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3(손진길 소설)
조우제는 한국나이로 25세가 되자 1996년초에 단신으로 오클랜드에 들어온 사람이다. 다행히 점수제 이민에 해당이 되어 조건부 영주권을 얻은 상태로 입국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오클랜드에서 먹고 살며 장차 돈을 모을 수가 있을까?’, 조우제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오클랜드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한인교회에 출석했다. 그의 기도가 통했는지 그곳에서 강원규 집사를 만났다. 당시 강집사는 호주 시드니에서 건너와 오클랜드에서 오피스 청소를 대대적으로 시작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40대 초반의 나이인 강원규 집사가 젊은 조우제를 좋게 보았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오피스 청소를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나중에는 큰 오피스 하나의 청소를 책임지고 감독하는 ‘슈퍼바이저’(Supervisor)로 삼았다.
뉴질랜드에서 투자이민을 받아들인 시기는 1990년 전후이다. 그 당시 한국의 부자들이 지상 마지막 낙원이라고 알려진 뉴질랜드로 투자이민을 들어왔다. 그런데 1992년에 들어서자 뉴질랜드 정부는 점수제 일반이민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정한 점수를 넘어서게 되면 조건부 영주권을 주겠다고 하는 일반이민정책이다;
그 이민제도 덕분에 한국의 젊은 세대와 중산층들이 1992년 후반기부터 뉴질랜드로 대거 이민을 올 수가 있었다. 그 가운데 1996년초에 조우제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이민 온 사람들은 주로 화이트 칼라 출신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청소업과 같은 육체적인 노동을 필요로 하고 있는 직종에는 대부분 관심이 없었다.
그것을 보고서 미국이나 호주 등지의 선진이민국가에서 청소업을 경영해본 경험이 있는 한국이민자들이 뉴질랜드로 건너온 것이다. 그 가운데 강원규 집사가 들어 있다. 그는 일찍이 호주 시드니에서 청소업을 경영한 경험이 있기에 오클랜드의 청소업계는 그의 꿈을 펼치기에 너무나 좋은 신세계였다;
다만 하나의 문제점은 믿을 만한 슈퍼바이저를 많이 양성하는 것이다. 강집사는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뉴질랜드 사람 곧 ‘키위’(Kiwi)들과 청소계약을 맺고 자신이 양성한 슈퍼바이저에게 책임지고 청소를 진행하도록 만들면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아니한 것이다.
실제로 강집사와 같은 원청(原請) 계약자는 유능한 슈퍼바이저를 많이 거느리고 있어야 청소용역을 많이 따서 그들에게 청소를 맡길 수가 있다. 왜냐하면 슈퍼바이저가 유능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제대로 일꾼을 구하여 청소를 완벽하게 실시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어야 건물주의 ‘컴플레인’(Complain)이 적고 강집사와 같은 원청 계약자가 제때에 청소대금을 수령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강집사는 오클랜드에서 한인교회에 출석하면서 장차 ‘슈퍼바이저’로 양성할 수 있는 좋은 젊은이를 발견하고자 두루 살피고 있다. 그의 눈에 조우제가 들어온 것이다.
조우제는 1996년 2월부터 강원규 집사를 쫓아다니면서 오피스 청소에 대하여 착실하게 배웠다. 조우제의 열의와 정성을 보고서 그해 8월에 강집사는 그를 자신의 슈퍼바이저로 삼았다. 큰 오피스 하나를 책임지고 청소하라는 것이다. 물론 청소 ‘워커’(Worker) 3사람을 붙여준 것이다;
그때부터 조우제가 하는 일은 청소 워커가 부족하지 아니하도록 제때에 모집하여 훈련을 시킨 후 현장에 투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청소하지 못한 부분이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하고서 혹시 빠진 부분이 있으면 자신이 그것을 깨끗하게 마감한다. 그렇게 한해를 지내는 동안에 원청 계약자인 강집사가 대단히 만족한다.
따라서 1998년부터 조우제는 아예 강집사로부터 3개의 오피스를 하청 받아서 독자적으로 청소업을 경영한다. 자신도 젊은 한국청년을 훈련시켜서 ‘슈퍼바이저’로 삼는다. 그 결과 조우제는 2000년말까지 3년간 상당한 돈을 모을 수가 있었다.
2001년이 되자 조우제는 자신의 나이가 어느덧 한국나이로 30세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그는 한해전에 벌써 뉴질랜드 시민권을 얻었다;
이제는 호주에 가면 입국과 동시에 호주 영주권을 인정 받게 된다. 오클랜드 이민사회에서는 2001년 3월까지 호주에 입국하면 마지막 영주권을 받게 된다고들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조우제가 결심하고 있다; “여기 뉴질랜드는 나같은 젊은이가 일하기에는 다소 좁은 공간이다. 그러므로 큰 돈을 벌자면 역시 더 큰 나라 호주로 옮겨가는 것이 옳다. 단신인 내가 겁을 낼 필요는 없다. 한번 가보도록 하자!... “;
2001년초에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호주 시드니로 들어온 조우제는 처음에 오클랜드에서 하던 대로 돈을 주고 하청을 얻어서 오피스 청소를 시작했다;
그렇게 2년반을 지내는 사이에 나름대로 돈을 꽤 모았다. 그는 오클랜드에서 번 돈과 시드니에서 번 돈을 모두 투자하여 2003년 10월에 시드니 북서부 라우스힐에 땅과 집을 구입한 것이다;
조우제는 2만 평방미터나 되는 큰 땅을 샀는데 목장을 경영하던 그 땅에는 낡았지만 3베드룸 하우스가 하나 딸려 있다. 서양식으로 표현하자면 그 땅의 크기는 5에이커 또는 2헥타아르이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2정보인데 그것은 6천평을 말하고 있다.
