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84. 바나바(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11. 21:52

84. 바나바

 

(1)   의사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는 크게 보아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그들이다. 사도 베드로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를 개척하고 유대 지방 선교에 앞장선 사도인데 그의 행적이 사도행전 제12장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제13장에서부터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제28장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이방지역선교에 주역이 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제15장 예루살렘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만나고 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는 두 주인공을 부드럽게 연결해주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가 바로 사도 바나바이다. 예수님 부활, 승천후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능력을 받게된 120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온 유대 땅에 복음을 전파했다. 그래서 형성된 그들 공동체의 지도자는 여전히 열두 사도였다. 그런데 여기에 그들만큼 큰 권위를 가지는 후기 사도가 두 사람 이방 안디옥교회에서 등장했다. 바나바와 바울이었다(14:1, 2:9). 바울은 AD 35년경 다메섹 도상에서 이미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환상중에 만나 그 분의 계시로 이방인 사도가 되었다는 체험담이 유명하다(9:1-22). 그렇지만 바나바는 그와같은 간증이 없다. 그는 AD 33년경 고향 구브로에서 밭을 팔아와서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헌금으로 바치고 합류했던 제자였다(4:36-37). 그런데 바나바는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무척 덕망이 높았다. 그 이유는 그가 본토 유대인과 헬라 유대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잘 감당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는 다소 출신 베냐민 자손이며 바리새파 가말리엘의 제자였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 예루살렘에 들렀을 때 교회에서 그의 신원을 보증해주었다(9:27). 그리고 최초의 이방 지역 교회인 안디옥교회에 파견된 바나바는 그 곳 교회를 크게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교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만전을 기했다. 그래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11:24). 이와같은 예루살렘교회의 신임과 그에 대한 좋은 평판이 그를 자연스럽게 사도로 불리게 만들었다고 하겠다(13:46, 14:1, 3, 14). 성경상에 나타나는 기존 열두 사도와 여기에 가담하는 두 사도 바울과 바나바, 이들 14명 이외에는 사도로 불린 자가 없다. 그만큼 사도 바나바는 초대 교회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2)   구브로(오늘 날의 키프러스)가 고향인 바나바는 레위 지파였다(4:36). BC 167년경부터 시작된 제사장 마카비가문의 유다 독립전쟁은 BC 142년경 예루살렘에 그들 레위 지파의 하스모니아왕조를 탄생시켰다. 그렇지만 삼십년이상 지속된 시리아와의 오랜 전쟁으로 많은 레위인들이 피난하여 이웃한 지중해 섬 구브로에서 살게 되었다. 바나바는 피난민 레위인들의 후손으로 보인다. 그들 레위인들은 제사장 가문이었으며 히브리 성경지식에 뛰어났다. AD 33년경 바나바가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합류했을 때 그의 빼어난 성경지식이 그를 교사요 목회자로 만들었다. 바나바가 예루살렘교회의 신망을 얻게된 데에는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던 그의 누나 마리아와 매형이(14:14) 큰 힘이 되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마가의 어머니였으며 일찌기 남편의 허락을 얻어 그들의 다락방을 예수 일행에게 계속 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14:51-52). 바로 그 집이 유월절 마지막 만찬, 오순절 성령강림, 초대 예루살렘교회 탄생의 현장이 되었다(12:12, 15:37, 4:10). 바나바의 이름 뜻은 권위자(勸慰者)이다. 그는 위로자답게 성격이 온화했으며 자신이 먼저 양보함으로써 팀의 화합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령세례를 받아 평생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후 남은 생애동안 스스로 세 가지를 실천하고자 했다. 그것은 첫째로, 초대 예루살렘 공동체의 재정을 돕고자 재산을 헌납한 것이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열심히 공부하여 그가 먼저 배워서 이미 숙지하고 있는 히브리 성경지식과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자 했다. 메시아의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건설, 이스라엘의 영광과 이방세계에 큰 빛과 큰 복을 전하는 일, 그리고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새시대의 도래 등 이 모든 일들이 이미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사실들이며 또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보혜사이신 성령님에 의하여 그대로 성취되고 있었던 것이었기에 이를 하나의 학문적 체계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셋째로, 그 자신이 교포출신이었으므로 그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을 초대교회에 합류시키는데 앞장서기로 했다. 초대 안디옥교회의 목회자로 파견받아 일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역시 교포출신이며 성경지식이 뛰어난 바울을 찾았다. 다소까지 그 먼길을 가서 바울을 동역자로 맞아들였다(11:25). 보통 정성을 기울인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안디옥출신인 의사 누가와도 친하게 지냈다. 그와 같이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를 연결하고 본토 출신 유대인 교인들과 교포 출신 유대인 성도들을 융합시키는 일에 바나바가 앞장 섰으므로 그가 최초의 이방 지역 선교팀 주장으로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받게 되었다(13:2-3). 그리고 그는 AD 44년 로마 제4대 황제 클라우디오 때 유대 땅에서 큰 흉년이 들자 안디옥과 이방 교회에서 헌금을 거두어 예루살렘 교인들을 경제적으로 도우는데 역시 앞장 섰다(11:28-30). 이와 같이 담임 목회자인 바나바가 인화(人和)에 힘쓰고 예루살렘 교회와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한편 특히 말씀에 특출한 깊이가 있는 바울같은 선생을 모셔와서 오랫동안 함께 사역한 결과 안디옥 교회는 크게 성장했다. 그 결과 세계선교에 뜻을 두고 선교사를 적극 파송할 수 있는 모 교회로까지 기능할 수 있게 되었다(11:26, 13:1-4).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헬라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학문적인 시각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와같은 말씀연구를 통하여 보다 체계적인 지식으로 안디옥 지역의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그러자 이방인들이 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했으며 드디어 그들을 기존 유대교인들과 확실하게 구별하여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11:24-26).

