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76. 가말리엘(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8. 08:40

76. 가말리엘

 

(1)   가말리엘은 유대교 율법과 선지서 및 지혜서 그리고 전래되어오는 장로들의 유전과 교훈에 이르기까지(22:3, 7:7-8) 두루 해박했으며 그 지혜가 당대에 으뜸이었다(5:34a). 그래서 바리새파 랍비들(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그를 큰 스승으로 모셨으며 경향 각지와 멀리 외국에서까지 신앙심 깊은 유대인 젊은이들이 유대교의 율법과 선민사상 그리고 언약이론을 체계적으로 더깊이 공부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가말리엘 문하로 찾아왔다(22:3). 가말리엘은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으머 유대교 최고의 의결기관인 그 곳에서도 존경받는 교법사(敎法師, 유대교 이론가이자 사상가인 선생)로서 그의 말은 선지자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5:34b). 그리고 당대에 가장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세례 요한이나 나사렛 예수와 같은 선지자로 불리어질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2성전시대 후반기부터 제사장 나라 또는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이 사라졌으며 더구나 유대교가 더이상 마음속 회개와 세례를 부르짖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경전 연구와 율법적 구원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 시기에 형성되어 있었던 주요 네 종파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들이 예수님이 강조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계명의 취지에서부터(12:28-34) 얼마나 이탈되어 있었던가 하는 점을 쉽게 엿볼 수 있다. 가말리엘 역시 바리새파라는 자기 종파의 주장을 교리화시키고 이를 가르치고 있었던 선생이었을 뿐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서 영원하신 하나님 말씀의 생명력을 되살리고 새역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는 못했던 것이다.

(2)   역사적으로 헬라 제국과 로마 제국의 영향권 아래에서 유대인들이 종교적 자유와 정치적 독립을 얻기 위하여 몸부림쳤다. 그 결과 유대교인들인 백성들에게 호소력을 가지는 네 종파가 등장했다. 참고로 그들의 입장의 차이를 상호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외세에 비타협적이면서 동시에 폭력적인 극단적 방법을 선호하고 있는 종파인데 그들이 민족주의 무장투쟁노선인 열심당파이다. 둘째로, 이와 정반대로 타협적이고 온건한 방법을 주장하고 있는 종파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다. 이에 따라 사두개파는 외세와 타협하였으며 그들의 협조하에 각종 유대교의 권력과 이권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셋째로, 비타협적이지만 온건한 노선의 종파가 바리새파였다. 그들은 무장노선이 아니면서도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독립을 희구하고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신위적인 방법으로 역사 가운데 외세를 물리쳐주시는 기적을 다시한번 베풀어주시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다(37:34-38). 그와 같은 의미에서 그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렸으며 다윗 왕국의 재건을 소원하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소원을 가슴에 품고서 자칭 메시아라는 예수를, 그것도 놀라운 기적을 베풀고 있었던 예수를 쫓아다녔다. 그러나 예수의 목표가 다윗 왕국의 재건이나 세속적인 정치적 독립이 아님을 발견했다. 더구나 나사렛 예수는 그들을 꾸중했으며 유대교 전통에서 벗어난 경전해석을 설파하고 있었다(8:10-13, 12:1-14). 이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사이비 메시아로 보았으며 그를 버렸다. 바리새파의 거물이며 으뜸가는 이론가인 가말리엘의 시각도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예수에 대해서도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에 대해서도 일말의 기대조차 가지지 아니했다. 공회에서의 그의 발언도(5:34-42) 별 볼일 없는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들을 구태어 처벌할 필요가 있겠는가하는 시각이다. 그가 바라는 메시아는 오직 유대인만을 위한, 유대인에 의한, 그리고 유대인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도구로서의 해방자만을 의미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넷째로, 아예 속세를 등져버린 비타협적이고 극단적인 종파까지 나타났다. 그들이 에세네인들인데 그들은 갈등의 현장인 도시를 떠나서 외딴 곳 오지에 정착하여 그들만의 폐쇄적인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 곳에서 그들은 경전공부와 금욕적인 수행생활에 전념했을 뿐이다. 다행히 그들이 필사했던 경전들이 후세에 발견됨으로써 그들의 존재감이 다시 역사가운데 재등장하고 있다. 끝으로, 만약 에세네파가 세속사회로 다시 되돌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경우 두 가지 경로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 노선은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정치적 사회적 지도자들에게 정의를 부르짖는 세례 요한의 노선이 될 것이며 그 둘째 노선은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선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어느 노선도 백성들의 인기에 영합하고 있는 바리새파의 노선이거나 가말리엘이 전통으로 고수하고 있는 유대교 입장은 아닌 것이다.

