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3. 10. 12:36

7세기의 2253(손진길 소설)

 

책귀는 황금성을 차지하고서 재빨리 전쟁의 상처를 지운다. 전사자의 시신을 당일 매장하고 적들로부터 수거한 모든 병장기를 무기고에 모아 엄중하게 관리한다. 만약 포로들이 무기고를 침범하여 병장기를 탈취하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귀는 임시 막사에 수용한 1 5천명의 포로들의 관리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

사실 15천명의 포로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의 군사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책귀는 황금성에 그 정도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황금성에 머물면서 대군을 거느리고 있으면 야마토의 번왕부에서 위기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책귀 사령관은 어쩔 수 없이 부사령관인 구자신 장군을 동쪽에 있는 길비성으로 보내면서 그에게 1만명의 군사를 준다. 그 군대를 가지고 그곳에 있는 서부 야전사령부를 잘 지키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책귀는 황금성에 서부 제2야전사령부를 설치한다. 그 자신 황금성에 오래 머물면서 그 서쪽에 있는 적들의 침공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황금성에는 책귀 상장군이 지휘할 수 있는 군사가 단지 7천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책귀 사령관은 조속히 포로병 1 5천명을 재교육하고 다시 훈련을 시켜 자신의 군대에 편입하고 있다. 그 결과 황금성의 서부 제2야전사령부 소속의 군사는 2 2천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책귀 사령관은 황금성을 정복한 사실을 야마토 번왕부에 보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언한다; “참으로 어렵게 신라식민왕국의 황금성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서쪽에서는 북구주성의 군대가, 남쪽에서는 송산성의 군대가 황금성을 탈환하고자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

책귀 사령관이 조정에 올린 장계를 번왕 부여용 앞에서 읽고 있는 좌평 계백호가 한번 숨을 쉰 다음에 이어서 낭독하다; “소신은 부득이 길비성에 부사령관인 구자신 장군을 보내어 야전사령부를 지키게 하고 이곳에서 적들의 침입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활한 작전수행을 위하여 전하께서는 두가지를 승인해주시기 앙망합니다... “;

좌평 계백호가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에 번왕 부여용이 말한다; 책귀 사령관의 구체적인 요청사항이 무엇이요?... .  계백호가 얼른 책귀의 장계를 읽는다; 하나는, 길비성 야전사령부에서 사령관을 대신하여 1만명의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구자신 장군을 차제에 대장군으로 승진시켜 주십시오. 또 하나는… “.

중간에 번왕 부여용이 말한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군요. 그래 두번째 요청은 무엇이요?... . 계백호가 천천히 읽는다; “황금성의 성주로 시라손 장군을 임명하시고 그를 대장군으로 승진시켜 주십시오. 그러면 소신은 안심하고 이곳 황금성에서 적의 모든 공격을 결사적으로 막아내고자 합니다. 번왕 전하의 은혜를 바라며 천세를 찬양합니다. 상장군 책귀 삼배!.

번왕 부여용이 좌평 계백호에게 묻는다; 책귀 사령관이 서부전선을 지키고 있으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혹시 그를 대신할 인재는 없습니까?... . 계백호가 잠시 생각을 한다. 그 다음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조리 있게 답변한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전하, 서쪽에서는 아직 신라식민왕국 2성과 방계왕국 7성이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귀 상장군이 서부전선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어야만 합니다. 애석하게도 뛰어난 책사이며 무장인 책귀 사령관을 대신할 만한 인물이 우리 번왕부에는 없습니다!... “.

번왕 부여용이 끄응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지만 좌평 계백호로서는 전방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계속 진술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 “책귀 사령관이 맡고 있는 중책은 고구려식민왕국의 3성에 대해서만 방비하고 있는 가눌치 사령관의 경우보다 더욱 큰 임무입니다. 그러므로 소신의 판단으로는 전하께서 책귀 사령관을 계속 신임하시고 그의 요구를 모두 들어 주는 것이 가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 말을 듣자 번왕 부여용이 그제서야 기분 좋게 말한다; “계좌평의 말이 맞아요. 과인의 생각도 같아요.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세요”. 그와 같은 야마토 번왕부 조정의 내막을 책귀는 은솔 도미다의 전서구를 통하여 자세하게 듣고 있다;

그 결과 그가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내가 전방에서 많은 군사를 지휘하고 있기에 그것이 야마토의 번왕에게 있어서는 좌불안석이구나! 그러므로 나에 대한 그의 경계심리가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은 안심이다. 내가 서부 야전사령부에서 계속 근무하면서 이제는 길비성황금성을 장중에 두고 있으니 여기서부터 나의 세력을 은밀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넓혀 나가야만 한다.

