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80. 본디오 빌라도(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9. 14:00

80. 본디오 빌라도

 

(1)   빌라도의 이름은 창을 가진 자라는 뜻이다. 로마의 무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내 아이였으므로 그 부모님이 장차 장군이 되라고 붙여준 이름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이름값을 하였다. 창과 칼을 사용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로마의 자랑스러운 장군이 되었다. 그의 이름자 앞에는 본도에서 승리한 기사라는 영예스러운 칭호(본디오)까지 붙이게 되었다. 빌라도는 무인으로서 정상에 서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을 움직이는 자는 무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황제와 총리 그리고 지방에서 각 도를 다스리고 있는 백여명이나 되는 분봉왕과 총독들이 로마 제국을 나누어서 통치하고 있었다. 빌라도는 군복을 벗고 로마의 통치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총독이 되고 훗날 더 큰 권력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 시대는(AD14-37, 디베료 가이사, 3:1) 평화스러웠다. 그러나 변방지역 유다 땅에는 여전히 불순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따라서 빌라도는 황제의 최측근인 총리 세야누스를 찾아가서 자신을 유다 총독으로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곳의 불온 세력을 뿌리 뽑겠다고 그를 설득했다. AD26년 본디오 빌라도는 그의 소원대로 제5대 로마 총독이 되어 유다 땅으로 들어왔다.

(2)   유다 총독으로 부임한 빌라도는 무인으로서는 대단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반란의 조짐에 대해서는 과감하면서도 신속하게 대처했다. 발본색원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하여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AD29년 갈릴리 사람들의 반로마 움직임을 탐지하여 그 주모자들을 잡아서 처형한 사건이다. 그들의 피를 제물에 뿌려서 제사를 지내도록 명령함으로써 유대인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13:1). 빌라도의 공포 정치의 효과는 대단했다. 제물을 신성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이 뒤로는 반감을 크게 표출하면서도 앞으로는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열심당원들의 움직임도 지하로 숨어 들었으며 그저 약간의 극소수 열혈분자들이 간헐적으로 테러 행위를 감행했을 뿐이다. 십년동안이나 공포 정치가 진행되고 난 후 AD36년에 큰 사건이 터졌다. 여리고의 불순분자들이 그들의 성지인 그리심산으로 피신한 것이다. 빌라도는 과감하게 로마 군대를 몰고서 그들의 성역을 침범하여 모조리 잡아들였다. 이 일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마침내 유다, 사마리아, 갈릴리에 이르기까지 빌라도의 철권 통치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연대되어 크게 일어났다. 극한 대결로 발전할 경우 유대인들이 많은 피를 흘리게될 것이고 그 반로마 정서는 이웃 지방으로 확산될 것이 뻔했다. 이 점을 우려했던 로마 당국은 얼른 빌라도를 로마로 소환해버리고 말았다. 유다 총독으로 머무르지 아니하고 이를 새로운 출발점으로하여 로마 제국을 움직이는 중앙무대 한 복판으로 진입하기를 원했던 빌라도의 꿈은 민심을 얻지 못하여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3)   빌라도의 이름은 이천 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그렇게 좋지아니한 이름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최종 결정한 악의 화신이 본디오 빌라도이기 때문이다(27:36, 19:13-16). 그런데 이 견해는 약간 수정을 요하고 있다. 왜냐하면, 빌라도가 앞 길 창창한 자신의 장래를 이 때문에 망치지 아니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한 흔적이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빌라도를 구석으로 몰아서 그와 같이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압력을 가한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묘한 명분과 구실을 만들어주어 빌라도가 그와 같이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 자는 누구인가? 이들의 공동정범(共同正犯)적인 행위를 정확하게 따지지 아니한 채 본디오 빌라도만을 단독정범으로 몰아서 역사적으로 심판하는 것은 옳지못한 처사이며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 권세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어느 권세를 받아들이느냐하는 선택만이 인간의 몫인 것이다. 당사자의 선택에 대해서는 책임이 따른다. 그렇지만 그 권세를 쥐어준 자와 그 권세를 발동시키도록 예수를 넘겨주고서 압력을 가한 자의 죄는 더 큰 것이다(19:11).

(4)   정치인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 빌라도의 약점이 다음과 같이 노출되고 있다. 첫째, 그는 정치적인 이슈에 있어서는 소신있는 입장표명과 확고한 행동으로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예수가 무죄이면 무죄방면해야 했으며 유죄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유죄로 처벌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의 이름의 또다른 의미 확고히 하다의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다. 둘째, 책임회피에 급급하여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우겼다. 제사장에게(18:31), 헤롯 왕에게(23:7, 12) 그 책임을 떠넘기다가 끝내는 유대인 대중들에게(23:22-25) 예수의 핏값을 떠넘기는 비겁한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셋째, 손을 물에 씻어서 잘못된 판결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27:24). 넷째, 예수를 잘못 사형시킨 책임을 추후 로마 당국으로부터 추궁받게될 것을 염려하여 예수가 유대인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추앙을 받고 있었던 자이므로 그를 처형하지 아니하면 반란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역사를 날조했다(18:33, 39, 19:14-15, 19-22).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 빌라도의 모습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하는 점이다. 강한 무인으로 보이고 싶었던 장본인 그래서 공포 정치를 과감하게 실시했던 로마 총독 빌라도였지만 그 내면은 비겁하고 일관성이 없으며 출세하기 위하여 위아래 눈치를 보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역사적인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 두 가지일 것이다. 그 첫째는 성공 지향, 출세 지향적인 사고방식이며 그 둘째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권세 가운데 잘못된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행동화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