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1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1. 16. 22:51

7세기의 2211(손진길 소설)

 

3. 새로운 임지에서의 2호와 2

 

백제 의자왕 9년인 서기 649년 정월에 사비성 서촌에 있는 큰 저택 좌평 책윤의 집에서 아들 책귀무영, 유기룡, 좌백 등 젊은 4친구가 오래간만에 모이고 있다. 그들은 5년전 여름에 무과시험에 나란히 합격하여 동부전선의 여러 백제성에서 근무하였다. 지금은 다음 보직을 받기 위하여 잠시 사비성 군부에서 대기발령을 하고 있다;

그들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모두들 연말연시를 사비성에 있는 각자의 집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은 책귀가 친구들을 모두 자기집에 초대하였다. 새해가 되었으니 함께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자고 하는 것이다.

그날 좌장이 되고 있는 책귀가 먼저 말을 꺼낸다;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우리 2호와 24사람이 전부 한자리에 모인 것이 이거 얼마 만이냐? 그것도 우리들의 고향인 이곳 사비성에서 말이야!... “.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는데 좌백이 한마디를 한다; “나는 가형 계백장군을 모시느라고 다른 성에서 근무했지만 너희들 3사람은 모두 의직성주를 모시면서 같이 지내지 않았니?... “. 그 말을 듣자 유기룡이 대답한다; “나중에 1년 정도 같이 지냈지. 그 전에야 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근무한거야!... ”;

무영도 한마디를 한다; “그렇지. 어쨌든 그동안 서로 동부전선에서 신라군과 싸우느라고 바빴어. 이제서야 큰 전투가 없이 나름대로 국경선이 고착이 되고 있어. 그리고 우리들도 전방근무 4년이 지났기에 이제는 사비성에 들어오게 된 것이고… “;

그 말을 받아 좌백이 첨언한다; “사실 우리들은 새로 보직을 받기 위하여 사비성에 모여 있는 것이지. 그러니 다시 다른 임지로 떠나가게 될거야. 군부에서 곧 인사발령을 할 것이거든... “.

그 말을 듣자 좌장 격인 책귀가 말한다; “그래, 다들 어디에 근무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야?... “. 참고로, 2호와 2룡은 동갑내기이다. 그렇지만 생일이 책귀, 무영, 유기룡, 좌백의 순서이므로 자연히 책귀가 좌장이 되고 있다.

게다가 책귀는 무과 뿐만 아니라 문과까지 합격한 인재이기에 그의 의견을 동무들이 잘 따르고 있다. 그동안 동부전선에서 근무할 때에 책귀가 재사의 직을 겸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책략을 친구들이 믿고서 따른 결과 그들이 전공을 많이 세우기도 했다.

책귀의 질문에 무영이 제일 먼저 대답한다; “나는 책귀 너와 함께 일해보니까 재미가 있더라. 따라서 나는 앞으로도 책귀 너와 함께 같이 근무를 하고 싶어!... “. 그 말을 듣자 좌백이 말한다; “나는 가형인 계백장군이 계속 참모를 맡아 달라고 말씀하고 계셔. 그러니 앞으로도 그 밑에서 부관으로 일하게 될 거야!... “;

마지막으로 유기룡이 말한다; “나는 외숙이 큰 상단에서 호위대장을 맡고 있는데 요즘은 대륙의 산동반도를 자주 왕래하고 있어. 따라서 나에게 그곳 산동번(山東藩)에서 근무하면 좋겠다고 말씀하고 계셔. 그러니 차제에 나도 산동번에 파견을 나가서 그곳에서 백제의 무사로 한번 일해보고 싶어!... “;

그 말을 듣자 책귀가 나름대로 마무리를 한다; “이거 우리가 소원한대로 인사발령이 나게 되면 3군데로 분산되어 근무하게 되겠네. 기룡은 산동반도로 가게 되고, 좌백은 계백장군과 함께 사비성 군부에 남게 되고, 그리고 나와 무영이는 우리가 희망한대로 왜번(倭藩)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겠군. 앞으로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겠어!... “.

그러한 대화를 정초에 나누었는데 사비성 군부에서 2월에 그대로 인사발령이 난다. 그에 따라 3월에 책귀무영은 왜번으로 떠나가고, 유기룡은 산동반도로 가고, 좌백만이 사비성에 남아 군부에서 일하게 된다.

한편 유기룡은 산동번으로 떠나기 전에 외숙 복신(福信)으로부터 그곳 정세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듣게 된다. 그 내용을 간추려보면 대충 다음과 같다;

(1)  첫째로, 중국대륙의 역사를 이해하자면 무엇보다 고조선과 한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중국 대륙의 남쪽에는 장강인 양자강이 있고 북쪽에는 황하가 있는데 그곳의 원주민이 다르기 때문이다. 본래 남쪽 장강에는 한족이 살고 북쪽 황하에는 유목민인 고조선의 여러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유목민들은 크게 보아 8갈래가 있는데 그 가운데 그 옛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족속들의 이름이 흉노, 돌궐, 선비족이다. 따라서 그들을 일컬어 알기 쉽게 흉노가 이고 돌궐이 이며 선비가 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밖에 세력이 약한 족속으로는 몽골, 거란, 부여, 말갈, 여진 등이 있다. 그러므로 대륙의 북방 유목민들의 연맹을 고조선(古朝鮮)이라고 하면 그들 모두를 포함하여 8부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2)  둘째로, 북방의 유목민의 연맹체인 고조선에는 연맹왕인 천황(天皇, 천손들의 황제)이 있고 남방의 농업민족 한족에게는 황제(皇帝, 신화적인 3황과 5제를 합한 개념)가 있다. 그들이 중국대륙의 북과 남을 차지하고서 평화롭게 지내오다가 그만 분쟁이 생기고 끝내는 전쟁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장강에서 한족(漢族)이 논농사에 성공하여 인구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숫자가 많아진 한족은 더 넓은 땅을 찾아 북상하게 된다. 황하유역에서도 논농사를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북방민족인 고조선의 여러 유목민들이 치우천황(蚩尤天皇)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그들의 북진을 막는다. 하지만 남방의 한족 황제와 북방의 유목민 천황과의 전쟁은 한족 황제의 승리로 끝나고 만다. 그에 따라 고조선의 천황일가는 패퇴하여 일단 만주로 한반도로 들어왔지만 끝내 역사 가운데 사라지고 만다;

