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69

王의 비밀39(작성자; 손진길)

王의 비밀39(작성자; 손진길) 부윤, 청진, 라남 등 부령의 남부에 있는 세 성읍을 향하여 야율종진의 군대가 남진을 하고 있다. 추장인 야율종진과 함께 가장 선두에서 말을 나란히 하여 달리고 있는 인물이 야율애령과 부령의 성주인 왕호달이다. 부령에서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80리 정도 떨어진 위치에 부윤성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곳에 십리쯤 접근하였을 때에 왕호달이 야율종진에게 말한다; “소신이 먼저 부윤성으로 들어가서 성주인 왕윤달에게 투항하도록 권유하겠습니다. 그러니 군대를 이곳에서 멈추시고 반 시진만 기다려주십시오”. 그 말을 듣자 야율종진이 머리속으로 깨닫는 것이 있다. 그래서 얼른 말한다; “왕성주 그대의 이름이 왕호달인데 부윤성주의 이름이 왕윤달이군요. 그렇다면 두사람은 같은 항렬의 일가가 아니..

王의 비밀38(작성자; 손진길)

王의 비밀38(작성자; 손진길) 무산에서 출병하기 이틀전에 추장인 야율종진이 야율촌장인 하타르와 훈련대장인 퉁우람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내일 모레 출병할 병사들이 사용할 군량미로 어떤 것들을 준비하고 있나요?”. 그들의 답변이 똑같다; “여진족 기마병의 전투식량은 전통적으로 마른 미수가루와 물통에 든 물입니다. 그것이면 한달은 끄떡없이 버틸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야율종진이 한가지를 요청한다; “잘 알겠습니다. 부피도 적고 무게도 가볍군요. 그런데 저는 한가지 품목을 추가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각 가정에 통지하여 말린 육포나 생선포가 있으면 전부 군량미로 사용하겠다고 말하고서 돈을 주고 정당하게 사들이도록 하세요. 하촌장 그 정도의 자금은 있습니까?”; 하타르 촌장이 싱긋 ..

王의 비밀37(작성자; 손진길)

王의 비밀37(작성자; 손진길) 서우진이 개경 자신의 저택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때는 따뜻한 4월 초순이다. 이제는 완연한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고 각종 식물이 싹을 띄우며 벌써 연산홍 나무는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므로 서우진도 기지개를 켜야만 한다; 구체적으로, 무산에서 출발하여 서쪽 혜산에 이르기까지 정복전쟁을 수행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재산을 절반 가까이 투자했다. 그 결과 작년 1180년 11월 중순에 무산의 땅을 사들이고 12월에는 야율촌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무산 주위의 동여진 땅에서 야율족이라는 정체를 숨기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던 백성들을 1,000명이상 모아 들였다. 그들 가운데 장정 200여명을 금년 1181년 1월부터 지금까지 퉁우람과 퉁예란..

王의 비밀36(작성자; 손진길)

王의 비밀36(작성자; 손진길) 1181년 3월 21일에 서우진은 애령, 야율상 부부, 대장장이 투란과 더불어 혜산성 바깥에 있는 교외마을의 조용한 주막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서우진은 그날 잠이 들기 전에 애령이 알아낸 정보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행동방향을 조정해본다. 그가 마음속으로 정리하고 있는 내용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야율종진의 짐작대로 완안족의 첩자들이 은밀하게 혜산을 방문하여 군사용지도를 작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지도를 활용하여 그들은 혜산을 비롯하여 두만강과 압록강 지역을 점령하고자 멀지 않아 군사행동에 나설 것이다. 둘째로, 완안족이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대금의 군대를 동원하여 남침을 하는 시기는 빠르면 3달 늦어도 4달 안에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완안족 추장인 완안웅의 동생이라..

王의 비밀35(작성자; 손진길)

王의 비밀35(작성자; 손진길) 1181년 3월 18일에 야율종진과 애령은 야율상 부부 및 대장장이 투란과 함께 영주성을 출발하여 혜산으로 말을 달린다. 투란은 집에서 키우고 있는 자신의 말을 타고서 동행하고 있다. 여진족은 전부 자신의 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동에 있어서 편리하다. 여진족은 어려서부터 남녀를 불문하고 말을 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기마민족의 전통을 그들은 그렇게 대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봄이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개마고원은 여전히 차가운 날씨이다. 그렇지만 말을 달리니 몸에서 열기가 난다. 그들은 옷을 많이 입고 털가죽으로 된 외투를 걸쳤을 뿐만 아니라 털모자까지 쓰고 있다. 그러니 서우선을 비롯한 4인은 별로 추위를 느끼지 아니하고 혜산지역까지 3일만에 당도한다. 혜산은 백두산에..

