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집사 스데반
(1) 스데반은 의사 누가와 같이 헬라파 유대인이었다(행6:1-6). 그들은 뒤늦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목적이나 이유는 열두 사도와 달랐다. 열두 사도 가운데 다수는 갈릴리 어부 출신들이다. 그들은 평소 나사렛 예수와 친분이 있었으며 공생애 이전부터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진출한(마4:13) 예수의 특출한 지혜와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예수가 세례 요한보다 뛰어난 선지자임을 알고서 그들은 마치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를 따라 나서듯이(왕상19:16-21) 부모님과 생업을 뒤로하고 선지자 예수를 따라 출가했다. 그들은 이미 어부 생활을 청산하고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진출하려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자들이었다(마4:15-22, 요1:40-50). 열두 사도 가운데 소수파는 가룟 유다와 같이 랍비 수업을 목적으로하는 자가 있는가하면 열심당원 시몬처럼 유대 민족의 독립을 꿈꾸면서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 예수를 쫓아 다니는 자들도 있었다(눅6:15-16). 이에 비해서 제자 스데반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유대교에서 얻지 못한 것을 선지자 예수에게서 얻고자 했다. 그는 외국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 가정에서 자랐으므로 어려서부터 헬라식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유대교 전통을 중히 여기는 부모로부터 유대식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교육이 잘 융합이 되지 아니했다. 그 이유는 유대교가 유일신 사상이며 성전 중심의 답답한 율법주의인데 비해서 헬라 철학과 학문은 자유스러운 토론과 논리적 설득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촉망받는 디아스포라 젊은이들이 그러하듯이 스데반 역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와서 유대교 사상과 율법을 더욱 깊이있게 공부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헬라의 학문과 로마의 세계를 모두 품에 안을 수 있는 깊고도 넓은 하나님의 세계와 가장 고상한 구원과 영생의 길을 발견하고자 한 것이었다.
(2) 그러나 스데반은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만나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랍비들, 그들의 생각과 안목이 너무 보수적이었으며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해석하고 믿고서 가르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능력은 오로지 선민 이스라엘 백성만을 구원하고 축복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출애굽의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선택하시고 그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 분의 뜻을 기록한 율법을 잘 지키고 그 분의 계시가 흘러나오는 성전을 잘 보전하면 열방 위에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되도록 축복해주신다는 것이었다. 그 언약의 표시가 바로 할례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헬라 철학과 학문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와 애굽은 어떻게 되는가? 만민평등사상을 로마법으로 구현하고 있는 로마 제국은 무엇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의 대상에 불과하며 그들의 생각과 학문은 과연 재앙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란 말인가? 이와같은 전통적인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데반은 자신과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젊은 헬라인 유학생들과 행동을 함께했다. 그들은 유대교를 개혁하여 전세계적으로 개방하자는 다음과 같은 입장이었다; “선민에 대한 세상적인 축복, 육체적 할례, 율법 중심의 행동규제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방까지 모두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 말씀의 본래 뜻(사19:18-25)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건설로 세계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메시아 사상(사11:1-10)과 마음속 할례(신10:16) 등을 강조함으로써 히브리 성경과 유대교 사상이 고루하거나 국수적인 것이 아님을 대내외에 선포하자.”는 움직임이었다. 그렇지만 이 운동은 좌절되고 말았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았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율법과 성전을 고수했으며 바리새인 랍비들은 회당에서 선조들의 주석과 해석만을 고집했다. 그들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아니했다. 그래서 스데반은 다른 헬라파 유대인 젊은이들처럼 그 눈을 유대교 제도권 바깥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3) 스데반, 누가 등 교포 젊은이들이 자칭 메시아라고 말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창기 때부터였다. 예루살렘 성내를 두 해 유월절 기간동안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그 유명한 성전청결 소동과(요3:13-21)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병자 완치기적을(요5:1-16) 그들도 전해듣고 있었다. 그렇지만 바로 예수 일행을 쫓지는 아니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아직도 랍비들과 유대교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유대교를 개혁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해도 유대교권을 움켜쥔 자와 회당 문화를 주도하는 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마침내 젊은이들이 유대교를 떠났다. 그리고 갈릴리 변방으로 예수 일행을 찾아 갔다. 스데반이 갈릴리에서 일 년동안 예수를 쫓아다니면서 그의 능력을 확인하면서 지혜의 말씀을 들었다. 그 말씀은 모두가 아버지 하나님의 생각과 권위에 철저하게 의존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각대로 말씀하시는 법이 없었다. 반드시 자기가 아버지의 품속에서 보고 배운 바를 그대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보여주는 것이라고 늘 전제하고 계셨다. 인간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이 먼저라는 가르침이었다.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떡이고 추종하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옳다고 평가하시고 그 인생의 가치를 인정해주시는 것이 구원과 영생의 길이라는 말씀이셨다. 스데반은 그동안 유대교 선생들에게서 얻지 못한 시원적(始原的)인 태초의 하나님 말씀의 본 뜻을 서서히 발견해가고 있었다.
