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7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4. 5. 16:32

7세기의 2274(손진길 소설)

 

10. 나당전쟁과 좌룡 유기룡의 활약

 

서기 6689월 하순에 평양성을 접수한 당의 원정군 사령관 이적은 평양성내의 모든 재물을 약탈하고 주민 20만명을 포로로 삼아 당나라로 끌고 간다. 그리고 평양성을 불태워 버림으로써 모든 기록이 사라지고 고구려의 흔적이 역사가운데 지워지도록 조치하고 있다;

그렇지만 당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있지 아니한 고구려의 각 지방에서는 외세인 당나라에 저항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75세의 노장 이적은 아주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벌써 원정을 떠나올 때에 당의 조정과 합의한 그대로 평양성 외곽에 얼른 안동도후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고 자신은 주력군을 이끌고 일찍 당나라로 개선하는 것이다. 이적 사령관은 수하인 대장군 설인귀를 안동도호부의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그에게 단지 2만명의 군사만 준다.

그리고 다음달 곧 서기 66810월에 수많은 전리품과 포로를 가지고 주력군을 지휘하여 당나라로 돌아가고 만다. 물론 당나라에 투항한 고구려의 국왕 보장과 귀족들도 거기에 포함이 되어 있다. 그리고 평양성에서 얻은 20만명의 쓸 만한 포로들이 당나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자 이적 사령관만큼이나 두뇌회전이 빠른 안동도호 설인귀 대장군이 다음과 같은 3가지 자구책을 마련하여 실시한다;

(1)  첫째, 고구려의 옛 땅에 9도독부 42 100 설치한다고 선포한다. 그의 선포가 당군이 주둔하고 있지 아니한 지역에서 실효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고구려의 고토 각성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당군에 대해서는 효력이 있다. , 모든 당군은 안동도호부의 수장인 설인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근에서 발생하고 있는 고구려 유민들의 저항운동에 대해서는 각성의 주둔군이 책임지고 진압을 해야만 한다.

(2)  둘째, 설인귀는 고구려 유민들을 당나라로 이주시키는 사업을 전개한다. 그는 2년 동안 무려 2 83백가구의 고구려인을 당나라로 보낸다. 저항운동이 발생하는 경우 그곳의 주민을 우선적으로 포로로 삼아 당나라로 이주시키고 만다. 그것은 저항운동을 약화시키면서 고구려의 힘을 빼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3)  셋째, 670년에 들어서자 조직적인 고구려부흥운동이 거세게 일어난다. 특히 평양에서 가까운 재령 지역 곧 한성에 거점을 두고서 일어난 검모잠의 부흥운동이 대단하다. 그것을 보고서 설인귀는 아예 안동도호부를 멀리 북쪽 만주의 무순(撫順) 서쪽 신성(新城)으로 옮기고 당의 조정에 지원군을 급파하여 달라고 계속 매어 달린다;

그 결과 당의 지원군이 요동으로 들어온다. 6704월에 당의 장군 고간(高侃)이근행(李謹行)이 대군을 이끌고 요동 안시성을 거쳐 한반도까지 진출하고 있다. 그들이 출동한 이유가 사실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6703월에 나당전쟁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의 장수 설오유가 고구려의 유장 고연무와 함께 2만명이 넘는 병력으로 압록강을 넘어 북진하였으며 4월에는 오골성과 봉황산성에서 당군과 말갈군을 격파하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신왕으로 내세우고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검모잠에게 신라에서 군사적인 지원을 크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의 조정에서는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진압하면서 동시에 신라를 정복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와 같은 정세파악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책임자가 서라벌 군부에서는 김관수 대장군이다. 그리고 그를 실무적으로 적극 보좌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좌룡으로 불리고 있는 유기룡 장군이다.

하루는 김관수 대장군이 심각한 표정으로 유기룡 장군에게 말한다; “유장군, 이제 우리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외세인 당군을 모두 만주로 몰아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당나라에서 오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유장군의 생각을 듣고 싶군요!... “;

유기룡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3가지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당나라가 대국이라고는 하지만 삼한의 땅을 모두 집어삼킬 수가 없지요. 그 이유가 삼한의 인구가 적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거의 1천만명에 이르고 있는 백성이 한반도에 살고 있어요. 그러므로 장정을 전부 모아 군사훈련을 시키면 100만명의 대군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

김관수 대장군이 경청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유기룡 장군이 짧게 숨을 쉬고서 이어 설명한다; “100만 대군이 지키고 있는 성들을 상대하여 점령하자면 병법상 당에서는 300만명의 군대를 보내야 하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라가 백제 및 고구려의 유민과 뜻을 합하여 외세인 당군에 저항한다고 하면 승리는 우리 한민족의 것이지요. 둘째로… “.

