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 19. 04:34

7세기의 2213(손진길 소설)

 

그날 전입신고를 마치고 나자 주집사유기룡을 숙소로 안내한다. 연무장 옆에 있는 제법 큰 방인데 검소하면서도 회의용 탁자까지 갖추고 있다. 기거하는데 있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한쪽에 목욕실과 화장실까지 별도로 설비가 잘되어 있으니 말이다;

식사는 간부들이 함께하도록 되어 있다. 백부장이 10명 오십부장이 20명이고 그들을 지휘하는 부장이 유기룡이다. 그리고 그 위에 사령관으로 곡나진수 장군이 있다;

 일반병사들은 십부장과 함께 큰 식당에서 별도로 식사를 하는데 그 수가 1천명 정도이다.

군사의 수로 보면 백제의 작은 산성규모이다. 하지만 유기룡이 판단할 때에 번왕 여몽은 물론이고 대사인 달솔 여자신도 보통 인물이 아니다. 게다가 곡나진수 관장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니 이곳 번왕부야 말로 용담호혈(虎穴, 용이 사는 깊은 연못과 호랑이 소굴)인 셈이다.

어째서 백제조정에서는 산동번을 그토록 중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당나라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아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번왕부에 근무하게 되는 유기룡 자신의 일인 것으로 그가 판단하고 있다.

과연 어떠한 일들이 장차 대륙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그 옛날 수나라 시대에는 청주(靑州)라고 불린 당나라의 산동반도 등주(登州)에서 백제의 무장 유기룡은 나름대로 청운의 꿈을 한번 펼쳐보고자 한다… ;

그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기에 유기룡은 우선적으로 두가지 일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하나는, 본래 넓은 지역 산동번을 다스리고 있던 번왕부가 어째서 그 영역과 영향력이 크게 축소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파악해보고자 한다. 또 하나는, 황권을 엄청나게 강화하고 있는 당 태종의 행적에 대한 관심이다. 그것이 조국 백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첫번째의 관심사항은 번왕부 군대의 부장인 유기룡의 직무와 관련이 되고 있기에 파악하기가 쉽다. 한번은 기룡이 번왕부에서 정보수집을 책임지고 있는 주천웅 집사와 그 점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그때 주집사로부터 기룡이 들은 유익한 정보를 간추려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첫째로, 백제가 산동지역 뿐만 아니라 그 이남의 해안지역에 큰 식민지를 개척하게 된 시기는 중국대륙의 분열시기이다.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한나라가 완전히 망하고 수와 당이라고 하는 통일왕조가 발생하기 이전의 시대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기 220년경부터 580년 사이의 위진 남북조 시대인 것이다;

 그 시기에는 유목민 북방민족이라고 하더라도 중국대륙으로 진출하여 얼마든지 자신들의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다. 따라서 황하가 시작이 되는 지점에서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훈족, 돌궐족, 선비족의 국가들이 세워진다. 그와 같은 좋은 시기에 백제가 중국의 동해안으로 진출하여 식민지를 개척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래의 백제 번왕부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2)  둘째로, 서기 581년에 수나라가 북방의 돌궐족과 연합하여 중국천하를 통일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수나라가 본래 내부적으로는 돌궐과 선비족이 세운 왕조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천하통일을 하게 되자 그때부터 수나라가 돌궐의 세력을 견제하기 시작한다. 수나라는 장강과 황하를 연결하는 수로를 건설하여 군사와 물자의 수송을 원활하게 하면서 사력을 다하여 돌궐 족속을 북방으로 밀어내기에 바쁘다;

 그 일에 분주하여 수나라 시대에는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백제의 번왕부에 대해서는 별로 간섭을 하지 아니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오래 가지를 못한다. 수나라38년만에 단명하고 서기 618년에 당나라가 천하패권을 장악하고 말기 때문이다. 선비족이 한족과 함께 세운 당나라가 동 돌궐고구려와 전쟁을 계속하면서 은근히 백제의 번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 때문에 번왕부의 통치영역이 산동반도 그것도 등주(登州)지역으로 줄어들고 만다.

(3)  셋째로, 그렇지만 백제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와의 외교가 중요하다. 따라서 번왕부에 대사(大使)를 파견하여 대당(對當)외교를 전담하게 하고 있다. 지금은 백제의 왕족인 달솔 여자신이 등주의 번왕부와 장안의 대사관을 오가면서 중요한 외교문제를 처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는 역시 백제의 왕족인 번왕 여몽이 잃어버린 식민지를 되찾기 위하여 절치부심을 하고 있다. 그런데 당의 황제인 이세민이 보통 인물이 아니다. 그는 황권을 강화하면서 군사력을 계속 증강하고 있다.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는 실패하였지만 돌궐과의 전쟁에서는 승리하여 북방으로 당나라의 국경을 엄청나게 넓히고 있다;

