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31(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30. 12:18

王의 비밀31(작성자; 손진길)

 

야율상은 개봉에서 임안까지 갈 때에 회수로도 불리고 있는 회하양쯔강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장강을 건너기 위하여 쌍두마차를 2차례나 선박에 싣고서 운반했다. 이제 임안에서 연경으로 북상하는 길에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게다가 한번 더 마차를 선박에 싣고 운반하게 된다. 그 이유는 회수 이북에 황하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회수의 이북을 화북, 그 이남을 화남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황하의 이북 일부지역을 하북, 그 이남의 좀 떨어진 지역을 하남이라고 부르고 있다;

어쨌든 야율상은 개봉의 약간 북쪽에서 황하를 건너기 위하여 쌍두마차를 배에 싣는다. 운반료가 비싸지만 어쩔 수가 없다. 4명이 그 쌍두마차로 달려야 연경까지 빨리 당도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 자신의 자동차를 페리호에 싣고서 강이나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다.

그렇게 3차례나 선박을 이용해서 그런지 남송의 수도인 임안에서 대금의 수도인 중도 또는 연경까지 도착하는데 열하루나 걸린다. 그래서 118119일이 되어서야 야율상이 몰고 있는 쌍두마차가 서우진 일행을 싣고서 연경에 도착한다.

벌써 연경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야율상이 자랑스럽게 서우진과 애령 그리고 자신의 아내인 금하란에게 외친다; “바야흐로 대금의 수도인 중도 곧 연경이 전개되고 있어요. 참고로 말씀을 드리자면, 연경은 그 옛날 전국시대 연나라의 수도라서 지금도 연경이라고 불리고 있지요. 공식적으로는 대금의 중도입니다”.

조금 숨을 쉬고서 야율상이 이어서 말한다; “연경의 북쪽과 서쪽은 산악지대이고 동쪽과 남쪽이 들판입니다. 높은 산맥이 사막의 기운을 막아주고 있어서 북경에서도 농사가 가능하지요. 하지만 비가 적어서 농업용수가 부족합니다. 연경의 서남쪽으로 흐르고 있는 해하의 지류인 차오바이강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수량이 적습니다”;

야율상의 말이 맞다. 북쪽의 가장 큰 강인 황하의 수량 자체가 남쪽의 큰 강인 양쯔강과 비교할 때 그 20분의 1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래서 중원사람들은 강남은 물이 너무 풍부하고 강북은 물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형편이니 황하보다 작은 강 해하의 지류인 차오바이강은 별로 수량이 많지 아니한 것이다.

그래서 900년 이상이 지난 먼 훗날 양쯔강의 물을 북경과 천진까지 끌어오는 지하 대수로 공사가 진행된다. 그 공사의 이름이 남수북조이다. 무려 1,400km 이상의 수로공사를 하여 비로소 북경과 천진 그리고 산동지방에서는 필요한 물의 70% 이상을 장강에서 얻고 있다;

서우진 일행이 방문하고 있는 1181년 당시의 연경은 지하수를 엄청 개발하여 필요한 물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수질이 좋지가 않다. 지하의 석회석이 그대로 녹아 있는 물이다. 그러므로 식수로는 아주 좋지가 못하고 농업용수로는 쓸 수가 있다. 하지만 서민들은 그 물이라도 걸러서 먹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차이를 서우진 일행은 금방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이 좋은 화남지방에서 북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령과 금하란이 빨리 연경을 떠나 산동반도로 가자고 말한다. 그곳에서 무역선을 타야 고려의 개경으로 되돌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야율상이 서우진에게 슬쩍 말한다; “그렇지요, 남송의 수도와 비교할 때 대금의 수도인 연경은 별로 볼 것이 없습니다. 본래 유목민인 여진족이 대금을 세우고 중원의 북쪽을 점령하였지만 그들은 검소한 생활에 익숙합니다. 더구나 성군으로 불리고 있는 지금의 대금 황제인 세종이 남송의 사치와 향락문화를 본받지 말라고 지도층에게 강조하고 있지요. 그러니 여인들이 연경보다는 임안을 더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말한다; “그렇다면, 내일 바로 산동반도의 등주를 향하여 남진을 하십시다. 개경을 떠나온 지가 너무 오래 되었어요”. 모두들 찬성이다. 그래서 서우진 일행은 1181112일에 대금의 수도인 중도를 떠나 남쪽으로 간다.

야율종이 쌍두마차를 빨리 몰면서 일행에게 말한다; “연경을 대강만 보시고 말았기에 제가 조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한족들이 수도로 삼은 곳은 연경이 아니라 장안입니다. 그런데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연경을 남경이라고 부르면서 제2의 수도로 중시하기 시작했지요”;

조금 숨을 쉬고서 야율상이 이어서 설명한다; “1125년에 요나라를 멸망시킨 여진족의 금나라가 대금의 수도를 여전히 하얼빈인 상경에 두고 요양성을 동경으로 부르면서 중시했지요. 1153년에는 아예 수도를 연경으로 옮기고 그 이름을 중도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렇게 천도를 한 이유는 대금의 영토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그 다음에는 중원으로 계속 넓어졌기 때문이지요. 일국의 수도라고 하면 역시 영토의 중심부에 위치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내가 야율족의 수도로 삼고자 하는 혜산이 백두산에서 100리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나중에 내가 동북여진의 땅을 모두 차지하게 되면 수도를 북쪽으로 천도를 해야 하겠구나. 그렇다면 길림성 정도의 위치라야 한다… ”;

  

서우진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야율상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애령과 금하란은 마차 안에서 마주 앉아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야율상이 점점 쌍두마차를 빨리 몰고 있다. 그도 빨리 산동반도의 등주에 도착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서우진 일행은 5일만에 등주에 당도한다.

