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95

55. 하박국(작성자; 손진길 목사)

55. 하박국 (1)하박국은 유다 왕국 말기의 선지자였다. 하박국은 생전에 성군 요시야가 BC 608년 므깃도에 나아가 애굽 군대를 막다가 허무하게 전사하는 것과(왕하23:29-30) 3년후 신흥 바벨론 제국의 군대가 갈그미스에서 애굽 군대를 격파하고 남으로 뒤쫓아와 유다 왕국마저 장악하면서 인질을 데려가는 과정까지(왕하24:1-3, 단1:1-4) 목도한 것으로 보인다(합1:6, 2:3). 이제 외세의 영향권아래 장악된 제사장 나라 유다 왕국은 어찌되는가? 선민 유다 백성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찌하여 제사장 나라가 세상 나라에 망하고 선민들이 이방 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내어 버려두시는 것일까? 하박국 선지자의 갈등과 번뇌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합1:2-4, 12-17..

54. 요엘(작성자; 손진길 목사)

54. 요엘 (1)브두엘의 아들 요엘은 BC 830년경 남조 유다 왕국 요아스 왕 때 사람으로 보인다(욜1:1). 그 이유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욜3:1) 라는 귀절이 있기 때문이다. 요아스 왕의 후계자인 유다 왕 아마샤가 북조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예루살렘 사람들과 함께 북쪽으로 끌려 갔다가 돌아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왕하14:13-22) 이 일을 예언하고 있는 요엘은 적어도 부왕인 요아스 시대의 선지자로 추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위의 귀절을 바벨론 포로들의 귀환 시기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적절하지 아니하다. 왜냐 하면, 유다 왕국이 주변 여러 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전쟁 포로들을 서로 먼 곳에 팔아 치우는 역사가 “욜3:4-8”에서 ..

53. 요나(작성자; 손진길 목사)

53. 요나 (1)아밋대의 아들 요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욘1:1). 이방 땅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너희들의 죄악이 하늘에 닿았다”라고 외치라는 사명이었다(욘1:2). 사명을 부여받자 선지자 요나는 생각했다. 큰 성읍 니느웨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으므로 회개하지 아니하면 멸망당할 것이라고 외친다면(욘3:2-4)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이 과연 회개할 것인가? 오히려 악담과 저주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돌로 쳐죽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보내어진 선지자는 수없이 보았지만 이방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회개하도록 외치는 선지자는 보도 듣도 못한 생소한 것이었다. 그래서 요나는 역사이래로 사명을 져버리고 도망을 친 최초의 선지자가 되었다. 그리고 당시..

52. 룻(작성자; 손진길 목사)

52. 룻 (1)BC 1100년경 사사시대에 베들레헴 출신 유다 족속 엘리멜렉이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흉년을 피해서 남동쪽으로 진행하다가 사해 건너 모압 땅에서 살게 되었다(룻1:1-2). 엘리멜렉이 죽자 과부가 된 나오미는 장성한 두 아들을 그 곳에서 결혼시켰다. 그 때 얻은 며느리 모압 여자가 오르바와 룻이었다(룻1:3-4). 불행하게도 이민 생활 십 년쯤에 두 아들 마저 죽어 버리고 집안에는 과부가 된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만이 남게 되었다(룻1:5). 마침 가나안 땅에 풍년이 다시 찾아 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귀국을 서두르게 된다(룻1:6-7). 그렇지만 이스라엘 땅이 가까와지자 나오미는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기억하게 되고 이방 여인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고 ..

51. 욥(작성자; 손진길 목사)

51. 욥 (1)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욥은(욥1:8) 동방 사람으로서 우스 땅에 살고 있었다(욥1:1,3). 여기서 욥의 족보를 알기 위하여 “우스”라는 지명을 본래 성경에 나타나는 인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해볼 경우 다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 째로, 호리 족장 디산의 아들 우스(창36:28). 둘 째로, 아람의 아들 우스(창10:22-23, 대상1:17). 셋 째로, 나홀의 아들 우스(창22:21). 이 셋 가운데 호리 족이 살고 있었던 에돔 땅이 가장 유력하다. 그 이유는 욥기에 등장하는 세 친구와 젊은 현자 엘리후 등이 모두 동방의 지혜를 가지고 욥을 설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선진 문명을 가지고 있었던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을 직선으로 잇는 길은 사해 남쪽 에돔 땅을 지나고 있는데 그렇다면 ..

