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7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4. 12. 03:36

7세기의 2277(손진길 소설)

 

귀왕국의 국왕인 책귀(策貴)가 서기 6777월말에 방계왕국의 연맹왕이 되어 있는 장만성(長灣城)의 어린 성주 부여천무(扶餘天武)를 공식방문하고 자신의 왕도인 북구주성(北九州城)으로 돌아온다. 그는 공식방문기간에 사실은 미성년인 아들을 내세워 놓고서 정무를 섭정하고 있는 방계왕국의 실세인 대비 카라이찌미를 비공식적으로 만나서 큰 합의를 이끌어 내었다.

그 내용은 귀왕 책귀가 무왕 무영(無影)은 물론 번왕 부여용(扶餘勇)을 설득하여 ()에서 하나의 연맹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며 그 정상에 카라이찌미의 아들이며 연맹왕인 17세의 부여천무천황(天皇)으로 추대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합의가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배경에는 하나의 인간관계가 들어 있다;

그것은 젊은 시절 백제의 천부장 책귀가 발령을 받아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왜로 들어올 때에 그 선상에서 우연히 가야의 호족의 딸인 카라이찌미를 만나서 서로 큰 호감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책귀에게 한번 왜의 땅에 있는 자신의 가문으로 찾아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야마토의 번왕부에서 무장으로 근무하게 된 책귀는 한번도 구주섬으로 가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문무에 뛰어난 책귀 천부장이 번왕부에서 책사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그는 가눌치 사령관을 도와 야마토의 번왕부가 정복전쟁을 수행하도록 사전에 책략을 마련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책사 책귀의 놀라운 전략과 전술에 의지하여 649년과 650년에 야마토의 번왕부는 직계왕국의 5개성을 전부 점령하여 무려 6배의 성장을 이룩했다. 그 전공으로 장군인 가눌치는 진급하여 대군을 지휘하는 전방사령관이 되고 책귀와 그의 친구 무영은 장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후에도 그들은 강력한 고구려식민왕국의 성들을 공략하기에 바빴다. 책사 책귀와 인자수법에 뛰어난 장군 무영의 적극보좌를 받아 가눌치 사령관이 651년과 652년에는 고구려식민왕국의 견고한 7개성 가운데 4개성을 정복하게 된다;

 그것을 보고서 깜짝 놀란 야마토의 번왕국 조정에서는 대담하게도 사령관 가눌치와 책사인 책귀를 분리시키는 정책을 실시한다.

동부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책사 책귀를 서부전선으로 멀리 보내어 가눌치 사령관을 돕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번왕 부여용에게 절대 충성하고 있는 충직한 상장군 가눌치는 그 명령에 따르고 있지만 그때부터 책사 책귀의 전략과 전술이 없기에 그는 오랜 세월 더 이상의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신하를 의심하고 전공을 크게 세운 장군을 시기하는 번왕 부여용의 용렬한 성품은 그의 부친인 백제의 국왕 부여의자와 닮아 있다. 왜냐하면, 백제의 국왕인 부여의자가 번왕 부여용의 왕국이 수년 동안에 10배나 커지게 되자 그에 놀라서 사비성 조정에서 은퇴하는 신하 2명을 왜로 보내어 갑자기 큰 성의 성주로 삼도록 아들 부여용에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두사람이 묘하게도 책귀의 부친인 책윤 대감과 무영의 부친인 무상 대감이다. 그러므로 번왕 부여용은 울며 겨자 먹기로 책윤 대감을 큰 성 신주성(信州城)의 성주로 삼고 장차 큰 성 동북성을 정복할 때까지 임시로 무상 대감을 작은 성 삼산성(三山城)의 성주로 삼게 된다.

그와 같은 상황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책사 책귀는 독자적인 자신의 길을 모색한다. 용렬한 국왕 부여의자나 번왕 부여용을 섬기기보다는 자신이 하나의 왕국을 왜의 땅에서 건설하여 직접 귀왕이 되어 다스리고자 한 것이다. 그가 660년이 되기 전에 서쪽에 있는 신라식민왕국의 4개성을 모두 점령하여 귀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것을 뻔히 보고서도 번왕 부여용은 스스로 귀왕이 된 책귀를 징벌할 수가 없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책귀만큼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군사력이 귀왕국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660년에 본국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하자 부흥운동을 지원하느라고 번왕국에서 많은 지원군을 보내게 된다. 번왕국의 군사가 많이 축나는 것을 보고서 책귀의 친구 무영마저 좌백의 도움을 받아 동부전선에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면서 독립을 선언하고 만다;

