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95

85. 의사 누가(작성자; 손진길 목사)

85. 의사 누가 (1) 누가는 시리아 안디옥 출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 알려지고 있다(눅1:3, 행1:1).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들이 성경말씀으로 정확하게 입증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가 유대인이 아니라 완전한 헬라인인지 아니면 교포인 헬라파 유대인인지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성경적 언급이 없다. 그렇지만 바울서신에 나타나고 있는 그의 행적과 직업을 참고해본다면(골4:14, 딤후4:11, 몬1:24), 누가가 두 글의 저자일 가능성은 농후하다. 먼저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라는 사실은 “딤후4:11”말씀에 의하여 상당히 뒷받침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AD 66-67년경 로마 감옥에 재수감되어 그의 마지막 서신서인 디모데후서를 쓰고 있을 때 그의 곁에는..

84. 바나바(작성자; 손진길 목사)

84. 바나바 (1) 의사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는 크게 보아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그들이다. 사도 베드로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를 개척하고 유대 지방 선교에 앞장선 사도인데 그의 행적이 사도행전 제12장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제13장에서부터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제28장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이방지역선교에 주역이 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제15장 예루살렘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만나고 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는 두 주인공을 부드럽게 연결해주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가 바로 사도 바나바이다. 예수님 부활, 승천후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능력을 받게된 120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온 유대 땅에 복음을..

83. 사도 바울(작성자; 손진길 목사)

83. 사도 바울 (1) 바울은 헬라식 이름이고 그의 유대식 이름은 사울이다. 이름이 두 개인 것처럼 그는 두 개의 문명권 사이에서 성장했다. 집 바깥에서는 헬라와 로마식 문명, 이른바 그레꼬 로마 문명이었고 집안에서는 히브리 문명이었던 것이다. 그의 고향 다소는 소아시아 길리기아(오늘날 터어키 남부)에 있는 작은 도시였지만 일찌기 로마를 위해서 공을 세운 이방인들에게 황제가 면세와 시민권 혜택을 준 바 있어 그 혜택을 받은 자들이 몰려살고 있었던 곳이었다(행21:39, 22:25-29). 더구나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교육시설이 잘 되어 있었던 도시였다. 그 곳에서 바울은 AD 1세기초에 그리스, 로마식 교육을 받았다(행21:37, 헬라말). 그리고 가정에서는 부모님으로부터 전통적인 유대인들이 디아스포..

82. 집사 스데반(작성자; 손진길 목사)

82. 집사 스데반 (1) 스데반은 의사 누가와 같이 헬라파 유대인이었다(행6:1-6). 그들은 뒤늦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목적이나 이유는 열두 사도와 달랐다. 열두 사도 가운데 다수는 갈릴리 어부 출신들이다. 그들은 평소 나사렛 예수와 친분이 있었으며 공생애 이전부터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진출한(마4:13) 예수의 특출한 지혜와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예수가 세례 요한보다 뛰어난 선지자임을 알고서 그들은 마치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를 따라 나서듯이(왕상19:16-21) 부모님과 생업을 뒤로하고 선지자 예수를 따라 출가했다. 그들은 이미 어부 생활을 청산하고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진출하려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자들이었다(마4:15-22, 요1:40-50). 열두..

81. 동방 박사(작성자; 손진길 목사)

81. 동방 박사 (1) 헤롯 대왕 마지막 해(BC4년경) 동방에서부터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를 경배하기 위하여 그의 별을 보고서 예루살렘으로 찾아왔다(마2:1-2). 사도 마태가 독점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동방 박사의 아기 예수 경배” 이야기는(마2:1-12)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고향 이야기 그리고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의 하나님 신앙 이야기와 관련되어지고 있다. 아브라함이 그 부친 데라와 함께 떠나온 곳은 갈대아 우르 지역이었다. 본토(창11:28, 12:1)라고 불리는 이 곳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서 가장 선진 문명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문명을 동서양으로 전파시킨 곳이다. 성경기록상으로 보면, 니므롯의 제국(창10:8-12)이 시작된 “시날 땅의 바벨” 그리고 고대 ..

