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7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3. 29. 14:24

7세기의 2270(손진길 소설)

 

서기 666113일에 청백성(靑白城)에서는 양시백(梁是伯) 성주가 수비대장인 강월주(姜越州) 대장군 그리고 고구려에서 건너온 3명의 장군 곧 가가혁(價可赫), 을치수(乙治水), 정동명(鄭東明) 등과 함께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그들의 회의분위기가 상당히 무겁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서쪽에 이웃하고 있는 무왕국(無王國)신궁산성(神宮山城)에서 무왕(無王)좌백(佐伯) 상장군과 함께 3만명의 원정군을 이끌고 청백성을 정복하고자 동진하고 있다는 척후의 급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내용을 먼저 양시백 성주가 좌중의 제장(諸將)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 말을 듣자 수비대장 강월주 대장군이 발언한다; “성주님,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청백성에는 2만명의 수비군이 철통같이 적의 내침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무왕국에서 5만명 이상의 대군이 쳐들어온다고 하면 우리 성의 수비에 큰 어려움이 있겠지만 3만명 정도의 침략에는 끄떡 없습니다!... “;

그 말에 양시백 성주가 다소 안심이 되는지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이번에는 고구려에서 건너온 노장 가가혁이 발언한다; “소장이 듣기로는 작년 9월에 무왕국을 세운 무영과 그의 친구인 좌백 상장군이 모두 걸물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

노장의 발언이므로 모두가 경청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가가혁이 천천히 말한다; “특히 좌백은 무예가 출중하여 11 대결에서 패한 바가 없으며 무영은 인자수법의 달인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므로 그들의 전략과 전술에 철저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그들의 군사가 3만명에 불과하다고 안심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

모두들 침묵한채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때 좌중에서 중년의 장군 을치수가 발언한다; “그렇습니다. 가장군님의 말씀 그대로 무영좌백이 어떠한 암수를 사용할지 모릅니다. 제가 예측하기에는 아마도 좌백이 성밖에서 일대일 대결을 하자고 외칠 것입니다. 그리고 때를 보아 무왕은 인자부대를 우리 성에 침투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그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세워 두어야 합니다!... “;

그 말을 듣자 성주 양시백이 말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대비책을 마련하여야 할까요?... “. 이번에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고구려의 유장(流將) 정동명이 발언한다; “고구려에서 저와 함께 오신 두분 선배 장군님께서 이미 발언을 하셨기에 이제는 소장인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 대비책이라고 하는 것이 저희들이 전방에서 사용한 경험을 활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

모두의 눈이 지장(智將)으로 알려진 정동명에게로 향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그가 잠시 숨을 쉬고서 천천히 말한다;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수법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들이 서문 쪽의 성벽을 공격하고 있다고 하면 은밀히 군사의 일부를 움직여서 반대쪽 곧 동문의 성벽으로 침투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그쪽에도 군사를 많이 배치해야 합니다. 둘째로 “;

좋은 대비책이다.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면서 경청한다. 그때 정장군의 두번째 대비책이 들려온다; “성밖에서 일대일 대결을 할 때에 너무 승패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괜히 끝까지 좌백과 승부를 가리겠다고 무리하게 마상대결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는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의 용장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니 그 수법에 넘어갈 필요가 없어요. 적당히 상대하다가 불리하면 곧바로 후퇴를 하는 것이 상수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일동이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정장군의 대책이 참으로 훌륭합니다, 하하하그렇게만 대처를 하면 무왕좌백은 결코 3만명의 군사로는 우리 청백성을 도모할 수가 없겠군요, 하하하… “. 그에 따라 그들은 그와 같은 방책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청백성의 서편에 도착한 무왕의 원정군이 조금 떨어진 곳에 진영을 설치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천부장을 내세워서 도발을 하고 있다. 일대일 대결을 제안하니 용기가 있으면 한번 성밖에 나와서 마상대결에 응하라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제안이 있을 것임을 진작에 짐작하고 있었던 청백성주 양시백은 고구려에서 망명한 을치수 장군을 먼저 내보낸다. 성주의 명을 받자 을치수 장군이 빙그레 웃으면서 군마를 타고서 서문을 빠져나가 들판에서 외친다; “나는 고구려의 국경을 오래 지킨 장군 을치수이다. 이곳 왜에서는 좌백 상장군의 무예가 뛰어나다고 들었다. 차제에 한번 그 실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하하하… “.

즉시 좌백 상장군이 군마에 채찍을 가하면서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상대를 멀찍이 마주 보는 자리에서 외친다; “부족한 인물을 높이 평가하여 주시니 먼저 감사합니다. 서로의 무예실력은 한번 마상대결을 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니 당장 우열을 가려보도록 하시지요. 고구려가 자랑하는 을치수 장군을 상대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랴!... “;

좌백의 군마가 미친듯이 을치수 쪽으로 달려간다. 그것을 보고 을치수 역시 군마에 채찍을 가하면서 전속력으로 마주 달려온다. 두 장군은 모두 긴 창을 휘두르고 있다. 그대로 직진하면 2마리의 군마가 정면 충돌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부딪히기 3보전에 서로가 아슬아슬하게 비껴 난다.

