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의 비밀35(작성자; 손진길)
1181년 3월 18일에 야율종진과 애령은 야율상 부부 및 대장장이 투란과 함께 영주성을 출발하여 혜산으로 말을 달린다. 투란은 집에서 키우고 있는 자신의 말을 타고서 동행하고 있다. 여진족은 전부 자신의 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동에 있어서 편리하다.
여진족은 어려서부터 남녀를 불문하고 말을 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기마민족의 전통을 그들은 그렇게 대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봄이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개마고원은 여전히 차가운 날씨이다. 그렇지만 말을 달리니 몸에서 열기가 난다.
그들은 옷을 많이 입고 털가죽으로 된 외투를 걸쳤을 뿐만 아니라 털모자까지 쓰고 있다. 그러니 서우선을 비롯한 4인은 별로 추위를 느끼지 아니하고 혜산지역까지 3일만에 당도한다.
혜산은 백두산에서 남쪽으로 백리나 떨어진 지점이다. 하지만 백두산 서쪽 기슭에서 시작이 되고 있는 압록강이 남으로 곧장 흐른 다음에 서쪽으로 몸을 틀고 있다. 그렇게 방향이 틀어지는 묘한 위치에 혜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야율종진이 혜산을 한바퀴 말을 타고 일행과 함께 돌아보니 두가지 지리적인 잇점이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다; 하나는, 혜산의 북서쪽으로 수량이 풍부한 압록강이 흐르고 있어 농사를 짓기에 편리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강이 있어 북서쪽의 방어가 쉬우니 나머지 3면에만 성벽을 쌓으면 도성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 정찰을 한 다음에 야율종진은 애령과 야율상 부부 그리고 대장장이 투란과 함께 혜산의 교외지역에 있는 주막을 찾아가서 여장을 푼다. 그날이 3월 20일 늦은 오후이다. 주막주인이 서여진족이다. 금나라 상인의 복장을 갖추고 있는 야율상이 먼저 하루 묵겠다고 말하면서 숙식비를 선금으로 후하게 지불한다;
주막주인이 눈치가 빠르다. 벌써 야율상이 돈이 많은 상인임을 알고서 그의 비위를 맞추고자 한다. 그래서 야율상이 슬쩍 지나가는 말처럼 주막주인에게 묻는다; “주인장, 저희들은 멀리 심양에서 왔습니다. 오래간만에 이곳 혜산에 들렀더니 주막에 손님이 많아 보입니다. 경기가 좋은 모양이지요?... “.
야율상이 총명하게도 자신의 일행이 동북여진을 지배하고 있는 완안족에 속한다고 은근히 서여진족으로 보이는 주막주인에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어째서 주막에 손님이 많은지를 또 묻고 있다. 서여진족들도 대금을 세운 완안족의 영향권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금나라 상인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
그런 입장이므로 주막주인은 야율상 일행이 모두 지배족속인 완안족인 줄 알고서 공손하게 대답한다; “아이쿠 나으리, 그렇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길림과 하얼빈의 완안족들이 자주 이곳 혜산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 영문이야 모르겠습니다마는 저희들은 그저 장사가 잘 되어서 고마울 따름이지요… “.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들으면서 야율종진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혼자서 속으로 생각한다; “완안족 사람들이 이곳 압록강 남쪽지역을 정찰하는 이유는 뻔하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지형지물을 미리 파악해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군사용 지도를 작성하고자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그 점을 먼저 확인해보고 그 다음에는 첩자들로부터 언제 구체적으로 전투를 개시하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야율종진이 주막에서 주는 저녁식사를 끝내고 자기들끼리 남았을 때에 조용한 목소리로 일행에게 말한다; “주막주인의 말 그대로 요즘 완안족들이 이곳을 정탐하고 있어요. 그들은 멀지 않아 군대를 몰고서 이 지역으로 쳐들어오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두가지를 여기서 파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애령은 물론이고 야율상 부부와 대장장이 투란이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그들에게 추장인 야율종진의 목소리가 은밀하게 들린다; “첫째, 완안족의 첩자들이 이 주막에 묵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들이 이곳 압록강 남쪽의 지형지물을 살피고 지도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내 짐작이 맞는지 먼저 그들로부터 확인하고 싶어요”.
야율종진이 조금 숨을 쉬고서 이어서 말한다; “둘째, 만약 군사용 지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틀림없이 남침계획이 세워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그 침략일자가 언제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그 두가지 사항을 은밀하게 파악하자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
대장장이 투란이 쉽게 대답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중 한사람을 납치하여 입을 열게 하는 것이지요… “. 그 말을 듣자 야율상이 반대한다; “그것은 가장 빠른 방법이겠지만 부작용이 있어요. 적들이 동료가 없어진 것을 눈치채게 되면 주변을 뒤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작전계획에 변경을 가져오게 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니 바람직하지가 않지요… “.