번왕 부여용 663년에 가눌치 상장군을 원정사령관으로 삼아 백제의 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1천척의 함선에 27천명의 번왕국 대군을 보냈다가 패전하고 말았기에 665년에 발생한 무영 상장군의 이탈도 징벌하지 못하게 된다. 드디어 왜의 천하는 새로운 4국의 경쟁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서에서부터 동으로 방계왕국, 귀왕국, 번왕국, 그리고 무왕국의 순서이다. 그런데 668년에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을 당하고 이어서 676년에 나당전쟁의 결과 신라가 대동강과 원산만 이북으로 당군과 말갈군을 몰아내게 되자 귀왕 책귀가 이웃 방계왕국을 방문하여 실권자 카라이찌미와 모종의 합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평소에 지니고 있던 복안을 차제에 현실로 만든 직접적인 이유는 무왕인 절친 무영이 친형 무송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당나라를 징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달라고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을 찾자면 우선적으로 왜의 천하를 통일 또는 통합하여 강력한 대군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국인 당나라를 견제하거나 징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6777월말에 카라이찌미와의 합의를 이끌어낸 귀왕 책귀는 얼른 상세한 이야기를 글로 적어서 전령을 3천리나 떨어져 있는 무왕국의 왕도인 동북성으로 보낸다. 무왕 무영은 친구인 귀왕 책귀가 보내온 친서를 읽고서 크게 기뻐한다.

따라서 그가 다음과 같이 답신을 보내고 있다; “귀왕 책귀, 참으로 고맙다. 내 부탁으로 방계왕국을 방문하여 왜의 천하를 통합하는 방안을 마련하였으니 말이다. 나는 기꺼이 연맹왕 천황을 모시고 그 아래 하나의 왕으로 처신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내 친구 책귀 네가 천황을 도와서 대국 당을 견제하고 징계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무왕의 답신을 받아본 다음에 귀왕 책귀가 다음과 같이 중얼거린다; “이제 남은 문제는 번왕 부여용을 설득하는 것이군. 그런데 그것이 무력행사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어려울 것이야. 그렇지만 먼저 그의 내심을 알아볼 필요는 있겠군!... “.

귀왕 책귀는 자신의 심복인 대장군 귀실집사싸울을 불러서 은밀하게 상의를 한다; “무왕 무영은 왜의 천하를 천황 아래에 3개 왕국으로 만드는 것에 찬성하였어요. 그러므로 이제 남은 문제는 번왕 부여용의 의사를 묻고 그가 불응할 경우에는 찬성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절차입니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해요?... “.

나름대로 문무에 밝은 귀실집사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귀왕 전하, 먼저 전령을 보내어 전하의 친서를 번왕 부여용에게 전달하시지요. 그의 의견을 먼저 들어 보십시오. 만약 그가 반대할 경우에는 무력을 사용하시고요. 그것도 무왕의 군대와 연합하여 번왕국을 침공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 말을 듣자 귀왕 책귀가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이번에는 싸울 대장군이 발언한다; “저도 대장군 귀실집사의 의견에 찬성입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원정에 나서게 되면 소장이 번왕국의 2개성 정도는 취할 수가 있습니다!... “.

그 말에 귀왕 책귀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싸울 대장군이 2개성을 취하면 무왕국의 좌백 상장군도 2개성을 취할 것입니다. 그러면 번왕 부여용은 국토의 절반을 잃어버리게 되겠군요. 좋습니다. 그 정도로 국력이 줄어들면 그때는 순순히 천황을 섬기는 번왕국으로 처신하게 되겠지요. 그러면 그대로 시행하세요!... “.

그로부터 100일이 지나자 비로소 67712월에 북구주성에서 귀왕의 전령이 야마토의 번왕부로 출발한다. 전령으로 달려온 백부장 장욱진(張旭進)이 번왕부 조정에 귀왕의 친서를 전달한다. 그것을 새로 대좌평이 된 하상도(河上道)가 번왕 부여용에게 읽어준다. 내용을 파악한 번왕 부여용의 얼굴에 노기가 가득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번쩍 뜬 다음에 번왕 부여용이 대좌평 하상도에게 말한다; “책귀 이놈이 괘씸하게도 이번에는 방계왕국의 연맹왕을 천황으로 만들고 그를 등에 업고서 짐을 천황의 신하로 만들고자 획책하고 있군요. 대좌평의 생각으로는 이놈 책귀를 어떻게 혼을 내주면 좋을까요?... “.