 그러므로 강력한 황제 이세민의 치하에서는 실제적으로 번왕부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이상과 같은 주천웅 집사의 설명이 부장 유기룡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있다. 그는 번왕 여몽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자연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번왕이 있는데 어째서 사비성에서 대사 여자신을 파견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번왕부가 단 1천명의 군사를 양성하여 그 옛날의 영화를 되찾는다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 말도 되지 아니하는 소리)이다. 따라서 유기룡은 일단 당나라 조정과 황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 허점을 파고드는 것이 실효성이 있는 전략이며 대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유기룡이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므로 자연히 정보수집을 책임지고 있는 주천웅 집사와 자주 어울리게 된다. 기룡보다 나이가 20살이나 많은 주집사는 그를 조카처럼 여기고 잘 대해준다. 따라서 시간이 나면 기룡은 주집사의 가게에 나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렇게 어울려 지내다가 보니 주집사에게서 듣는 이야기가 많다. 그 가운데 가장 재미가 있는 내용이 당나라의 황제인 이세민의 이야기이다. 한번은 주집사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다; “이세민은 공과 과가 반반인 인물이야. 그의 공이라고 한다면, 통일왕조인 당의 기초를 아주 튼튼하게 마련한 것이지. 국토를 넓히고 황권을 강화한 것이야. 그런데 “.

경청하고 있는 젊은 무관 유기룡을 한번 쳐다본 다음에 주집사가 설명을 이어간다; “동시에 그것이 그의 잘못이 되고 있어요. 북방의 돌궐과의 전쟁에서는 승리하였지만 만주의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는 실패를 하였기 때문이지. 그 때문에 엄청난 국력이 소모되고 말았어. 그 결과 장안 가까이 침범하고 있는 토번(吐蕃, 티벳과 그 동쪽)의 세력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야. 게다가… “;

처음 듣는 이야기이면서 흥미로운 대목이다. 훗날 당 태종이라고 불리게 되는 이세민이 천하의 영웅인 줄 알지만 그는 서쪽의 강력한 적국인 토번에 대해서는 응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주집사의 설명이 또한 흥미롭다; “이세민은 황제가 되기 위하여 2명의 형제를 죽였고 동시에 부황 당 고조를 물러나게 한 인물이야. 그러므로 그 업보로 정신적으로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어. 그 때문에 그는 무속신앙도교를 의지하고 후궁 가운데 똑똑한 무비의 이야기를 듣고서 국사를 많이 처리하고 있어. 더구나… “;

주천웅 집사가 입맛을 한번 다시더니 계속 말한다; “사관(史官)이 기록하고 있는 사초(史草)에 대해서는 황제라고 하더라도 손을 대서는 안되는 것이 원칙이야. 그런데 이세민은 그것이 아니야. 자신에게 불리하게 기록되고 있는 사초를 수정하고 나아가서 역사마저 조작하고 있어요. 그 뿐만이 아니지요… “.

갑자기 주집사가 한숨을 쉬고서 말한다; “이세민은 황제로서의 권위를 높이겠다고 그 옛날 진시황처럼 생전에 자신의 무덤을 거대하게 조성하고 있어요. 본래 중국에서는 황제의 무덤도 평토장(平土葬, 평지로 만든 무덤)으로 하는데 이세민은 그것이 아니야… “.

잠시 숨을 돌리고 주집사가 마침내 혀를 차면서 자신의 설명을 마무리한다; “마치 큰 산처럼 고분을 만들고 그 속에 넓은 공간을 조성하고 있어요. 일설로는, 자신이 아끼던 애마까지 조각하여 부조물로 벌써 그 속에 설치하고 있다고 해요. 그러니 정신이 없는 늙은이이지, 쯧쯧… “;

주천웅 집사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몇 달이 지나지 아니하여 서기 6497월이 되자 당나라에서 국상이 난다. 황제 이세민이 별세하고 그 시호가 태종(太宗)으로 정해진다. 그것을 보고서 유기룡은 앞으로 당나라의 대외정책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살피게 된다.

한편, 백제의 왕도인 사비성에서 군부의 실세 중 한사람인 계백장군의 부관으로 일하고 있는 좌백은 세월이 갈수록 의자왕의 행태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젊은 군관인 좌백 뿐만 아니라 군부의 기둥인 가형 계백장군도 때로는 걱정에 잠기고 있다.

지난 641년에 중년의 나이 46세에 무왕의 뒤를 이어 백제의 국왕으로 즉위한 의자왕이다. 그는 태자시절 10년 동안 전방에서 신라와 싸워 전공을 많이 세운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왕이 되자 마자 7-8년 동안 신라와의 전쟁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 통치한지 10년이 되자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크게 보아 세가지이다; 첫째, 신하를 믿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달거나 올바른 직언을 하는 신하를 자꾸만 멀리하고 있다. 요컨대, 국왕의 독선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장성한 왕자들을 자꾸만 대신(大臣)의 자리에 세우고 있다. 능력을 보고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신분에 의한 안배이다. 그것을 보고서 충신들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좌백이 보기에 세번째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그것은 의자왕이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방의 귀족들을 억누르고 있다. 특히 자신의 아들을 담로(擔魯)장관으로 삼아 자꾸만 지방으로 내려 보내고 있다. 그 때문에 담로의 장관 자리를 빼앗긴 지방의 호족들이 사비성의 국왕을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와 같은 일을 보다가 장군 계백이 사비성을 떠나고자 한다. 그는 자신을 전방의 성주로 보내어 달라고 군부에 요청한다. 상좌평 성충과 좌평 윤충이 계백장군의 청을 들어준다. 따라서 좌백은 가형 계백장군을 따라 기노강성으로 이동을 하고 있다;

과연 의자왕의 백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번으로 떠난 책귀무영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