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5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3. 8. 04:20

7세기의 2251(손진길 소설)

 

백제국왕 부여의자가 다스린지 13년째가 되는 서기 6539월 소위 결실의 계절가을이 되자 왜의 번왕국 서부 야전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는 길비성(吉備城)에서 하나의 희소식이 그 동쪽 멀리 떨어져 있는 신주성(信州城)책윤(策允)성주 부부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은 며느리인 천부장 사오리(思吾理)가 임신을 하였다는 기쁜 소식이다;

  

당시 번왕국의 책사이며 사령관인 책귀(策貴) 상장군의 나이가 29세이고 아내 사오리가 28세이다. 집안에서는 책귀가 외아들이고 부친인 책윤 대감 역시 독자이다. 한마디로 자손이 귀한 백제의 귀족가문이 그들이다. 따라서 책윤 성주 부부는 손주가 빨리 태어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한 실정이므로 그 소식을 듣자 책윤 성주 부부는 내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게 되었다고 즐거워하고 있다. 영리하고 무예가 뛰어난 아내 사오리를 사랑하고 있는 남편 책귀도 좋은 자식을 얻기 위하여 아기가 태어나는 명년(明年) 654년에는 한해동안 전쟁을 벌이지 아니하리라고 내심 작정하고 있다.  

마침내 서기 654년 봄이 되자 () 3에 사오리가 아들을 낳는다. 책귀는 아들의 이름을 경민’(敬民)이라고 짓는다. 그 뜻은 경천애민’(敬天愛民)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책귀는 득남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부모님이 계시는 동쪽 신주성에 전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한문으로 책경민’(策敬民)이라고 써서 알려준다.

손자의 이름자를 받아본 책윤 성주가 속으로 중얼거린다; “책귀는 기어코 이곳 왜의 땅에서 왕이 되고자 하는구나. 그러니 아들 이름을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군주가 되라고 하는 뜻에서 벌써 경민이라고 짓고 있구나. 하기야 본국 백제에서 국왕 부여의자가 경천애민을 하지 아니하고 있으니 이곳 왜에서라도 책귀가 나라를 만들어 잘 다스시는 것이 백성들에게 복이 되겠지. 반대할 이유가 없구만!... “.

백제 사비성에서 좌평 벼슬을 10년이나 지낸 유명한 귀족이 책윤 대감이다. 그가 왜의 땅에서 신주성주로 근무하면서 청출어람인 자식 책귀 상장군의 청운의 꿈을 짐작하면서 그렇게 내심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귀의 구체적인 생각은 과연 무엇일까?...

문무를 겸한 백제 사비성의 인재인 책귀5년전 친구인 무영과 함께 왜()의 야마토(大和)에 있는 번왕부로 발령을 받아와서 가눌치 사령관과 함께 정복전쟁을 시작한 인물이다. 5년만에 번왕부의 책사인 책귀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여 조그만 번왕부를 10배 이상으로 크게 영토를 확장하는데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그 결과 그는 벌써 벼슬이 무장으로서는 최고의 지위인 상장군에 이르고 있다. 상장군이란 문신으로 따지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하는 최고지위 좌평에 해당하는 것이다. 현재 번왕부 조정에는 좌평이 2명에 불과이다. 그러므로 왜의 번왕국이란 번왕 부여용2명의 좌평 및 2명의 상장군과 함께 12개의 성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부하의 수로 보면 책귀가눌치 상장군과 마찬가지로 18천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다. 각각 그 정도 규모의 군사력으로 가눌치 사령관은 동부전선을 지키고 있고 책귀 사령관은 서부전선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가눌치 상장군의 전방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오늘날의 니이가타 곧 신탕성과 책귀 상장군의 서부 야전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는 오늘날의 오카야마 곧 길비성 사이의 거리가 무려 19백리나 된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 만나기가 어려운 처지이다;

그와 같이 2명의 전쟁영웅을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사실은 야마토 번왕부의 술책이다. 번왕 부여용은 자신의 군대가 승승장구하여 번왕국의 영토가 크게 확장되는 것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군부의 지도자가 권력자가 되는 것은 결단코 원하지 아니하고 있다.

따라서 전공이 가장 큰 가눌치 사령관과 책사 책귀를 동과 서로 멀리 분리시킨 것이다. 그와 같은 비책을 마련한 자는 야마토 번왕부의 꾀보인 달솔 하상도이다. 그리고 그 묘책을 적극 수용한 인물이 좌평 계백호와 번왕 부여용인 것이다. 그와 같은 속사정을 가눌치 사령관과 책사인 책귀가 벌써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겉으로는 모르는 척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가눌치 사령관의 입장에서는 동쪽에 있는 고구려식민왕국의 잔여 3개의 성을 정복하면 된다. 그와 달리 책귀 사령관으로서는 서쪽에 있는 신라식민왕국의 잔여 3개의 성과 그 서남쪽에 있는 방계왕국의 7성을 전부 정복하여야 한다. 따라서 젊은 책귀 상장군의 할 일이 훨씬 많은 것이다;

그런데 그의 부친인 책윤 성주가 벌써 알고 있는 그대로 책귀의 야망은 번왕부의 사령관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그의 시대가 백제 본국에서나 이곳 왜의 땅에서나 모두 난세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어지러운 시대에 그는 백성들을 어질게 그리고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훌륭한 왕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왜의 서부지역이 그의 마음에 든다. 따라서 책귀는 우선 신라의 식민왕국을 완전히 정복하고서 그곳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싶어한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기에 책귀는 앞으로 자신이 정복하는 땅을 번왕 부여용이나 백제의 국왕 부여의자에게 내어줄 생각이 전혀 없다.