아찔한 질문이다. 꾀가 많은 대좌평 하상도도 금방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우선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번왕 전하, 우선 외교적인 술사를 사용하여 정중하게 답신을 보내도록 하시지요. 완곡하게 거절의사를 밝히면 당장은 행동에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귀왕이 무언가 타협안을 제시할 것으로 봅니다!... “.

이틀이 지나자 전령인 백부장 장욱진이 번왕 부여용의 답신을 가지고 서쪽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그가 번왕국의 국경을 벗어나자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그를 기다리고 있는 대군을 만나게 된다. 귀왕 책귀가 원정군을 거느리고 귀왕국의 동부 국경에 있는 첫번째 성인 길비성(吉備城)에서 전령 장욱진 백부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귀왕은 친히 백부장 장욱진을 만난다;

 그가 전해준 번왕의 편지를 읽고나서 자상하게 장욱진에게 말한다; “장백부장 수고 많이 했어요. 무사히 답신을 가지고 돌아왔으니 한동안 군영에서 푹 쉬도록 하세요. 짐은 부여용의 답신을 읽었으니 이제는 그의 왕국을 공략할 것입니다!... ”.

한편 야마토의 번왕부에서는 대좌평 하상도가 불안한 생각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제2좌평인 기하진(奇河鎭)과 의견교환을 하고 있다; “대감, 내가 급하여 번왕에게 우선 거절하는 내용의 답신을 정중하게 귀왕에게 보내 보라고 말했지만 귀왕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예요. 왜냐하면, 귀왕 책귀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책략과 행동을 실행하는 인물이기 때문이지요. 대감의 생각으로는 귀왕이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

그 말을 들으면서 좌평 기하진이 대좌평 하상도의 얼굴을 조용히 살펴보니 수심이 가득하다. 따라서 딱한 생각이 들어서 위로의 말부터 해준다; “대좌평의 걱정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나친 걱정은 기우입니다. 만약 귀왕이 대군을 이끌고 우리의 서부전선에 있는 신호성(新戶城)으로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쉽게 당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

 기하진은 병법에도 밝기에 자신 있게 말한다; “장수들이 흔히 말하듯이, 공성작전을 실시하여 적성을 얻자면 3배의 대군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 정도의 전력을 갖추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지요. 더구나 갑자기 귀왕이 쳐들어오는 경우에는 그 군사의 수는 그렇게 많지가 못할 것입니다!... “.

그러나 귀왕의 전략은 진작에 상대방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사전에 무왕 무영과 합의하여 번왕국을 동시에 동과 서 양편에서 공격하고자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서부전선에서는 귀왕국의 길비성에서 출발한 귀왕의 원정군이 번왕부의 신호성을 공격한다. 동시에 번왕부의 동부국경에 있는 서호산성으로는 무왕의 군대가 쳐들어오고 있다;

그 옛날 신호성을 점령한 적이 있는 귀왕 책귀는 당시 그 성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자신들이 쉽게 승리를 얻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와 같은 행운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략을 해야 큰 희생이 없이 그 성을 차지할 수가 있을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

그 결과 귀왕 책귀가 사용하고 있는 전술이 상당히 특이하다. 그가 신호성주 강유일(姜唯壹)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먼저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는 번왕과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의 땅에서 전쟁을 없애기 위하여 위로는 천황을 두고 아래로는 3개의 왕국이 서로 왕래를 하며 마치 하나의 국가처럼 평화스럽게 살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

그 말은 강유일 성주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 다음에 귀왕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그와 같은 나의 제안을 번왕이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도리어 전쟁을 불사하고 있기에 부득이 나도 군사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희생을 나는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강유일 성주께서는 아무쪼록 성민들의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시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귀왕 책귀 올림!”.

생각보다 강유일 성주가 신중하다. 그는 얼른 답신을 다음과 같이 귀왕에게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사실인지 내가 확인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시기 바랍니다. 5일이면 됩니다. 그렇게 기다려 주신다면 진지하게 귀왕의 의견을 검토할 것입니다”.

그러한 답신을 보고서 귀왕이 무려 5일은 진중에서 기다리고 있다. 전혀 신호성에 대한 공격에 나서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에 강유일 성주가 귀왕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여러 방면으로 확인하고 있다. 왕도인 야마토에 살고 있는 친척과 지인에게 은밀하게 전서구를 계속 날리고 있다. 

그 결과 그는 4일만에 야마토 조정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 대좌평 하상도의 견해를 받아들여서 번왕이 천황의 신하가 되자고 하는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귀왕은 번왕을 압박하기 위하여 군사행동에 나선 것이다.

과연 신호성주 강유일은 어떠한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