50. 아하수에로 왕 (페르샤)(작성자; 손진길 목사)

50. 아하수에로 왕 (페르샤) (1)아하수에로 왕(재위 BC 486-465)은 다리오1세(재위 BC 521-486)의 아들이었다. 부왕인 다리오1세는 반정에 성공한 귀족들에 의하여 옹립된 왕이었으므로 그 성격이 원만하고 온건하였다. 따라서 선례를 쫓아 무난하게 제국을 이끌어 갔다. 특히 제국을 일으킨 고레스2세의 유지를 따르는데 모범을 보였다. 좋은 사례가 옛날 조서를 찾아내고(스6:1-15) 유다 총독 스룹바벨을 계속 유임시켜 고레스 왕의 약속대로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시켜준 것이다(학1:14-15, 슥4:6-9). 그렇지만 아하수에로 왕은 달랐다. 정복전쟁을 일으켜 보기좋게 성공함으로써 권신과 귀족들을 억누르고 방백과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싶었다. 그래서 즉위하자마자 그리스 정벌에 나섰으나 두 차례 ..

49. 모르드개(작성자; 손진길 목사)

49. 모르드개 (1)모르드개는 “퀸 메이커(Queen maker)”였다. 왜냐 하면, 그의 사촌 누이인 에스더를 왕비로 만드는데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실부모한 에스더를 자신의 집에서 잘 양육하여 왕비 간택에 내보냈다(에2:7-9). 그 때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유대 인 출신이라는 사실을 일체 고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에2:10). 자신이 원하면 조상과 출신 성분을 스스로 밝히지 않아도 무방한 이와 같은 당시 상황은 페르샤 제국이 얼마나 개방적이며 포용력있는 나라였던가하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아니하고 능력에 따라 국가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장을 해준 페르샤 제국이었기에 무궁한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유대 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아..

48. 에스더(작성자; 손진길 목사)

48. 에스더 (1)BC 930년경 이스라엘 제국이 남북으로 쪼개어졌을 때 남조 유다에는 세 지파가 남게 되었다. 다윗 왕조를 낳은 유다 지파 및 그들과 운명을 같이하는 베냐민 지파(왕상11:36, 12:21) 그리고 북조 여로보암 왕의 금 송아지 우상 숭배 정책을 피하여 월남(越南)해온 레위 지파였다(출32:4,26-29, 왕상12:28-32). 그런데 유다 왕국이 망하고 바벨론 포로가 된 세 지파가 BC 538년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갔을 때 그 지도자가 스룹바벨과 예수아였으므로 자연히 유다 지파와 레위 지파가 주축을 이룬다(스3:2,8). 그렇다면, 페르샤 땅에 남게된 베냐민 지파와 기타 유대 인들을 이끈 지도자는 누구였을까? 이에 대한 의문을 다소 해소해주고 있는 기록이 에스더서라고 할 수 있다. ..

47. 느헤미야(작성자; 손진길 목사)

47. 느헤미야 (1)느헤미야는 에스라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페르샤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인물이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었다. 첫 째로, 에스라는 명문인 대제사장 가문의 자손이었으나 느헤미야는 평범한 유대 인 하가랴의 아들로 기록되고 있다(스7:1-5, 느1:1). 둘 째로,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정통했으며 두루 학식을 갖춘 학자였으므로 아닥사스다 왕의 총애를 받았다(스7:6,12). 그러나 느헤미야는 수산 궁의 관리로서 출세하여 왕의 술을 책임지는 최측근 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다(느1:1,11). 이 자리는 조선 시대 상선 벼슬에 해당되며 오늘 날 차관급 대통령 비서 겸 부속실장이라고 볼 수 있다. 셋 째로, 에스라는 성전에 바..

46. 에스라(작성자; 손진길 목사)

46. 에스라 (1)에스라는 대제사장 예수아와 마찬가지로 유다 왕국 시대 마지막 대제사장이었던 스라야의 자손이다(왕하25:18-21, 스7:1). 그런데 예수아의 시대와 제사장이며 서기관이었던 에스라의(느12:26, 또는 학사 겸 제사장, 스7:11-12,21) 시대는 다르다. 팔십 년 정도의 시간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예수아는 스룹바벨과 함께 약 오만 명의 동족을 이끌고 고레스 왕 시대인 BC 53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제1차 귀환자였지만 에스라는 80년후 아닥사스다 왕 때인 BC 458년에 동족 이천 명 가량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제2차 귀환자였던 것이다(스7:7-10). 그리고 제1차 귀환 때는 바벨론 포로에서 갓 벗어난 감격의 시대였지만 제2차 귀환 때는 페르샤에서 자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