(3)   가말리엘이 추구했던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보통 바리새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바와는 달랐다. 가말리엘은 지혜가 출중했기에 단순하게 대중적 인기와 지지만을 누리고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나름대로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었다; 첫째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가운데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약속의 아들로 선택했으며 이삭의 아들 가운데에서도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셨다(21:12, 25:23, 1:2-3). 결국 야곱을 최종적으로 선택하셨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유일하게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2:24-25, 6:2-13, 19:5-6). 일찌기 이방 애굽을 징계하시고 선민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출애굽의 하나님이(135:5-6) 선민구원의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것이다. 그 분은 언제나 그 언약에 충실하시며 이에 따라 역사를 섭리하시고 계시는 것이다(135:10-21) 이것이 헤세드인 것이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 가운데 선민으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자는 선민 가운데서 끊어지며(17:14) 이방인과 같이 멸망받을 따름이다(9:1-3). 반대로 율법대로 살면 약속의 땅에서 형통하며(28:1-14) 열국을 정복하고 만민을 시온산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수 있게될 것이다(66:20-24, 102:13-22). 요컨대, 가말리엘을 비롯한 전통적인 바리새인들은 선민사상, 시오니즘을 옹호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할례받고 언약을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열방중에 우뚝 서게하기 위하여 온 세계의 역사와 우주의 질서까지(10:12-14, 38:6-8) 이끌어가시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4)   그런데 가말리엘과 바리새파 전통주의자들의 확고한 선민사상, 언약주의, 시오니즘은 새로운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다. 일종의 내우외환이었다. 먼저 내적인 도전은 헬라파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유대교를 개방적으로 개혁하자는 목소리였다. 유대교로 개종하고자 하는 이방인들을 유대인들이 받아들일 때 할례와 율법을 지키도록 무조건 강요하지 말고 그 마음속에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 숭배사상이 확실하다면 이와같은 육체적, 생활적 강제방식을 일부 완화하자는 주장이었다. 이와같은 융통성있는 온건주의가 유대교를 헬라세계 전역에 개방하고 선교할 수 있는 관건이 된다는 지적이었던 것이다. 일명 힐렐파로 불리고 있는 이 새로운 내부 주장에 대하여 가말리엘은 전통적인 샴마이파 입장에서 강경하게 맞섰다. 그 후 사울이 강경하게 유대교 이탈자를 잡아죽이고자 나선 것도 스승 가말리엘의 이와같은 강경한 노선에 영향받은 바 크다고 볼 수 있다(9:1-2, 22:3-5). 다음으로 외적인 도전은 메시아로 자칭하고 있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유대교와 하나님 경외사상을 무조건적으로 이방 세계에 개방하자는 그들의 주장은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도 사랑하시고 그들 역시 구원대상으로 삼고 계신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이와같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23:33), 사탄의 아들(8:44-47), 눈먼 소경(15:14) 등으로 혹독하게 비난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사렛 예수는 로마 총독이 내란선동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이제는 나서서 죽은 예수가 부활하였다면서 허무맹랑하게도 혹세무민에 나선 것이다. 이를 강하게 탄압하자는 다수파 사도개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가말리엘은 평소 그의 지론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만히 두어도 그 따위 날조된 유언비어나 혹세무민은 거짓임이 탄로나고 하나님의 섭리로 사라질 뿐입니다.(5:37-39).

(5)   그의 지론에 비추어 보더라도 가말리엘은 상당히 합리적인 인물로서 이성적인 판단을 중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의 한계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대중의 호응이나 지지보다 그리고 후세에 살아남는 역사적인 불멸이라는 판단기준보다 그 분은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더욱 정확하게 판단하고 계시된 그 내용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의인의 삶을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복음서를 재조명해보면, 가말리엘을 추종하는 바리새인들이 나사렛 예수의 행동과 말씀선포에 관심이 무척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가 제자가 되지는 아니했다. 그렇지만 예수의 뒤를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 예수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여러가지 기적들을 예수가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수가 주로 바리새인 랍비들을 예로 들어서 그 종교적 행위의 잘못을 질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말리엘은 직접 움직이지는 아니했지만 예수가 선포하고 있는 말씀의 이치와 그의 능력의 특이성에 관하여 계속 듣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왜 이와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현재의 유대교의 종교적 행태에 대하여 무엇을 경고하고 계시는지 알아채지는 못했다. 그 대신에 그는 하나님이 만약 이 일을 시작하셨으면 자연히 성공할 것이고 그러하지 아니하면 얼마 못가서 사라질 것이라고 자연순응적인 이치만을 따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사그라지더라도 그것이 생명의 씨앗이라면 하나님이 다시 부활시킬 수 있다는 그 초월적인 능력에 대해서도 그는 부활을 인정하는 만큼 이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창조주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에 있어서 비록 대중적인 호응이 없어서 맡은 바 그 일이 역사속에서 사그라지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담겨있다면 그 뜻의 구현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키고 헌신하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14:36). 그런데 가말리엘에게는 이와같은 삶의 결단이나 실천이 없었다(5:38-39). 이것이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대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의 지혜와 신앙심의 한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