(3)   일반적으로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초창기 세계선교팀의 주장은 사실 바나바였다(13:2, 바나바와 사울). 그 여행지도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에서 시작되었다(13:4-6). 그렇지만 구브로 섬 바보 지역과 소아시아 버가와 비시디아 안디옥 지방에 이르기까지 바나바가 아닌 바울이 빼어난 웅변술과 성령의 능력으로 선교에 큰 열매를 맺었다. 그러자 바나바는 두말없이 그를 선교팀의 주장으로 앞장세워주었다(13:43, 바울과 바나바). 그와 같은 바나바의 겸양과 하나님의 뜻 순종으로 두 사람은 많은 입교자를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누가에 의해서 두 사도라고 불리어지게 되었다(13:43, 14:1). 이것은 역사에 남는 가장 큰 영예스러운 칭호가 된 것이다. 바나바와 바울이 한 팀이 되어 제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몇 년후 제2차 선교여행에 나섰다(15:36). 그 때 바나바는 그의 생질인 마가를 다시 함께 데리고 가기를 원했다. 그러자 바울이 이를 극구 반대했다. 그 이유는 제1차 선교여행때 마가가 제멋대로 선교팀을 버리고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13:15). 결국 두 사람은 각자 자신들의 팀을 별도로 구성하여 헤어졌다. 첫 방문지도 자신들의 고향으로 삼았다. 즉 바나바와 마가는 구브로 섬으로, 바울과 실라는 소아시아 다소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훗날 바울이 마가를 자신의 동역자로 인정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긴 것을 보면(딤후4:11) 바나바의 포용력있는 선택이 옳았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을 고쳐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바울보다 바나바가 먼저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이와 같이 지식과 능력에 있어서는 바울이 앞섰지만 깊고 폭넓은 인간 이해와 사랑에 있어서는 바나바가 먼저 모범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가를 훗날 포용하게되는 바울이 그 일을 통하여 사실은 바나바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 이해와 사랑이 인간의 지식과 능력보다 앞서는 것임이 분명하다면 바나바는 바울의 부족한 점을 메꾸어주고 그를 보다 완전하게 이끌어준 선배격인 성숙한 사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환언하면, 칼과 같은 성격의 바울에 비해서 바나바는 방패와 같은 인물이었다. 자신의 믿음만 지킬 뿐 아니라 동역자까지 지키고 세워주고자하는 깊은 배려와 넓은 마음을 가진 멋진 사도가 바로 바나바였던 것이다(14:12). 그래서 선입견없는 이방인들의 눈에도 바나바가 바울보다 더 젊잖게 보여서 그를 아비 신 쓰스에 비유하는 허퍼닝까지 발생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