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10(손진길 소설)
2005년 3월말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서 저녁식사까지 한 조우제와 장경옥이 라우스힐 집에서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커피를 즐기고 있을 때이다. 갑자기 바깥이 환해지고 있다. 그것은 낮의 밝은 빛과는 다른 색깔이다. 붉은 빛이다.
그 붉은 빛을 보고서 얼른 조우제가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서 북쪽의 경계를 살핀다. 이웃집과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는 높은 나무들로 불이 옮겨 붙고 있는 중이다;
한여름도 지나고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이 시점에 어째서 이웃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조우제의 소유지로 번져오고 있는 것일까?...
그 점에 대하여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다. 우선 중요물건을 챙겨서 집 바깥으로 피신하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급히 조우제가 장경옥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중요한 것을 빨리 챙기라고 말한다. 단 10분만에 가방 하나씩만 가지고 두사람이 자동차에 올라탄다. 이제는 화재의 진행상황을 보면서 이동을 해야 할 처지이다.
북쪽 울타리 나무들에 올라 붙은 화마가 저녁시간에 넘실거리는 그 모습은 마치 불가사리가 나무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조우제와 장경옥은 그 광경을 보고서 화마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그 무서운 기세가 풀밭을 뛰어넘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달려들 것만 같다.
그런데 급히 출동한 소방관들은 상당히 여유가 있다. 그 정도의 소규모 화재에는 동동걸음을 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하게 하고 있다. 조우제의 소유지(property)와 이웃의 소유지에 여러 대의 소방차를 동시에 진입시켜 놓고서 순식간에 일제히 물 대포를 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출동대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소방관이 일정한 전방을 가리키면서 명령을 내린다. 그 명령에 따라 여러 명의 소방관들이 일시에 그 선(線, line)상으로 물 대포를 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여러 발의 박격포탄이 그 선상에 맞추어 일제히 가로로 떨어지고 있는 것과 같다;
그 모습을 보고서 조우제가 깨닫고 있다; ‘넘실거리고 있는 화마의 기운을 차단하기 위하여 일정간격을 두고서 그 앞에서부터 물을 퍼붓고 있구나! 그리고 단계적으로 한창 나무를 집어삼키고 있는 화마 쪽으로 물세례가 접근하고 있는 것이구나… “.
다소 떨어진 위치에서 소방관들의 비상한 작전을 지켜보면서 조우제가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전략의 핵심이 무엇인지 벌써 파악하여 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들 소방관들은 더 이상 화마가 번지는 것을 막고 있을 뿐이다. 화마가 집어 삼키고 있는 먹이는 그대로 그들에게 주고 마는 것이구나!... ‘;
그런데 그들의 전략이 성공적이다. 불기운이 더 이상 조우제의 소유지로 접근하지 못하고 효과적으로 차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조우제가 차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 장경옥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다; “장상, 이제 불길이 잡히고 있어요. 다행히 우리집 북쪽 울타리만 태우고 불길이 가라앉고 있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
그 말을 하면서 조우제가 가방 하나를 품에 꼬옥 안고 뒷좌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장경옥을 발견한다. 그 모습이 애처롭다. 순간 조우제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돈다. 그는 본능적으로 차문을 열고 뒷좌석으로 들어가서 떨고 있는 장경옥을 자신의 품에 꼭 안는다;
비로소 조우제는 장경옥이 가련한 여인이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다; ‘이 세상에 의지할 데가 없는 장경옥이구나. 당돌한 척 큰소리는 때로 치고 있지만 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는 여인이구나. 내가 보호하고 감싸주어야 하는 여자가 틀림이 없구나!... “.
