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95

35. 므낫세 왕(작성자; 손진길 목사)

35. 므낫세 왕 (1) 반쪽 제사장 나라였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 군대에 의하여 멸망당한 이유는 호세아서의 예언을 따르면 “이스르엘 별궁 사건”(예후 왕이 아합 왕가를 전멸시키고 그들의 우상 문화를 청산한 사건)의 교훈을 백성들이 완전히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여로보암2세 때부터 평화와 번영속에서 물질적 풍요로움만을 추구하면서 이와 같은 세상적 복을 가져다 준다는 소위 기복 신앙과 우상 문화에 깊숙히 빠져버린 결과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고 제사장 나라는 망해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BC 722년 이후 마지막 제사장 나라가 되어버린 남조 유다 왕국에서는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에 의하여 두 차례나 이방 신과 우상 문화를 일소시킨 대대적인 종교개혁 조치가(왕하18:3-8, 23:3-25)..

34. 이사야(작성자; 손진길 목사)

34. 이사야 호세아의 예언대로(호13:16)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 군대에 의하여 망하는 광경을 남조 유다 왕국에서 안타깝게 지켜본 선지자가 바로 이사야이다. 비록 두 사람은 동시대의 인물이지만(사1:1, 호1:1) 출생 지역과 선지자로서의 활동 기간이 다르다. 그 이유는 북 이스라엘 사람인 호세아가 여로보암2세의 통치기간 중에(BC 793-754)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오로지 호세아서를 기록하였을 뿐이지만 남 유다 왕국의 선지자인 이사야는 웃시야의 시대(BC 792-740) 부터 히스기야 왕 시대(섭정기간 13년 때문에 빠르면 BC 728-699년, 늦으면 BC 715-687년임) 까지 왕들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던 인물인 것이다(왕하19-20장, 대하26:22, 32:32). 참고로..

33. 호세아(작성자; 손진길 목사)

33. 호세아 (1)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 차례대로 나타난 세 사람의 대표적인 선지자는 엘리야, 엘리사, 호세아 이다. 그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각각 특징이 있다. 엘리야는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가 하나님 경외자를 극도로 탄압하던 시대의 선지자였다(왕상19:1-10). 이에 비해서 그의 후계자인 엘리사는 군대 장관 예후를 왕으로 삼아 아합 왕가를 전멸시키고(왕상19:16-18, 왕하9:1-10) 예후 왕가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전쟁으로 부터 이스라엘 왕국을 지켜낸 선지자이다(왕하6:24-7:20, 13:14-20). 끝으로 호세아 선지자는 이들과 달리 박해 시기도 전쟁 시기도 아닌 이스라엘 왕국 풍요의 시대 여로보암 2세 때의 선지자이다. 그렇지만 호세아서에 나타난 호세아의 예언은 엘리야, 엘리사의 예언과 ..

32. 엘리사(작성자; 손진길 목사)

32. 엘리사 (1) 엘리사는 하나님이 직접 선택하신 엘리야의 후계자였다(왕상19:16). 하나님의 뜻은 엘리야가 끝내지 못한 일을 엘리사가 마무리할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이다(왕상19:17-18). 이는 마치 모세가 못 마친 일을 여호수아가 마무리한 것과 같다. 엘리사는 스무 네 마리 열 두 겨리의 소를 동원하여 집안의 대 농장에서 밭갈이 작업을 하던 도중에 엘리야를 만났다. 다짜고짜 자신의 겉 옷을 벗어 던지며 엘리사를 제자로 삼겠다는 엘리야의 제의를 그는 즉시 받아 들였다. 그 당시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가 하나님 선지자를 극도로 탄압하던 시절인데 엘리사의 결단은 이례적인 것이다. 그 것은 엘리사가 이미 하나님 안에서 준비된 칠천 명의 의인 가운데 하나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왕상19:18). 생명의..

31. 엘리야(작성자; 손진길 목사)

31. 엘리야 (1)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종교적 암흑기였다. BC 930년경 초대 왕 여로보암이 금 송아지를 만들어 이를 여호와의 형상이라고 말하면서(왕상12:28, 출32:4) 섬기게 만든 이후 역대 왕들이 이 종교 정책을 고수해 왔다(왕상15:34, 16:26). 그런데 BC 870년경 아합 왕 시대에 들어와서는 왕비 이세벨의 고향 시돈에서 바알 신이 들어 왔으며(왕상16:31) 또한 남조 유다에서 쓰다가 버린 아세라 목상까지 들어 왔다(왕상14:23, 16:33).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선지자의 예언까지 철저히 무시하는(왕상16:34, 수6:26) 아합 왕 부부는 이와 같은 우상숭배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백성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국 내에서는 선지..