책귀가 생각할 때에 59세인 부여의자는 벌써 웅지가 사라지고 없으며 마냥 왕권만 강화하고 있는 늙은 군왕에 불과하다. 그는 왜의 번왕인 자신의 아들 부여용의 세력이 커지는 것마저 벌써 견제하고 있는 실로 옹졸한 성품인 것이다;

한편, 왜의 번왕인 부여용은 나이로 보면 책귀 자신과 동갑이다. 그리고 부여용은 왕자 가운데 뛰어난 인물이다. 지금의 백제의 국왕 부여의자는 나이도 많지만 아들도 많다. 적자만 하더라도 10명이 넘고 서자까지 합하면 그 수가 무려 50명이 넘고 있다. 그 가운데 뛰어난 인물이 4남인 부여연, 5남인 부여풍, 그리고 8남인 부여용인 것이다.

하지만 부여용은 안과 밖에서 두가지의 도전을 받고 있다. 왜의 땅에서는 전임 번왕이었던 친형 부여풍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백제에서는 옹졸한 부왕의 견제에 걸리고 있다. 그때문에 그의 조정에서는 양쪽으로 견해가 갈라진 신하들이 서로 반목하고 있다.

예를 들면, 1좌평 계백호는 달솔 하상도와 의견을 같이 하여 본국 백제와 거리를 두고자 하는데 제2좌평 상우종과 달솔 기하진은 그것이 아니다. 그들은 백제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 그와 같이 2명의 좌평이 조정에서 편을 갈라 서로 반목하고 있는데 그것을 번왕 부여용이 잘 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부여용이 사비성의 부왕을 닮았는지 책귀가 보기에 참으로 충신인 가눌치 사령관을 견제하고 있다. 그와 같은 여러가지 사실을 알고 있는 책사인 책귀는 백제의 국왕이나 왜의 번왕에게 충성하고자 하는 생각을 이제는 접고 있다. 그 대신에 다시 해가 뜨는 새로운 나라 일본(日本)을 이곳 왜의 땅에서 그가 스스로 한번 건설해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자신의 웅지를 책귀는 단 한번 부모님과 아내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내비친 적이 있다. 그 외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다. 그만큼 조심성이 많은 인물이 사실은 책귀이다. 그러므로 그의 절친인 22룡 가운데 3사람 곧 좌룡 유기룡, 좌호 좌백, 우호 무영 등도 우룡인 책귀의 생각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무영 대장군은 신탕성에 있는 전방사령부와 부친인 무상 대감이 성주로 있는 삼산성을 오가면서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작년 곧 653년 봄에 오나미와 결혼을 했다. 당시 부친이 성주로 있는 삼산성에서는 그 혼례로 한동안 축하 분위기였다;

신랑이 백제의 귀족 가문의 아들이며 왜의 번왕부에서 대장군으로 출세한 무영이다. 게다가 신부 오나미는 백제 사비성의 제일 거상인 오덕의 막내딸인 것이다. 따라서 그 혼사는 일대 경사임이 틀림없다. 더구나 22룡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결혼식이기도 했다.

책귀는 아들이 태어난 서기 654년을 편안하게 보낸 다음에 이듬해 655년이 되자 서서히 서편의 신라식민왕국의 성들을 점령할 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정복할 성은 인근에 있는 황금성이다. 역시 들판이 넓고 강물이 좋아 농산물이 풍성한 고장이다;

그 성을 점령하게 되면 기름진 길비성과 더불어 조그만 독자적인 왕국을 건설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야마토의 번왕부에서 과연 길비성과 더불어 황금성까지 서부 야전사령부의 관할로 맡겨줄 것인가? 의문이 들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방법을 궁리한 끝에 책귀가 내리고 있는 결론이 다음과 같다; “일단 황금성을 정복하여 길비성과 함께 서부 야전사령부에 병합한 다음에 재빨리 서쪽의 북구주성 및 남섬에 있는 송산성과 전쟁을 벌일 필요가 있다. 2곳에서 동시에 적을 맞이하게 되면 서부 야전사령부의 역할이 중차대하게 되므로 야마토의 번왕부 조정에서 함부로 나를 사령관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가 없게 된다“;

책귀의 구상이 결론에 다다르고 있다; “그렇게 몇 년만 버티고 있으면 틀림없이 백제나 번왕부에서 먼저 사단이 발생할 것이다;

 그때에는 기회를 보아 내가 독립을 선언하면 된다. 그러므로 시간을 끌고 계속 전쟁국면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나의 왕국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

과연 책귀는 자신의 꿈을 어떻게 실현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