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3. 19. 16:02

7세기의 2261(손진길 소설)

 

서기 6638월이 끝나기 전에 왜의 번왕부에서 온 1천 척의 함선 중 600척 정도가 겨우 파손을 면하고 서해로 빠져나간다;

 가눌치 사령관은 나당연합군의 해군이 추격하기 전에 빨리 왜로 돌아가고자 계속 사령선에서 북소리를 울리며 퇴각명령을 내리고 있다.

다행히 추격하는 당과 신라의 해군 함정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바다에서 왜의 군선과 전투를 벌일 의도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저 적선들이 왜로 확실하게 돌아가는지를 확인하고자 뒤따라오면서 그  항로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 반면에 나당연합군의 육군은 그것이 아니다. 그들은 왜의 지원군을 조기에 물리쳤기에 그 여세를 몰아서 부흥운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주류성임존성을 함락하고자 나선다.

나당연합군의 공세가 강화되자 북쪽의 임존성을 지키고 있던 흑치상지는 급히 제장들과 비상회의를 열고 있다. 임존성의 장래를 결정하고자 하는 회의이기에 사뭇 흑치상지의 표정이 침통하기 이를 데가 없다;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마침내 그가 무겁게 말문을 열고 있다; “왜의 지원군마저 기벌포에서 대패하여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그 반면에 나당연합군은 후방에서 지원병을 받아 이제는 18만 대군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차제에 우리 백제부흥군을 완전히 박멸하고자 공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

드디어 흑치상지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전투를 계속해보아야 인명피해만 늘어날 뿐 백제의 재건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제 생각으로는 이 정도에서 저항을 마무리하고 각자 살길을 달리 선택하는 것이 후일을 위하여 낫다고 봅니다. 제장들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

그때 제장들 가운데 말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장군이 한사람 좌석에서 일어나 침통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저는 백제의 국왕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반역의 무리에게 빼앗긴 죄인 무송입니다. 당으로 끌려가신 폐하를 생각하면 여기 임존성에서 끝까지 항거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만… “;

무송 장군이 잠시 숨을 돌리고 비장한 심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끝까지 살아남으셔서 뒷일을 도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결사대 얼마만 저와 함께 여기에 남으시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살길을 제각각 도모하시지요! 여러분들이 살아남으셔야 우리 백제인들이 장차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

그 말을 듣고 있던 천부장 무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발언한다; “아버지의 아들 천부장 무오도 여기 남아서 생사를 같이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 그 말을 듣자 무송 장군이 엄숙한 표정으로 아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엄중하게 명령한다; “그것은 안될 말이다. 모든 책임을 이 애비가 지고서 이 성에서 산화할 것이니 너는 우리 무씨 집안의 맥을 이어가도록 하라. 네 어미와 가족을 거느리고 살아남도록 하라. 이 애비의 마지막 명령이다!... “.

그 말을 듣자 주석에 앉아 있던 흑치상지가 말한다; “무송 장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무오 천부장은 식솔들을 데리고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젊은 제장들은 가족과 함께 살아남으시기 바랍니다. 그 길을 제가 김유신 사령관을 만나서 당장 모색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목을 걸어 놓고 그를 만나서 담판하도록 하겠습니다!... “.

제장들이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흑치상지가 필마로 성을 빠져나가 김유신 사령관에게 달려간다. 그의 군마에는 백기가 꽂혀 있다;

 임존성에 대한 공격을 지휘하고 있던 김유신 상장군이 깜짝 놀라서 그를 맞이한다. 그리고 전격적으로 흑치상지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 내용이 가히 획기적이다; “신라군은 즉시 임존성에 대한 공격을 멈출 것이다. 그 대신에 성안의 장군들은 당장 성문을 열고 나와서 신라사령관에게 투항하라. 투항하는 자에게는 모든 지위와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해주겠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백제왕실이 사라진 마당에 끝까지 싸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새로운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

그와 같은 합의가 이루어지자 무송 장군도 자신의 고집을 피울 수가 없다. 모든 장수들과 함께 김유신 사령관에게 나아와서 항복하고 만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이다. 갑자기 그 자리에 대군을 이끌고 소정방이 나타난 것이다.

소정방이 내노하여 외친다; “누구 마음대로 투항하는 적들에게 그 죄를 일체 묻지 아니하고 그 지위와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해준다는 말인가? 그것은 안될 말이다. 나는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나는 여기서 그 정도 예우를 받을 만한 실력을 갖춘 자를 엄선하여 그들에게만 그러한 특혜를 줄 것이다. 먼저 임존성의 수장인 흑치상지부터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도록 하라!... “.

소정방은 이번 기회에 김유신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자 작심하고 있다. 따라서 그를 골려 주고자 수상한 수작을 벌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같은 노장인 김유신은 입맛이 쓰다. 그런데 그 순간 흑치상지가 앞으로 나선다. 그의 표정이 결연하다.

흑치상지가 자신의 부관에게 말한다; “너는 나의 말을 그대로 당나라 말로 통역하라. 내가 흑치상지이다. 내가 소정방 대장군의 뜻에 따라 나의 실력을 선보이고자 한다. 그러니 빨리 상대를 지목하여 나와 대결하도록 해달라! 원하건대 당군 가운데 가장 무예가 뛰어난 자를 상대하게 해달라!... “.

통역을 통하여 그 말을 듣자 소정방이 껄껄 웃는다. 그리고 자신의 부관 한사람을 상대방으로 지목한다. 그 자가 당군의 장수 가운데 가장 무예실력이 뛰어난 설열방 장군이다. 지금까지 설장군을 이긴 장수를 소정방은 본 적이 없다.