(4) 그 해가 저물어갈 무렵 스승 예수가 갈릴리를 떠나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눅9:51). 사마리아에 들어서자 예수님이 열두 사도들 이외에 따로 칠십 인의 제자를 부르셨다(눅10:1). 그리고 말씀하셨다; “열두 사도만 가지고서는 천국 복음을 널리 전파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대신 행하는데 부족하다. 너희들에게도 말씀선포권과 병치료 및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부여해주겠다. 사마리아 전지역을 선교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이 이 일을 맡기셨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고서 그 분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라”(눅10:2-20, 고전15:24). 그 때 스데반과 칠십 인의 제자들은 열두 사도와 동일한 능력을 부여받았다. 스승 예수는 모든 제자들을 차별하지 아니하셨다. 먼저 제자된 자와 나중 제자된 자를 차별하지 아니하신 것이다(막10:31). 스데반은 이와같이 공의로우신 스승 예수가 좋았다. 이 분이 메시아의 능력으로 유대교를 완전히 개혁하여 새 시대를 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스데반의 생각은 어긋났다. 어처구니없게도 스승 예수가 내란 선동죄로 몰려서 십자가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스데반과 헬라파 젊은이들은 예루살렘을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그 만큼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그동안 마치 스폰지처럼 흡수했으며 그 가르침이 그들의 생각과 학문속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 그들앞에 예수가 다시 나타났다. 이제는 부활의 능력으로 그들앞에 서신 것이다. 이 때부터 스데반과 그의 동료들은 모든 것을 그 분에게 맡겼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초대교회형성에 대들보가 되었다. 스데반의 설교는 힘이 있었다. 그 자신 오랫동안 헬라의 학문과 유대교의 사상 가운데서 고민하고 갈등하다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성령의 능력으로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그가 깨달은 진리를 전하는 것이 신이나고 확신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행6:10). 스데반은 지혜와 말씀만이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성령의 은사로 권능이 충만하여 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여주었다(행6:8). 유대교 지도자들은 사도 베드로보다 오히려 집사 스데반의 선교 활동에 더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여 그를 불법으로 정죄했다(행6:10-7:1, 54). 스데반의 설교는 모든 공회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에서 현재의 유대교가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를 조목조목 역사적으로 반박하고 있는 그의 말에 논리적으로 대항할 수가 없었다(행7:2-54). 그래서 불법으로(요18:31) 스데반을 인민재판식으로 처형해버렸다(행7:57-60). 집사 스데반은 순교하면서 그들의 죄를 용서했으며 마치 스승 예수의 십자가 운명 때처럼 그렇게 운명했다(행7:59-60, 눅23:34, 46). 사도들보다 더 큰 지혜와 능력을 받았던 집사 스데반은 AD 33년경 그렇게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의 순교는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특히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사울이 훗날 사도 바울이 되어 집사 스데반의 뒤를 이었으며(행7:58, 8:1, 22:20) 의사 누가가 스데반의 명설교와 순교 장면을 상세히 기록하여 후세에 전했다. 결론적으로, 집사 스데반은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성령의 능력주심이 교회의 가장 큰 힘이라는 사실을 똑똑하게 보여준 인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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