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85

7세기의 2호2룡15(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5(손진길 소설) 서기 651년 여름에 가형 계백장군이 의령지방에 있는 기노강성의 성주로 부임할 때 좌백도 그 부관으로 동행한다. 백제의 왕도인 사비성에서 기노강성으로 가는 방법이 두가지이다. 하나는 육로를 따라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뱃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계백장군과 좌백부장은 옛날 동부전선에서 이동할 때에 주로 육로를 이용했다. 신라와의 전쟁기간이었기에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전쟁이 끝났거나 소강상태이다. 따라서 계백과 좌백은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참으로 오래간만에 주위 풍광을 즐기면서 천천히 임지로 가고 있다; 그런데 그 뱃길에서 좌백이 과거 사비성의 곡나 도장에서 10년간 함께 무예를 수련한 동문 사택창수를 만난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좌백이 창수를 ..

7세기의 2호2룡14(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4(손진길 소설) 당 태종과 백제의 무왕 사이는 돈독하였다. 그들은 무(武)를 숭상하는 임금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외교적으로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당 태종 이세민은 마음 놓고 만주의 강대국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하여 외교적으로 백제를 자신의 편으로 삼아야만 했다; 만약 백제와의 관계가 좋지 아니하다면 당이 고구려와 전쟁에 돌입할 때에 백제가 고구려를 돕기 위하여 기병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외교적인 필요성 때문에 당 태종 이세민이 백제의 무왕에게 허리를 굽히며 서로 친하게 지내자고 겸손의 미덕을 먼저 보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통이 큰 무왕은 호쾌하게 받아들인다. 그것도 그럴 것이 무왕으로서는 신라를 치는데 바빠서 당과 고구려와의 전쟁에는 개입할..

7세기의 2호2룡13(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3(손진길 소설) 그날 전입신고를 마치고 나자 주집사가 유기룡을 숙소로 안내한다. 연무장 옆에 있는 제법 큰 방인데 검소하면서도 회의용 탁자까지 갖추고 있다. 기거하는데 있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한쪽에 목욕실과 화장실까지 별도로 설비가 잘되어 있으니 말이다; 식사는 간부들이 함께하도록 되어 있다. 백부장이 10명 오십부장이 20명이고 그들을 지휘하는 부장이 유기룡이다. 그리고 그 위에 사령관으로 곡나진수 장군이 있다; 일반병사들은 십부장과 함께 큰 식당에서 별도로 식사를 하는데 그 수가 1천명 정도이다. 군사의 수로 보면 백제의 작은 산성규모이다. 하지만 유기룡이 판단할 때에 번왕 여몽은 물론이고 대사인 달솔 여자신도 보통 인물이 아니다. 게다가 곡나진수 관장까지..

7세기의 2호2룡12(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2(손진길 소설) 서기 649년 3월 25세의 젊은 무관 유기룡이 백제를 떠나 당나라의 동해안 등주(登州)에 도착한다. 그는 애초에 백제의 항구 당항성을 이용하여 빠르게 당나라 산동반도에 있는 등주로 들어가고자 계획했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아니하다. 그 이유는 당항성의 주인이 더 이상 백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648년 진덕여왕 2년에 신라의 중신 김춘추가 비밀리에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으로 들어가서 태종을 만났다. 당 태종 이세민은 군사동맹을 맺고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도모하자는 김춘추의 말을 듣자 처음에는 탐탁하게 생각하지 아니했다. 그 이유는 연이어 여왕이 다스리고 있는 유약한 신라의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김춘추의..

7세기의 2호2룡11(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1(손진길 소설) 3. 새로운 임지에서의 2호와 2룡 백제 의자왕 9년인 서기 649년 정월에 사비성 서촌에 있는 큰 저택 좌평 책윤의 집에서 아들 책귀와 무영, 유기룡, 좌백 등 젊은 4친구가 오래간만에 모이고 있다. 그들은 5년전 여름에 무과시험에 나란히 합격하여 동부전선의 여러 백제성에서 근무하였다. 지금은 다음 보직을 받기 위하여 잠시 사비성 군부에서 대기발령을 하고 있다; 그들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모두들 연말연시를 사비성에 있는 각자의 집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은 책귀가 친구들을 모두 자기집에 초대하였다. 새해가 되었으니 함께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자고 하는 것이다. 그날 좌장이 되고 있는 책귀가 먼저 말을 꺼낸다;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우리 2호와 2룡..

