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여로보암 왕
(1)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저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 어미의 이름은 스루아니 과부더라”(왕상11:26)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유다 왕국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솔로몬 시대에 내부 균열의 핵으로 떠오른 인물이 여로보암이었다. 그는 반대 세력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호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첫 째로, 그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민족 지도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에브라임 지파였다. 12지파의 리더는 역사적으로 요셉과 유다의 가문에서 나타났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한 여호수아, 왕정의 기틀을 마련해준 사무엘이 모두 요셉의 후손인 에브라임 지파였다. 그러나 그 열매를 얻은 자는 유다 지파였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땅을 차지한 눈의 아들 갈렙, 왕조를 차지한 다윗과 솔로몬 등이 그러했다.
둘 째로, 그의 아비가 요셉 지파 치고는 드물게 유다 왕조를 도왔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신원조회에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셋 째로, 그는 소년 시절부터 용력이 출중한 자였다. 그래서 예루살렘 외곽 요새인 밀로(Millo) 성을 증축할 때(왕상11:27) 부역 현장에서 솔로몬 왕의 눈에 띄여 일약 요셉 지파 전체의 공사 감독으로 출세하게 된다(왕상11:28).
넷 째로, 예루살렘에서 관리를 지낸 그의 아비가 일찍 죽는 바람에 과부가 된 어미 스루아니가 에브라임 족속이 많이 살고 있는 시골 마을 스레다로 이사와서 키운 자식이 여로보암이었다. 그런데 세겜과 요단 강 사이에 위치한 스레다는 이웃한 실로와 함께 요셉 지파의 대권을 향한 꿈이 머물고 있는 지역이었다. 왜냐하면 요셉의 유골이 세겜 땅에 묻혀 있는 관계로(수24:32) 에브라임 지파는 세겜 근방에서 부터 그들의 힘을 결집했기 때문이다. 일찌기 여호수아와 사무엘이 실로에서 그들의 뜻을 폈으며 역사적으로 언약궤가 머물었던 장소도 실로였던 것이다(Siloh, 수18:1,10, 삿18:31, 21:19, 삼상3:21, 4:1-4).
이와 같은 지연과 혈연 그리고 초대 왕 사울 같은(삼상8:20, 9:2) 특출한 용력 이 세 가지가 여로보암이 갖춘 반대파 리더의 자격이었다.
(2) 바야흐로 여로보암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다윗 제국을 별 어려움 없이 물려 받은 솔로몬은 고생을 모르고 자란 왕이었다. 그래서 머리는 좋았는지 몰라도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십 년 재위 기간중 전반기 이십 년 동안에는 백성들의 불만이 없었다. 그 이유는 비록 이십 년 동안 줄기차게 예루살렘 성전 신축 및 왕궁 증축 공사 등 대대적인 건축 공사를 벌여 왔지만 그 재원의 대부분을 홍해 지역 무역항을 통한 해외 무역에서 얻은 엄청난 수익금으로 충당했기 때문이었다(왕상9:26-28, 10:15,22-23, 인도까지 이르는 막강한 해상무역). 그러나 후반기 이십 년 동안에는 백성들에게 부담이 전가되었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욕심을 부려서(전2:4,10) 전국적으로 호화스러운 관청을 짓고 신 도시를 만들고 군사력을 강화했기 때문이었다(왕상9:17-24, 10:16-21). 무리한 공사로 재정에 압박이 오자 그 부담을 백성들에게 떠넘겼으며 노예로 충당되지 않는 건설 인력은 열 두 지파가 순번제로 이를 담당하도록 강제하였다. 한 마디로 솔로몬 왕의 집권 후반기는 백성들이 등골 빠지게 일하고 중세에 시달리는 대신에 왕 자신은 절대 관료제와 막강한 군사력에 의지하여 호화, 사치, 향락에 푹 빠져 있었던 시대였던 것이다(왕상11:1-13).
(3) 이와 같은 시대였으므로 친위 세력인 유다, 레위,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기타 이스라엘 열 지파의 장로들은 예루살렘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 감을 세겜을 중심으로 하여 찾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여로보암이 출신 성분도 좋고 초대 왕 사울처럼 용력도 출중하여 능히 그들을 이끌고 솔로몬에게 대항할 수 있는 왕의 재목이라고 여겨지고 있을 때, 바로 그 때에 요셉 지파의 또 다른 성지인 실로에서 선지자 아히야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예언이 터져나왔다. 여로보암이 요셉 왕조를 열 것이라는 것이다(왕상11:29-39). 이에 내부 균열을 직감한 솔로몬 왕은 여로보암을 살해할려고 했으나 여로보암은 백성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애굽으로 피신해 버리고 말았다(왕상11:40).
솔로몬 왕이 죽자 즉시 귀국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동하여 새로 즉위한 르호보암 왕 앞에 섰다(왕상12:3). 적자 재정을 물려 받은 르호보암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 조건(세금 감면, 왕상12:4)을 내걸었다. 에브라임 지파를 앞세운 이스라엘 열 지파의 분리 독립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마침내 여로보암은 세겜 땅에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이 되었다(왕상12:20).
(4) 여로보암 왕은 정치에는 유능했으나 영적으로는 무능했다. 세겜 성을 건축하고(왕상12:25) 벧엘 땅을 성지화시킴으로써(왕상12:29) 북쪽 백성들의 마음을 정치적으로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분리시킨 것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로 섬기며 왕이 함부로 제사장을 임명한 것 등은 치명적인 영적 잘못이었다(왕상12:28-33).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영적 무지를 일깨워 주기 위해서 금 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벧엘의 제단을 뒤집어 버리고 그의 손을 마비시켜 버리기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왕상13:1-5). 하나님의 사자에게 간구하여 손이 났고(왕상13:6) 왕비를 보내어 실로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을 다시 들을 수만 있다면(왕상14:1-18) 그 것으로 만족하였다. 예언을 귀담아 듣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종교적 개혁에 나서는 작업은 전무했던 것이다. 그 결과 22년 통치후 그 아들 나답이 왕권을 승계하였지만 그 다음 해 바로 정권이 잇사갈 족속인 바아사에게 넘어가고 말았다(왕상14:20, 15: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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