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6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3. 26. 10:05

7세기의 2268(손진길 소설)

 

번왕국의 책사이며 서부 야전사령관이었던 책귀(策貴) 상장군이 서부지역에 있던 신라의 식민왕국을 완전히 정복하고 그곳에 자신의 왕국인 귀왕국(貴王國)을 건설한 시기가 서기 6596월초이다. 그때는 당시 해 뜨는 본국일본(日本)으로 불리고 있던 한반도의 본국인 백제(百濟)가 망하지 아니한 시점이다;

그러므로 본국인 백제에서 유일하게 인정하고 있는 열도 () 지역에서의 백제의 식민왕국인 번왕국에서는 귀왕(貴王) 책귀에 대한 성토가 대단했다. 야마토의 번왕부 조정에서는 대좌평인 계백호(階伯虎)가 앞장서서 책귀를 반역자라고 규탄했다.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번왕 부여용책귀를 처벌하려고 했지만 마땅한 수단이 번왕국에는 없다;

번왕국의 그 누가 감히 전략과 전술의 귀재인 책귀에게 대항하여 군사행동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현실적으로 그만한 군사력도 없거니와 책귀와 전쟁하여 이길 수 있는 전략가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을 십분 감안하여 제2좌평인 상우종(尙友宗)이 번왕 부여용에게 충심으로 진언했다.

당시 상우종 좌평이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었다; “책귀는 어디까지나 백제 출신의 무장입니다. 돌이켜보면, 문무에 뛰어나며 전략전술이 탁월했던 책사 책귀가 있었기에 우리 야마토의 번왕부가 단 3년만에 10배로 팽창하여 오늘날의 번왕국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점을 감안하여 책귀가 세운 신생 귀왕국과는 우호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

 그 말을 듣자 번왕 부여용이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나 상우종이 직언을 계속한다; “만약 책귀를 처벌하겠다고 군사외교적으로 나서게 되면 신생 귀왕국과 전쟁을 하게 될 것이고 그때는 우리 번왕국 자체가 존망의 위기에 서게 될 것입니다. 번왕 전하, 부디 그와 같은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시기를 소신이 충심을 다하여 말씀 올립니다!... “;

좌평 상우종 뿐만이 아니다. 평소 본국 백제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른 달솔 기하진(奇河鎭)도 같은 생각이라고 진언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머리회전이 빠른 달솔 하상도(河上道)가 실리적인 합당한 정책을 제시한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번왕 전하, 따지고 보면 우리 번왕국의 서부전선을 여전히 책귀가 지켜주고 있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버티고 있기에 서쪽 끝에 있는 방계왕국이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우리 왕국의 안전보장에 이익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소신은 전하께서 그렇게 통찰하여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그 말을 듣자 번왕 부여용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그 문제를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한해가 지나자 서기 6607월에 불행하게도 본국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을 당하고 만다. 그렇지만 그것은 백제의 국왕과 태자 그리고 일부 왕자들이 포로가 되고 수도인 사비성과 제2수도인 웅진성이 점령을 당한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기타 지역에서는 백제부흥운동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서 전임 번왕이었던 왕자 부여풍이 아우인 부여용에게 군사를 빌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부여풍은 지원군을 이끌고 부흥운동의 중심지 주류성으로 들어가서 신왕으로 즉위하고 백제를 다시 일으키고 싶다는 것이다.

그 뒷받침을 하느라고 번왕 부여용은 서기 6619월에 5천명의 군사를 친형 부여풍에게 내주었다;

 전방사령부에서 5천명의 군사를 내주자 이제는 동쪽에 있는 고구려식민왕국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성에서 풍장왕이 된 부여풍이 또다시 3만명의 원군을 요청하고 있다.

번왕 부여용은 큰 고민에 빠진다. 그는 일단 충성심이 남다른 전방사령관 가눌치 상장군을 야마토의 조정으로 불러들여서 깊이 상의를 한다. 그 결과 우선 3만명의 군사를 바다 건너 백제로 보내기 위하여 1천척의 함선을 건조하고 그 다음에 천천히 10개의 성에서 수비군을 줄이고 군사를 차출하자고 합의한다.

