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아하수에로 왕 (페르샤)
(1)아하수에로 왕(재위 BC 486-465)은 다리오1세(재위 BC 521-486)의 아들이었다. 부왕인 다리오1세는 반정에 성공한 귀족들에 의하여 옹립된 왕이었으므로 그 성격이 원만하고 온건하였다. 따라서 선례를 쫓아 무난하게 제국을 이끌어 갔다. 특히 제국을 일으킨 고레스2세의 유지를 따르는데 모범을 보였다. 좋은 사례가 옛날 조서를 찾아내고(스6:1-15) 유다 총독 스룹바벨을 계속 유임시켜 고레스 왕의 약속대로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시켜준 것이다(학1:14-15, 슥4:6-9).
그렇지만 아하수에로 왕은 달랐다. 정복전쟁을 일으켜 보기좋게 성공함으로써 권신과 귀족들을 억누르고 방백과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싶었다. 그래서 즉위하자마자 그리스 정벌에 나섰으나 두 차례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의 기록이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그리스 전사”인데 아하수에로 왕에 해당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많은 전함을 이끌고 쳐들어 온 페르샤 왕 크세르크세스(Xerxes)는 전선에 까지 미모의 여성을 대동할 정도로 여성편력이 심한 자이다”라고 왕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2)원정 실패라는 외환이 내부 분열로 이어지지 아니하도록 아하수에로 왕은 귀국 즉시 귀족과 백성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무려 반 년 동안이나 전국 127개 도(道)의 귀족과 방백들을 차례로 초청하여 그들을 위무하였으며(에1:1,3-4) 마지막 일주일 동안은 도성 수산의 인민들과 함께 자리했다(에1:5). 대미를 장식하는 이 날에 아하수에로 왕은 끝까지 자리를 함께한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들에게(에1:11) 그들을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로 귀하게 여긴다는 표시로 일반적으로 중동 지역에서 결혼식 잔치 마지막 날 특별히 신랑 친구에게만 선보이는 신부의 모습 공개라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페르샤에서 가장 미모가 뛰어난 자신의 아내 와스디 왕후를 남자들만의 잔치자리에 불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렇지만 왕후 와스디는 이를 거절했다(에1:12). 왜냐 하면, 결혼 잔치도 아닌 자리에 그 것도 신랑 친구도 아닌 자들에게 새 신부도 아닌 자신이 하나의 여성으로서 얼굴을 보여 준다고 하는 것은 선례가 없는 일이며 자신의 깨끗함에 흠집을 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아하수에로 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했다. 권문세가 출신인 그의 아내가 감히 친정의 위세를 믿고서 국왕인 자신의 청을 거절함으로써 페르샤의 기둥인 일곱 방백 앞에서 자신의 위신을 추락시켜 버리고 잔치자리의 흥취마저 깨어지게 만든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와스디 왕후의 잘못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이에 격노한 아하수에로 왕은 함께 무안을 당한 일곱 방백과 공모하여 그만 와스디를 폐위시켜 버리고 말았다(에1:13-22).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은 일찌기 고레스2세를 도와서 신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렸던 공신 집안의 후예들이며 그 후 모반자 가우마타 왕을 쫓아내고 다리오1세를 옹립한 바 있어 그들 자신들도 부왕의 공신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지지를 받지 아니하고서는 아하수에로 왕이 단독으로 왕후를 폐위시키는 사안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쨋든 도도한 권문세가 출신의 왕비를 폐위시켜버린 아하수에로 왕은 다음부터는 집안 배경을 보지아니하고 왕비를 간택하기로 이 때 작심한 것으로 추정된다.
(3)4년 후 아하수에로 왕은 즉위 7년 째 되는 좋은 해를 맞이하여 왕비를 한 사람 더 얻었는데 이 때 최종적으로 간택된 처녀가 유대 출신 에스더였다(에2:16-18). 아하수에로 왕은 왕비 에스더를 사랑했으므로 그 사촌 오라비 모르드개까지 신임하여 대궐의 출입을 통제하는 관리로 등용했다(에2:9).
모르드개는 충직하게도 왕의 암살을 도모하는 내시 두 사람의 음모를 왕에게 알려주었다(에2:21-23). 수 년후 이 사실을 궁정일기에서 재삼 발견하게 된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모르드개를 가까이하게 된다(에6:1-11).
그런데 아말렉 출신인 하만이 그 사이 새로 재상이 되었다. 그는 모르드개와 반목하게 되자 반 유대주의 세력을 규합하여 전국적으로 유대 인을 모두 없애 버리고자 음모를 꾸몄다.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에게 자기 족속의 율법을 국법보다 앞세우는 사특한 무리가 있으니 이를 진멸할 수 있도록 전권을 위임해 달라고 요청했다(에3:8). 아하수에로 왕은 그들의 재물을 거두어 국고를 충실히 하겠다는 하만의 감언에 이끌리어 자세한 내막을 조사해 보지도 아니한 채 그만 하만의 요구대로 조서를 내리도록 응락해주고 말았다(에3:9-15).
(4)아하수에로 왕 12년(BC 474)에 왕은 하만이 요구했던 일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죽음을 무릅쓰고 상소한 내용에서 진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자신의 왕비 에스더와 충신 모르드개가 모두 유대 인들이며 그들의 동족이 애써 지키고자 하는 하나님 경외사상 때문에 하만과 반 유대주의자들로 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기가 막힌 내용이었던 것이다. 아하수에로 왕은 제국을 건설한 국조 고레스 왕 그리고 아버지 다리오 왕의 정책, 곧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유대 인들의 하나님 숭배 허용 정책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만을 제거하고 친 유대인 정책을 그대로 유지해 주었다.
하나님은 고레스 왕의 정책을 승계해준 아하수에로 왕에게 제국의 평안과 든든한 후계체제로 보응해 주셨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이 편안히 임종하자 그의 아들 아닥사스다1세가(재위 BC 465-424) 무리없이 그 뒤를 승계했다. 그리고 아닥사스다 왕은 유대 인 제사장 에스라와 유대 인 관리 느헤미야를 측근에 두었으며 또 한 차례의 유대 인 귀환을 허용해 주는 등 선왕 아하수에로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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