7세기의 2호2룡10(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0(손진길 소설) 조천성을 떠나 본진이 남하하여 멀리 무산성이 보이는 지점까지 도달한다. 그때 재사의 역할을 맡고 있는 제1군의 참모 책귀가 원정군사령관 의직장군에게 말한다; “사령관님, 더 이상 전진하지 마시고 이곳 숲속에서 오늘밤 기다려주십시오!... “; 의직 사령관이 귀를 기울이자 책귀가 정확하게 말한다; “한밤중에 제가 특수부대를 이끌고 잠입하여 무산성주를 제거하고 북문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그 시간이 정확하게 자시가 끝나는 때입니다. 미리 가까운 곳에 은신하고 계시다가 성문이 열리는 것을 보시면 곧바로 기병대를 이끌고 성안으로 쳐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보고가 끝나자 책귀는 무영과 함께 특수부대를 이끌고 한밤중에 무산성으로 잠입한다. 두사람을 비롯한 잠입조는 하나같이 한밤중에 ..

7세기의 2호2룡9(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9(손진길 소설) 수적으로는 백제군이 크게 밀리고 있다. 하지만 의직장군의 전술이 대단하다. 4차례의 접전에서 전혀 밀리지가 않는다. 그러나 워낙 백제군의 수가 부족하다. 한마디로, 중과부적이다. 따라서 전투가 길어지자 점점 백제군이 밀리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부관 책귀가 성주 의직장군에게 급히 제안한다; “잠깐 숲속으로 저와 함께 들어가시지요. 그곳에서 황금투구와 성주의 갑옷을 제게 주시고 몸을 피하십시오. 빨리 조천성으로 가셔야 본성과 탄현고개를 지킬 수가 있습니다”; 의직성주가 부관 책귀의 말을 듣고 돌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그렇다. 김유신의 군대는 1만명이나 되는 대군이다. 그들이 일시에 조천성까지 밀고 올라오면 탄현고개가 위험하게 된다. 그곳이 뚫리게 되면 그 다음은 ..

7세기의 2호2룡8(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8(손진길 소설) 탄현(炭峴)고개의 동편에는 굴산성이 있고 그 남쪽에는 조천성이 있다. 육로로 신라에서 백제의 왕도인 사비성으로 곧장 들어가자면 지리적으로 금산지역의 험준한 천태산을 넘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런데 편하게 험산준령을 넘어서자면 오래된 고개길을 하나 이용하여야 하는데 그 이름이 탄현(炭峴)이다. 일명 ‘숯고개’로 불리고 있는 탄현은 옛날부터 숯장수들이 사용하고 있는 고개길이다. 그들이 깊은 산속에서 양질의 숯을 구워서 그 고개를 넘어가서 큰 성읍에 팔고 있는 것이다; 백제의 입장에서는 탄현고개만 잘 방어하면 신라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가 있다. 따라서 탄현의 동편에 있는 굴산성과 그 남쪽의 조천성은 탄현으로 접근하는 신라군의 진로를 미리 막는 중요한 산성들..

7세기의 2호와 2룡7(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와 2룡7(손진길 소설) 서기 642년 여름에 백제의 의자왕은 신라의 대야성을 함락하고 그 서쪽 40개성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듬해 643년에는 한강유역의 요충지 당항성을 되찾았다. 그러자 신라에서는 김유신 장군을 압량군주로 임명하고 백제에게 빼앗긴 대야성부터 되찾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 따라 644년에 대야성을 지키고자 하는 백제군과 그 성을 탈환하고자 하는 신라군 사이에 전투가 치열하다. 그러한 비상시기에 동부전선 전방에 있는 성으로 새로운 장교들이 부임하고 있다. 그 가운데 그해 여름 무과시험에 합격한 기룡과 그의 3친구가 들어 있다; 우선 백제에서 대야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기잠성에 가장 먼저 초급장교가 발령이 나고 있는데 그가 바로 기룡이다. 그런데 백제의 동부전선인 기잠..

7세기의 2호2룡6(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손진길 소설) 2. 백제 동부전선의 2호와 2룡 서기 641년 3월 46살의 늦은 나이로 백제의 국왕이 된 의자는 지난 10년 동안 태자시절에 벌써 많은 전쟁에 참여하여 적지 아니한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따라서 그는 백제의 왕이 되자 그 옛날 신라에게 잃어버린 한강유역을 되찾고자 신하들에게 전쟁계획을 수립하라고 먼저 지시한다. 당시 의자왕을 보좌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문신 성충과 흥수 그리고 무신 윤충과 계백 등이다. 그들이 여러차례 회의를 통하여 하나의 대전략을 수립한다; 그 내용을 좌평 성충이 대표로 의자왕에게 보고한다; “먼저 성동격서의 방법을 사용해야합니다. 신라는 우리가 한강유역 곧 북쪽으로 쳐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의표를 찔러 지금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