그와 같이 어렵게 마련한 27천명의 군사를 1천척의 함선에 태우고 가눌치 사령관이 6638월에 한반도의 서해로 향했다. 그의 전함들이 백제의 수도권으로 들어가는 백강 입구로 진입하였지만 그만 처참한 패전을 경험하고 만다. 그 이유는 백강 하구 기벌포에 들어서는 번왕부의 함대를 신라군이 미리 양쪽 언덕에 설치한 수많은 투석기를 사용하여 무차별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투석기에서 날아오는 큰 돌에 맞아 함선이 파괴되고 그 다음에 날아오는 기름과 불화살로 말미암아 배 안에 화재가 발생한다. 결국 한나절만에 400척의 함선이 파괴되고 그 배에 타고 있던 군병들이 거의 수중고혼이 되고 만다. 일부의 군병이 겨우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왔지만 그곳에 기다리고 있던 신라군에게 모두들 살해가 되고 만 것이다;

그와 같은 대참패를 경험하자 번왕국은 군사력이 줄어들어 감히 귀왕 책귀에게 입을 댈 수 있는 처지가 못되고 만다. 그때부터 번왕 부여용은 귀왕국에 대하여 유화정책(宥和政策)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신중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지내고 있는데 뜻밖에 6646월에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것은 귀왕 책귀가 자신의 군사 5천명을 번왕국의 동부에 있는 전방사령부로 보내어 그곳 고구려식민왕국을 무영 사령관이 정복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어주겠다고 하는 제안이다. 번왕 부여용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흔쾌히 번왕국의 북방 성들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용을 해준다.

그 결과 놀랍게도 그해 11월에 고구려식민왕국의 큰 성 동북성을 점령하였다고 하는 전방사령관 무영 상장군의 장계가 야마토의 번왕부에 도착한다. 번왕부 조정은 크게 환호한다. 따라서 무영 사령관이 보고한 내용 그대로 삼산성의 성주인 무상 대감을 큰 성 동복성의 성주로 발령하는데 승인을 한다.

그런데 다음해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것은 6658월에 신궁산성을 정복한 무영 상장군이 조정에 뒤늦게 장계를 올리면서 장군 3명을 대장군으로 삼고 그 가운데 파천득(派天得)을 삼산성주로, 그리고 주용진(朱容珍)을 새로 얻은 신궁산성의 성주로 삼고 싶다고 주청한 것이다. 그에 대하여 대좌평 계백호와 제2좌평 상우종이 다 함께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선다.

먼저 계백호가 주장한다; “무영 사령관이 큰 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번왕 전하의 신하로서 세운 전공입니다. 따라서 새로 얻은 성의 성주는 마땅히 전하의 의견을 여쭙고 그에 따라 인사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무영 사령관이 벌써 분수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

잠시 숨을 쉬고서 계백호가 번왕의 얼굴을 한번 쳐다본 다음에 자신의 주장을 이어간다; “그가 대장군 승진인사도 멋대로 하고 이제는 성주발령인사도 혼자서 다하면서 사후에 번왕 전하의 허락을 형식적으로 거치는 것으로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하로서는 있을 수가 없는 불충입니다. 그러므로 차제에 불가하다고 따끔하게 말씀하시고 새로운 성주를 발령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앞으로 발생할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는 올바른 처방이 될 것입니다!... “.

그 말을 듣고서 번왕 부여용이 혼자서 중얼거린다; “책귀에 이어 무영이 이제는 번왕인 나를 일개 고무도장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거지!... 괘씸한 놈들“;

그리고 두사람의 좌평 곧 계백호상우종에게 동시에 질문한다; “그러면 그대들은 누구를 삼산성주와 신궁성주로 보내는 것이 좋겠는가?... “.

두 좌평은 번왕으로부터 그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즉시 계백호는 달솔 이평(李平)’을 천거하고 상우종은 달솔 오상덕(吳祥德)’을 추천한다. 이미 두사람은 그렇게 합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달솔 이평은 대좌평 계백호의 사람이고 달솔 오상덕은 제2좌평 상우종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서 번왕 부여용이 용기를 내어 무영 사령관에게 다음과 같이 회신하라고 지시한다; “앞으로 무영 상장군은 짐의 신하임을 항상 명심하라. 전방사령부에서 장군을 대장군으로 승진 인사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갑절의 후보자를 조정에 천거하라. 그 중에서 과인이 낙점을 할 것이다. 그리고 성주의 발령은 전적으로 번왕의 권한임을 명심하라. 짐은 달솔 이평을 삼산성주로, 달솔 오상덕을 신궁성주로 임명하는 바이다.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라. 이상”.

야마토(大和)의 조정에서 보내어 온 회신을 받아본 무영 상장군은 실망이 너무나 크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는 친구 책귀가 어째서 번왕국을 떠나 새로운 귀왕국을 건설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막상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져 보아야 정신이 번쩍 나는 법이다.

그래서 무영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이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완전히 조정이 독차지하고 말겠다는 심보이구만! 내가 내 부하들을 희생시키면서 죽자사자 적성을 취해보아야 말짱 헛것이군;

 그렇다면 이 문제를 내가 좌백과 상의해보아야 하겠구만!... “.