유기룡이 잠시 숨을 돌리고 이어서 말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면전이 발생하게 되면 우리 신라의 군사피해도 엄청납니다. 따라서 전략상 외부의 조력을 받는 것이 상수이지요. 그것이 구체적으로 당제국과 서쪽에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토번제국과 제휴하는 것입니다… “;

김관수 대장군이 눈을 반짝이면서 유기룡 장군의 얼굴을 주시한다. 그것을 보고서 그가 설명을 계속한다; “우리가 밀사를 토번의 가르 가문에 보내어 당의 군사력이 동쪽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리고 차제에 서쪽에서 배후를 공격해 달라고 요청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당의 조정은 그들의 수도인 장안이 위험하므로 즉각 우리 신라와 타협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

이제 유기룡이 결론삼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장 중요한 사항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전후의 처리문제입니다. 그 무엇보다,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의 백성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공정하게 통일신라가 대하여야 합니다. 만약 망국의 백성이라고 하여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을 차별하고 괄시하게 되면 통일신라는 다시 3국으로 갈라지고 말 것입니다. 차제에 한가지 사항을 첨언하고 싶군요. 그것은… “.

김관수 대장군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아니한 문제를 이제부터 유기룡 장군이 말하고 있다; “우리 신라는 안보상 장차 당나라와 국경을 마주하지 아니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만주지역에 통일신라와 협력할 수 있는 우방을 건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그러므로 앞으로 고구려 유민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그 방안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

그 말을 듣자 김관수가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때 그의 귀에 유기룡의 경륜이 담겨 있는 정책이 나타난다; “이제 남은 문제는 바다 건너에 있는 ()의 변화입니다. 뛰어난 인물이 의 천하를 통일하여 제국을 형성하고 바다를 건너오게 되면 통일신라가 위험하지요. 그러므로 왜의 땅을 통일하는 왕조가 서게 되면 조속히 우호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견해입니다”;

그 말에 김관수가 갑자기 박수를 친다. 그리고 유기룡 장군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서 말한다; “유장군은 무예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 이제 보니 그 경륜이 탁월하군요. 어떻게 그렇게 폭넓은 사유를 하게 된 것이지요. 듣고 보니 실로 우리 통일신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성찰하고 있군요. 저의 시야가 일시에 환해지고 있습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유기룡이 함께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 대장군께서 공연히 소장을 나무위에 올리고 있군요. 어지럽습니다. 어쨌든 저의 의견이 앞으로 통일신라가 견고하게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그것이 저를 믿고 끝까지 도와준 대장군에 대한 저의 자그마한 보답입니다, 하하하… “.

김관수유기룡은 신의로 뭉친 인물이다. 그러므로 사심 없는 대화를 나누고서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외세인 당의 군사를 몰아낼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고 그것을 시행하고자 한다.

두사람이 입안한 전략은 고구려의 고토(故土, 옛 땅)에 대한 공격과 백제의 고토에 대한 공격으로 나누어진다. 그 가운데 670년부터 4년간 전투를 치룬 결과 고구려의 고토에 대한 공격에 있어서는 당군에게 밀리고 있다. 반면에 백제의 고토에 대한 공격에 있어서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 대체적인 내용이 다음과 같다;

(1)  670 3신라군 1만과 고구려 유민군 1만이 압록강 건너 당군을 선제 공격함으로써 소위 나당전쟁(羅唐戰爭)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신라군은 같은 해에 백제지역을 공격하여 당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82개성을 점령한다. 그것을 보고서 당의 조정에서는 671년에 들어서자 만주의 신성에 자리잡고 있는 안동도호 설인귀에게 함선에 정예병을 싣고 가서 백제의 성들을 되찾으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설인귀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많지가 아니하다. 더구나 당의 조정에서는 지원병을 보내주지도 아니하고 있다.

