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가룟 유다
(1) 가룟 유다는 행운아였다. 젊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전12:1) 그 분의 수행 제자인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마10:4, 막3:19, 눅6:16). 훗날 새 예루살렘성 열두 기초석의 하나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이 그의 인생 가운데 찾아온 것이다(계21:14). 그런데 가룟 유다는 이 행운을 일종의 “로또” 당첨으로만 생각했다. 유다는 스스로 가난한 시골 동네 “그리욧”(Iscariot, 브엘세바 북동쪽 29KM지점, 사해 가까운 땅이라 척박했슴)출신이 수도 예루살렘에서 출세할 수 있는 발판을 얻은 것으로 여긴 것이다. 유다는 시골 벽촌 출신이지만 어릴 때부터 유달리 머리가 좋았다. 그래서 그는 대도시 예루살렘에 와서 출세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집안 배경이 없었으므로 상류층에 줄을 댈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는 머리좋은 것 하나만 믿고서 유명한 랍비의 문하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아니했다. 유학 비용이 있어야 가능했던 것이다. 돈없이 먹고 자고 배우고 훗날 입신양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가난과 추위에 떨면서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그 것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던 유다의 눈에 어느 날 예수 일행이 들어왔다. 그 때 그는 새로 나타난 갈릴리 시골 나사렛 출신 랍비 예수에게서 모든 것을 재빨리 배워서 자신도 랍비로 출세하고자 작심을 했다. 그래서 몇 달을 동고동락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스승과 동료들에게 열심히 선보인 결과 드디어 신임을 얻어서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 그것도 돈궤까지 맡게되는 실세가 된 것이다(요13:20).
(2) 스승 예수에게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눅10:9a, 17-19).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생명책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다(눅10:9b, 11, 20). 이 가운데 가룟 유다는 앞으로 돈이 되고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축사(逐邪)와 치유의 능력이 탐이 났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네가 구원을 받았다고 전하는 선언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의 만민구원사상과 천국복음선포는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배워보았자 앞으로 목숨만 위태롭게 할 것이다. 머리회전이 빠른 유다는 일찌감치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 일행을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돈이 될 만한 자료들을 챙기고 있던 중에 유다는 기가막힌 장면들을 보게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 마리아의 행위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스승 예수가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주자 그 후부터 돈보따리를 계속 가져와서 예수 일행을 후원했다(눅8:2-3). 그리고 베다니 마리아는 그 비싼 향유를 아예 예수의 발위에 들이붓고 있었다(요12:3). 이와같은 어리석은 행위를 오히려 잘하였다고 영적으로 해석하면서 그녀를 칭찬하고 있는 예수가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한심한 인사로 보였다(요12:7-8).
(3) 베다니 마리아의 집에 들린 이 때가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이 때 유다는 스승 예수로부터 속물 취급당하고 동료 사도로부터도 곱지 아니한 시선을 받고 있었다(요12:4-6). 더구나 주위상황도 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사로가 되살아난 사건때문에 유대인의 큰 무리가 베다니로 몰려들고 있었고 이에 따라 유대교의 기반이 흔들릴 것을 염려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잡아 죽일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요12:9-11, 눅22:1-2). 이 일을 눈치채고 있었던 유다는 스승 및 동료들과의 결별을 준비하면서 마지막으로 한두 가지 더 챙기고 싶은 것이 있었다. 첫째는, 사람들의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스승이 없어도 행할 수 있도록 완전하게 위임받는 것이었다. 이것이 마지막 성만찬에서 이루어졌다(눅22:14-20, 마10:1). 사마리아에서 칠십인 제자들에게 그 능력을 일시적으로 부여해주시더니(눅10:9) 유월절 만찬석상에서는 아예 살과 피를 전부 주신다는 약속을 하신 것이다. 유다는 자신이 예수를 팔 자라는 배신자로 지칭되면서도 그 능력을 챙기고자 한 것이다(눅22:21-23). 둘째로, 예수를 팔아서라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줄을 대고 인정을 받고 싶었다(눅22:3-6). 당장 받게되는 사례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과 안면을 트고 그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선지자의 능력을 행하는 랍비로 독점적으로 영업할 준비를 한 것이다.
(4) 스승까지 배반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종교적 비지니스로 한번 크게 성공해보고자 야망에 사로잡혀있었던 가룟 유다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는 세상적으로 머리회전이 빠르다고 자부했지만 그 만큼 하나님의 지혜와 진리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이다. 육체적인 치유와 축사의 능력이 반드시 영적인 죄사함과 부활 그리고 영생이라는 복음의 능력과 함께할 때 재발을 방지하고 완전하게 발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스승 예수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부활로서 터져나오는 일종의 통과의례라는 사실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영혼을 팔아먹어버린 유다가 며칠 후 스승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는 절망했다. “차라리 나지 아니했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다.”는(마26:24) 스승의 말씀이 가슴에 와서 박혔다. 스승 예수를 구원주 메시아가 아니고 단지 랍비의 하나 정도로 소홀히 여겼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가슴을 쳤다(마26:49). 스승 예수가 성만찬 때와 세족식 때 두 번이나 자신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는데(요13:10-11, 26) 자신이 왜 마귀의 생각을 따르고(요13:2, 27) 스승의 말을 따르지 아니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자책감에 사로잡힌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스승을 판 돈 은 삼십을(마26:15, 슥11:12) 도로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마27:4a). 이 말의 뜻은 돈을 도로 받고 율법적으로 자신의 무죄함을 밝혀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차가왔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마27:4b). 유대교 지도자들은 가룟 유다의 죄를 사해줄 수도 또한 그럴 의향도 전혀 없었다. 유일하게 그 죄를 사해줄 수 있는 자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팔을 벌리고 있는 자인 스승 예수를 가룟 유다는 결코 찾지 아니했다(요3:13-18, 사65:2). 왜냐하면, 그는 끝까지 마귀의 말을 듣고서(요13:27) 예수님의 옷자락을 다시 붙잡지 아니한 채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기 때문이다(마27:5-10, 요6:7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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