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손진길 소설) 31

농무, 짙은 안개11(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11(손진길 소설) 조우제는 10년전 1996년 1월에 한국을 떠나 점수제 일반이민자로 뉴질랜드에 입국한 젊은이이다. 당시 한국나이로 25세에 불과한 그가 혈혈단신으로 한국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친형인 조강제 부부의 배신이 뼈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 가시자 그들 부부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그 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도피하고 말았던 것이다. 서울에서 의대공부를 하고 있던 동생 조우제를 내버려버리고 그 재산을 가지고 도망을 친 것이다; 마산지역에서는 그래도 부자라고 소문이 난 부모님의 재산을 그들 부부가 모조리 처분하여 미국으로 떠났으니 그 신분을 숨긴 채 그곳에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반면에 모든 재정지원이 끊기고 생활비마저 사라진 24세의 조우제는 서울에서 앞길..

농무, 짙은 안개10(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10(손진길 소설) 2005년 3월말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서 저녁식사까지 한 조우제와 장경옥이 라우스힐 집에서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커피를 즐기고 있을 때이다. 갑자기 바깥이 환해지고 있다. 그것은 낮의 밝은 빛과는 다른 색깔이다. 붉은 빛이다. 그 붉은 빛을 보고서 얼른 조우제가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서 북쪽의 경계를 살핀다. 이웃집과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는 높은 나무들로 불이 옮겨 붙고 있는 중이다; 한여름도 지나고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이 시점에 어째서 이웃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조우제의 소유지로 번져오고 있는 것일까?... 그 점에 대하여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다. 우선 중요물건을 챙겨서 집 바깥으로 피신하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급히 조우제가 장경옥에게 사..

농무, 짙은 안개9(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9(손진길 소설) 인생을 살다 보면 힘든 시기는 천천히 지나가고 좋은 시기는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그런지 조우제가 자신의 집에 장경옥을 입주시키고 나자 세월이 빨리 지나가고 있다. 두사람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주 6일 동안 아침 일찍 라우스힐 집을 출발하여 동쪽에 있는 시드니 북쪽 해안가의 노스 쇼어로 출근한다. 그곳에서 하루에 홈클리닝을 5-6집 정도 하고 나면 하루가 저물고 있다. 두사람은 예전에는 점심시간에 현지에 있는 ‘맥도날드’(McDonald's)나 ‘헝그리잭’(Hungry Jack's)과 같은 패스트푸드 점에 들러 빵과 칩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그러나 같은 집에 살게 되면서 이제는 그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새벽에 장경옥이 일찍 일어나서 간단하게 조반을 준비하면서 아예 ..

농무, 짙은 안개8(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8(손진길 소설) 2005년 1월 16일 일요일 오후에 조우제가 자신의 중고자가용 ‘혼다 오딧세이’(Honda Odyssey)를 몰고서 일부러 캘리빌(Kellyville)에 있는 장경옥의 쉐어(share) 하우스에 들리고 있다. 그녀의 이삿짐을 옮기고자 하는 것이다. 장경옥의 이삿짐은 가구류가 전혀 없이 단지 트렁크 2개와 이민용 큰 백이 하나 있을 뿐이다. 하기야 그럴 것이다. 독신으로 한국에서 호주로 온지 2년 남짓이니 많은 짐이 있을 리가 없다. 캘리빌에서 그 북쪽에 있는 조우제의 라우스힐(Rouse Hill) 집까지는 그리 멀지가 아니하다; 따라서 10분만에 두사람이 조우제의 자택에 들어선다. 그 집을 한번 보고서 장경옥이 먼저 탄성을 지르고 있다; “조형, 땅이 너무 넓어요. 집..

농무, 짙은 안개7(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7(손진길 소설) 2. 이듬해 2005년 1월 라우스힐에서의 새 출발 2004년 12월 하순에 노스 쇼어에서 홈클리닝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조우제가 장경옥에게 제안한다; “장상, 오늘은 한해가 기울고 있으니 내가 이스트우드 그 중국집에서 한턱을 쏠게요.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그녀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두사람이 오래간만에 이스트우드에 들리고 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조우제가 먼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다; “장상, 오늘 저는 수지와 윌리엄의 집청소를 완전히 끝내고 나니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 수지가 청소부인 우리에게 야박하게 군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가 있는데 도둑혐의를 씌운 모욕만을 참을 수가 없더군요. 해외생활을 한지 만 9년이 되지만 그것만은..

