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7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4. 7. 07:42

7세기의 2275(손진길 소설)

 

서기 673년에 들어서자 신라의 군부에서 전략을 책임지고 있는 김관수 대장군이 자신을 실무적으로 보좌하고 있는 백제출신 장군 유기룡을 집무실로 부르고 있다. 김관수는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유기룡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공식적으로 한가지를 지시하고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아직도 우리 신라군이 고구려의 옛 땅에서 당군과 말갈전사들에게 밀리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전세를 역전하고 우리 신라군이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보고하세요”. 유기룡이 작성하여 김관수 대장군에게 보고하고 있는 책략이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첫째로, 지난 6689월에 고구려 평양성을 점령한 당군의 사령관 이적이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개선한 이듬해 669년말에 76세로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당의 조정에서는 그때부터 이적 상장군에 필적할 수 있는 유능한 사령관을 계속 찾고 있는데 그 대상이 설인귀유인궤이다;

 그런데 안동도호부를 책임지고 있는 설인귀를 다시 토번과의 전투에 참여시키지는 아니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지난 670년 대비천 전투에서 토번의 맹장인 가르친링에게 밀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동을 지키고 있는 유인궤를 장차 서부전선으로 보낼 것이다. 그에 따라 우리 신라는 설인귀를 잘 상대하면 된다. 그 일을 위해서는 두가지 전략이 구체적으로 필요하다;

1)   첫째, 신라군을 보강해야 한다. 더 많은 고구려의 유민과 백제의 유민을 군사 훈련시켜서 신라군과 합세하여 당군을 무찔러야 한다. 그 일을 위해서는 두가지 방안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 하나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장들을 적극적으로 신라군의 장성으로 영입한다. 또 하나는, 백제와 고구려의 장정들을 더 많이 모군하기 위하여 금마저의 고구려왕 안승과 사비성의 소부리주 군주가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한다;

2)   둘째, 안동도호 설인귀에 대한 정탐을 강화한다. 당의 조정에서는 지난 671년부터 안동도호인 설인귀에게 삼한의 땅을 모두 정복하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673년 현재 백제의 고토의 회복에는 완전히 실패하고 다만 고구려의 고토에서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따라서 안동도호 설인귀가 다시 한번 수군을 이용하여 백제의 땅으로 들어오고자 할 것이며 육군이 남진을 계속하도록 전략을 수립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전략을 조기에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는 많은 첩자()설인귀의 주변에 심어 두어야 한다.

(2)  둘째로, 우리 신라가 당군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서부전선에서 당군을 상대하고 있는 토번에게 당의 기밀을 넘겨주어야 한다. 그 일을 위하여 당의 장안에서 첩보활동을 할 수 있는 유능한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 차제에 백제출신으로서 그 일에 적합한 3인을 추천하고자 한다. 그 옛날 백제의 왕궁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무송(無宋) 장군과 무오(無吾) 장군 그리고 과거 산동 번왕부의 정보 책임자였던 주천웅이 그들이다. 그들이 당 조정의 일급비밀을 파악하여 토번의 사령관 가르친링에게 넘겨주면 그가 당군을 보다 쉽게 격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좌룡 유기룡 장군이 기획한 안을 보고 받은 대장군 김관수는 크게 만족을 표시한다. 따라서 그가 적극적으로 그 기획안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군부의 지도부와 서라벌 조정의 승인을 받아낸다. 그에 따라 무송무오 부자는 물론 주천웅까지 신라의 첩보부대원이 되어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으로 급파가 된다.

그리고 금마저의 보덕국에서는 고구려왕 안승이 신라로 들어온 고구려의 유민과 유장을 모아 신라의 군부에 넘겨주기에 바쁘다. 동일한 업무를 사비성에 있는 소부리주의 군주가 실행하고 있다. 따라서 674년말까지 신라군사의 수가 크게 증가한다. 그 수가 자그마치 30만 대군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던 안동도호 설인귀와 대장군 이근행675년에 총공세에 나섰다가 큰 낭패를 당하고 만다.

먼저 설인귀는 대담하게도 신라군이 지키고 있는 땅으로 상륙작전을 실시한다. 그는 수군을 동원하여 예성강 입구로 들어와서 송악에 가까운 천성(泉城)을 공격한 것이다. 안동도후 설인귀가 그와 같이 대담한 상륙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에게 신라출신의 유능한 참모가 있기 때문인데 그 이름이 풍훈(風訓)이다.