그 순간 두개의 창이 서로 부딪치고 있다. 힘에 밀리게 되면 상처를 입을 수가 있기에 전력을 창에 싣고서 마주 부딪친 것이다. 거력(巨力)이 창에 실려 있어서 그런지 2개의 창이 그 자리에서 부르르 몸을 떨고 있다. 2장군은 창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상대방의 힘의 크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때 아주 짧은 순간에 을치수가 판단하고 있다; “좌백의 창에서 느껴지는 힘이 나보다 상수이다. 한번만 더 부딪치고 내가 후퇴를 하는 것이 옳다. 계속 싸우게 되면 내가 큰 위기를 당할 수가 있다. 그렇게 무리할 필요가 없다!... “. 판단이 빠르고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면 을치수는 전방에서 당나라 장수와 마상대결을 한 경험이 풍부한 장수임이 분명하다.

한번 더 창을 부딪힌 다음에 얼른 을치수가 후퇴를 하면서 도리어 큰소리를 치고 있다; “오늘은 내가 바빠서 이 정도만 겨루고 그만 성으로 들어간다. 좌백 그대를 이번에는 나보다 젊고 유능한 정동명 장군이 상대해줄 것이다, 하하하… “.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백성에서 벌써 정동명 장군이 군마에 채찍을 가하면서 달려 나오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좌백 상장군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일대일 대결을 통하여 적장의 수를 줄이고자 한 나의 계획이 틀어지고 있다. 저들은 고구려의 전선에서 마상대결을 한 경험이 많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나의 수법을 진작에 파악하고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구나! 이번의 원정은 실패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좌백의 판단이 맞다. 그날 그가 을치수에 이어 정동명가가혁까지 3명의 고구려 유장을 전부 상대하지만 그들은 모두 좌백을 지치게 만들고 얼른 성안으로 피신하고 만다. 한마디로, 일대일 대결을 한 소득이 전무하다. 대결을 통하여 적장 한사람 정도는 제거해야 하는데 그것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좌백은 어쩔 수가 없어서 일대일 대결을 얼른 끝내고 선봉부대를 내보내어 적성의 서쪽 성벽에 대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좌백은 무왕인 무영과 합의한 그대로 3일 밤낮 선봉부대를 교대로 내보내어 적을 지치도록 만들고 있다. 그 사이에 무왕은 절반의 군사를 이끌고 은밀하게 반대쪽 동편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한밤중에 인자부대 500명과 함께 적의 성벽을 넘어 성내로 침투한다;

그런데 성안에서 그는 5천명이나 되는 청백성의 수비병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수비망을 5백명의 인자부대로는 도저히 뚫을 수가 없다. 따라서 상당한 희생을 치르고 그대로 성밖으로 다시 탈출하고 만다.

그와 같은 결과를 얻게 되자 무왕좌백은 일단 원정을 접고 신궁산성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좌백은 그동안의 전투결과를 상세히 기록하여 멀리 귀왕국의 귀왕에게 파발을 보낸다. 열흘을 초조하게 기다린 끝에 귀왕 책귀의 친서를 좌백이 받는다.

그 내용이 중요하므로 좌백무왕에게 읽어준다; “적들은 벌써 그대들의 수법을 전부 연구하여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 따라서 비상한 수단이 아니면 그들의 성을 점령하지 못한다. 짐은 15천명의 대군을 대장군 싸울 편으로 상장군 좌백 그대에게 보낼 것이다. 과인의 비책은… “;

귀왕의 친서를 좌백무왕에게 읽어주면서 숨을 한번 쉰다. 그 다음에 이어서 읽는다; “전번과 똑 같은 방법을 사용하지만 단 한가지를 달리하고자 한다. 그것은 적의 동편 성벽이 아니라 이번에는 , , 남이라고 하는 3면의 성벽을 모조리 인자부대를 먼저 보내어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하게 청백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다. 이상”.

귀왕15천명의 대군을 3천리나 떨어져 있는 무왕국으로 보내기 위하여 미리 그 도중에 자리잡고 있는 번왕국의 북쪽 성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다. 고구려식민왕국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니 부디 협조를 부탁한다는 간곡한 요청이다. 그 옛날 귀왕 책귀와 함께 전쟁터를 누빈 동료들이기에 그들이 협조적이다.

