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8. 14. 00:47

농무, 짙은 안개6(손진길 소설)

 

한달이 지나고 있는 200411월에 조우제장경옥은 노스 쇼어의 맨리(Manly) 주택가에서 집청소를 하고 있다. 촉감이 좋은 부드러운 황금색 모래가 반짝이고 있는 맨리 비치 바로 옆에는 카페와 상가건물이 있고 그 다음에는 고급주택들이 즐비하다;

특히 맨리 비치의 바다는 파도가 상당히 일어나고 있어서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맨리 비치에 오게 되면 나름대로 젊은 기분이 들고 생동감을 느낄 수가 있다;

 카페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이 기분 좋게 그 생동감을 함께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맨리 비치에서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는 오래된 주택과 새로 지은 주택들이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어 잔뜩 들어서 있다. 그 규모가 상당하여 동네 이름도 각각 다르다;

 그 가운데 사실은 여러 집이 조우제와 장경옥의 고객인 것이다.

그 날은 마지막 청소가 그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 교감인 파멜라’(Pamela)의 집이다. 파멜라는 나이가 50정도 되어 보이는 싱글인 여선생인데 스스로 자신을 그냥 친하게 ’(Pam)이라고 불러 달라고 말하고 있다. 그 정도로 겸손한 초등학교 선생이다.

조우제와 장경옥이 2주에 한번씩 곧 격주’(fortnight)로 그 집을 청소하고 있는데 사실은 애로사항이 있다. 그 이유는 집주인이 2마리의 페르시아 고양이를 애지중지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는 흰색이고 또 한 마리는 검정색인데 공통적으로 그 털이 참으로 길다;

  

게다가 털갈이를 자주하는지 긴 털이 온 집안에 날리고 있다. 특히 안방에 있는 두꺼운 커튼에 길다란 페르시아 고양이의 털이 잔뜩 붙어서 너풀거린다. 그때문에 2주에 한번씩 그 집을 방문하여 그 털을 일일이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자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종이봉지를 여러 번 갈아야 하는데 그것이 심히 번거롭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감인 파멜라가 그때문에 홈클리닝을 맡기고 있는 것이니 그 집청소를 마다할 수가 없다. 요컨대, 그 두 마리의 페르시아 고양이 덕택에 그 집 청소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으니 그 점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조우제와 장경옥이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페르시아 고양이는 생각보다 성격이 온순하다. 그리고 나이가 제법 들어서 점잖게 행동하고 있다. 청소부가 어느 방을 청소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채고서 스스로 옆방으로 피해주고 있는 영리한 고양이들이다. 게다가 집주인 파멜라가 일찍 퇴근하여 돌아오는 날이면 엄청 반갑게 맞이한다. 그러니 혼자 살고 있는 여선생 파멜라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진짜 가족이고 동무인 셈이다.

그러한 형편이므로 조우제와 장경옥이 그 집에서 청소를 할 때에는 페르시아 고양이 2마리가 어느 방에 있는지 항상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그날은 어떻게 현관문이 조금 열려 있었는지 2마리의 페르시아 고양이가 그만 바깥으로 소풍을 나가고 만 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하자 장경옥은 얼른 부엌청소를 마치고 집 바깥에 나가서 고양이를 찾아다닌다. 골목에서 쉽게 발견이 되면 다행이지만 만약 큰 길에 나가서 교통사고라도 당하게 되면 참으로 큰일인 것이다. 그것은 집주인 파멜라에게 있어서는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조우제도 조바심을 하면서 얼른 나머지 청소를 마치고 합세하여 페르시아 고양이 2마리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두사람이 한시간이나 동네를 헤매며 수색을 한끝에 비로소 동네사람이 신고를 해주어서 그 두 마리 고양이를 되찾게 된다.  

장경옥이 너무 반가워하면서 덩치가 제법 큰 페르시아 고양이 두 마리를 한꺼번에 품에 안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서 조우제가 괜히 미안하다. 자신이 의 집에 들어오면서 한번 더 현관문이 확실하게 닫혀 있는지 점검을 해야 했는데 그만 그 일을 게을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양이를 무사히 안방에 집어넣고서 오히려 장경옥이 조우제를 위로하고 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팸 선생이 귀가하기 전에 고양이를 모두 찾았으니 말입니다. 만약 찾지 못했으면 우리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엄청난 보상금을 물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안심하고 귀가하도록 합시다… “.

그 말을 듣자 조우제는 말없이 고개만 크게 끄떡이고 있다. 그리고 내심으로는 장경옥이 자신의 옆에 있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혼자서 만약 그러한 일을 당했다고 한다면 어찌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 생각을 하면서 참으로 오래간만에 조우제는 역시 혼자서는 이국 땅에서 살아가기가 힘이 든다고 여기고 있다;

그 다음달이 200412월이다. 중순에 들어서자 연말분위기가 서서히 나고 있다. 그렇지만 조우제와 장경옥이 살아가고 있는 곳은 남반부인 호주이다. 그러므로 겨울이 아니고 계절적으로 한여름이다. 차가운 날씨의 연말분위기가 아니고 마치 한여름의 바캉스 철과 같은 것이다.

