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1)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의 외척이다. 성경상 나타나고 있는 예수의 외가로서는 세베대의 아내인 살로메가 예수의 이모이며(요19:25, 막15:40, 마27:56)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이 동정녀 마리아와 같은 혈족이다(눅1:5, 36, 76-80). 예수는 공생애 기간중 두 외가 집안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육 개월 형님이 되는 세례 요한이 메시아인 그의 앞 길을 예비해 주었으며(눅3:2-20) 이모부인 세베대는 두 말없이 그의 두 아들을 제자로 보내 주었다(마4:21-22). 그 고마움에 대하여 훗 날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나타난 적이 없다”(마11:11).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서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들이다”(막3:17, “to them he gave the name of Boanerges, which means Sons of Thunder”, NIV)라고 불렀다. 이로 미루어보면, 이모 살로메 뿐만 아니라 세베대 부자의 성격도 천둥같이 크고 강하며 급한 것임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이 붙여주신 애칭 그대로 이모 살로메는 여장부였으며(마20:20-21) 큰 아들 야고보는 대장부다웠다(막10:35-41, 눅9:52-54). 이모부 세베대 역시 화끈하게 예수의 공생애를 후원해주었던 것이다.
(2) 야고보의 본명도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발꿈치”를 의미하고 있는 “야고보(James)”는 두 발에 힘을 가하고 있는 급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당당하게 하나님앞에 두 발로 장부답게 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라고 요구하고 계신다(욥38:3, 40:7). 이와같은 관점에서 보면, 야고보는 예수님의 마음에 들었던 이종 동생이었다. 이와같이 우직하고 충성스러우며 남자다운 제자를 예수가 좋아했기에 그가 가는 중요한 곳, 그리고 비밀 유지가 필요한 곳에는 항상 베드로와 야고보 형제를 대동했다(막9:2, 14:33, 눅8:51). 야고보는 베드로처럼 행동 대장감이었다. 그 옛 날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그러했듯이(창34:25-31) 그들은 무력을 써서라도 앞으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실 예수님을 호위하고자 했다(요1:49, 18:10). 그런데 베드로가 주로 단독 행동을 했다면 야고보는 항상 동생 요한을 데리고 다녔다. 야고보는 동생을 거느릴 줄 아는 대장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장점이 있는 반면에 야고보의 급한 성격은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동생 요한과 함께 강경한 매파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들을 받아 들이지 아니하는 사마리아 촌락을 불살라버리자(눅9:52-54). 그리고 예수 일행을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은 결코 예수님의 이름과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어서도 아니된다(눅9:49-50)”. 예수님은 이들의 잘못된 경직성을 다음과 같이 시정시키셨다; “함부로 불심판을 운운해서는 아니된다. 그리고 그들을 함부로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아니하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들이다”(눅9:50, 55, 마26:52-54, 왕상19:18, 행18:24-25, 19:1-7). 그렇지만 이와같이 성격이 급하고 우직한 야고보를 끝까지 가까이하신 예수님의 뜻은 그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고쳐서 훗 날 크게 사용하시고자 하는 원대한 구상이었던 것이다.
(3) 아고보의 장점은 자신의 주장이 분명하며 주군 예수가 주는 잔이라면 기꺼이 받아 마시고 그 세례에까지 참여하겠다고 하는 강한 자신감이었다(막10:35-38). 그러나 이와같은 자신감은 오직 스승 예수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는 길을 똑바로 가고 있을 때에 국한되는 것이었다(요1:49). 그래서 임금의 좌우편에 자신들이 서기를 원했던 것이다(막10:37). 그런데 예수는 군대를 일으켜서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지도 아니했으며 지지 세력을 규합하여 반대 세력과 당당하게 맞서지도 아니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자신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유월절 어린 양이라고 말하면서 아무런 저항없이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고 말았다(사53:7, 마27:31-37). 이에 실망한 사도들이 모두 도망을 쳤는데 이 때 성질이 급한 야고보는 완벽한 배신감을 느꼈다(마26:56).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려 한다.”는 예수의 마지막 말은 남자답지 못한 패장의 자기 변명과 같았다(마26:52-56). 그래서 그는 예수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그렇지만 그의 동생 사도 요한은 형 야고보와 약간 달랐다. 어린 요한은 형 야고보의 우직성과 충직성도 좋았지만 이종형인 예수의 깊은 지혜와 깊은 애정이 더 좋았다. 그래서 요한은 처음으로 친형 야고보를 떠나서 단독 행동을 했다. 베드로를 이끌고서 대제사장 집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의 안위를 살폈으며(요18:15-16) 골고다 십자가 바로 아래까지 갈릴리 친지들을 안내하였다(요19:25-26). 하지만 야고보는 이와같은 유연성과 여성스러운 애정이 없었다.
(4) 야고보는 끊는 것이 정확하듯이 다시 맺는 것도 확실했다. 스승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스승이 인류 최초로 신령한 몸으로(고전15:44) 완전하게 부활하셨다. 야고보는 자신의 판단이 백퍼센트 틀렸슴을 남자답게 깨끗하게 인정했다. 부활하여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앞에 야고보는 완전히 굴복했다(요21:1-2, 12). 그 때부터 야고보는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주님의 당부와 말씀만을 따랐다(행1:13). 세상과의 타협이란 있을 수도 없었고 좌우를 살피지도 아니했다. 성령강림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앞장서서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선교를 나섰을 때 그 옆에는 항상 그들을 지키는 야고보가 있었다(행2:14, 4:13, 19, 33, 8:14). 스승 예수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자신의 잘못을 베드로와 요한의 선교 일정을 적극 뒷받침함으로써 속죄하고자 했다. 그래서 AD 44년경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1세가 유대와 사마리아 전역에서 기독교인 탄압을 행했을 때 그는 이를 피하지 아니하고 형제들을 먼저 피신시킨 후 스스로 체포당하였다. 예수님처럼 처형장으로 묵묵히 끌려가서 참수당함으로써 스승에게 진 빚을 갚았다. 그는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명예스러운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되었다(행12:1-2). 결론적으로, 사도 야고보는 세상적인 자신의 야망과 명예의 추구보다는 오직 우직하게 영생의 주님만을 바라보았던 진실로 충성스러운 제자이며 대장부답게 그렇게 세상을 이긴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눅10:19-20, 계2:6-7,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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