설인귀가 지휘하고 있는 군대의 길잡이가 되고 있는 풍훈의 이력이 특이하다. 그는 본래 신라의 장군인 진주(金眞珠)의 아들인데 그가 당나라에 유학을 하고 있는 동안에 부친 김진주 장군이 백제와의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그만 군령을 어긴 죄로 참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에 따라 풍훈은 선친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안동도호인 설인귀를 찾아가서 그의 참모가 되어 신라를 공격하는 일에 앞장을 서고 있다. 친당파(親唐派)인 그는 신라의 지리와 공격로를 파악하여 설인귀에게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인 풍훈의 도움을 받은 설인귀6759월에 예성강을 통하여 신라의 땅에 상륙하여 천성()을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천성을 지키고 있는 신라군의 수가 엄청 많다. 게다가 일시에 성문을 열고 나와서 당군을 격파하고 있는 기마병의 수가 굉장하다.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설인귀가 미처 모르고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좌룡 유기룡의 책략에 따라 서라벌 군부에서는 안동도호부에 첩자를 많이 심고 군사작전을 사전에 탐지한 것이다. 특히 선친의 복수를 하겠다고 떠벌리면서 자신의 공을 자랑하고 있는 풍훈으로부터 은연중에 중요한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정보를 분석한 장군 유기룡이 예성강을 탐사하고 천성에 많은 군대를 배치한 것이다. 그리고 수군을 이용하여 설인귀의 당군이 상륙하는 것을 살피고 있다가 그들이 멋모르고 천성을 공격하는 동안에 아예 신라군이 멀리서 그들의 퇴로를 끊어버리고 만다. 그것을 모르고 설인귀가 깊숙이 들어와서 천성을 총공격하다가 그만 낭패를 당하고 있다.

그는 공성작전에서 완전히 실패한다. 공격군보다 더 많은 신라군이 지키고 있으니 천성을 얻을 수가 없다. 더구나 기병대가 성문을 열고 나와서 공격을 가하니 설인귀의 당군이 후퇴하여 예성강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벌써 신라의 복병이 지키고 있다.

설인귀는 대부분의 군사를 잃어버리고 겨우 배를 타고서 안동도호부로 되돌아가고 만다. 그는 675년 그해의 패전에 가슴이 엄청 아프다. 더구나 꼭 보복을 하는 것이 설인귀의 성품이다. 따라서 그는 이듬해에 다시 총공격을 가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사전준비를 하고 있다.

한편 설인귀와 달리 당의 대장군 이근행은 여전히 5만의 당군과 5만의 말갈전사를 지휘하여 육로로 계속 남진하고 있다. 그런데 신라군과 고구려 부흥군의 저항이 만만하지가 아니하다. 황해도에서 그는 연전 연승하고 있지만 사상자가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그 결과 6759월말에는 경기도 연천에 있는 매소성(買肖城)을 차지하고서는 아예 그 성에서 수비만 하고 있다. 이근행이 지휘하고 있는 군사의 수가 이제는 4만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원병력이 오지 아니하면 더 이상의 남진이 어렵다.

그러한 시점에 갑자기 20만명이나 되는 신라군이 공격을 해오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이근행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신라가 그 많은 군사를 어디에 숨겨두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674년까지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장정을 대규모로 모집하여 군사훈련을 시킨 일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근행은 매소성 전투에서 너무 많은 병력손실을 입고 있다;

 도저히 성을 지킬 수가 없게 되자 그는 소수의 병력과 함께 은밀하게 한밤중에 성문을 빠져나가 북쪽으로 도망을 친다. 그로 말미암아 신라군이 매소성을 탈환한다. 그리고 이근행의 부대가 도망을 치기 바빠서 남기고 간 군마 3 380마리와 3만여명 분의 무기를 고스란히 노획하게 된다;

 

그런데 신라군이 매소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황해도와 그 이북에서는 당의 대장군 고간이 그리고 요동에서는 유인궤가 지휘하고 있는 10만명의 대군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이듬해까지 18차례나 전투가 계속되지만 대동강과 원산만을 있는 선에서 소강상태에 들어가고 만다.

묘하게도 그 선이 일찍이 당과 신라가 합의한 영토의 분할선이다. 그런데 집념이 강한 안동도호 설인귀는 도저히 그 선만 지키는 것으로는 불만이다. 따라서 그는 이듬해 67611월에 마지막 공격을 시도한다.

설인귀는 그가 가진 모든 전력을 함선에 싣고서 옛날 백제의 수도권인 백강 입구로 들어선다. 그런데 벌써 신라의 함대가 기벌포 앞바다에서 설인귀의 함대를 기다리고 있다. 설인귀는 도저히 그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 사실은 신라의 첩보전이 워낙 대단하기에 그의 비밀작전이 이미 탄로가 난 것이다.

