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7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4. 2. 11:24

7세기의 2273(손진길 소설)

 

유기룡 장군이 김관수 대장군과 어떻게 하면 부여풍을 잡아서 죽일 수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상의한다. 김관수가 깊이 생각을 하다가 말한다; “유장군, 방법은 하나뿐인 것 같아요. 그대가 신라의 사신단과 함께 장안으로 들어가세요!... “;

유기룡이 의아하여 고개를 갸웃하자 김관수가 설명한다; “평양성을 함락하였으므로 우리 신라에서는 사신단을 황제에게 보낼 것이요. 그러니 유장군은 장안에서 은밀하게 부여풍을 색출하여 죽이도록 하세요. 그리고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아니하면 우리 신라가 훗날 당군을 몰아낼 때에 토번제국을 움직여서 장안으로 들어가세요. 그리고 부여풍을 잡아서 죽이도록 하세요!... “.

그 말을 듣자 유기룡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관수에게 절을 하면서 말한다; “대장군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국가의 큰 기밀을 저에게 알려주시면서 원한을 갚을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여 주시니 제가 큰 절을 올립니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입니다!... “.

한편, 군상으로 변장하고 있는 귀실집사도 선친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부여풍을 추적하여 당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는 백부장 양일우에게 자신의 결심을 밝히면서 그만 부하들을 데리고 귀왕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그때 전혀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귀왕 전하께서 제게 은밀하게 지시하신 사항이 있습니다. 이번에 장군님을 모시고 변장하여 고구려에 들어가게 되면 완전히 원수를 갚을 때까지 장군님을 보필하라고 명령하셨지요;

그러므로 저도 부하들과 함께 장군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차제에 당나라 구경도 하고 싶고요, 하하하“.

그 말을 듣자 귀실집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을 향하여 3배를 한다. 그것은 귀왕 전하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양부장의 두 손을 잡고 말한다; “양부장, 정말 고마워요. 우리 함께 당나라를 구경하면서 장사를 하여 돈도 벌고 또한 원수도 갚도록 하지요. 나는 양부장이 마음에 듭니다, 하하하… “.

양일우 역시 크게 웃고 있다. 그렇게 하여 귀실집사유기룡이 모두 당나라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평양성을 떠나기 전에 당군 사령관 이적이 평양성에서 행하고 있는 세가지 엄청난 만행을 보게 된다;

첫째, 그는 고구려의 왕과 귀족은 물론 장정을 20만명이나 포로로 삼아 당나라로 끌고 간다. 둘째, 평양성내의 모든 재물을 약탈하고 서적을 거두어 전부 소각한다;

 셋째, 평양성을 완전히 불태워서 황폐하게 만들고 만다.

한마디로, 이적은 고구려의 흔적을 역사 가운데 확실하게 지워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그 옛날 당 태종과 함께 고구려를 쳤으나 실패한 분풀이를 차제에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유기룡이 통탄한다; “나라가 망하니 왕조의 역사와 흔적마저 사라지고 있구나! 이 땅의 백성들은 훗날 당나라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그런데 당의 원정군 사령관 이적이 고구려의 역사를 강제로 지워버리고 있다고 하여 고구려의 백성들이 그들의 뿌리를 잊어버리고 순순히 당나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평양성의 함락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무신정권의 실권자 연씨 가문이 몰락하고 그들이 세운 국왕 보장이 당나라에 항복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국에 산재한 고구려의 성에서 많은 백성들이 외세인 당나라 군대와 계속 싸우기를 원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꾀가 많은 노장 이적3가지 조치를 재빨리 시행하고 있다;

(1)  첫째, 고구려의 강토를 다스리는 당나라 군정(軍政)의 간판을 불타버린 평양성의 외곽에 그해 10월초에 벌써 내걸고 있다. 그것이 이름하여 안동도호부이다. 이적은 그 수장으로 휘하의 대장군 설인귀를 임명한다;

(2)  둘째, 이적은 안동도호인 설인귀에게 2만의 군사를 주고서 전국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저항운동을 진압하라고 지시한다. 그것은 현실을 무시하고 있는 명령이다. 10만의 대군이 있다고 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부흥운동을 무슨 재주로 설인귀2만의 군사로 진압할 수가 있을 것인가?...

(3)  셋째, 그와 같이 대장군 설인귀에게 책임을 넘겨버리고 이적은 수많은 포로와 전리품을 챙겨서 10월중순에 유유히 당나라로 주력군을 거느리고 개선하고 만다;

그 결과, 당의 조정에서는 이적 사령관이 고구려를 멸하고 국왕을 사로잡아 왔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한다. 따라서 당대의 설인귀소정방보다 이적이 더욱 뛰어난 한수 위의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컨대, 닳고 닳은 늙은 장군이 바로 이적이지만 그는 처세술이 워낙 뛰어나서 당의 조정에서는 역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한편, 고구려의 국왕이었던 보장과 실세가문의 연남산 그리고 평양성을 넘겨준 승려 신성의 일당은 당의 수도 장안에 도착하자 환대를 받는다. 당에서 그들보다 더 큰 영화를 누리고 있는 자는 만주에 있는 고구려의 여러 성을 당군이 쉽게 점령할 수 있도록 크게 도움을 준 연남생 부자이다.