좌백은 귀왕국을 떠나올 때에 벌써 친구인 귀왕 책귀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좌백아, 네가 무영과 함께 고구려식민왕국의 성들을 정복하게 되면 틀림없이 야마토의 번왕부 조정에서 시비를 걸고 나올 것이야. 내가 귀왕국을 만든 선례가 있기에 이제는 번왕 부여용이 무영 사령관을 엄격하게 통제하고자 나설 것으로 나는 본다. 그러므로 생각보다 무왕국을 조기에 만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점을 알고서 무영이 상의할 때 답변을 잘 해주도록 해라!... “.

그렇게 숙지하고 있는 좌백이므로 무영이 그를 불러서 그 문제를 상의하자 얼른 대답한다; “이번 기회에 무왕국(無王國)을 건설하고 무영이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인사발령을 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본다. 그래야 장졸들의 사기가 높아지고 남은 청백성(靑白城)을 점령할 수가 있을 것이야. 만약 번왕부 조정의 지나친 간섭으로 논공행상이 뒤틀어지게 되면 앞으로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고 말 것이야!... “;

좌백이 찬성하자 무영 사령관은 제장회의(諸將會議)를 소집한다.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자 대장군과 장군들 그리고 천부장 이하 장수들이 전부 한마음으로 외친다; “일찍이 책사 책귀 상장군이 귀왕국을 건설한 것처럼 우리도 여기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도록 합시다. 무영 사령관님이 왕위에 오르시고 논공행상을 그대로 실시하여 주십시오. 앞으로 충성을 다하여 무왕(無王) 전하를 섬기겠습니다!... “.

생각보다 빨리 동부지역에서 무왕국이 탄생하고 있다. 그것이 서기 6659월에 발생한 대사건이다;

 그 일이 알려지자 야마토의 번왕부 조정은 큰 충격에 휩싸인다. 이제 무왕국의 탄생으로 번왕국의 성은 10개에서 8개로 감소하고 만다. 삼산성신탕성동북성신궁산성과 합하여 무왕국이 되어 독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마토의 번왕부 조정에서는 무영 사령관을 징벌할 방법이 없다. 군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8개의 성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무왕국의 4개성 보다는 갑절이다. 하지만 수비병의 수는 많지가 아니하다. 지난 663년에 백제의 부흥운동을 지원한다고 1천척의 함선과 함께 27천명의 군사를 대거 파견했기 때문이다.

기벌포에서 400척의 함선이 파괴되고 그 배에 타고 있던 11천명의 장졸이 전사하고 말았기에 그만큼 번왕국의 군사력이 감소한 것이다. 게다가 귀왕 책귀와 무왕 무영이 절친이라고 하는 사실이 조정대신들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다. 만약 그들이 합의하여 동과 서에서 번왕부를 쳐들어온다고 하면 번왕국이 멸망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에 따라 번왕국은 마치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런데 이듬해 곧 서기 666년 음력으로 5월이 되자 고구려에서 놀라운 사건이 전해지고 있다. 고구려를 지키고 있던 영웅이며 독재자인 대막리지 연개소문(淵蓋蘇文)72세의 일기로 병사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실로 한시대의 마감을 알리고 있는 대사건이다;

그 소식이 들려오자 귀왕 책귀가 다음과 같이 신하들에게 말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짐이 천궁의 별자리를 살펴보니 대영웅의 일생을 표현하고 있는 사자자리의 큰 별 가운데 하나가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더군요. 지금의 중원과 한반도 그리고 열도 왜에서 대영웅이라고 볼 수 있는 노장군이라고 하면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과 신라의 상대등 김유신이지요. 그런데… “.

 모든 신하들이 귀왕 책귀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책귀가 잠시 숨을 돌리고 이어서 설명한다; “빛을 잃어가고 있는 별은 북쪽의 것입니다. 따라서 과인은 연개소문의 수명이 다해가고 그에 따라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가 다가온다고 천문을 보고 있습니다;

 짐은 같은 부여족의 입장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 다음에 책귀가 부연하고 있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그에 따라 고구려는 후계자다툼이 발생하고 내부에서 큰 균열이 발생하게 되겠지요. 그 영향이 이곳 열도 왜에도 상당히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고구려의 유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동쪽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구려식민왕국의 청백성에도 고구려의 무장들이 많이 영입이 되겠군요. 한번 지켜볼 필요가 있어요!... “;

천문과 인문에 두루 밝은 귀왕 책귀의 말이다. 그의 말그대로 이제 청백성을 차지하고자 하는 무영좌백에게 현실적으로 모종의 어려움이 닥치고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