그 말을 듣자 야율종진이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일행에게 말한다; “야율재상의 말이 맞아요. 결국 그들에게 은밀하게 접촉하여 필요한 정보를 빼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 그 말을 들은 야율애령이 생긋 웃으면서 말한다; “여기 정답이 있잖아요? 저는 여진말 뿐만 아니라 고려말도 유창하게 구사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 제가 그들에게 접촉하여 그 비밀을 빼내면 되지요… “.
그 말을 듣자 금하란이 기겁을 하면서 말한다; “아씨 그것은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어떻게 그들 완안족 첩자들에게 접근하여 여자의 몸으로 안전을 지킬 수가 있겠어요?... 안됩니다. 아니되어요… ”. 그 말을 들은 야율애령이 여전히 웃으면서 말한다; “제게 방법이 있어요. 그냥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강계성의 고려병사들에게 쫓기는 몸으로 그렇게 꾸미면 됩니다… “.
야율종진과 야율상 부부 그리고 대장장이 투란이 귀를 기울이자 야율애령이 자세하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한다. 그리고 모두를 고개를 끄떡인다. 다소 위험한 방법이지만 성공만 한다면 적들이 모르게 비밀을 빼낼 수가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날 아침에 옆방의 완안족 사람들 4명이 떠나는 것을 보고서 은밀하게 그 뒤를 쫓는다.
그들 완안족 사람들도 말을 타고서 길을 떠난다. 그들이 산길을 타는 것을 보고서 야율종진 일행은 잠시 말을 세우고 작전을 꾸민다. 한참 후에 완안족 사람들이 한창 산길을 타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이 시끄럽다. 급히 말을 달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동시에 고려사람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 4명이 긴장하고서 즉시 숲 속에 말을 숨기고 몸을 은신한다.
그들이 숨어 있는 근방으로 말을 타고서 한 여인이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고 있다. 그 뒤로 화살이 날아들고 있다. 한사람의 건장한 인물이 말을 타면서 화살을 쏘고 있는데 그 기세가 대단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고려말로 앞서 도망을 치고 있는 여인에게 고함을 치고 있다; “서라, 투항하면 성주께서 너를 살려줄 것이다. 계속 도망을 친다면 끝까지 쫓아가서 도륙을 낼 것이다… “;
멀지 아니한 곳에서 그러한 진풍경이 발생하고 있다. 완안족 4명이 몸을 숨기고 나뭇가지와 나뭇잎 사이로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러자 그 여인이 갑자기 말에서 뛰어내리면서 말 엉덩이를 손으로 세차게 친다. 말이 놀라서 그대로 달아난다. 말발자국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자 먼 곳에서 달려온 그 고려말을 사용하고 있는 젊은이가 말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급히 뒤쫓아간다.
그 여인이 헐레벌떡 완안족 사람들이 숨어 있는 바로 옆에 몸을 숨긴다. 심하게 헐떡이고 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고서 완안족 가운데 부장으로 보이는 작자가 다가가서 고려말로 말을 건다; “여보게, 우리가 지켜 보았는데 어째서 고려사람에게 쫓기고 있는가? 그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야. 말이 한참 먼저 달아났거든… “.
그 말을 듣자 그 여인이 가쁜 숨을 다소 진정시키면서 유창한 고려 말씨로 대답한다; “흥, 나는 죽어도 강계성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나쁜 놈들, 그래도 개경에서는 귀족에 속하는 나를 납치하여 성주에게 상납을 하다니... 인간백정같은 놈들이지… 그런 놈들이 무슨 자기들의 나라를 세운다고 야단들이야... 백성들만 괴롭힐 것이 뻔한 놈들이지… “.
그 말을 곧이 들은 그 완안족 부장이 역시 고려말로 묻는다; “그래, 강계성주와 그 부하들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데 그렇게 말을 하는가? 그들이 나라를 세운다고?... ”. 그 여인이 고려말로 은근하게 말한다; “저는 살기 위하여 어쩔 수가 없어서 성주의 수청을 들다가 그가 잠자리에서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지요. 그 강계성주인 채고수란 작자는 자신도 온성의 김영웅처럼 나라를 세우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완안족을 치고 그 땅을 차지하겠다는 것이예요… “;
완안족 부장이 깜짝 놀란다. 기가 막힌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정보를 그 여인에게서 캐내기 위하여 자신의 정보를 조금 흘리면서 묻는다; “그래, 그렇다면 우리 완안족이 그들을 먼저 치면 되겠구만. 혹시 언제쯤 군대를 몰고 북쪽으로 쳐들어온다고 하든가?”. 그러자 그 여인이 말한다; “어, 당신은 고려사람이 아니고 여진족이군요. 그것도 대금을 세운 완안족이군요?... “.
고려여인의 질문에 그 사내가 분명하게 고려말로 말한다; “그래 나는 완안족의 전사이지. 하지만 고려말을 할 줄 알아. 나에게 강계성주 채고수가 언제 북침을 하려고 하는지 그것을 말해주게. 그러면 내가 자네를 보호해주겠네… “. 그 여인이 솔깃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강계성에서는 한창 전쟁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들은 먼저 사람들을 풀어서 북쪽의 지형을 살피고 정밀한 군사지도를 만들고 있어요. 그 결과 그들은… “.