한국나이로 32세인 조우제가 아직 총각인데 어째서 그렇게 큰 땅을 구입한 것일까? 그 이유는 다분히 그의 집안배경 때문이다. 마산에서 유지였던 부친이 일찍 사업체를 장남에게 물려주었다. 지방에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장남 조강제가 처음에는 부친의 뜻을 받들면서 사업체를 나름대로 잘 경영했다.
그런데 부산출신 여성 김정미와 결혼한 다음부터 이상한 꿈을 꾸고 있다. 연로한 부모님과 나이가 열살이나 어린 남동생 조우제만 없으면 자신이 그 재산을 몽땅 차지할 수가 있으며 그것으로 원 없이 제마음대로 한세상 살 수가 있다고 하는 헛된 꿈이다.
형 조강제는 지방에서 대학과 경영대학원을 다녔지만 동생 조우제는 공부를 잘해서 서울의 명문 Y대학교 의대에 진학하였다. 그것을 보고서 형수 김정미의 눈치가 이상하다. 남편과 시동생을 견주어 비교하면서 일종의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조우제는 의대공부에 바빠서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것이 화근이다. 조우제가 1년간 방위소집을 마치고 복학하여 의대를 계속 다니고 있는 동안에 그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돌아가시고 집안의 사업체를 형내외가 독차지하고 만 것이다.
재산의 규모가 상당하기에 처음에는 일년동안 학비와 생활비를 형 내외가 서울에서 의대공부를 하고 있는 조우제에게 지원하였다. 그러나 일년후에는 일체 지원을 끊어버린다. 조우제가 견디지 못하고 마산 집에 들렀더니 그곳에서 도저히 믿지 못할 일을 겪게 된다.
형 내외가 사업체와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한국을 떠나버린 것이다. 들리기로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한 현실에 직면한 조우제는 기가 찼다; ‘어떻게 형이란 사람이 그러한 배신행위를 할 수가 있는가? 돈이 아무리 좋아도 어떻게 그 큰 재산을 몽땅 가지고 해외도피를 선택할 수가 있는 것일까?... ‘;
서울에 돌아온 조우제는 한동안 학업을 전폐하고 폐인이 되어 지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충격이 일년 동안이나 그를 지배하고 괴롭혔다. 한번은 그만 살고 죽어버리겠다고 한강다리까지 가보았으나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너무나 억울했기 때문이다.
한국나이로 24세인 조우제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한가지 결심을 했다; ‘죽고 싶은 그 마음으로 한번 살아보자. 돈이 부모형제보다 더 좋은 것인지 한번 내가 돈을 벌어서 누려보자. 분명히 형 부부의 선택이 잘못인 것을 나의 인생으로 보여주자. 나는 무조건 형 내외보다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나의 처절한 복수이다!... ';
조우제가 이를 악물고 서울에서 6개월간 입주과외를 하면서 낮시간에는 대학에 가지 아니하고 다른 과외활동을 했다. 그렇게 이중으로 과외를 하여 돈을 착실하게 모았다. 그 돈으로 그는 서울 종로 교보빌딩에 있는 뉴질랜드 대사관을 찾아가서 점수제 일반이민을 신청하고 1996년초에 한국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와 같은 전력이 있기에 조우제가 시드니 교외지역 라우스힐에 2정보나 되는 큰 땅을 마련한 것이다. 이민국가인 호주의 대도시 시드니가 점점 외곽으로 확장이 되고 있다. 그 점에 착안하여 조우제가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10월에 그 땅을 구입한 조우제는 그때부터 오피스 청소가 아니라 집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젊은 여성 파트너를 구해서 함께 집청소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영 쉽지가 아니하다. 남자 파트너는 구하기가 비교적 쉬운데 여성 파트너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호주사람들은 남녀가 함께 집청소를 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다가 2003년말에 만난 여성 파트너가 장경옥이다. 그녀가 이웃동네 캘리빌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기에 안성맞춤이다. 별로 말수가 없는 두사람이 한동안 청소만 했다. 그러다가 2004년 1월에 그 엄청난 농무 때문에 두사람이 서로 신상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이민사회에서 만난 사이이므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함부로 묻거나 말하는 것이 금기사항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 파트너로 만난 남녀 사이이므로 더욱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일단 말문이 터지자 서울출신인 장경옥은 조우제에게 거침없이 신상문제에 관하여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과연 어떠한 의미일까?’, 조우제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저 묵묵히 함께 집청소나 열심히 하고자 한다. 그리고 두사람은 시드니 북쪽 해안가의 부자동네에서 일년동안 같이 일하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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