당의 함대를 격파할 계획을 완전히 세우고 있는 신라의 함대와 맞상대를 하고 있기에 설인귀는 완벽하게 패배하고 만다. 무엇보다 양쪽 언덕에서 수많은 신라의 투석기가 가동이 되고 있다. 신라의 함대가 당의 함대의 퇴로를 막고 있는 가운데 언덕에서 큰 돌이 당의 함선으로 계속 날아들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기름과 불화살까지 날아든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다시 하구로 빠져나가는데 이번에는 멀리 포위하고 있던 신라의 함선이 다가온다. 그 결과 설인귀의 함대는 거의 파괴가 되고 그저 대장선을 포함한 몇 척만이 북쪽으로 도망을 치고 만다;

실정이 그러함에도 당의 조정과 군부에서는 동부전선에 전혀 군사를 지원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서부전선에서 토번의 군대에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가르친링의 군대를 물리치지 못하면 서쪽에 치우쳐 있는 당의 수도 장안이 그 옛날처럼 위험할 것만 같다;

따라서 당의 조정에서는 동부전선에서 요동 땅을 지키고 있던 노련한 유인궤를 빼내어 677년에 서부전선으로 보낸다. 그가 동부에서 요동 땅을 굳건하게 지키듯이 그렇게 서부 도하도(洮河道)에서 당의 성들을 굳건하게 지켜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당시 수성작전에 있어서는 유인궤가 당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군인 셈이다.

그와 같은 인사조치를 하기 전에 676년말에 당의 조정에서는 급히 신라와의 화해에 들어간다. 애초에 합의한대로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땅을 신라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674년에 신라의 국왕 김법민 대신에 그의 아우인 김인문을 신라의 신왕으로 삼고자 한 당 황제 이치(李治)의 칙령을 철회한다는 통지까지 해오고 있다.

게다가 신라의 강력한 요구까지 어쩔 수가 없어서 수락하고 있다. 그것은 676년 말까지 안동도호부를 더 멀리 요동성으로 옮기고, 웅진도독부를 만주 신성의 인근에 있는 개평지역의 건안성(建安城)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당이 그와 같이 조치함으로써 명실공히 그들은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지역을 완전히 포기하고 만다.

한편 신라의 입장에서는 일단 백제의 옛 땅과 신라에 편입한 고구려 땅의 일부를 다스리고 유민들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다. 따라서 당의 화해정책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것을 보고서 좌룡 유기룡이 향후대책에 대하여 작성한 문서를 대장군 김관수를 통하여 서라벌 조정과 군부에 올리고 있다.

 그 주요 요지가 다음과 같다; “당은 지금 토번과의 전투에 전력투구하기 위하여 부득이 소국인 신라와 화해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토번과의 전쟁이 끝나게 되면 다시 신라를 합병하기 위하여 군사행동을 개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

(1)    첫째로, 토번이 당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당군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도록 우리 신라가 은밀하게 지원하여야 한다. 그 방법은 장안의 고급정보를 파악하여 토번의 가르친링에게 계속 제공하는 것이다;

(2)    둘째로, 당이 고구려 유민에 대하여 강압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당으로 끌고 간 포로들을 노예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모아서 조직적으로 당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만드는 책략을 현지에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3)    셋째로, 요동의 고구려 유민들의 저항의식을 없애기 위하여 당의 조정은 고구려의 망명왕 보장이나 고 연개소문의 장남인 연남생을 사용하고자 할 것이다. 그에 대한 회유작전을 우리 신라도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676년 말에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에서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 그곳에서 조직적으로 첩보활동을 하고 있던 신라의 장군 무송의 존재가 그만 당의 첩보기관에 포착이 되고 만 것이다.

국가의 군사기밀이 자꾸만 토번의 전선사령관 가르친링에게 새어 나가고 있는 것을 보고서 당의 조정에서는 그 배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신라에서 밀파가 된 장군 무송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무송은 함께 활동하고 있는 아들 무오를 보호하기 위하여 체포를 당하게 되자 즉시 준비한 독약을 삼키고 만다;

그 소식을 듣고서 무오가 복수를 다짐한다. 그는 나머지 신라의 첩보망을 가동하면서 어떻게 하면 당나라를 파멸시킬 수가 있는지 그 길을 찾고 있다. 과연 무장 무오의 다짐과 활약이 장차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