그것을 보고서 한때 백제의 풍장왕이었던 부여풍보장왕연남산에게 붙어서 일신의 안위를 도모하고자 한다. 그러나 당의 조정에서는 백제의 태자였던 부여융을 우대하고 있으므로 5왕자에 불과한 부여풍의 존재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인지하자 부여풍은 부지런히 보장왕과 연남산은 물론 당조정의 대신들을 찾아다닌다. 그것은 장안에서 인맥을 동원하고 새로운 줄을 잡아서 자신의 입지를 한번 다져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여풍이 미처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귀실복신의 복수를 하겠다고 그의 아들 귀실집사와 그 조카인 유기룡이 벌써 장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유기룡은 그 옛날 산동의 번왕부에서 정보수집과 척후의 일을 담당한 적이 있다. 따라서 그는 사람을 찾는 일에도 능숙하다. 그가 장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부여풍의 존재를 어렵지 아니하게 발견하고서 그를 뒤를 추적하고 있다.

그런데 하루는 부여풍의 뒤를 쫓다가 유기룡이 다른 일단의 무리가 자신처럼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는 골목에서 은신하다가 그 무리 가운데 한사람을 잡아챈다. 그리고 정체를 밝힌다. 그 자가 귀실집사를 돕고 있는 백부장 양일우이다;

 

그를 통하여 유기룡이 외사촌인 귀실집사를 만나게 된다. 종방 간에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모른다. 더구나 두사람은 모두 귀실복신의 복수를 하겠다고 장안에 들어와서 부여풍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그들은 한패가 되어 은밀하게 부여풍의 뒤를 조직적으로 추적한다;

 마침내 하나의 사실을 발견한다. 부여풍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보장왕이 살고 있는 집까지 5일에 한번씩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오일장을 가는 것과 같다. 다만 하나의 차이는 아침시간이 아니라 저녁시간에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동선(動線)을 파악하게 되자 유기룡귀실집사는 가장 으슥한 골목을 부여풍이 언제 지나가는지 그 시간을 점검한다. 그리고 미리 인근에 은신하여 그를 노린다. 그것이 적중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에 그들은 기어코 부여풍을 장안의 뒷골목에서 암살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유기룡은 강도로 위장하기 위하여 부여풍의 품을 뒤져서 값이 나가는 물건을 모조리 꺼내어 자신이 취한다. 그 결과 한때 백제의 신왕 풍장왕으로 불린 부여풍은 허무하게도 장안에서 강도를 만나 죽은 것으로 사건처리가 종결되고 만다.

그와 같이 살인사건이 완전하게 매듭되는 것까지 확인한 다음에 유기룡은 아무 미련이 없이 바다 건너 서라벌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는 대장군 김관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하여 신라의 군부에서 성실하게 계속 근무한다.

또한 귀실집사는 백부장 양일우와 함께 특수부대원을 데리고 바다건너 멀리 왜의 땅 귀왕국으로 돌아간다. 그는 귀왕 책귀에게 그동안의 활동내용을 상세하게 보고한다. 그리고 귀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귀실집사는 귀왕국의 대장군으로서 충성을 다한다;

  

한편, 고구려의 땅에서는 부흥운동이 한창이다. 이적이 워낙 적은 군사를 안동도호 설인귀에게 붙여주었기에 당나라 군대의 힘이 미치지 아니하고 있는 여러 지역에서 고구려부흥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것이다. 그 중심에서 검모잠 장군과 고연무 장군이 크게 활약하고 있다;

그들은 은밀하게 신라군의 도움을 받으면서 끈질기게 3년간이나 당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서기 670년에 신라군이 전면에 나서서 당군과 전투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3가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첫째, 나당전쟁의 발생이 좌룡(左龍)으로 불리고 있는 신라의 장군 유기룡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 ;

(2)  둘째, 나당전쟁을 지켜보면서 왜의 땅 서부의 귀왕국에서는 우룡(右龍)으로 불리고 있는 귀왕이 어떠한 행보를 보이게 되는 것일까?

(3)  셋째, 왜의 동부의 무왕국에서는 우호(右虎)로 불리고 있는 무왕 무영좌호(左虎)로 불리고 있는 전방사령관 좌백이 과연 어떠한 입장을 보이게 되는 것일까?

그들의 역사인식과 활동방향에 따라 장차 한반도에서 한민족이 어떻게 하나의 민족국가로 살아가게 되는지 그리고 왜의 땅에서는 어떠한 독자적인 국가가 탄생하게 되는지가 결정이 될 것이다. 요컨대, 서기 7세기에 발생하고 있는 극동지역의 새로운 역사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가장 먼저 나당전쟁의 한가운데서 활약하게 되는 좌룡 유기룡 장군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가 정보수집하고 있는 나당전쟁의 경과는 과연 어떠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