두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검술대결을 펼친다. 내력을 검에 쏟아서 서로 부딪치고 있으니 마주치는 검에서는 불꽃이 튀고 두사람의 몸에서는 푸른 빛이 어리고 있다. 그 광경을 보고서 모두가 찬탄한다; “실로 내공이 상당한 장군들의 대결이구나. 몸놀림도 대단하지만 그 검의 위력이 놀랍다. 일생에 이와 같은 쟁투를 본다고 하는 것이 예사 복이 아니지!... “;

세상에 가장 재미나는 것이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맞다. 전장에서 평생을 누빈 김유신 사령관과 소정방 사령관도 이 순간만은 순수한 무인의 심점으로 그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이십수가 넘어서자 서서히 힘겨루기가 끝이 나고 있다. 막강한 흑치상지의 검의 힘에 설열방의 검이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검을 쥐고 있는 설장군의 팔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그 다음에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만 뒤로 밀리다가 급기야 엉덩방아를 찍고 마는 것이다. 설장군은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그 자리에 일어나 서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소정방이 갑자기 껄껄 웃으면서 말한다; “껄껄껄, 내가 오늘의 승자인 흑치상지를 내 수하로 데리고 가겠소. 나머지 임존성의 무리들은 전부 김유신 사령관이 알아서 처리하세요, 하하하“.

참으로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가 없다. 수하의 장수들을 살리고자 목숨을 걸어 놓고 김유신 사령관에게 달려간 흑치상지가 당의 사령관 소정방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임존성에서 끝까지 저항하려고 작심했던 무송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김유신 사령관에게 투항하게 된다.

김유신 사령관은 자신의 약속을 확실하게 지키고 있다. 임존성에서 투항한 인물들을 중용하여 자신의 군대에 편입한다. 그리고 그들을 앞장세워서 경향각지에서 부흥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백제의 장졸들을 설득한다. 그들의 투항을 받아 전원 신라군으로 편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장차 당나라의 군대를 물리칠 대군이 신라로서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나당연합군은 남쪽의 주류성에 대한 공격도 강화하고 있다.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풍장왕은 앞이 깜깜하다. 지금 남아 있는 군사가 15천명에 불과하다. 그 정도의 수비군으로 10만명에 육박하는 당나라 소정방의 대군의 공격을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런데 풍장왕은 굉장히 비겁한 구석이 있다;

 제장들에게는 끝까지 주류성을 사수하라고 엄명을 내려놓고 그 밤에 혼자서 비겁하게 북쪽으로 도망을 치고 말기 때문이다. 그는 몇 명의 부관만 거느리고 북문으로 살짝 빠져나가서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고구려의 국경으로 달린다;

그 밤에 풍장왕을 암살하고자 기회를 엿보고 있던 자가 바로 좌룡 유기룡이다. 그는 집무실에 가짜를 내세워 놓고 풍장왕이 부관들과 함께 성을 빠져나가버렸기에 그 뜻을 이루지를 못한다.

유기룡이 땅을 치면서 한탄하고 있다; “비겁하기 그지 없는 부여풍이구나. 그 정도의 배짱으로 감히 나의 외숙을 죽이고 백제를 재건하겠다고 나서다니 한심한 인물이구나. 그저 기회주의자에 불과한 작자이다. 그렇지만 나는 집안의 원수인 너를 끝까지 추적하여 반드시 혈채를 받고 말 것이다!... “;

그날 밤 유기룡 역시 주류성을 빠져나온다. 그도 부여풍의 행적을 쫓아 고구려의 국경으로 내달린다. 그런데 고구려의 국경을 지키고 있던 장군 안돌석은 주류성에서 왕 노릇을 한 바 있는 부여풍에 대해서는 그 대접이 극진하다. 반면에 그저 장수에 불과한 유기룡에 대해서는 별로 대접이 신통하지가 아니하다.

하기야 유기룡이 자신의 진면목과 진짜 정체를 정확하게 안돌석 장군에게 밝히지 아니하고 있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구려에 들어온 지 3일이 지나자 부여풍 일행은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으로 옮겨간다. 그렇지만 유기룡은 그대로 국경지대에 남겨진다. 그곳에서 국경을 지키는 장수로 근무하라는 것이다.

본래 유기룡이 고구려에 들어온 이유는 부여풍을 조용히 해치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망이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만다. 따라서 유기룡은 고구려의 국경에 있는 성에서 시간을 마냥 보낼 수가 없다. 그는 과감하게도 탈영하여 평양으로 달린다. 그렇지만 평양에서 부여풍이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마침내 유기룡은 후일을 기약하면서 신분을 숨기고 당나라 산동으로 가는 무역선에 몸을 싣는다. 고구려와 당과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아니한 시기이지만 그래도 장사치들은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하여 무역선으로 서로 오가고 있다. 그 점을 익히 알고 있는 유기룡이기에 비상금을 듬뿍 주고서 그 배를 얻어 타고 있는 것이다.

산동성 등주로 되돌아간 유기룡은 가족을 재회하고 모친 귀실복녀에게 소상하게 백제에서 겪은 일을 말씀드린다. 이야기를 전부 듣고나서 모친이 간곡하게 부탁한다; “기룡아, 장부의 복수는 늦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반드시 네 손으로 부여풍만은 도모하도록 하라. 그러면 된다!... “.

등주에서 유기룡은 묵묵하게 오덕관에서 상단의 일을 돕고 있다. 아내 오해미가 수석 행수로서 그곳의 일을 총괄하고 있기에 유기룡이 그녀를 도와서 할 일이 많다. 그리고 상단의 일이라고 하는 것이 물품을 파는 것 뿐만 아니라 시장조사를 하고 국제정세도 살피고 있다. 그러므로 유기룡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 변화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좌룡인 유기룡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의 번왕부로 몰려간 인물들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