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5(손진길 소설)
2004년 10월 호주 시드니 사람들은 화창한 봄날씨를 즐기고 있다. 특히 시드니 시티에서 ‘하버 브리지’(Harbour Bridge)를 건너 북쪽으로 건너가면 노스 쇼어 아래쪽 일명 ‘Lower North Shore’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해안가의 집들과 그 안쪽 동네의 주택들이 얼마나 보기에 좋은 지 모른다. 특히 홈클리닝에 종사하고 있는 조우제와 장경옥의 고객들 대부분의 집이 그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그 지역은 그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친숙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호주 시드니의 부자들이 그 지역에 많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한국인 청소부들을 선호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사람들이 성실하며 그 손재주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집청소를 하는데 있어서 엄청 재능이 있으며 일처리가 남달리 빠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때로는 호주 시드니의 부자들이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말한다; “역시 홈클리닝은 한국사람이 제일이야. 우리집에서도 그들이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있지. 자네도 한번 그들을 고용해 보게나!... “. 그 덕분에 조우제와 장경옥의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 순전히 고객들이 추천한 결과인 것이다.
만약 조우제와 장경옥이 젊은 나이에 한국을 떠나 호주나 뉴질랜드에 와서 살지 아니하였다고 한다면 자신들에게 그러한 눈썰미와 손재주가 천부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줄 몰랐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해외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발견한 셈이다;
기실 그들은 의지할 데가 전혀 없는 외국에서 나름대로 생활의 기반을 얻고자 부득이 육체노동에 나서게 되었다. 그 가운데 별로 기술이 필요하지 아니한 단순노동 청소업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시드니 부잣집을 청소하다가 보니 타민족에 비하여 손재주가 있으며 일처리가 상당히 빠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울러 고객들이 크게 만족하면서 한국인 청소부를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삼아 이웃에게 말하고 있으니 그것이 한국 젊은이들의 해외진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우제는 자신이 해외에서 청소업에 종사한 것이 나름대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뿐 만이 아니다. 청소업을 8년간이나 경영하였기에 그는 한국나이로 32살에 벌써 시드니 북서부 라우스힐에 큰 땅을 사고 그곳에 있는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조우제가 청소파트너 장경옥과 함께 만족스럽게 노스 쇼어 주택가에서 열심히 청소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한 조우제의 모습을 보고서 한번은 장경옥이 그를 놀리고 있다; “조형은 아무래도 시드니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군요. 그러니 시드니의 부자들이 조형에게 계속 집청소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지요, 호호호…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한다; “나는 한국에서 의대공부를 할 때보다 지금이 더 마음이 편합니다. 왜냐하면, 청소는 끝나면 뒤돌아볼 것이 없지요. 나중에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저 단순노동을 하고 현금을 받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 지 모릅니다, 하하하… “.
그런데 그해 2004년 10월 하순에 시드니 노스 쇼어 모스만에서 집청소를 하고 있던 조우제와 장경옥이 심히 난처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해안에서 별로 멀지 아니한 고객 샐리와 제임스의 저택은 지은지가 오래된 건물이다. 그 집을 청소한지 벌써 일년이나 되었기에 조우제가 그 집의 키를 가지고 언제나 청소를 하고 있다;
3층 건물이므로 윗층에서부터 청소를 하면서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마지막 반(半)지하층을 청소하고 있을 때에 그 일이 발생한다. 조우제가 먼지털이로 먼저 벽면을 털고 그 다음에 더러운 부분은 걸레질을 한다. 그런데 벽면의 파이프 쪽에 걸레질을 한번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물이 새어 나오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조우제가 밸브를 찾아서 잠그고자 시도를 해보지만 도저히 그 밸브를 찾을 수가 없다. ‘어떻게 조치를 해야만 하는가?’, 난감해진 조우제가 급히 모발폰(mobile phone, 또는 핸드폰)으로 집주인 부부에게 전화를 한다. 하지만 10분이상 전화통화가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 사이 지하층 청소를 마친 장경옥이 옆에 와서 함께 걱정하고 있다. 그러자 조우제가 나직하게 혼잣말처럼 말한다; “아무래도 플러머(plumber, 배관공)를 불러야 할 것 같아요… “;
그 조그만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장경옥이 반대한다; “조형, 이 집을 청소하여 몇 푼이나 번다고 배관공을 불러서 고치려고 해요. 그러지 말고 집주인에게 다시 한번 전화해보세요!... “.
의외로 장경옥의 의사표현이 강경하다. 조우제는 일순간 그녀가 단호한 일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기에 여러 번 모발폰으로 통화를 시도한다. 마침내 전화가 연결이 된다.
먼저 여자 주인 샐리의 음성이 들려온다. 얼른 조우제가 간략하게 상황설명을 한다. 그러자 옆에서 제임스가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린다; “30분만 기다리라고 하세요. 빨리 집에 도착하여 내가 직접 고칠테니까요!... “.
샐리가 다시 한번 남편의 말을 조우제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여 조우제가 속으로 생각한다; ‘플러머가 와야 고칠 수가 있는데… 제임스가 무슨 재주로 파이프에서 물이 새는 것을 직접 고친다고 말하는가? 그는 건설회사의 부사장인데… ‘.
그런데 샐리와 제임스가 집에 도착하자 먼저 제임스가 크게 걱정하고 있는 조우제에게 말한다; “우제,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집에서는 자주 발생하는 일입니다. 시드니 공대를 졸업한 내가 얼마든지 고칠 수가 있어요!... “.
제임스가 얼른 연장을 챙긴 다음에 지하층에 가서 플러밍(plumbing) 일을 능숙하게 해치우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고서 조우제가 안도의 숨을 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여기 호주는 실용주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서구사회로군. 공대출신이면 적어도 배관공의 기초적인 일은 전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정도이니까 말이야!... ‘;
그날 조우제와 장경옥은 그 집에서 2시간이나 더 머물렀다. 다행스럽게도 그날은 더이상 청소를 해야 할 집이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귀가하는 시간이 너무 늦다. 퇴근시간의 러시아워와 겹쳐서 교통량이 대단하다. 그것을 보고서 그날 조우제가 노스쇼어에서 맥도날드에 들린다. 장경옥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려는 것이다.
그날 빅맥을 먹으면서 장경옥이 한동안 조우제를 보면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조우제는 샐리의 집에서 장경옥이 보인 행동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강경하고 단호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그런지 조용히 식사만 하고 있다;
그렇지만 장경옥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다. 그녀는 새삼 조우제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청소를 하다가 그만 파이프에서 물이 새는 일을 당하고 있다. 단지 물걸레질을 하려고 했을 뿐인데 낡은 파이프에서 물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조우제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고객의 집에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얼른 배관공을 부르려고 한다. 청소를 하여 얼마나 번다고 플러머를 부르려고 하는가?... ‘.
그러한 생각으로 장경옥이 조우제를 만류하였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그것이 아니다; “나보다 3살이나 많지만 조우제는 역시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뉴질랜드에서도 청소를 했다고 하더니 여기 시드니에서도 청소만 주구장창하고 있다. 그는 청소를 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이 아닐텐데… 조우제는 꿈이 없는가? 불쌍한 사람이다… “.
조우제는 자신보다 어린 장경옥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모르고 있다. 그저 오늘 못난 모습을 보인 자신이 서글플 따름이다. 그래서 말없이 간단하게 식사만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벌써 밤이 되고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젊은 조우제와 장경옥의 2004년 10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들은 집청소를 계속하면서 또 어떠한 일을 만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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