(2)  그것은 사실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670년에 신라의 장군 유기룡이 비밀리에 토번의 동부전선을 지키고 있는 절친 가르친링을 찾아가서 당의 국경도시를 침범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효하다. 당의 조정에서는 670년에 들어와서 서부전선에서 토번제국과 전투를 벌이느라고 군사적 여유가 전혀 없다. 그 때문에 설인귀에게 지원할 수 있는 군사가 없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671년에 설인귀가 나름대로 함선에 병사를 싣고서 남하하지만 신라군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맥없이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신라군은 이듬해 672년에 웅진도독 부여융(扶餘隆) 지키고 있는 웅진성과 사비성을 함락하게 된다. 그리고 신라는 사비성에 소부리주를 설치하고 백제의 고토를 전부 다스리도록 조치한다. 그것은 대단한 성공이다;

(3)  한편, 670년에 당군을 이끌고 요동을 거쳐 한반도로 남진하고 있는 원정군 사령관 고간(高侃)이근행(李謹行)의 육군은 굉장히 성공적이다. 그 이유는 대규모의 말갈군을 받아들여 신라군과 고구려부흥군을 일시에 토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신라의 장수 설오유와 고구려의 유장 고연무가 거느린 2만 대군이 요동의 오골성에서 패퇴하여 다시 압록강을 건너오고 그 뒤를 따라 당나라의 원정군이 고간이근행의 지휘로 한반도로 들어오게 된다. 이제 당군과 말갈군을 막는 책임은 한성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고구려의 유장 검모잠과 신왕 안승에게 있다. 그 뒤를 신라군이 받쳐준다고는 하지만 당장은 신라의 원군이 오지를 아니하고 있다.

(4)  그것을 보고서 검모잠은 용감하게 북진하여 고간이근행의 군대에 총공세를 펴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승은 반대한다. 그는 신라군의 지원을 받아서 신중하게 한성을 방어하자고 주장한다. 그 결과 견해가 첨예하게 갈라진 두 세력이 서로 반목하다가 마침내 비둘기파인 신왕 안승이 매파인 검모잠6707월에 살해하고 다음달 8월에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남하하여 신라에 망명하고 만다. 신라의 조정에서는 고구려의 신왕 안승이 부흥운동의 상징이 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 그를 고구려왕에 봉하고 오늘날의 호남 익산인 금마저(金馬渚)보덕국(報德國)을 건설하도록 도와준다;

(5)  당의 육군과 말갈군은 고구려부흥군을 4년간의 전투를 통하여 완전히 진압하고 만다. 6727월에 평양성을 되찾고, 다음달 8월에는 평양성의 남서쪽에 있는 한시성(韓始城)과 평양성의 북동쪽에 있는 마읍성(馬邑城)을 점령한다. 그것을 보고서 신라가 급히 지원군을 보내지만 평양성의 남쪽 황해도 서흥군에 자리잡고 있는 석문(石門)전투에서 대패하고 만다. 이듬해 673년에는 황해도 재령에 있는 큰 성 한성까지 완전히 차지함으로써 황해도 일대의 고구려부흥군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임진강을 건너 신라로 들어오고 만다. 그로 인하여 4년간에 걸친 고구려부흥운동이 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6)  참고로, 당의 조정에서는 육군이 승승장구하고 있으므로 한때 670년에는 신성에 있는 설인귀를 서부전선으로 보내어 10만명의 당군으로 급하게 토번제국의 침입군을 막도록 조치한다. 그러나 전쟁의 귀재라고 하는 설인귀 대장군도 대비천(大非川) 전투에서 토번제국의 맹장 가르친링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한다;

그는 미봉책으로 가르친링과 화해를 하고서 다시 동부전선으로 임지를 옮기고 있다. 그 이유는 신라군이 백제의 고토로 쳐들어와서 웅진도독부가 큰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671년에 설인귀가 함선에 군사를 싣고 남진하지만 신라군에게 패하여 백제의 땅을 이듬해 672년에 신라에게 완전히 내주고 만다;

이상과 같은 전투의 결과를 분석하면서 유기룡 장군이 상관인 김관수 대장군에게 건의한다; “당나라 조정에서는 더 이상의 원군을 보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대적으로 북진하여 한반도를 온전히 차지해야 합니다. 그 전략과 전술을 고안하여 올릴 것이니 검토하시고 조정의 승인을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

그 말을 듣자 김관수 대장군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총공세를 할 수 있도록 작전계획을 완성하여 주세요. 내가 검토해보고서 조정의 승인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유기룡은 어떠한 작전계획을 세울 것인가?... 그리고 신라의 군부에 들어간 백제의 장군 무송(無宋)무오(無吾) 부자는 어떠한 활약을 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