장경옥이 조우제의 품에서 눈물이 섞인 음성으로 말한다; “무서워요. 저 두려운 화마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키겠다고 저에게로 뛰어들고 있는 것만 같아요. 저는 이렇게 무서운 광경은 태어나서 처음 보아요. 그런데 조형은 무섭지 않나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더 힘있게 장경옥을 품에 안으면서 조용하게 말한다; “나도 무섭지요. 그렇지만 한국을 떠나올 때 별로 가진 것이 없이 단신으로 왔어요. 그러니 다시 시작하면 되지요. 다 타버린다고 하더라도 땅이야 남아 있겠지요. 그리고 급하면 장상과 함께 자동차로 도망하면 되잖아요. 나는, 나는 장상만 안전하면 괜찮아요!... ”.
그 말을 들은 30살의 처녀 장경옥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조우제에게 매어 달리며 말한다; “나는 혼자서는 안전하지가 않아요. 그리고 이제 호주에서 나 혼자서는 안심하고 살 수가 없어요. 제 옆에 조우제 당신이 꼭 있어야만 해요. 그러니 나를 혼자 버려 두지 말고 항상 같이 있어 주세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손으로 장경옥의 눈물을 닦으면서 그 입에 입을 맞추고 있다;
장경옥이 두 팔로 조우제를 꼭 껴안으면서 눈을 감는다;
그렇게 두사람이 차안에서 같이 호흡하고 있는 사이에 소방차들이 돌아가고 있다. 더 시간이 흐르자 언제 화재가 발생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적막한 밤이 다시 찾아오고 바람소리가 거세게 들리고 있다.
그제서야 조우제와 장경옥은 차문을 열고 나와서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날부터 조우제와 장경옥은 같은 방을 사용한다. 더 이상 각방을 사용하지 아니한다. 그들은 따로따로 더 이상 떨어져서 살고 싶어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33세의 조우제가 30세의 장경옥과 이제는 청소파트너가 아니라 인생의 파트너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와 같은 변화가 발생하자 두사람의 호칭과 대화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조우제는 장경옥을 더 이상 ‘장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고 있다; ‘경옥, 나의 경옥아’. 그녀도 조우제를 ‘조형’이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우제 당신’이라고 부른다.
그때서야 조우제가 제안한다; “경옥, 나는 호주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 언제 시간을 내어 한국과 호주에서 간단하게 결혼식을 하고 혼인신고 절차를 밟도록 합시다. 그래야 경옥 당신이 호주의 영주권과 시민권을 차례로 얻을 수가 있어요… “.
장경옥도 그렇게 조우제와 법적으로 부부가 되고 한가정을 이루어 호주에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고 싶다. 그래서 두사람은 2005년이 가기 전에 잠시 서울을 방문하여 한국에서의 모든 절차를 마친다. 장경옥의 경우에는 언니와 형부가 유일한 친척으로 참석하여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여 준다. 조우제의 경우에는 그 마저도 없다. 말 그대로 혈혈단신인 셈이다;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식을 거행한 사진촬영이 있으므로 호주에서는 시청에서 간단하게 결혼식을 가지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그러한 법적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에 장경옥의 배가 불러오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2005년말에 조우제가 홈클리닝을 완전히 끝내고 만다. 더 이상 그 잡(job)을 계속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에 조우제는 홈클리닝 이전으로 돌아간다. 오피스 클리닝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는 경험이 상당하기에 오피스 클리닝에서도 돈을 잘 벌고 있다. 그리고 이듬해 2월이 되자 외로운 그들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있다. 블랙타운 병원 산부인과에서 장경옥이 딸 ‘한나’를 건강하게 출산한 것이다.
그날 조우제와 장경옥이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모른다. 마치 고아와 같은 그들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한나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자 조우제가 참으로 기뻐한다. 장경옥도 마찬가지이다;
그날 조우제가 장경옥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있다; “경옥, 이제 비로소 나는 알뜰하게 돈을 모으고 재산을 형성한 보람을 찾고 있어요. 그것은 형을 이기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을 돌보고 호주에서의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기 위하여 필요한 것임을 이제 깨닫고 있어요. 고마워요 당신… “.
과연 딸 한나의 탄생으로 조우제와 장경옥의 앞날에는 짙은 안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사라진 안개는 다시 농무가 되어 남은 인생 가운데 자욱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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