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29. 바아사 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13. 14:14

29. 바아사 왕

 

(1) BC 930년경 솔로몬의 이스라엘 제국이 남과 북으로 쪼개어져서 북쪽에는 요셉 지파 에브라임 왕조가 자리잡고 남쪽에는 솔로몬의 후계자 르호보암 왕이 다윗 왕조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서 여로보암의 에브라임 왕조가 그 아들 나답의 대에서 어이없이 망하고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잇사갈 왕조가(왕상15:27) 등장하게 된다. 잇사갈 정권은 전쟁과 정변 속에서 정권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지만 그래도 BC 722년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할 때까지 존속하게 된다.

 잇사갈 왕조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반 쪽짜리였지만 그래도 제사장 나라의 명분을 지니고 있었던 이스라엘 왕국이 왜 잇사갈 왕조의 이름아래 종말을 고하고 있는가? 그 이유를 잇사갈 왕조의 문을 연 바아사 왕에게서 찾아 보아야 할 것 같다.

 

(2) 바아사의 조상 잇사갈은(30:18) 유다의 바로 아래 친 동생이었다. 야곱의 첫 째 부인 레아의 다섯 번 째 아들이었으므로 그 역시 정통성을 가진 적자였다. 그러나 포용력있고 똑똑한 형님 유다의 그늘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제국이 분열될 때 잇사갈 지파는 유다 지파 다윗 왕조의 그늘을 떠났다.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다윗-솔로몬-르호보암 으로 이어 지는 다윗 왕조의 유다 지파가 멀리 북쪽 갈릴리 호수에 자리잡고 살고 있는 친 동생 집안 잇사갈이나 스불론에게 오랜 세월 무심했던 것이다. 수도 예루살렘에서 귀족 생활을 하고 있는 유다 지파는 가까이 살고 있는 베냐민 지파나 제사장 집안인 레위 지파가 친 동기간 처럼 느껴졌지 먼 변방 먼 친척이 되어 버린 그들에게 아쉬움이나 애정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관계, 이익 집단간의 이권 다툼 뿐이었던 것이다. 무시 당한 유다의 바로 아랫 동생 잇사갈의 복수가 그 후로 바아사의 권력욕을 빌려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3) 잇사갈 족속 바아사에게 정권을 잡을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무능했던 에브라임 왕조 여로보암 부자가 그 빌미를 제공했다. 여로보암 왕은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 왕의 군대에 쫓겨서 80만 대군 중 50만이 섬멸당하고 벧엘 지역마저 빼앗겨 버렸다(대하13:3,17-20). 그 아들 나답 왕이 복수에 나섰지만 예루살렘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블레셋 땅 깁브돈 성에서 발목이 잡혀버렸다(왕상15:25-27). 대군을 가지고도 작은 성 하나 점령하지 못하는 무능한 세겜 출신 왕에게 변방 갈릴리 족속들이 반기를 들었다. 그 중심에 에브라임 다음으로 정통성을 자랑하는 잇사갈 족속의 바아사 장군이 버티고 있었다. 그는 서슴없이 진중 모반을 일으켜 나답 왕을 암살해버리고 왕도를 세겜 성에서 북쪽 디르사로 옮긴 후 새 왕조, 잇사갈 왕조의 성립을 전격적으로 선포했던 것이다(왕상15:27-33).

 

(4) 칼로써 제사장 나라를 뒤집고 새 왕조를 열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바아사의 잇사갈 왕조가 역사적인 교훈을 다음과 같이 주고 있다.

첫 째로, 정통성이 약했기에 국내외적으로 끊임없는 전쟁과 정변에 휩쓸렸다. 정통성있는 다윗 왕조의 유다가 이스라엘 통일을 명분으로 계속 쳐들어 왔다. 바아사 왕은 24년 재위 기간 내내 전쟁에 시달렸다(왕상15:32-33). 정변은 같은 잇사갈 족속 내에서 일어났다. 왕성 수비대장 시므리가 바아사의 후계자 엘라 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나(왕상16:8-10) 즉시 전방 깁브돈에서 회군한 군대 장관 오므리에 의하여 그 세력이 꺾이고 말았다(왕상16:15-22). 반대파를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이된 오므리는 6년 후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기고 다시 6년을 더 통치하다가 자신 보다 더 악한 왕인 아들 아합에게 잇사갈 정권의 바톤을 넘기게 된다(왕상16:23-34).

둘 째로, 제사장 나라는 칼로써 지켜질 수가 없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백성들의 믿음 생활로 지켜지는 나라가 제사장 나라라고 볼 때 바아사의 칼로써 지켜지는 이스라엘 왕국은 더 이상 제사장 나라가 아니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왕상15:34). 그래서 제사장 나라를 회복해 나가고 있었던 유다의 아사 왕(왕상15:11-16)을 시기하여 일생동안 전쟁을 벌이고(왕상15:16) 민간 교류마저 완전히 차단시켜버리고 말았다(왕상15:17). 라마에 군사 분계선을 설치한 것이다(2:18). 그 결과 북조 이스라엘에는 무늬만 선지자 또는 사이비 선지자(왕상13:18)들이 나타나고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왕상14:9-10,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