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도마
(1) 도마는 갈릴리 사람이며 사도 요한의 친구였다. 요한은 평소 도마를 “쌍둥이”라고 놀렸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디두모라 하는 도마”(요20:24, 21:2)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쌍둥이(헬라어 ‘디두모’)라는 별명을 가진 도마(아람어로 역시 ‘쌍둥이’임)”인 것이다.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저술할 때는 90세나된 늙은이였다. 그 때에도 그는 도마의 일화와 행적을 기록하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만큼 도마는 인간적으로 정겹고 꾸밈이 없는 솔직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여전히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진리와 진실을 추구함에 있어서 남의 눈치라든가 이목에 구애됨이 없었다. 그래서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여러 사도들이 말했을 때 그 사실을 제대로 확인했느냐고 되물었다. 그 자리에 그가 없었기에 그 사실을 믿기 위해서는 물증이 필요했던 것이다(요20:24).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기만 했을 뿐이라고 말하자 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 손으로 그 상처를 만져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하겠다!”(요20:25). 팔 일후 부활하신 예수님이 도마를 만나셨다. 그 자리에서 못자국난 손과 창자국난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네 손으로 만져보고서 확실히 믿어라.”(요20:27). 그 말씀앞에 도마는 무너졌다. 그의 손으로 만질 필요가 없었다. 그의 생각을 이미 아시고 그 증거를 스스로 제시하고 계시는 주님이셨다. 그래서 도마는 고백했다; “당신은 진실로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20:28). 도마는 그의 머리와 생각속에 이미 들어와 계시는 그 분을 이제 그의 가슴속에 주인으로 모시고서 아버지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2) 도마가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메시아 예수를 만났을 때였다. 그 분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요10:17)고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내 아버지 집에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고 약속하셨다.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도마 일행을 이끌고서 드디어 베다니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군하셨다(요10:39-42, 11:7-11, 15). 이 일을 눈치챈 도마가 일행에게 자신의 결심을 전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11:16). 도마의 관심사는 “아버지 하나님의 집”이었으며 자신이 그 집에 들어가서 과연 천국이 자신을 위해서 예비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예수님께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주님이 가시는 그 길을 같이 가보지 아니하고서 우리가 어찌 아버지 하나님의 집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는지 알겠습니까?”(요14:5). 천국이 과연 준비되어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서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죽으러 갈려고 시도했던 사도가 바로 도마였던 것이다.
(3) 그러나 도마는 그의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허락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마는 예언의 말씀 그대로 “목자를 치매 양의 떼가 흩어지듯이”(마26:31, 슥13:7) 예수가 처형당하자 그의 고향 갈릴리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예수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평소 큰 소리쳤던 베드로처럼(요13:37, 마26:33) 도마 역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마26:75). 그들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스승을 배신한 것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아니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의 집에 함께 모였다(요21:2). 모여서 대책 회의를 해보았지만 패전지장들이라 할 말이 많지 아니했다. 그래서 베드로가 물고기나 잡으로 가자고 제안했을 때 갈릴리 어부출신인 사도 일곱 명이 모두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로 나갔다. 이제는 영락없이 예전의 생활로 되돌아가는 듯했다(요21:3-4).
(4) 이와같은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 오셨다(요21:1). 그들은 예수님을 사지에 버려두고 떠나왔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원망하지 아니하시고 변함없이 용서하시는 모습으로 그들을 찾아 오셨다.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처럼 ‘풍어의 기적’을 다시 보여주셨다(눅5:6, 요21:6).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도마는 변함없으신 그 분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여전히 함께 먹고 마시면서(요21:13) 기적도 보여주시고 예언의 말씀도 해주셨다(요21:18, 22). 더구나 그 자리에서 자신들을 목자로 임명해 주셨다(요21:17). 도마는 주님에게 완전히 승복했다. ‘호기심 천국’이 아니라 이제는 ‘인생이 돌아가야할 천국’을 소망하게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승천하시는 광경을 지켜보았고(눅24:50-51) 초대 교회 다락방 모임에도 발벗고 나섰다(행1:4, 11, 13). 우리는 도마 덕분에 과학의 한계와 인간 인식의 한계에 대하여 주님으로 부터 분명한 대답 하나를 얻고 있다. 필요하다면 그 분은 못자국난 그 손과 창자국난 그 옆구리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신다(행9:3-22). 그리고 부디 만져보고서라도 믿음만은 잃어버리지 말라고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격려하고 계신다. 성도들의 믿음의 성숙을 위해서는 그 분은 대속의 고통의 현장도 다시 보여주시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는 의인들의 존재도 깨닫게 해주신다(사53:2-12). 아울러 인간의 생각과 호기심을 이미 알고 계시기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의도와 능력 그리고 역사 섭리의 경륜까지 피조 세계에 그리고 인생 길 도상에 펼쳐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다. 다만, 사도 도마처럼 진리를 진지하게 규명해보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느냐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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