30. 오므리 왕(작성자; 손진길 목사)

30. 오므리 왕 (1) 남조 유다 왕국과 대치하며 남방 전선을 총괄하고 있던 이스라엘 왕국의 군대 장관이 오므리였다. 그는 바아사의 아들 엘라 왕 때 발생한 반란과 그 후의 내전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전체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인물이었다. 이 사실은 그가 뛰어난 군 지휘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살필 줄 아는 지도자라는 점을 의미하고 있다. 당시의 역사를 조금 더 살펴 보면, 수도 디르사에서 술을 마시던 엘라 왕이 왕성 수비대장 시므리에게 암살당하고 시므리가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반란 사건이 발생했다. 이 때 오므리의 부관들과 인근 백성들은 즉시 오므리 장관을 자신들의 왕으로 등극시키고 왕도 디르사를 향하여 진군하였다(왕상16:16-17). 오므리..

29. 바아사 왕(작성자; 손진길 목사)

29. 바아사 왕 (1) BC 930년경 솔로몬의 이스라엘 제국이 남과 북으로 쪼개어져서 북쪽에는 요셉 지파 에브라임 왕조가 자리잡고 남쪽에는 솔로몬의 후계자 르호보암 왕이 다윗 왕조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서 여로보암의 에브라임 왕조가 그 아들 나답의 대에서 어이없이 망하고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잇사갈 왕조가(왕상15:27) 등장하게 된다. 잇사갈 정권은 전쟁과 정변 속에서 정권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지만 그래도 BC 722년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할 때까지 존속하게 된다. 잇사갈 왕조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반 쪽짜리였지만 그래도 제사장 나라의 명분을 지니고 있었던 이스라엘 왕국이 왜 잇사갈 왕조의 이름아래 종말을 고하고 있는가? 그 이유를 잇사갈 왕조의 ..

28. 여로보암 왕(작성자; 손진길 목사)

28. 여로보암 왕 (1)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저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 어미의 이름은 스루아니 과부더라”(왕상11:26)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유다 왕국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솔로몬 시대에 내부 균열의 핵으로 떠오른 인물이 여로보암이었다. 그는 반대 세력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호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첫 째로, 그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민족 지도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에브라임 지파였다. 12지파의 리더는 역사적으로 요셉과 유다의 가문에서 나타났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한 여호수아, 왕정의 기틀을 마련해준 사무엘이 모두 요셉의 후손인 에브라임 지파였다. 그러나 그 열매를 얻은 자는 유다 지파였다. 예루살..

27. 르호보암 왕(작성자; 손진길 목사)

27. 르호보암 왕 (1) 르호보암은 솔로몬 왕의 아들이었다. 솔로몬 왕이 40년간 이스라엘 제국을 통치한 후 별세하자 왕자 르호보암이 41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르호보암이 40년간 왕자로 지내면서 직∙간접적으로 배우게 된 부왕 솔로몬의 치적과 과오는 다음과 같았다. 첫 째로, 솔로몬 왕의 가장 큰 치적은 국방을 튼튼히 하는 한편(왕상10:26-29) 해상 무역을 통하여 국부를 쌓은 것이다(왕상10:11, 15, 22-23, 9:26-28). 둘 째로, 또다른 치적은 왕궁과 성전 건축 뿐아니라 지방도시와 국경도시 건설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왕상9:10,15-19, 전2:4-10). 셋 째로, 솔로몬 왕의 과오는 크게 보아 두 가지였다. 가나안 족속을 건설 현장에 노예로 부려 먹었으며(왕상9:20-23) ..

26. 히스기야 왕의 하나님 발견(작성자; 손진길 목사)

26. 히스기야 왕의 하나님 발견 (1) 히스기야 왕은 왕자 시절에 부왕인 아하스가 내치와 외교에 있어서 각각 잘못하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보고서 어떻게 하면 이를 효과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을까를 무척 고민했던 청년이었다. 히스기야가 바라본 아하스 왕의 잘못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내정에 있어서 아하스 왕은 정치의 근본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아니하고 있었다. 국리민복에 도움만 된다면 검은 고양이든지 흰 고양이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풍요를 가져다 준다는 이방 신에게 자식까지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다(왕하16:2-4). 다음으로 외교에 있어서는 이리를 쫓아 낼려고 호랑이를 끌어 들이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북방의 두 나라 아람과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유다 왕국을 쳐들어 왔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