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85

7세기의 2호2룡25(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25(손진길 소설) 큰 섬 왜(倭)에 있어서는 일찍이 동해 바다를 건너온 도래인들이 그 섬을 나누어서 지배하고 있다. 주로 고구려인들은 본섬의 북동부를 식민지로 삼고, 신라인들은 본섬의 북서부를 그들의 식민지로 삼고 있다. 그리고 해양민족인 가야인들은 오래전부터 왜의 큐슈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머지 지역 곧 본섬의 남부 및 시코쿠 지역을 백제인들이 차지하여 지배하고 있다. 그들 도래인들이 한반도에서 선진문명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왜로 왔기에 미개한 원주민들은 그들을 아스카(飛鳥) 문명인이라고 불렀다. 마치 철새가 날아오듯이 그렇게 바다를 건너 문명을 가지고 왔다는 의미이다; 그 가운데 가장 선진문명을 가지고 왜의 남부지역을 지배한 나라가 역사적으로 백제이다; 그런데 서기 500년경..

7세기의 2호2룡24(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24(손진길 소설) 오명(吳明) 대행수는 번왕부가 있는 야마토(大和)에 머무르는 동안에 숙소를 ‘오덕관’(吳德館)으로 정하고 있다. 큰 규모의 객잔인 오덕관은 2층 건물인데 1층은 식당이고 2층에는 숙소가 마련되어 있다. 담장이 높은 오덕관의 뒷마당에는 큰 창고가 여럿이다; 백제에서 제일가는 상단인 오덕 상단은 당나라 및 왜국과 교역을 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 있는 백제의 산동번(山東藩) 곧 등주(登州)에 오덕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 왜(倭)에 있는 백제의 왜번(倭藩)의 도성인 야마토에도 역시 오덕관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 객잔의 이름은 오덕 상단의 주인 오덕(吳德)의 이름을 딴 것이다. 따라서 본국 백제에 있는 오덕 상단의 왜번 지사라고 볼 수 있는 그곳 오덕관에는 요즈음..

7세기의 2호2룡23(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23(손진길 소설) 원정에 나서기 전에 책귀가 가눌치 사령관에게 말한다; “전번 병고성에서는 대지진을 만났기에 그 성에 대하여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새로 성이 복구가 되면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겠지요. 차제에 좋은 이름을 하나 지어 주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 그 말을 듣자 상장군이 된 가눌치 사령관이 잠시 생각을 한다. 그러더니 싱긋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제는 천재지변을 당하지 아니하고 신의 도움으로 백성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그와 같은 의미를 담아 그 이름을 ‘신호’(神戸)라고 하면 좋겠군. 그렇게 하도록 여상(呂常) 성주에게 전서구를 보내게!... “; 그와 같은 일을 처리하면서 책귀와 무영은 서기 649년 9월 한달을 백제의 왜번이 있..

7세기의 2호2룡22(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22(손진길 소설) 그 자리에서 책귀가 포로들에게 큰소리로 말한다; “그 위대한 대업에 동참하고 싶은 포로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소정의 교육을 받은 후에 우리의 군대에 편입할 것입니다!... “. 포로들이 장졸을 불문하고 모두 그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책귀는 천부장들과 함께 그들을 한달동안 교육하고 훈련을 시킨 후에 모두 번왕국의 군사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다만 그 교육과 훈련의 장소는 백제의 번왕부(藩王府)가 있는 오늘날의 나라시(奈良市) 곧 야마토(大和)이다; 따라서 가눌치 사령관은 책귀의 건의로 제2천부장인 두라(頭羅)를 제2 장군으로 승진시키고 3천명의 군사를 그에게 주어 새로 얻은 성을 수비하게 된다. 그와 같이 조치한 다음에 그는 포로 1만명을 이끌고 야마토로 개선한..

7세기의 2호2룡21(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21(손진길 소설) 첫번째 원정에서 큰 성을 하나 얻었다. 그러자 임시 책사인 책귀가 가눌치 사령관에게 건의한다; “이제는 이 성에 수비군을 남기고 또한 성주를 임시로 임명한 후에 우리는 야마토(大和)로 돌아가야 합니다. 소직의 생각으로는… “; 도중에 말을 끊고 책귀가 가눌치 사령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천천히 말한다; “제1천부장 하다(河多)를 제1장군으로 승진시키고 그에게 3천명의 군사를 주어 이 성을 지키게 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를 임시성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그 말을 듣자 가눌치 사령관이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좋은 생각이요. 내가 먼저 선(先)조치를 하도록 하겠어요. 그리고 개선하는 대로 번왕 전하에게 보고를 드리고 추인을 받도록 하겠어요. 앞으로..