바로 그러한 시점에 조우제장경옥은 홈클리닝을 하면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다. 그날은 마지막 청소가 노스 쇼어의 바닷가 마을에 큰 저택을 지니고 있는 수지윌리엄의 집이다;

 여주인 수지는 부자이면서도 그 성격이 상당히 까다롭다. 그래서 작은 컴플레인과 지적사항이 많다.

그 때문에 그 집을 청소할 때에는 일거리가 항상 늘어나고 있다. 요구사항이 자꾸만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점 때문에 한번은 장경옥이 조우제에게 은근히 말한다; “우리가 이집 청소를 하지 아니하게 되면 아마 한국인 클리너 가운데서는 이집을 청소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

그렇게 크게 유쾌하지는 않지만 청소를 하고 그 집을 나서고자 하는데 마침 집주인 수지와 윌리엄이 들어서고 있다. 먼저 차에서 내린 수지가 두사람에게 말한다; “잠깐 기다리세요. 내가 한번 청소상태를 점검할 거예요”. 그 말을 듣자 조우제와 장경옥은 기분이 좋지 않지만 그냥 가버릴 수가 없어서 기다려준다.

그런데 5분도 되지 아니하여 수지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사람에게 급히 다가와서 말한다; “안방에 내가 화장대 위에 다이어몬드 반지를 두었는데 그것이 없어졌어요. 두사람은 그것을 내놓고 가야만 해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와 장경옥은 어안이 벙벙하다. 그래서 두사람이 서로 얼굴만 마주 쳐다본다.

그 광경을 보고서 안에서 수지의 남편 윌리암이 나오면서 다짜고짜 두사람에게 아이디’(ID, identification)를 요구한다. 억울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먼저 조우제가 자신의 지갑에서 조심스럽게 운전면허증(drive license)을 끄집어내어 준다. 장경옥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10분도 지나지 아니하여 윌리엄이 두사람의 신분증을 되돌려준다. 그리고 조그만 소리로 아내 수지에게 말하고 있다; “경찰에 확인했더니 전과가 없다고 하는군. 우리가 두사람의 연락처를 알고 있으니 오늘은 일단 돌려 보내자구!... “.

그 말을 듣고서 조우제와 장경옥은 그 집을 나선다. 기분이 참으로 좋지 아니하다. 그래서 조우제가 차안에서 장경옥에게 말한다; “나는 우리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지금까지 8년간 청소를 하고 있지만 이러한 봉변은 처음입니다. 한국 홈클리너들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아니하기로 유명하지요. 그것이 나름대로 상도의(商道義)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수지와 윌리엄은 참으로 무례하군요!... “.

장경옥은 자신을 무조건 믿어주고 있는 조우제가 고맙다. 물론 자신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것이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부잣집 딸 장경옥의 자존심이다. 지금은 그 큰 재산이 모두 사라지고 오빠들이 전부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리고 말았지만 한때는 그녀가 그토록 유복했던 집안의 막내딸이었다.

그런데 이국 땅 호주에 와서 살아가고 있으니 청소부가 되고 이제는 부자 부부에게 도둑취급까지 당하고 있다. 분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옆에 조우제가 있고 그가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주고 있으니 그것이 고마운 것이다.

그런데 더욱 고마운 일은 그날 밤에 조우제가 모발폰으로 자신에게 알려준 내용이다; “장상, 걱정하지 마세요. 수지가 방금 모발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잃어버린 그 다이어몬드 반지를 우연히 목욕탕에서 발견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을 일부러 알려왔어요. 그러니 그만 잊어버리세요. 다음에 내가 별도의 조치를 취할 거에요… “.

그 말을 듣자 장경옥은 우유부단해 보이는 조우제가 별도의 조치를 취한다고 하는 그 말이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하다. 그래서 당장 물어본다. 역시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의 장경옥인 것이다.

그러자 조우제가 즉시 대답한다; “내가 일단은 다른 청소부를 구하라고 수지에게 말했어요. 나와 나의 파트너를 모욕한 일에 대해서는 내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수지가 계속 청소를 해달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두주 후에 마지막 청소를 하고 완전히 끝낼 거예요. 나는 내 사람을 건드리는 사람까지 용납할 생각은 없어요!... “.

그 말을 들으면서 장경옥은 이상한 생각이 들고 있다. 조우제가 어째서 그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그가 내 사람이라는 표현을 은연중에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떠한 의미일까?... ;

장경옥은 내일 그 점에 대하여 조우제에게 한번 물어보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고 있다. 과연 그 일을 계기로 하여 두사람은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