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의 비밀33(작성자; 손진길)
야율종진이 하타르 촌장에게 말한다; “하촌장에게 오늘 특별히 부탁할 내용이 3가지나 있군요; 첫째로, 약 3개월 후에 완안웅이 완안족의 전사와 만주에 있는 금나라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의주성, 강계성, 온성의 대웅국 등을 치고자 남진을 한다는 가정을 세우고 우리의 군사적 대응방침을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
이미 함께 논의한 내용이지만 그것을 야율종진이 다시 한번 정리하여 말하고 있다. 하타르가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고서 야율종진이 구체적인 사항을 덧붙여 말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무산에서 출병하여 서진함으로써 혜산까지 점령하여 먼저 야율족의 영토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우방의 군대와 연합하여 적을 북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미 야율종진이 말한 내용과 동일하다. ‘그 다음의 지시사항은 무엇일까?’, 궁금하여 하타르가 경청한다. 그러자 야율종진 추장의 말이 들려온다; “둘째로, 전쟁기간 중에 우리는 완안웅의 본거지인 길림성과 하얼빈성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동족들을 구출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침투조를 파견하여 완안웅을 암살하고 수령을 잃은 완안족이 혼란을 겪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듣자 하타르가 고개를 끄떡인다. 그렇다. 적은 수의 병사로 많은 적을 물리치고 포로까지 구출해내자면 그 방법이 최선이다. 하타르 촌장이 이해하자 야율종진이 이어서 말한다; “그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적의 지형에 익숙하고 또한 적의 수뇌를 암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야율족 전사를 발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한 능력자를 발견하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제가 함께 세부계획을 세우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하타르가 깜짝 놀라면서 묻는다; “그 말씀은 추장님께서 침투조를 데리고 그 작전을 직접 수행하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러한 각오이십니까?”. 그 말을 들은 야율종진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이미 제가 우리 야율족 신민들에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이번 전쟁에 앞장을 선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 약속대로 제가 선두에 서서 그 일을 실천해야지요. 하하하… “;
하타르는 지금까지 야율종진이 지혜가 뛰어나고 통솔력이 있는 인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서우진이 학문에만 능통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전쟁에 있어서 전사로서 참전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서우진의 능력은 어디까지인 것인가? 하타르 촌장이 의아해하면서 서우진 곧 야율족의 추장인 야율종진을 쳐다본다.
그러자 야율종진이 이번에는 쉬운 지시사항을 말한다; “셋째로, 출전준비를 위하여 야율족 장정에 대한 군사훈련과 대장간에서의 병장기 생산이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에 이 방에서 식사를 함께하면서 내가 여러사람들에게 그 일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하촌장은 퉁우람과 퉁예란 그리고 대장장이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나와 함께 만찬을 하도록 합시다”;
지시사항이 하나같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하타르가 여러 번 고개를 끄떡이다가 돌아간다. 그러자 야율종진은 애령을 불러서 오늘 저녁에 추장의 방에서 만찬을 가질 것이니 하주옥과 함께 준비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야율애령이 묻는다; “참석인원이 몇 명이나 됩니까?”. 야율종진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우리 부부와 하촌장, 퉁우람과 퉁예란, 그리고 대장장이 한두 분이 될 것입니다”.
그날 곧 1181년 2월 17일 저녁에 야율족의 추장인 야율종진은 만찬자리에서 구체적인 전쟁준비에 대하여 하타르 촌장을 위시한 여러 신료들에게 말한다. 그들은 충분히 납득하면서 고마워한다. 사실 그들의 친척들이 아직도 완안족에게 사로잡혀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그들을 해방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날 야율종진과 야율애령은 하타르 촌장에게 뒷일을 맡기고 무산촌을 떠난다. 그들 부부는 바로 함주로 가지를 않는다. 이번에는 무산에서 혜산까지의 지형을 살피고자 한다. 아무리 말을 타고 달리면서 지형지물을 살핀다고 하더라도 정찰을 하는 것이므로 시일이 상당히 걸린다. 그래서 7일간이나 꼼꼼하게 지형을 탐사한다.