농무, 짙은 안개6(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6(손진길 소설) 한달이 지나고 있는 2004년 11월에 조우제와 장경옥은 노스 쇼어의 맨리(Manly) 주택가에서 집청소를 하고 있다. 촉감이 좋은 부드러운 황금색 모래가 반짝이고 있는 맨리 비치 바로 옆에는 카페와 상가건물이 있고 그 다음에는 고급주택들이 즐비하다; 특히 맨리 비치의 바다는 파도가 상당히 일어나고 있어서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맨리 비치에 오게 되면 나름대로 젊은 기분이 들고 생동감을 느낄 수가 있다; 카페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이 기분 좋게 그 생동감을 함께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맨리 비치에서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는 오래된 주택과 새로 지은 주택들이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어 잔뜩 들어서 있다. 그 규모가 상당하여 동네..

농무, 짙은 안개5(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5(손진길 소설) 2004년 10월 호주 시드니 사람들은 화창한 봄날씨를 즐기고 있다. 특히 시드니 시티에서 ‘하버 브리지’(Harbour Bridge)를 건너 북쪽으로 건너가면 노스 쇼어 아래쪽 일명 ‘Lower North Shore’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해안가의 집들과 그 안쪽 동네의 주택들이 얼마나 보기에 좋은 지 모른다. 특히 홈클리닝에 종사하고 있는 조우제와 장경옥의 고객들 대부분의 집이 그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그 지역은 그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친숙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호주 시드니의 부자들이 그 지역에 많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한국인 청소부들을 선호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사람들이 성실하며 그 손재주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집청소를 하는데 있어서 엄청 재능..

농무, 짙은 안개4(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4(손진길 소설) 2003년 12월에 장경옥이 이웃동네에 살고 있는 조우제를 만나 함께 집청소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에 그녀는 일단 파트타임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 잡(job)이 어느 정도 안정된 것인지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제대로 청소일을 할 수 있을지 당시로서는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달을 조우제와 함께 시드니 북쪽 해안가 부촌을 찾아가서 집청소를 해보니 생각보다 벌이가 쏠쏠하다. 그리고 자신이 청소를 상당히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장경옥은 이왕이면 파트타임이 아니라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길이라고 하는 확신이 어느 정도 생기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 생각지도 아니하게 2004년 1월에 캘리빌을 뒤덮고 있는..

농무, 짙은 안개3(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3(손진길 소설) 조우제는 한국나이로 25세가 되자 1996년초에 단신으로 오클랜드에 들어온 사람이다. 다행히 점수제 이민에 해당이 되어 조건부 영주권을 얻은 상태로 입국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오클랜드에서 먹고 살며 장차 돈을 모을 수가 있을까?’, 조우제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오클랜드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한인교회에 출석했다. 그의 기도가 통했는지 그곳에서 강원규 집사를 만났다. 당시 강집사는 호주 시드니에서 건너와 오클랜드에서 오피스 청소를 대대적으로 시작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40대 초반의 나이인 강원규 집사가 젊은 조우제를 좋게 보았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오피스 청소를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나중에..

농무, 짙은 안개2(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2(손진길 소설) 조우제가 고개를 들고서 장경옥에게 대답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눈동자는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선은 멀리 아득한 과거의 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흐릿하고도 아득한 눈으로 조우제가 허공을 바라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하고 있다; “나는 돈을 벌어야만 합니다. 그것도 많이 벌어야 합니다. 적어도 저의 형보다는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미래를 앗아가 버린 그에게 복수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 ‘그것이 무슨 말인가?’, 장경옥은 조우제의 말을 똑똑히 들으려고 집중하다가 일순간 그의 눈을 쳐다보고서 그만 귀를 닫아버리고 만다. 그 말은 듣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무슨 피맺힌 한이 있는지 혼자 넋두리삼아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