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8. 9. 01:07

농무, 짙은 안개1(손진길 소설)

 

1.    20041월 캘리빌의 농무(濃霧, thick fog) 속에서

 

조우제는 오늘의 일터로 가기 위하여 시드니 북서부에 자리잡고 있는 라우스힐에 이웃하고 있는 저지대 신도시 캘리빌의 주택가를 통과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 그는 그 지역을 빠져나가야 큰길을 타고서 한참 진행한 후에 시드니 고급 주택지역 노스 쇼어로 가는 고속도로로 진입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 놈의 짙은 안개 농무 때문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아무리 비추어도 5미터 이상의 전방을 파악할 수가 없다. 만약 측면의 골목길에서 다른 자동차라도 급하게 튀어나오게 되면 교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긴장한 조우제는 최대한 속도를 줄이면서 온 신경을 전방주시에 쏟고 있다. 그의 중고자가용이 마치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농무 속에서 기어가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조우제의 옆자리에 타고 있는 청소파트너 장경옥도 전방과 측면의 골목길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녀가 조그만 소리로 운전을 하고 있는 조우제에게 말한다; “조심, 또 조심하세요. 노스 쇼어 그 집에는 다소 늦게 도착하더라도 우선 이 지역을 무사히 빠져나가야 합니다. 사람이 살고 보아야 청소도 할 수가 있고 돈도 벌 수가 있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조우제가 속으로 피식 웃고 있다. 온신경이 전방파악에 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녀의 말이 우스운지 모른다. 젊은 남녀인 두사람이 시드니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집청소를 하러 다니는 파트너가 된 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는 옆자리에 타고 있는 그녀 장경옥이 별로 말이 없다. 그저 아침에 한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먼 길에 종종 바깥만 내다보면서 무심한듯 조는 듯한 표정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 짙은 안개 농무가 저지대 캘리빌의 주택가를 완전히 가려버리자 잔뜩 겁을 집어 먹은 장경옥이 그렇게 입을 뗀 것이다.

장경옥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조우제가 계속 전방을 주시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지(Aussie)사람들도 나름대로 풍수에 밝아 도시를 개발할 때에는 우선 높은 고지대에는 주택가를 형성하고 낮은 저지대에 상가를 형성하고 있지요. 그런데… “.

 그 말을 들으면서도 장경옥은 도대체 전후사방을 파악할 수가 없는 그 농무 속에서 언제 빠져나올 수가 있을지 여전히 걱정이 태산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귀에 바로 옆 운전석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조우제의 말이 계속 들려온다.

조우제가 천천히 이어서 말하고 있다; “도심개발이 끝나고 나니 이제는 여기 시드니 북서부 캘리빌 저지대에 신도시를 개발하고 있어요;

 이민자가 늘어나고 주택이 부족하니 신도시를 개발하지 아니할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때 아니게 이렇게 농무가 끼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  

그 말을 들으면서 장경옥은 자신보다 파트너 조우제가 호주에서의 이민생활이 훨씬 길다는 사실을 재삼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녀가 조우제 개인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저 성실한 젊은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20분 정도 농무 속을 헤매고 나서야 겨우 높은 지대의 윈저 로드로 자동차가 접어들고 있다. 그곳에는 짙은 안개가 상당히 걷히어 있다. 그때서야 조우제가 속으로 후하고 숨을 쉬고 있다. 긴장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옆자리에 타고 있는 젊은 여인 장경옥이 너무 놀랄까 싶어서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뿐이다.

고속도로를 진입하여 한시간 가까이 동쪽으로 달리고 있는 동안에 그날 조수석에서 장경옥은 자신만의 상념에 빠져있다;

한국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던 그녀가 호주로 건너온 것은 시드니에서 공부하여 정식간호원이 되면 영주권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이 가지고 온 돈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그만 생활비가 부족하게 되어 집청소를 하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본 것이다. 그러자 운이 좋아서 이웃동네에 살고 있는 젊은 청년 조우제와 연결이 되어 함께 노스 쇼어의 일터까지 출퇴근을 한지가 이제 겨우 한달이다;

그 동안에는 말없이 노스 쇼어 주택지에 도착하게 되면 조우제가 키를 가지고 빈집에 들어가서 함께 청소만 열심히 했다. 젊은 두사람이 같이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청소하는 솜씨가 빠르다. 그래서 하루에 거뜬하게 4-5집 정도 청소하고 다시 그들이 살고 있는 시드니 서부지역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달리 호주에서 집청소를 하게 되면 두가지 장점이 있다. 그 점을 조우제 뿐만 아니라 장경옥이 잘 알고 있다; 하나는, 육체노동을 하고 있다고 하여 이민사회에서는 하대를 하는 법이 없다. 대부분이 육체노동을 한 경험이 있으니 천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현찰장사라는 이점이 있다. 그러므로 장경옥처럼 유학생신분이라고 하더라도 벌이가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알고서 두사람은 서로 돈벌이에만 열심인데 그날은 그 놈의 농무 때문에 그만 말문이 열리고 만 것이다. 따라서 점심시간에 노스 쇼어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조우제장경옥이 무려 한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먼저 장경옥이 조우제에게 말한다; “조형은 저보다 연상인 것 같은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조우제는 그녀가 자신을 보고 조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속으로는 우습다. 그렇지만 장경옥이 겉으로 그냥 편하게 부르는 것으로 알아 듣고서 선선히 대답한다; “별로 많지 않아요. 이제 32살입니다”.

그 말을 듣자 장경옥이 웃으면서 말한다; “나보다 한참 연상인 줄 알았더니 겨우 3살이 많네요. 그러니 앞으로 계속 조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 말에 조우제가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조용히 끄떡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내친 김에 장경옥이 또 질문을 한다; “조형은 어째서 이곳 시드니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혹시 젊은 나이에 유학을 왔다가 돈이 떨어진 것인가요?... “.

그 말에 조우제가 잠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천천히 말한다; “저는 호주에 온 지는 만 3년이고 그 전에는 5년 동안 홀로 뉴질랜드에서 이민자로 생활했어요. 호주로 건너온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지요… “;

장경옥은 조우제가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뜨면서 말하는 것을 보고서 속으로 짠한 생각이 든다; ‘젊은 청년이 무슨 일이 있어서 혼자서 뉴질랜드로 건너간 것일까? 그리고 이제는 호주에서 돈을 벌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것일까? 조우제는 자신처럼 정식 간호사가 되고자 공부를 하기 위하여 짬짬이 돈을 벌고 있는 것도 아니다... ‘.

그래서 실례인 줄 알면서도 그날 내친 김에 장경옥이 한가지 더 질문을 하고 있다; “조형은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 그 말에 조우제가 역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

그것을 보고서 장경옥이 내심 생각한다; ‘이거, 내가 쓸데 없는 질문을 했구나. 이것이 모두 뜻하지 아니한 농무 그 놈의 짙은 안개 때문이야. 어떻게 오늘 아침에 캘리빌 주택가에 농무가 심했는지지역이름에 고개마루 힐(hill) 자가 없어서 그런가? 어떻게 그곳에 짙은 안개가 그토록 심한 것인지… ‘;

조우제의 대답이 무엇일까? 그날 장경옥은 알다가도 모를 대답을 듣게 된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 대답이 어째서 장경옥의 마음에 오랜 세월 짠하게 남아 있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