(3)  셋째로, 만주에서는 고조선이 사라지자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부여족(夫餘族)이 주도권을 잡는다;

그들이 남하하면서 가장 먼저 만주와 한반도 북방에 고구려(高句麗)를 세운다. 훗날 고구려는 부여족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을 북()부여의 적통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부여족이 계속 남하하면서 3가지의 남부여를 세우고 있다. 그것이 중국대륙의 동해안에 개척한 대륙부여, 한반도 남서부에 건설한 반도부여, 그리고 바다건너 왜에 세운 열도부여이다. 그들 남부여 3국은 백제’(百濟) 또는 일본’(日本)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힘을 합치고 있다. 그 이유는 부여의 정통성을 혼자서 내세우고 있는 북부여 곧 고구려와 역사적으로 경쟁과 갈등관계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4)  넷째로, 본래 반도의 남서부에 자리를 잡은 반도부여는 그 인구수가 적어 십제’(十濟)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대륙부여와 열도부여 사이에서 문화와 문물의 전달 중개자 역할을 하면서 점점 번성하여 명실상부 남부여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전부를 아우르는 백제’(百濟)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불리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해 뜨는 극동지역 부여족의 본국이라는 의미를 담아 일본’(日本)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그 의미는 한마디로, 백제가 일본이고 그 아래에 산동번(山東藩)왜번(倭藩)이 소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제의 대왕이 일본의 천황이며 그가 바로 사라진 고조선의 영광을 재현하는 치우천황이라는 말이다.

(5)  다섯째로, 반도부여인 백제가 남부여의 중심적 역할을 맡게 되는 이유는 중국대륙의 동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대륙부여가 자꾸만 위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통일왕조의 시대와 분열왕국의 시대가 번갈아 찾아오고 있다. 그 가운데 통일왕조는 지금까지 북방에서 나타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흉노가 세운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다. 그 다음에는 돌궐족이 세운 수나라가 나타나고 이어서 선비족이 세운 당나라가 등장한 것이다. 특히 서기 618년에 천하를 통일한 당나라가 지금의 중국이다;

 그들은 내부적으로 선비족 8부족이 연합하여 천하를 재통일하였는데 그때 대륙부여가 사분오열이 되고 만다.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4성 곧 공씨, 이씨, 서씨, 여씨가 선비족의 맹주인 이연이세민 부자와 전쟁을 했는데 이씨 집안이 패망하고 서씨 집안이 당나라에 항복하고 만다. 그렇게 되자 남은 공씨와 여씨 집안은 겨우 지방의 호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주 상단을 호위하면서 산동번에 왕래하고 있는 복신이 조카 유기룡에게 최근의 정세를 말한다; “당나라에 항복한 서씨 집안의 영웅이 바로 서세적(徐世)이다. 그는 당고조인 이연()으로부터 황성을 하사 받아 이세적으로 이름이 바뀌고 있다. 그렇지만 이연의 아들 이세민(李世)이 당태종이 되자 자를 사용할 수가 없어서 그 이름이 종래 이적’()으로 변경이 된다… “;

유기룡이 외숙 복신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것을 보고서 복신이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이적은 당태종과 함께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하여 원정에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금도 당고종의 신임이 두텁다. 그리고… “.

복신이 강조하고 있는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다; “한편, 백제의 왕족이 산동번에서는 여씨(餘氏)라는 성을 가지고 번왕(藩王)의 직무를 은밀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룡이 네가 산동번에 가게 되면 일개 호족이 되어 있는 번왕 여몽(餘夢)을 도와서 그 옛날의 명성을 되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서 유기룡이 외숙 복신에게 한가지 질문을 한다; “외숙, 그렇다면 산동성의 공씨 집안에서 유교를 집대성한 공자(孔子)가 나타난 것이군요. 그 옛날 노나라 땅에서 말입니다. 그것이 맞지요?... “;

복신이 대답한다; “그렇지, ‘경천애민’(敬天愛民)사상을 중심으로 정치윤리를 설명한 공자의 주장이 바로 우리 조상 단군(檀君)임금의 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이지. 그 자손들이 산동지역에 많이 살고 있어. 그리고… “;

잠시 숨을 쉬고서 복신이 이어 설명한다; “그 지역에는 옛날 고조선의 후손들과 부여족의 후손들이 뒤섞이어 살고 있어. 그들은 한족과는 다른 얼굴과 몸집을 지니고 있기에 외형적으로도 다소 차이가 나고 있지. 예를 들면, 이적서세적도 그 모습이 한족과는 상당히 다르거든, 하하하… “.

유기룡이 배를 타고 산동지역으로 건너가서 번왕 여몽을 만나보니 외숙 복신의 말과 같이 그의 모습이 한족과는 상당히 다르다. 역시 백제사람은 한족과는 겉 모습부터 다른 것이다.

과연 기룡은 산동번에서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책귀무영은 무사히 왜번으로 가게 된 것일까? 끝으로, 사비성에 남아 있는 좌백은 백제의 조정과 군부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