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8. 14. 19:13

농무, 짙은 안개7(손진길 소설)

 

2. 이듬해 20051월 라우스힐에서의 새 출발

 

200412월 하순에 노스 쇼어에서 홈클리닝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조우제장경옥에게 제안한다; “장상, 오늘은 한해가 기울고 있으니 내가 이스트우드 그 중국집에서 한턱을 쏠게요.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그녀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두사람이 오래간만에 이스트우드에 들리고 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조우제가 먼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다; “장상, 오늘 저는 수지윌리엄의 집청소를 완전히 끝내고 나니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 수지가 청소부인 우리에게 야박하게 군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가 있는데 도둑혐의를 씌운 모욕만을 참을 수가 없더군요. 해외생활을 한지 만 9년이 되지만 그것만은 제가 참을 수가 없었어요… “.

그 말을 듣자 장경옥이 호호라고 웃으면서 응대한다; “저도 그것은 참을 수가 없는 모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조형이 오늘 완전히 윌리엄 부부와 굿바이를 선언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예요. 제 속이 다 후련해요. 오늘 조형이 아주 결단력 있게 잘 처리를 하시더군요, 호호호… “;

그 말에 조우제가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음료수도 한잔 씩 주문하여 같이 마신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장경옥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다. 조금 태도가 이상한 것 같아서 아연 그녀가 긴장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조우제가 하려고 하는 것일까?... ‘.

음료수를 조용히 마시면서도 장경옥의 귀는 예민하다. 그때 조우제의 말이 들려온다; “장상은 작년 12월에 나와 함께 집청소를 시작하였지요. 이제 1년이 조금 지나고 있군요. 제가 매일 현찰로 일한 몫을 정산해주고는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모으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프라이버시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궁금하여 질문을 해볼께요. 그래 장상은 원하는 2년치 목표에 이제는 절반정도 접근하고 있나요?... “.

듣고 보니 별것이 아닌 질문이다. 그래서 장경옥이 기분 좋게 대답한다; “그래요, 저는 조형 덕분에 절반에 해당하는 돈을 이미 모았어요. 이제는 일년만 더 고생하면 간호대학에 등록하고 3년간 돈 걱정안하고 공부하여 정식간호사 알엔’(RN) 자격을 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저는 이곳 호주에서 영주권을 얻고 확실하게 정착할 수가 있어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는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그 마음속에 섭섭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한다; ‘장상은 전혀 내 생각을 안하고 있구나. 호주에서의 이민자의 삶이 비록 빡빡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와 나는 미혼의 남녀인데 어떻게 전혀 마음속 동요가 없는 것일까? 이대로 일년을 더 지내고 나는 그녀를 그대로 떠나 보낼 수가 있을 것인가?... ‘;

내년이 되면 너무 늦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우제가 참으로 조심스럽게 제안을 한다; “장상, 내가 한가지 제안을 하고자 하는데 한번 들어 볼래요. 나는 장상이 동의만 한다면 라우스힐에 있는 제집에서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

돌연 장경옥이 어리둥절해 하면서 조우제를 쳐다본다. 그녀의 귀에 의구심을 잠재우려고 하는 듯이 조우제의 말이 천천히 들려온다; “저의 집은 비록 낡았지만 그래도 방이 3개나 있어요. 그러니 장상은 캘리빌에서 비싼 방값을 물면서 쉐어’(share)를 하지 말고 아예 제집으로 들어와서 생활해요. 제가 전기요금만 받고 그냥 살게 해드릴게요!... “.