王의 비밀34(작성자; 손진길)

王의 비밀34(작성자; 손진길) 1181년3월 10일에 서우진은 애령과 야율상 부부를 데리고 4필의 말을 타고서 개경을 출발한다. 그들은 간단한 행장을 꾸린 채 동북면 화주로 말을 달리는 것이다. 3월 13일에는 화주의 주막에 말 4필을 맡겨 두고 그들은 은밀하게 산을 타는 애령의 뒤를 따라 무사히 고려의 국경을 통과하여 함주로 들어간다. 서우진과 애령이 야울상 부부를 데리고 그곳에서 말사육장을 운영하고 있는 하후란을 만난다. 야율상과 금하란을 만난 하후란이 깜짝 놀라 인사하면서 말한다; “야율공과 금하란 유모님이시군요. 7년전의 전란을 피하신 것으로 저희들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정정한 모습을 보니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무예선생인 퉁투랑의 아내인 하후란입니다”. 그 말을 듣자 야율상이 하후란에게 말..

王의 비밀33(작성자; 손진길)

王의 비밀33(작성자; 손진길) 야율종진이 하타르 촌장에게 말한다; “하촌장에게 오늘 특별히 부탁할 내용이 3가지나 있군요; 첫째로, 약 3개월 후에 완안웅이 완안족의 전사와 만주에 있는 금나라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의주성, 강계성, 온성의 대웅국 등을 치고자 남진을 한다는 가정을 세우고 우리의 군사적 대응방침을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 이미 함께 논의한 내용이지만 그것을 야율종진이 다시 한번 정리하여 말하고 있다. 하타르가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고서 야율종진이 구체적인 사항을 덧붙여 말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무산에서 출병하여 서진함으로써 혜산까지 점령하여 먼저 야율족의 영토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우방의 군대와 연합하여 적을 북으로 밀어내는 것입니..

王의 비밀32(작성자; 손진길)

王의 비밀32(작성자; 손진길) 5. 군대를 이끌고 무산에서 혜산까지 서우진이 애령과 함께 함주에 도착하여 하후란을 만난 때가 1181년 2월 9일이다. 말사육장에서 말을 돌보다가 야율종진과 야율애령이 걸어서 마장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서 하후란이 반색을 하며 반긴다. 그리고 말한다; “잘 오셨습니다. 마침 제가 두 분께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 반갑게 인사하다가 두사람이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하후란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그동안 흩어진 야율족을 은밀하게 모아서 저희 마장에서 말을 돌보는 일꾼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수가 많아져서 저는 절반 정도의 야율족 일꾼을 차제에 무산에 조성이 되고 있는 야율촌으로 보내고자 합니다. 그러니 가시는 길에 함께 데려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王의 비밀31(작성자; 손진길)

王의 비밀31(작성자; 손진길) 야율상은 개봉에서 임안까지 갈 때에 회수로도 불리고 있는 회하와 양쯔강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장강을 건너기 위하여 쌍두마차를 2차례나 선박에 싣고서 운반했다. 이제 임안에서 연경으로 북상하는 길에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게다가 한번 더 마차를 선박에 싣고 운반하게 된다. 그 이유는 회수 이북에 황하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회수의 이북을 화북, 그 이남을 화남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황하의 이북 일부지역을 하북, 그 이남의 좀 떨어진 지역을 하남이라고 부르고 있다; 어쨌든 야율상은 개봉의 약간 북쪽에서 황하를 건너기 위하여 쌍두마차를 배에 싣는다. 운반료가 비싸지만 어쩔 수가 없다. 4명이 그 쌍두마차로 달려야 연경까지 빨리 당도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王의 비밀30(작성자; 손진길)

王의 비밀30(작성자; 손진길) 야율상이 쌍두마차에 서우진 일행을 태우고 빠른 속도로 마차를 몰고 있지만 개봉에서 임안까지는 무려 5일이나 걸린다. 그만큼 먼 길이다. 특히 그 사이에는 회하 또는 화이수이강이라고 하는 작은 강과 장강 또는 양쯔강이라고 부르고 있는 큰 강이 버티고 있어서 배에 마차를 싣고서 두차례나 건너야 한다; 서우진이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 살펴보니 대금과 남송 사이에는 자연적인 장애물이 엄청나다. 강과 호수 그리고 늪지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군이 침입을 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은 지형이다. 그러한 지리적인 잇점이 있으므로 1127년에 화남지역에 남송이 건설이 될 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역사적으로 당시 송나라의 황제인 흠종의 이복동생 고종이 남으로 피신하여 군대를 재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