혜산에서 함주로 향하면서 야율종진이 애령에게 말한다; “개경에 가서 야율상 재상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혜산을 다시 방문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겠군요. 무산에서는 벌서 야율촌을 만들고 군사훈련에 들어가고 있는데 혜산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기 때문이지요… “;
그 말을 듣자 야율애령이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한가지 제안을 한다; “야율재상과 함께 이곳에 들리게 되면 저는 그와 함께 영주성에 살고 있는 투란의 대장간을 방문하고 싶어요. 투란이 만약 혜산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야율족의 특산품을 생산할 수만 있다면 개경에서 팔아 전쟁자금을 마련할 수가 있을 거예요… “;
그 말을 들은 야율종진이 궁금하여 묻는다; “야율족의 특산물 가운데 대장간에서 만드는 것도 있어요?”. 야율애령이 생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럼요. 혜산에서는 동광석이 많아요. 그것으로 대장간에서 만든 동거울이 유명하지요. 그리고 동으로 만든 여러가지 제품, 특히 여인들의 노리개가 인기가 많고요… “. 야율종진인 서우진이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2월 28일에 함주에 도착한 그들은 말을 하후란에게 맡기면서 그녀에게 말한다; “11가정을 무사히 무산의 야율촌에 입주시켰어요. 그리고 퉁우람과 퉁예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장정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는 중책을 맡고 있지요. 멀지 아니하여 완안족을 쳐부수고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동족들을 구출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집의 가장도 데려와야 하지요… “.
고마워하는 하후란을 뒤로하고 다음날 야율종진과 야율애령이 국경선을 은밀하게 통과하여 고려의 국경도시 화주로 들어온다. 그날이 3월 2일이다. 서우진과 애령은 그곳 주막에 맡겨 둔 2필의 말을 찾아서 개경으로 달린다. 그리고 개경에 들어서자 곧바로 야율상의 저택을 찾는다.
야율상 부부가 두사람을 반갑게 맞이한다. 서우진은 야율상에게 애령과 함께 무산의 야율촌을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야율상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물어본다; “무산에서는 하타르 촌장의 지휘아래 어느 정도 전쟁준비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와 야율재상이 영주성의 투란의 대장간과 혜산을 방문하여 특산품 제조시설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은밀하게 야율촌을 형성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
서우진이 잠시 말을 끊고 야율상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가 긴장한다. 그래서 서우진이 조용하게 말한다; “나는 야율재상이 언제 현지로 출발할 수가 있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마는… “. 야율상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한다; “저도 사실은 아내와 그 문제를 상의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자녀와 친척들이 혜산과 영주 사이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
야율재상이 갑자기 말을 끊고 있기에 이번에는 서우진이 긴장한다. 그래서 그의 말을 기다린다. 드디어 야율상이 결심한 듯이 설명한다; “7년전 완안족의 침략으로 야율족의 마을은 완전히 파괴가 되고 대부분의 장정들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남은 유부녀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피신하여 객지에서 오만고생을 다하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처지에 다시 야율족의 부흥운동을 전개한다고 하니 개마고원 일대에서는 동족들의 의견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
서우진이 알아들었다. 그 말을 듣고서 그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는다. 그러면서 천천히 말한다; “야율재상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왜 아니 그렀겠습니까? 7년전에 야율족은 벌써 망한 족속입니다. 그런데 이제 겨우 피신하여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그들을 모아서 완안족과 전쟁을 하겠다고 하니 도저히 승산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요. 그러므로 혜산에 야율촌을 재건한다고 하더라도 몇 사람 모이지 아니할 것이 뻔하지요… 그래서 나는… “.
서우진이 말을 끊고서 야율상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나서 야율종진이 강하게 말한다; “나는 야율족이 망하지 아니했으며 더욱 막강한 족속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써 모든 부족원들에게 금년 안에 반드시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러니 야율재상은 나를 믿고서 이번에 함께 현지를 방문하도록 하지요. 모든 사실은 금년안에 내가 확실하게 현실로 보여줄 것이니까요… “.
