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79. 대제사장 가야바(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9. 13:58

79. 대제사장 가야바

 

(1)   청년 가야바는 남다른 특출한 능력 두 가지를 지니고 있었다. 권력의 흐름, 곧 판세를 읽는 능력과 기민한 처신술이 그것이었다. AD1세기초 로마 제국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카리스마와 경륜 덕택에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유다 땅과 사마리아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헤롯 대왕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헤롯 아켈라오가 잔인한 독재 정치를 그곳에서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2:22). 그는 부친 헤롯 대왕처럼 현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 대하여 애정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에돔 왕가인 헤롯에 대하여 분노했으며 나아가서 그의 왕권을 인정해준 로마 황제에 대하여 원망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의 대표자들이 황제를 찾아왔을 때 아우구스투스는 결단을 내렸다. 헤롯 아켈라오를 폐위시키고 그 땅을 총독이 다스리도록 조치했다. 처음부터 군정을 펴지 못했던 이유는 총독제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결점때문이었다. 첫째는 멀리 로마에서 파견되어오는 총독이 현지 사정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둘째는 총독들이 현지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이 없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지도자인 대제사장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로마 총독과 일종의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로 보이지만 사실은divide and rule)이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대제사장이 안나스였으며(AD7-14)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을 때까지 그 직에 머물렀다. 그런데 제2황제 티베리우스(3:1, 디베료 가이사)가 권력을 장악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자기 사람으로 새 판을 짰다. 유다 땅에서는 안나스가 밀려나고 로마 총독의 힘이 강해졌다. 군정이 강화된 것이다. 그렇지만 안나스는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었다. 이와같은 예루살렘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의 흐름을 읽고 있었던 청년 가야바는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2)   가야바가 안나스에게 접근한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 첫째는, 가야바가 유대교 종파 가운데 사두개파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두개파가 된 이상 그 정상에 서있는 안나스에게 접근하는 것은 당연했다. 가야바는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 그리고 열심당파의 차이를 먼저 대조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으로 무모하게 로마 제국을 상대로 무력 독립운동을 꿈꾸는 열심당파는 처음부터 관심밖이었다. 에세네파는 스스로 현실참여를 외면하고 오지로 떠나간 종파이므로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가운데 후자가 그의 마음에 들었다. 종교적 권력이 그들에게 장악되어 있었고 모세오경에 쓰여있는 율법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의 제례의식만 제대로 익히면 부귀와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종파였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을 직접 회당에서 가르치느라 평생 말씀공부에 진력해야하며 평소 계명, 부활, 천국 등을 주제로 토론하고 묵상하기에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선생이고 학자이지 가야바가 얻기를 원하는 백성을 다스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둘째로, 가야바는 안나스의 야망을 달성시켜줄 방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안나스의 심복이자 사위가 됨으로써 가능한 방법이었다(18:13). 안나스가 전례에도 없는 대제사장 재임용이 되는 것보다 사위를 밀어서 대제사장으로 만드는 것이 더 쉽고 모양새가 더 좋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뒤에서 섭정하면서 상왕 노릇을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였던 것이다. 안나스는 똑똑한 청년 안나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AD18년 가야바를 대제사장으로 만들었다. 안나스가 당시 로마 총독 발레리우스 그라투스를 움직인 것이다. AD26년에는 후임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부임해왔지만 전현직 대제사장 가문인 안나스와 가야바의 종교적 권력에는 누수현상이 없었다. 그 만큼 두 사람의 공조체제는 확실했으며 가야바의 처신술이 용의주도했던 것이다. 그 덕택에 가야바는 빌라도가 물러날 때인 AD36년까지 18년동안 대제사장직에 있었으며 그 기간 사이에 신약의 굵직굵직한 대부분의 사건들이 그의 눈앞에서 발생했다.

(3)   나사렛 예수라는 자가 AD27년경 예루살렘에 나타났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예루살렘 성전내에서 소동을 일으켰다. 신성한 성전을 더럽힌다고 제물 장사치와 환전상들을 모두 내쫓아버린 것이다(3:14-17). 성전과 율법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두개인들의 눈에 불을 품게하는 행위였다. 그들의 수장이며 성전을 책임지고 있는 대제사장으로서 가야바는 분노했다. 당장 잡아들이고 싶었지만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 쉽지 아니했다. 그의 말이 거짓이며 혹세무민하는 것이라는 확실한 물증 확보도 시급했다. 그래서 수하들을 시켜서 예수 일행을 추적하고 물증을 찾으라고 가야바는 독려했다(5:10, 16, 18, 7:32, 11:46-53, 12:10, 22:2). 가야바는 나사렛 예수를 잡아 죽여야만 유대교내의 내분을 예방할 수 있다고 확고히 믿고 있었다. 자칭 선지자 한 사람을 죽여서 유대교내의 분란을 잠재울 수만 있다면 그것은 가장 경제적인 방안이었던 것이다(11:49-52). 선지자는 사두개인인 그의 입장에서는 모세 한 사람만으로 족했다. 어차피 그들은 선지서도 믿고 있지 아니했기에 자칭 선지자의 행적이나 헛소리는 관심밖이었다. 그런데 그 예수가 그 후 두 해동안 예루살렘에 나타나지 아니했다.

(4)   예루살렘에 다시 예수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성전에 들어와서 매매하는 자와 돈 바꾸는 상인들을 전부 쫓아내는 큰 소동을 일으켰다(11:15-17). 이에 가야바는 공회원들을 모아놓고 그를 잡아죽일 계책을 논의했다(11:18). 장인 안나스가 그의 의견을 적극 뒷받침해주었다. 가야바는 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비책을 찾아 내었다. 그것은 내부 고발자인 가룟 유다를 내세워서 예수 일행의 내분을 조장하고 예수를 잡아오는 방안이었다(22:4-6). 외부에서 보면, 제자가 스승을 고발하는 형국이며 그것은 예수의 허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장인 안나스에게 먼저 보내어 심문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가야바는 검토했다(18:13, 19-34). 겉으로 보면, 예수의 체포와 심문 책임이 모두 안나스에게 돌아가고 가야바 자신은 그 책임에서 한 발짝 물러서게되는 실로 기가막힌 방안이며 용의주도한 처세술이었던 것이다. 또한 새벽 일찌기 비상 공회를 열어서 전격적으로 자파 세력만 동원하여 날치기로 예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방안도 마련했다(22:66-71). 끝으로, 내란 선동죄로 예수를 빌라도 총독에게 끌고가서 사형선고를 받아내는 방안까지 강구했다(23:12-25). 이와 같은 완벽한 시나리오를 마련한 자가 가야바였다. 그의 천재적인 계책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현실화되었으며 그는 놀랍게도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공동정범(共同正犯)이나 교사범(敎唆犯)으로 정죄되지도 아니했다. 예를 들면, 사도신경에서조차 모든 책임은 본디오 빌라도가 짊어지고 있으며 가야바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악한 음모를 꾸미는 기가막힌 두되의 소유자가 가야바였으며 그는 그 좋은 머리로 메시아를 죽였다. 가야바는 성전의 최고 책임자인 대제사장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인물이다. 그의 처세술과 위장술에 당시 관찰력이 뛰어났던 의사 누가까지 깜빡 속고 있다(4:6). 전직 대제사장 안나스가 여전히 현직인 것처럼 누가마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만큼 가야바는 교활한 인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