야율상이 등주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쌍두마차를 좋은 값을 받고 되판 것이다. 그 다음에 고려의 벽란도로 가는 무역선을 알아보고서 3일 후에 출발하는 배편을 예약한다. 그리고 이틀동안 그 지방의 좋은 상품을 사러 다닌다. 그가 사들이는 것이 서적류와 도화첩 그리고 비단과 약재 등이다;

서우진이 벽란도에 도착한 날이 1181125일이다. 벽란도에서 개경까지는 교통이 발달이 되어 있다. 해외서 들어오는 상품과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마차가 성업 중이다. 따라서 서우진과 애령 그리고 야율상 부부는 어렵지 않게 다음날 개경에 있는 야율상의 저택에 도착한다.

그들이 개경을 떠나 중원으로 여행길에 오른 때가 11801127일이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126일이 되어서야 다시 개경에 있는 야율상의 저택에 당도한 것이다. 그러니 이번 여행에 소요된 날수가 무려 2달이나 된다. 그래서 서우진과 애령이 야율상의 저택에 오래 머무르지 아니하고 작별을 고하면서 개경시내 북촌에 있는 자신들의 집으로 향한다.

철원댁이 저택을 잘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서우진이 애령을 통하여 철원댁에게 넉넉하게 사례한다. 그리고 다음날 숙부 서화평에게 문안인사를 다녀오고 그 다음에 사부 김숙번에게도 인사차 다녀온다.

서우진이 재상인 서화평이나 무예선생인 김숙번에게서는 별다른 정보를 얻지를 못한다. 그가 여행을 다녀온 2달 사이에 개경과 사형들의 영토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발생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래서 서우진은 자신이 대금과 남송의 땅에서 보고 들은 것을 간추려서 사형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그가 간단하게 정리한 내용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지금의 대금 황제와 남송의 황제는 서로 불가침 평화조약을 맺고서 내부적으로 제국의 국력을 키우고자 무서운 경쟁을 하고 있다. 치수사업을 통하여 농업의 생산량을 늘리고 문물을 발전시키기에 힘쓰고 있다. 그 결과 두 제국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둘째로, 정치적으로 보자면 남송보다는 대금이 불안하다. 그 이유는 중원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는 대금이지만 그 지배민족인 여진족의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300만명도 되지 아니하는 여진족을 가지고 그 7배나 되는 한족을 통치한다고 하는 것이 힘이 든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유목민족들을 많이 대금으로 유입시키고 있다. 그 결과 거란족과 몽골족이 여진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불안하다. 그들 유목민들은 정착식 농업이 서툴러서 경제적으로 궁핍하다. 따라서 현재 대금의 조정이 그들을 고용하고 먹여 살리고 있다. 만약 재정이 어려워진다고 하면 거란족들이 가만 있지 아니할 것이다. 참고로 거란족들의 생활의 모습이 다음과 같다;

셋째로, 대금의 변방인 동만주에서 완안웅이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대금의 군대를 사용하여 사형들의 땅을 침략하게 된다면 대금 황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과연 대군을 몰고서 그 전쟁에 참여할 것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어렵다고 본다. 그 이유는 국력이 커진 남송에게 북침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쪽에서 몽골과 거란에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그들이 북과 서에서 대금의 중원 땅으로 쳐들어올 것이다;

 그러한 전략을 구사한다면, 우리는 완안웅과 그가 동원하는 만주의 대금의 군대를 우리 연합군의 힘으로 충분히 격파할 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서우진이 동일한 내용의 서신을 2통 만들어 2곳을 방문하여 전달한다; 하나는, 강계성에 있는 사형 채고수에게 가는 것이다. 그래서 월향루의 행수인 월향에게 전달한다. 또 하나는, 온성에 있는 사형 김영웅에게 가는 것이다. 따라서 청도관의 관주인 청객 김성곤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서우진이 애령에게 그 내용을 머리속에 암기하도록 부탁한다. 그 다음에 의주성에 살고 있는 이린과 그의 아내인 문나옥을 만나서 그 내용을 전달하라고 말한다. 애령이 7일만에 그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개경의 집으로 돌아온다.

서우진이 애령에게 묻는다; “의주성에서는 별고가 없던가요?”. 애령이 간단하게 대답한다; “아직 완안웅이 쳐들어오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성주인 조금강 사형이 군사들의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해요. 그러니 우리들도 빨리 무산에 야율촌을 만들고 병사들을 양성해야만 해요. 주공께서는 언제 무산으로 떠나실 생각이세요?... ”.

그 말을 들은 서우진이 간단하게 대답한다; “이곳 개경에서 급한 일을 마쳤으니 모레쯤 이곳을 떠나 무산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이곳보다는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더 많지요. 고려의 국경을 통과하면 함주에 들러서 말사육을 하고 있는 하후란부터 만나도록 합시다. 우리도 서둘러야 해요. 빨리 군대를 만들어 사형들의 전쟁에 참여해야 합니다… “;

서우진이 애령과 함께 개경을 떠난 때가 118126일이다. 그들은 익숙하게 말을 타고 화주에 가서 주막주인에게 말 2필을 맡긴 다음에 고려의 국경을 벗어난다. 이제 함주에서 하후란을 만나고 무산으로 가서 하타르와 그의 조카인 퉁우람과 퉁예란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여진 땅에서 그들은 어떤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