80. 본디오 빌라도(작성자; 손진길 목사)

80. 본디오 빌라도 (1) 빌라도의 이름은 “창을 가진 자”라는 뜻이다. 로마의 무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내 아이였으므로 그 부모님이 장차 장군이 되라고 붙여준 이름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이름값을 하였다. 창과 칼을 사용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로마의 자랑스러운 장군이 되었다. 그의 이름자 앞에는 “본도에서 승리한 기사”라는 영예스러운 칭호(본디오)까지 붙이게 되었다. 빌라도는 무인으로서 정상에 서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을 움직이는 자는 무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황제와 총리 그리고 지방에서 각 도를 다스리고 있는 백여명이나 되는 분봉왕과 총독들이 로마 제국을 나누어서 통치하고 있었다. 빌라도는 군복을 벗고 로마의 통치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총독이 되고 훗날 더 큰 권력자가 될 수 ..

79. 대제사장 가야바(작성자; 손진길 목사)

79. 대제사장 가야바 (1) 청년 가야바는 남다른 특출한 능력 두 가지를 지니고 있었다. 권력의 흐름, 곧 판세를 읽는 능력과 기민한 처신술이 그것이었다. AD1세기초 로마 제국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카리스마와 경륜 덕택에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유다 땅과 사마리아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헤롯 대왕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헤롯 아켈라오가 잔인한 독재 정치를 그곳에서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마2:22). 그는 부친 헤롯 대왕처럼 현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 대하여 애정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에돔 왕가인 헤롯에 대하여 분노했으며 나아가서 그의 왕권을 인정해준 로마 황제에 대하여 원망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의 대표자들이 황제를 찾아왔을 때 아우구스투스는 결단을 내렸다. 헤롯 아..

78. 헤롯 대왕(작성자; 손진길 목사)

78. 헤롯 대왕 (1) 헤롯(Herod) 대왕의 이름은 “영웅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의 아버지 “안티파테르”는 영웅이었으며 그의 시대는 격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헤롯 역시 영웅이었다. 간략하게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BC 2세기 로마의 팽창으로 시리아의 셀루시드 왕조가 위기를 맞이했다. 외세에 맞서고자 시리아 왕조는 제우스 신 숭배사상으로 헬라세계의 결속력을 다지고자 했다. 그러나 그 종교정책은 후유증이 심각했다. 먼저 여호와 유일신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BC 167년 맛다디아 제사장과 그의 용맹한 다섯 아들이 독립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이듬해 아버지가 죽자 가장 용맹한 셋째 아들 유다 마카비가 중심이 되어 독립전쟁을 계속했다. 결국 시리아로부터 독립을 ..

77. 가룟 유다(작성자; 손진길 목사)

77. 가룟 유다 (1) 가룟 유다는 행운아였다. 젊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전12:1) 그 분의 수행 제자인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마10:4, 막3:19, 눅6:16). 훗날 새 예루살렘성 열두 기초석의 하나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이 그의 인생 가운데 찾아온 것이다(계21:14). 그런데 가룟 유다는 이 행운을 일종의 “로또” 당첨으로만 생각했다. 유다는 스스로 가난한 시골 동네 “그리욧”(Iscariot, 브엘세바 북동쪽 29KM지점, 사해 가까운 땅이라 척박했슴)출신이 수도 예루살렘에서 출세할 수 있는 발판을 얻은 것으로 여긴 것이다. 유다는 시골 벽촌 출신이지만 어릴 때부터 유달리 머리가 좋았다. 그래서 그는 대도시 예루살렘에 와서 출세할 기회를 ..

76. 가말리엘(작성자; 손진길 목사)

76. 가말리엘 (1) 가말리엘은 유대교 율법과 선지서 및 지혜서 그리고 전래되어오는 장로들의 유전과 교훈에 이르기까지(행22:3, 막7:7-8) 두루 해박했으며 그 지혜가 당대에 으뜸이었다(행5:34a). 그래서 바리새파 랍비들(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그를 큰 스승으로 모셨으며 경향 각지와 멀리 외국에서까지 신앙심 깊은 유대인 젊은이들이 유대교의 율법과 선민사상 그리고 언약이론을 체계적으로 더깊이 공부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가말리엘 문하로 찾아왔다(행22:3). 가말리엘은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으머 유대교 최고의 의결기관인 그 곳에서도 존경받는 교법사(敎法師, 유대교 이론가이자 사상가인 선생)로서 그의 말은 선지자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행5:34b). 그리고 당대에 가장 많은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