이다. 그리하면 함선에서 병사를 육지로 상륙시키지 못하고 다시 바다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늦었다. 당나라 함선에서 내린 병사들이 육지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

7세기의 2호2룡57(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7(손진길 소설) 국왕 부여의자가 백제를 다스린지 20년이 되는 해가 바로 서기 660년이다. 그해 신라 서라벌에서는 군부를 책임지고 있는 김유신이 5월부터 은밀하게 중앙군을 조금씩 북쪽 국경에 있는 신라의 여러 성으로 보내고 있다; 한달 후 6월말에는 그 수가 불어나서 도합 5만명이나 된다. 그러자 신라의 국왕인 김춘추가 7월에 갑자기 서라벌에서 10만명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고 일시에 북진하여 상주 지역에 주둔하기를 시작한다. 그는 만약 북쪽의 강대국 고구려의 군대가 남하하는 경우 그것을 막고자 미리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의 국왕이 어째서 친히 대군을 이끌고 북쪽 상주지역에서 주둔하고 있는 것일까? 고구려가 남진할지도 모른다고 하는 어떤 첩보를 받았기 때문인 것일까? 그것이 아니..

7세기의 2호2룡56(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6(손진길 소설) 신라의 대장군 김흠순은 독산성 안에서 신라군과 대혈전을 치루고 있던 백제의 대장군 계백이 돌연 전투를 중지하고 물러가자 의아한 생각이 들고 있다. 잘못하면 독산성을 계백의 군대에게 빼앗길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그들이 별안간 전투를 중지하고 급히 성을 빠져나간 것이다. 그 이유는 반(半)시진도 지나지 아니하여 밝혀지고 있다. 동쪽에 있는 동잠성에서 성주 손일성이 3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독산성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틀이 지나자 서라벌에서 대장군 최일도가 1만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역시 독산성을 지원하기 위하여 달려오고 있다. 독산성주 갈현과 대장군 김흠순은 성주 손일성 및 대장군 최일도와 함께 금번 독산성 전투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