머리가 너무 좋은 재사 곧 재주가 있는 선비는 앞과 뒤를 계속 점검하고 확실한 현실이 아니면 믿지를 않는 습관이 있다. 지금 야율상이 그러하다. 그러나 서우진은 다르다. 그는 문과 무에 두루 뛰어난 인물이다. 특히 자신의 사병만 있으면 능히 여진족의 한 족속 정도는 너끈하게 쳐부술 능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서우진은 야율재상이 까무러칠 미래를 한번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한 야율종진이기에 문신에 불과한 야율재상에게서는 당장 큰 것을 바라지 아니하고 있다. 그저 혜산과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야율족들을 규합하여 공방에서 상품이나 생산하고 전체적으로 여진 땅에 살고 있는 야율족에 대한 실태파악만 제대로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일단 야율종진이 야율족의 전사들을 이끌고 무산에서 출발하여 혜산까지를 점령하고 나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때에는 야율상이 진짜 종진국의 재상으로서 나라를 잘 다스릴 것으로 야율종진이 판단하고 있다.
야율상은 나이가 하타르보다는 5살 정도 위이지만 하촌장과는 달리 무예를 익히지 아니하고 있다. 그는 재물관리에 밝은 신하이며 높은 학문과 넓은 식견으로 넉넉하게 내치를 잘 감당할 수 있는 재상이다. 그러나 야율상은 결코 군대를 지휘하여 적과 전투를 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므로 전쟁을 염두에 두고있는 추장 야율종진 앞에서는 그의 행동이 마냥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파악하고서 야율종진이 결론을 내린다; “야율재상은 나와 함께 영주성과 혜산을 방문하도록 하지요. 그 출발일자는 5일후로 정하겠습니다. 그러니 충분하게 여기에서의 일들을 정리하시고 부인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십시오. 그러면 5일후인 3월 10일에 제가 야율애령과 함께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야율상이 좋다고 하므로 그렇게 합의하고서 서우진은 안방에서 금하란과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애령을 불러낸다. 5일후에 다시 찾아와서 금부인과 이야기를 실컷 하라고 하면서 그녀를 데리고 북촌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간다.
서우진과 애령은 지난 2월 6일에 개경을 떠나 여진의 땅에 들어갔다. 이제 3월 5일에 다시 개경에 도착하여 자택을 찾아간다. 그러니 거의 한달간 집을 비운 셈이다. 저택관리는 철원댁이 잘하고 있다. 이번에는 애령이 알아서 넉넉하게 그녀에게 사례를 한다.
다음날부터 서우진이 바쁘다. 같은 북촌 귀족마을에 살고 있는 숙부 서화평과 숙모 왕숙을 방문하여 문안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서촌에 살고 있는 사부 김숙번에게도 들린다. 한달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은 전부 무고하다. 별다른 일이 개경에서는 발생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서우진이 그 다음날에는 중부지역에 있는 월향루의 행수인 월향을 만나고 다시 서촌에 있는 청도관으로 가서 청객 김성곤을 만났지만 그들에게서도 별다른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그 말은 강계성이나 온성에도 별일이 아직은 없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실정을 살핀 후에 서우진이 집으로 돌아와서 깊이 생각한다. 겉으로는 대금의 위세에 눌려서 만주가 평온한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그것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완안족의 추장인 완안웅이 서여진과 동여진의 땅을 모두 아우르고자 하는 야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금을 조성한 다음에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금나라의 군대를 동원하여 정복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또 하나는, 서우진 자신이 이제는 야율족의 추장인 야율종진으로서 동족들의 군대를 이끌고 숙적인 완안족을 치고 동족인 포로들을 구출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안웅은 북에서 남침을 하고 야율종진은 남에서 북으로 쳐 올라가는 것이다.
‘누가 승리할 것인가?’, 단언할 수는 없지만 서우진은 자신이 승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완안족의 땅은 물론 대금과 남송까지를 살폈지만 완안웅은 그러한 정찰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의 동정을 먼저 파악하고 있는 서우진 자신이 승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야심만만한 젊은이, 고려의 기린아가 서우진이다. 그가 장차 두만강과 압록강 그리고 만주에서 일으킬 풍운이 어떠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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