그 여인이 야율애령이다. 그쯤에서 그녀가 말을 일단 끊고서 상대방의 눈치를 본다. 그러면서 신중하게 말한다; “이 말을 하면 저는 목숨이 위험한데…. 나는 당신이 고려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완안족의 누구인지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제가 기밀사항을 말하겠어요... 만약 당신들이 강계성의 밀정이라고 하면 저는 기밀 누설죄로 목숨이 위험하죠… ”.
그 말을 듣자 그 부장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맞는 말이요. 나는 여진족인 완안족 가운데에서도 명문 집안 출신이요. 그러니 일찍부터 고려말을 가문에서 배워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내 이름은 완안사웅이며 지금의 추장 완안웅의 동생이요. 그러니 내게 말하면 당신은 살 수가 있어요. 설마하니 강계성주인 채고수가 하얼빈까지야 쳐들어 오겠어요?... 하하하… “.
야율애령이 깜짝 놀란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고려말로 말한다; “어머머, 완안웅 추장의 아우가 당신입니까? 채고수 성주는 완안웅 추장을 치고 그 땅을 모두 차지할 것이라고 부관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부관들이 대금의 군대가 뒤에서 버티고 있는데 그것은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리면 채성주가 도리어 큰소리를 치고 있답니다… “.
완안사웅이 야율애령이 흘리는 가짜 정보를 듣고서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사실처럼 들려온다;’ “채고수 성주는 확신하고 있어요. 막강한 남송이 버티고 있으므로 절대로 대금의 군대가 중원에서 만주로 원정을 올 수가 없다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강계성에서는 모두들 완안족과 전쟁을 치면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들 있어요… “;
그 말을 듣자 완안사웅이 ‘흐음’하고서 침울성을 흘린다. 그리고 여진의 말로 다음과 같이 중얼거린다; “이거 형님은 4개월 후로 말하지만 남침의 시기를 앞당겨야 하겠구만… 상대방이 그렇게 확신하고서 군대를 정비하고 있다고 하면 그들이 먼저 북침을 할지도 모르겠어… “.
그렇게 말하면서 완안사웅이 부하들에게 여진말로 명령한다; “우리는 하얼빈으로 되돌아간다. 지금 우리가 작성한 지도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문제는 여기 혜산의 여진족이 아니라 강계성에 있는 채고수 성주이다. 그가 북침할 생각으로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곳부터 살펴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전쟁이 빨라질 수도 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서 빨리 하얼빈으로 돌아간다”.
야율애령은 어디까지나 고려의 여인으로 위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진의 말을 모르는 것처럼 꾸미고 있다. 애령은 그들의 말을 전부 듣고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으로 멍청하게 서있다. 그러자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애령을 쫓던 그 젊은이가 한 필의 말을 끌고 또 자신의 말을 타고서 주변을 살피면서 산길을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야율애령이 후다닥 도망을 친다. 그 소리를 그 청년 곧 야율종진이 들었다. 그가 전속력으로 말을 달린다. 그 앞길을 완안사웅이 칼을 들고서 가로 막는다. 그러자 야율종진이 마치 언월도처럼 생긴 투박한 긴 창을 휘두른다. 그 창이 얼마나 정확하게 완안사웅의 칼을 쳐내고 있는지 모른다;
창으로 상대방의 칼을 쳐낸 다음 순간 야율종진이 애령을 발견하고서 얼른 허리를 감아 자신의 말에 태운다. 그리고 비호와 같이 말을 탄 채로 도망을 치고 있다. 야율종진의 막강한 창에 얻어 맞고서 칼이 부러진 완안사웅이 산길 옆에서 어리둥절하여 그 청년의 말달리는 뒷모습만 보고 있다.
그리고 완안사웅이 혼자서 중얼거린다; “대단한 무력이다. 완안족이 자랑하는 용사인 나의 칼을 단숨에 부러뜨리고 여인을 낚아채어 달아나다니… 강계성의 장수들이 저 정도의 실력이라고 하면 이번 정복전쟁이 결코 쉽지가 않겠는데... 형님이신 추장에게 얼른 상세하게 보고를 하고 그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
그날 야율종진은 야율애령의 정보를 듣고서 일행과 함께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한다. 그는 먼저 주막을 옮긴다. 혜산성의 교외에 있는 다른 주막에서 일박을 하면서 일행들과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야율종진이 어떠한 결정을 내리고자 하는 것일까?
'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王의 비밀37(작성자; 손진길) (0) | 2021.10.31 |
---|---|
王의 비밀36(작성자; 손진길) (0) | 2021.10.31 |
王의 비밀34(작성자; 손진길) (0) | 2021.10.31 |
王의 비밀33(작성자; 손진길) (0) | 2021.10.30 |
王의 비밀32(작성자; 손진길) (0) | 2021.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