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74. 니고데모(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7. 07:12

74. 니고데모

 

(1)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3:1, 7:50, 19:38-39). 칠십 명 또는 칠십이 명으로 구성되는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교 최고의 의결 기관이며 동시에 사법 기관이었다. 옛날 율법국가 탄생 때 모세를 따라 여호수아와 칠십 인의 장로들이 시내 산에 함께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받아 제사장 나라가 시작되었다(19:6, 24:9-18). 그러므로 전통에 따라 로마치하에서도 산헤드린 공회가 백성들의 종교 생활을 그 때까지 규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3:10). 그리고 그 신분이 고귀한 공회원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진정으로 알고자하는 구원의 길과 구원의 확신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바리새파였으므로 공회내에서 소수파였다. 공회의 다수파인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의 결정을 번복시킬 만한 정치적인 힘도 없었다. 간혹 소수파이지만 바리새 강경파 샴마이의 지도자인 가말리엘은(5:34) 그의 의견을 강하게 밀어부치기도 했으나 온건한 개방파인 힐렐노선의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같은 인물들은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7:50-51, 23:51).

(2)   세례 요한이 요단 강가에 나타나 물세례를 베풀고 이어서 나사렛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나 성전청결을 부르짖었을 때 니고데모는 종교적으로 새 시대가 오고 있슴을 직감했다. 그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430년 동안이나 선지자가 없었던 시대를 지나서 다시 찾아오는 선지자의 시대에 혹시 그들 백성을 구원해줄 메시아가 함께 오지는 아니하시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세례 요한에게 먼저 물었다; 당신이 메시아입니까?(3:15, 1:19). 그의 답변은 확실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내 뒤에 오시는 그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1:20, 27, 33).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34). 세례 요한으로부터 엄청난 답변을 귀담아 들었던 니고데모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그에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방법과 영생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물었다(3:1-9). 예수님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그 곳에 들어갈 수도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내가 나무에 달려서 죽게 되면 백성들에게 치유의 길이 열린다. 내가 하늘에 올라가게되면 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의 구원을 얻게될 것이다(3:3-21). 니고데모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이 대답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당장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가 나무에 달려서 죽고 어떻게 하늘에 올라가게 되는지 그 것이 계속 궁금했다. 정말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게되면 새로운 구원의 길이 열린다는 말인가? 니고데모는 앞으로 계속 예수의 행적을 주의깊게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3)   니고데모가 알고 있는 유대교는 바리새파의 주장 그대로였다. 그들은 첫째, 히브리 성경 전부를 믿고 있었다. 사두개인들이 모세오경만을 믿고 있었지만 바리새인들은 선지서, 시편, 지혜서까지 모두 믿고 있으므로 부활, , 천사까지 인정하고 있었다(23:6-9). 바리새인들이 이와 같이 경전을 폭넓게 믿고 그 주석에까지 충실했던 이유는 그들이 선지자들이 없었던 중간시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자 애썼던 그들은 수많은 경전 연구와 주석 연구에 매어달릴 수 밖에 없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세계인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을 뿐 일반 백성들은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기름부음이란 왕이나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에게만 국한된다. 셋째로,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만 하나님의 구원이 한정되고 있었다. 이방 족속이 구원 대상이 되자면 먼저 이스라엘의 율법과 할례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헬라 시대 말기에 들어와서 유대교의 문호를 이방 세계에까지 제한적으로 개방하자는 힐렐파가 나타나고 있으나 그들은 주로 헬라파 유대인들이며 아직 소수파였다. 이와 같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적 주장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선민, 이방인의 구별이 사라지고 성령의 역사가 일반 백성에게까지 임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은 그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4)   그렇지만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구원의 길과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율법을 지키고 의인으로 행세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마음속에 구원의 확신과 영생의 기쁨이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율법으로 살리라고 했는데(10:5, 18:5) 왜 구원의 기쁨이 없는 것일까?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과 니고데모는 꼭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10:17-22). 그래서 시간만 나면 예수 일행을 뒤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의 설명을 계속 청취했으며 산헤드린 공회내에서도 예수님께 불리한 결정이 내려질 기세이면 이를 다른 쪽으로 유도하곤 했다(7:50-53). 그렇지만 예수님의 제자라고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못했다. 이 점은 그의 동료인 아리마대 요셉도 마찬가지였다(23:50).

(5)   드디어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공개 처형되고 말았다. 니고데모는 그가 확실히 죽었는지 그리고 과연 그의 예언대로 부활하여 승천함으로써 그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과 영생의 길이 열리게 되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래서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서 당돌하게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했다(19:38). 요셉의 새 무덤굴에 그의 시신을 두고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과연 삼일후에 예수가 부활했다. 의심할 바 없이 그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었다(1:34). 그리고 성령이 부활의 바람으로 유대 땅에 불어오기 시작했다(3:8, 37:9-10, 2:1-8). 니고데모의 의문은 대부분 풀리기 시작했다. 예수의 공생애, 특히 그 분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천한 인간의 아들이 되시고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시고 마침내 짐승보다 못하게 십자가에서 극형으로 처형된 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 분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한없이 흘러서 드디어 음부의 세계까지 자신을 낮추신 물같은 분이셨다. 그 물방울들을 아버지 하나님이 불과 바람으로 승천시키시고 그 분의 부탁으로 이 땅에 성령의 불과 바람이 불도록 하셨다(2:1-4). 그 물과 불과 바람이라는 하나님의 역사속에서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거듭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느꼈다. 그 때부터 그는 공식적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묵묵히 끝까지 복음을 증거했다. 이와 같은 니고데모의 행적과 깨달음의 세계를 주의깊게 살펴보았던 사도 요한은 그의 행적을 자신의 복음서에서 단독으로 상세히 다루었다(3:1-21, 7:50-53, 19:38-42). 그 내용은 유대주의자들과 헬라 철학자들에게 복음이 무엇인지 그 진수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료였던 것이다. 오늘 날 우리들도 니고데모 덕택에 복음의 핵심을 정확하게 질문하고 그 해답을 확실하게 듣고 있다고 하겠다. 이 점에서 니고데모는 여전히 뛰어난 성경 선생인 것이다(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