7세기의 2호2룡20(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20(손진길 소설) 책귀(策貴)는 서기 649년 4월 한달동안 제1천부장 하다(河多) 및 제6천부장 여상(呂常)과 함께 야마토 번국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무령왕 직계왕국을 정벌할 작전계획을 마련한다. 책귀가 그 작전계획을 마련함에 있어서 3가지 전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먼저 두사람에게 언급한다. 구체적으로 책귀가 하다와 여상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직계왕국의 인구수가 우리 번국보다 5배나 많은 100만명입니다. 그리고 군사수도 5만명이나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군의 절반인 5천명의 군사로 원정을 실시하는 경우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승리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저는… “. 그 문제를 익히 알고 있는 하다와 여상이기에 책귀의 말에 귀를 기울..

7세기의 2호2룡19(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9(손진길 소설) 책귀와 무영은 이틀간 숙소에서 쉬는 사이에 번왕부(藩王府)의 군대조직에 관하여 자료를 점검한다. 군사의 수가 도합 1만명이다; 그 규모는 작은 도시국가의 군대에 해당한다. 고대왕국에 있어서 통상 군사의 수에 20을 곱하면 그 나라의 인구가 얼마인지를 알게 된다. 따라서 백제의 왜번(倭藩)이 1만명의 군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면 번왕(藩王)이 다스리고 있는 인구가 20만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왕국이라고 부르기에는 적은 인구이다. 그저 제법 큰 규모의 하나의 도시국가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책귀가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지고 있다. 잠시 후 책귀가 눈을 뜨고서 혼자 중얼거린다; “야마토 번왕부의 가장 큰 사명은 영토를 확장하..

7세기의 2호2룡18(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8(손진길 소설) 백제의 왜번(倭藩)이 자리를 잡고 있는 중심지가 야마토(大和, やまと)이다. 서기 649년 3월말 책귀와 무영이 훗날 나라시(奈良市, ならし)로 불리게 되는 그곳에 도착하자 우선 기후가 백제의 사비성과 비슷하여 기분이 좋다. 건물의 양식도 백제의 것과 흡사하므로 적응하기가 쉽다. 그러나 처음 부임하는 곳이므로 무관인 책귀와 무영은 우선 번왕부(藩王府)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큰 건물안으로 들어가서 전입신고를 할 준비를 한다; 입초를 서고 있는 병사에게 미리 방문사유를 말하였기에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안쪽 문을 열고서 40대중반으로 보이는 무인이 나타난다. 책귀가 그의 용모부터 살핀다. 짧게 기르고 있는 검은 수염이 강인한 인상을 더해주고 있다. 그 자가 ..

7세기의 2호2룡17(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7(손진길 소설) 4. 왜번(倭藩)에서 활약하는 책귀와 무영 서기 649년 2월에 책귀(策貴)와 무영(無影)은 자신들이 희망한대로 왜번(倭藩)의 무관(武官)으로 발령이 난다. 25세의 젊은 무장인 책귀와 무영은 이제 백제 사비성(泗批城)에서 왜번(倭藩)이 있는 야마토(大和, やまと)까지 가야한다. 참고로, 야마토는 백제의 왕자들이 자리를 잡고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곳으로 훗날 ‘나라시’(奈良市, ならし)라고 불리게 된다; 5세기말엽 백제 제24대왕인 동성왕의 차남 부여융이 나라시에서부터 정복전쟁을 시작하여 서기 500년이 되자 야마토제국을 건설한다; 부여융은 501년 부왕인 동성왕이 승하하자 본국 백제로 돌아와서 실력으로 국왕이 된다. 그는 야마토제국을 건설한 그 솜씨를 발휘하여 약소국..

7세기의 2호2룡16(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6(손진길 소설) 좌백과 혼인한 사택홍련이 이듬해 곧 서기 652년 봄이 되자 모처럼 사비성 시집을 떠나서 친정이 있는 하동 땅에 와서 오라버니 사택창수의 집에 한달간 머물고 있다. 그러자 의령지역 기노강성에서 근무하고 있는 부장 좌백이 자주 하동에 있는 처가를 방문하고자 부지런을 떨고 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기노강성의 성주인 계백장군이 아우인 부관 좌백에게 모처럼 휴가를 준다. 처가에 가서 일주일 푹 쉬고 오라는 것이다. 그 덕분에 좌백이 손위 처남 사택창수의 집에 가서 아내 사택홍련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년 여름 그 집에서 처음 만나 서로 첫눈에 반하여 결혼한 부부이니 얼마나 사이가 좋은 지 모른다. 그것을 보고서 사택창수의 아내 해미수가 남편에게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