책귀 사령관은 655 7월과 8 2달 동안 황금성에서 사로잡은 1 5천명의 포로를 전부 재교육시키고 재훈련을 시킨 다음에 장졸로 분리하여 자신의 군대에 편입한다. 비로서 그는 독자적인 2 2천명의 대군을 보유한다. 하지만 황금성의 성주가 된 시라손 대장군에게 4천명의 군사를 떼어주고 있다. 그에 따라 책귀의 군대는 다시 1 8천명의 규모가 된다.

그는 그러한 작은 규모의 군대로는 서편의 북구주성과 남섬에 있는 송산성을 정벌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일당십’(一當十)의 강군이 되도록 한해동안 자신의 무예를 장수들에게 전수하면서 군사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게 내실을 기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듬해 곧 서기 656년에 접어들고 이내 결실의 계절 가을이 되고 있다. 추수를 모두 끝내고 황금성에서 거둔 군량미를 계수하여 보니 그 양이 작년과 마찬가지로 능히 3만명의 대군을 1년 동안 먹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책귀가 생각한다; 백제의 국왕 부여의자 17년이 되는 내년 657년에는 바다 건너 남섬에 있는 송산성을 먼저 정벌해야 하겠구나. 전쟁이 계속 되어야 야마토의 번왕부 조정에서 일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야!... .

그렇게 결심하고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자 그날 아내 사오리가 기쁜 소식을 책귀에게 전한다; “여보, 나는 다시 아기를 가진 것 같아요. 내년 657 5월경이면 태어날 거예요. 그렇게 알고 계세요”. 그 말을 듣자 책귀는 얼마나 아내가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외아들로 자라온 자신에게 두번째 아기가 태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한편, 동쪽의 국경지대 전방사령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장군 무영은 유능한 책사인 친구 책귀가 빠진 공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가눌치 사령관을 모시고 동쪽에서 오는 고구려식민왕국의 잔여 3성의 위협에 대처하고 있지만 무심한 세월만 흘러갈 뿐 그들은 적성(敵城)을 정복할 계기를 전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방사령관이 거느리고 있는 군사의 수가 18천명이다;

 그런데 3개의 적성 곧 동북성(東北城), 신궁산성(神宮山城), 청백성(靑白城)의 병력은 그보다 몇배나 많다. 큰 성인 동북성에 2만명, 신궁산성과 청백성에 각각 15천명의 군사가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무영 대장군이 손수 정탐조를 이끌고 적성에 잠입하여 탐지한 결과가 그러하다. 그 보고를 받고서 가눌치 사령관이 크게 한숨을 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전군 18천명을 이끌고 적성을 공격해보아야 희생자만 생길 뿐 전혀 성을 차지할 수가 없어요. 그 이유는… “;

가눌치 사령관의 설명이 이어진다; “병법서에 따르면 적성을 공격하여 취하자면 군사의 수가 수비군의 3배는 되어야 합니다. 실제 전투에 있어서도 그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니 적의 동태를 살피면서 우리는 전방사령부를 잘 지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선택할 최선의 전략입니다!... “;

그러면서 가눌치 사령관이 넋두리처럼 한마디를 보태고 있다; “만약 책사인 책귀가 내 곁에 있다고 하면 그는 동북성을 도모할 비책을 마련하겠지요. 그러나 야마토의 번왕부에서는 그를 내 곁에 절대로 보내주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와 내가 함께 있으면 번왕부 조정이 위험하다고 그들은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허허허… “;

사령관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무영은 가슴이 답답하다. 책사인 친구 책귀가 여기에 없는 것이 이토록 큰 공백인 줄 예전엔 미처 알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무영이 속으로 다짐한다; “때가 되면 나는 동무 책귀를 찾아가서 그와 함께 행동할 것이다. 나는 그와 함께 큰 뜻을 이룰 것이다. 그것이 풍운아이며 사내대장부인 나의 길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 “;

하지만 무영은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부친 무상 대감의 거취문제이다. 본래 백제 사비성에서 이곳 왜로 오실 때에는 번왕부의 군대가 고구려식민왕국의 큰 성인 동북성을 취하는 경우 그곳의 성주로 부임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일이 무망하므로 현재는 작은 성 삼산성의 성주로 지내고 계시는 것이다.

지난 653년 봄에 무영은 사랑하는 오나미와 삼산성에서 결혼식을 가지고 지금은 전방인 신탕성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은 따로 이웃성인 삼산성에서 지내고 계시는 것이다.

언제까지 많지도 아니한 식구가 그렇게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만약 큰 성 동북성만 정복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성으로 이주하여 함께 지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언제 이루어질지 도저히 전망할 수가 없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이 자꾸만 지나가고 있다. 3-4년이 후딱 지나 서기 657년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별다른 상황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산동성에 있는 좌룡 유기룡과 사비성에 있는 좌호 좌백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