그렇지만 그 말을 듣자 장경옥의 눈이 아직도 커지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과감한 제안이 조우제의 입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생각이 복잡하다; ‘청춘남녀가 한집에서 살다가 보면 과연 어떠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이 마냥 좋아 보이고 한편으로는 우유부단해 보이는 조우제가 어떻게 그러한 대담한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장경옥은 조우제가 독신으로 오래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외로워서 그러한가 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보니 그것이 별로 나쁜 제안은 아니다. 왜냐하면, 방값을 받지 아니하고 그저 전기요금만 물면서 함께 라우스힐 큰집에서 지내자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저 순수한 제안으로 알고 응답을 한다; “좋아요. 조형의 집에 방이 3개나 있다고 하니 제가 짐을 그 집으로 옮길게요. 그러면 새벽에 일찍 청소하러 함께 떠나도 되겠어요. 그리고 저지대 켈리빌의 짙은 안개 농무도 앞으로 피할 수가 있겠네요. 좋아요. 그럼 언제 짐을 옮길까요?... “;

생각보다 장경옥의 결단이 빠르다. 조우제는 그 점을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얼른 대답한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아요. 저는 노스 쇼어에 살고 있는 노부부 오데트마이어가 최근에 나에게 제안한 내용이 마음에 들어요. 자기들은 매일 새벽에 바다수영에 나서니 아침 7시부터 집청소를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지요. 그러니 우리가 같은 집에 살면서 내년 정초부터는 그 집을 아예 새벽에 방문하도록 해요. 그러면… “;

조우제가 숨을 조금 쉬고서 이어 말한다; “아침 7시부터 그 집을 청소할 수가 있어요. 비록 격주이지만 그 집을 일찍 청소하고 그 다음에 노스 쇼어 다운타운 가까이에 있는 찰스의 펜트하우스를 청소하게 되면 하루에 많은 돈을 벌 수가 있어요. 우리 그렇게 한번 내년부터 청소를 해보도록 합시다!... “.

그 말을 듣자 장경옥은 조우제가 자신보다 더 돈을 많이 모으고자 사력을 다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정식간호사가 되기 위하여 간호대학으로 진학하고자 돈을 모으고 있지만 도대체 조우제는 무엇을 위하여 돈을 악착같이 벌고자 하는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따라서 장경옥이 조우제의 기분이 좋은 것을 보고서 얼른 물어본다; “조형은 그렇게 열심히 시드니에서 육체노동을 하여 돈을 많이 벌어 무엇을 하고자 하는데요? 역시 형보다 더 많이 돈을 모으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가요? 아니면 다른 목표가 이제는 생겨 있는 것인가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장경옥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그러면서 아주 천천히 말을 시작한다; “나는 이민사회에서 확실하게 경제적인 자립의 기반을 일찍 마련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한국에서 잃어버린 나의 몫을 이곳 호주에서 찾고자 하는 의미이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어요. 그것은 장차 이곳에서 나의 가정을 이루고 나의 가족을 안전하게 돌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

그 말을 들으면서 장경옥은 이상한 생각이 들고 있다. 자신이 일년간 보아오던 조우제가 아닌 것만 같다. 그는 비록 성격이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그래도 호주에서 한번 부자가 되어보고자 하는 단 하나의 목표를 수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독신이 아니라 가정을 이루고 함께 잘 살아보자고 하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독신인 조우제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그 점이 궁금하여 그만 그날 장경옥이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조우제에게 하고 만다; “호호호, 꼿꼿하게 돈만 모으고자 애쓰고 있는 조형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궁금하군요, 호호호… “.

장경옥은 웃고 있지만 조우제는 결코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장경옥의 눈을 응시하면서 조용히 말하고 있다; “그래요, 그 점이 궁금하면 앞으로 같은 집에 살면서 장상이 한번 가까이에서 알아 맞추어 보세요. 저도 무엇이 나를 흔들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으니까요… “.

정말 장경옥이 조우제의 마음속의 변화가 무엇에 기인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분명히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남녀관계에 있어서 예민하며 본능적인 직관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벌써 알고 있다. 처녀인 자신의 마음이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어떻게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 조우제의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있을까?...  외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일가친척이 전혀 없는 남반부의 호주에서 매일같이 붙어 다니며 홈클리닝을 하고 있는 단 2사람 남녀인 그들이니 말이다.

그렇게 일년간 함께 지낸 결과 그들은 같은 집에 살면서 아주 가까이에서 서로의 관계를 재정립하여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들기에 처녀인 장경옥이 감히 노총각인 조우제가 살고 있는 그 라우스힐의 고택으로 들어가고자 작심한 것이다.

과연 이듬해 20051월부터 라우스힐 조우제의 집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