특히 책사인 책귀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한 성주들이 야마토의 번왕부에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이번에 귀왕국과 무왕국이 연합하여 왜의 땅에서 고구려의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군사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번왕국도 그들과 협력하는 것이 안보상 필요하다고 사료가 됩니다. 아무쪼록 귀왕국의 차도(借道)요청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서기 667년 봄에 귀왕이 보낸 원정군이 싸울 대장군의 인솔하에 무사히 무왕국으로 들어온다;

 좌백 상장군은 장조카 싸울이 대군을 이끌고 왔으므로 그를 무왕 무영에게 소개한다; “무왕 전하, 귀왕국의 대장군 싸울입니다. 그가 이번에 15천명의 지원군을 이끌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의 형님인 계백 대장군님의 아들입니다”.

무왕 무영은 자신보다 7살이 연하인 싸울을 처음 본다. 그 옛날 백제에서 이름을 날린 계백 장군을 다시 보는 것과 같다. 키가 크고 훤칠한 대장부이다. 좌백 상장군과도 많이 닮아 있다. 따라서 친근감을 느낀 무왕이 말한다; “싸울 대장군, 원로에 정말 수고가 많았어요. 귀왕의 도움에도 감사하고 그대의 노고에도 감사해요. 우리 함께 청백성을 도모하도록 합시다!... “.

드디어 6676월에 들어서자 무왕좌백 상장군이 거느린 3만의 군사와 싸울 대장군이 지휘하고 있는 15천명의 군사가 동진(東進)을 한다. 목적지가 청백성이다. 그들이 청백성 서문이 멀리 보이는 야산에 진지를 구축하자 성주 양시백과 수비대장 강월주가 크게 긴장한다.

그들은 대책회의를 여러 번 열었지만 전번에 얻은 결론과 마찬가지이다. 일대일 대결을 요청해오면 크게 말려들지 아니하고 적당하게 상대하다가 성안으로 후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밀하게 반대쪽을 공격해오면 수비군을 많이 배치하여 인자의 공격부터 차단한다는 것이다.

만약 무왕국에서 그 방법을 다시 사용한다고 하면 그것은 전번처럼 실패로 끝날 것이다.  그런 줄 번연히 알면서 무왕국에서는 조금 더 많은 군사를 이끌고 와서 다시 청백성을 정복하고자 나서고 있다. 그 점이 이해가 잘 되지 아니하여 양시백 성주와 강월주 수비대장이 계속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양성주강대장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만약 6만명 이상의 대군을 이끌고 왔다고 하면 성벽공격이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45천명만 데리고 온 것일까? 공성작전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 말이야!... “.

2사람의 의문은 5일이 지나자 자연히 풀리게 된다. 그들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공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5일간 서쪽의 성벽을 줄기차게 공격하던 그들이 갑자기 5일밤이 되자 청백성의 동과 북 그리고 남쪽에서 동일한 작전을 개시하고 있다. 인자부대가 300명씩 3조로 나누어 동시에 성안으로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청백성의 제장회의(諸將會議)에서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동편과 남편에 각각 5천명의 수비병을 배치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의 패착이다. 북편의 성벽이 300명의 인자부대에 의하여 뚫리고 그들은 월등한 무예로 1천명의 수비병을 해치우고 기어코 북문을 활짝 열고 만 것이다;

북문이 열리기를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싸울의 기마병 2천명이 한꺼번에 쳐들어온다. 13천명의 보병들이 기마대의 뒤를 따라서 들어오고 있다. 15천명의 대군이 성안으로 쳐들어와서 북에서 서로 이동하자 그것을 막느라고 청백성의 수비병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순식간에 싸울의 기마대가 서문을 지키고 있는 청백성의 수비병을 도륙하고 있다. 그리고 재빠르게 서문을 활짝 열고 만다. 바깥에서 서쪽 성벽을 공격하고 있던 무왕국의 원정군이 1만명이나 쳐들어온다. 그리고 한시진이 지나자 무왕국의 군사 2만이 추가로 쳐들어온다. 그들은 동문과 남문을 공격하고 있던 부대들인 것이다.

그 밤의 전투에서 성주 양시백과 수비대장 강월주 그리고 고구려의 유장인 가가혁, 을치수, 정동명이 모두 전사하고 만다. 그들은 도중에 항복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저항하였기에 쌍방 간에 엄청난 전사자가 발생하고 만다;

 그 결과 청백성의 군사 8천명이 전사하고 12천명이 포로가 된다.

무왕국의 군사도 4천명이 희생되고 26천명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원군인 귀왕국의 군사는 2천명이 전사하고 13천명이 살아남았다. 그것을 보고서 무왕이 포로 4천명을 싸울의 군대에 넘겨준다.

그 결과 서기 667년이 지나기 전에 왜의 땅에서 고구려의 흔적이 군사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완전히 지워지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싸울 대장군은 이듬해 668년 3월초에 13천명의 원정군과 4천명의 포로를 이끌고 귀왕국으로 개선한다. 그 다음에는 열도 왜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