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1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8. 18. 10:57

농무, 짙은 안개11(손진길 소설)

 

조우제10년전 19961월에 한국을 떠나 점수제 일반이민자로 뉴질랜드에 입국한 젊은이이다. 당시 한국나이로 25세에 불과한 그가 혈혈단신으로 한국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친형인 조강제 부부의 배신이 뼈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 가시자 그들 부부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그 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도피하고 말았던 것이다. 서울에서 의대공부를 하고 있던 동생 조우제를 내버려버리고 그 재산을 가지고 도망을 친 것이다;

마산지역에서는 그래도 부자라고 소문이 난 부모님의 재산을 그들 부부가 모조리 처분하여 미국으로 떠났으니 그 신분을 숨긴 채 그곳에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반면에 모든 재정지원이 끊기고 생활비마저 사라진 24세의 조우제는 서울에서 앞길이 막막했다

부모님의 재산 가운데 상당부분이 형제인 조우제의 상속분인데 그것을 한 푼도 주지 아니하고 형부부가 모두 가로채어 미국으로 피신하고 말았으니 그들을 어디 가서 찾는다는 말인가? 당시 절망에 빠진 조우제가 한강에 투신하여 죽으려고 했으나 너무나 억울하여 온전히 실행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젊은 조우제가 선택한 길이 외국으로 떠나가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 형 부부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그러한 심정으로 25세의 조우제가 오클랜드에 도착하여 혼자서 살 방도와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한인교회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청소업을 크게 시작하고 있는 강원규 집사였다;

다행히 성실한 조우제가 강집사의 눈에 들어 몇달이 지나지 아니하여 오피스 청소에 슈퍼바이저(supervisor)로 일하다가 이듬해부터 하청업자(subcontractor)로 성장했다. 그때의 경험이 조우제가 2001년초에 호주로 재이민을 와서 5년이 지난 2006년 지금까지 청소업을 경영하는데 있어서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그런데 조우제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클랜드에서 강원규 집사로부터 배운 또 하나의 중요한 노하우가 있다. 그것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나 호주의 시드니가 모두 이민사회라는 사실을 강원규 집사가 누누이 젊은 조우제에게 설명해준 것이다.

시드니에서 청소업을 경영하다가 사업확장을 위하여 오클랜드로 건너온 강원규 집사이기에 그는 이민사회의 특징에 대하여 일가견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 조우제에게 다음과 같은 세가지를 명심하라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강조를 했다;

첫째로, 다민족국가인 호주나 뉴질랜드는 단일민족국가인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이다;

 한국사람들은 한 핏줄이라는 의식이 강해서 20세기 말엽인 지금에 이르러서도 의식과 문화에 있어서 국제화에 늦고 세계화에 있어서는 미숙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혈통의식이 강하면 현대적인 계약사회를 이루는데 있어서 애로사항이 발생한다. 서로 다른 민족끼리 어울려서 살아가야 계약에 철저하고 불신상태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것인데 단일민족사회인 한국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강해서 동족 간에 계약에 철저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믿고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 결과 상대방의 배신으로 사업이 망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호주나 뉴질랜드에 살면서 한국이민자들이 그러한 사실을 명심하고서 동족이라고 하더라도 계약에 있어서 철저를 기해야만 한다는 강원규 집사의 당부이다

둘째로, 한국인들은 20세기 말엽에 비로소 국제화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떠나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의 부동산은 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사실은 값이 떨어져야 정상이다. 그렇지만 과도기에 있어서는 경제가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향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호주나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는 이민을 받아들이는 만큼 도시지역의 부동산가격이 오르도록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벌어서 부동산에 투자하자면 그 대상은 한국이 아니라 이민국가인 호주나 뉴질랜드가 맞다. 장기적으로 보면 분명히 그러한 것이니 강원규 집사는 젊은 조우제에게 그 점을 반드시 명심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셋째로, 이민국가에서 살아가자면 자연히 현지화가 이루어지고 다른 민족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대학시절에 크게 방황하게 된다. 초중고 시절에는 한국학생들이 대체적으로 머리가 좋고 성실하므로 따돌림을 받지 않고 서양인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그것이 아니다. 그 외모를 보고서 서양인과 동양인은 갈라서게 되는 것이다. 그때 가서야 한국인 2세들이 고민에 빠지고 많이 허둥거리게 된다. 그러므로 문화가 같고 종교가 같은 남녀가 결혼을 하고 2세를 낳아 기르는 것이 그러한 시행착오를 사전에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조우제가 미혼이기에 40대 중반의 중년인 강집사가 그러한 사실을 누누이 일러준 것이다.

흔히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 공항에서부터 누구를 만나 안내를 받고 신세를 지는가에 따라 그 직업과 앞날이 상당히 달라진다고들 말하고 있다. 조우제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가 오클랜드 시티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강원규 집사를 만났기에 조우제의 이민생활이 그렇게 풀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강집사로부터 청소업의 경영에 관하여 배웠으며 그가 주장하고 있는 그러한 지론을 조우제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20062월에 아내 장경옥과 함께 딸 한나를 블랙타운 병원에서부터 라우스힐 집에 데리고 와서 지내면서 조우제가 다소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러자 모처럼 쉬는 날을 많이 가지게 된 조우제가 옛날 강원규 집사와의 만남과 그의 가르침을 반추하고 있다.

그리고 강집사에게서 배운 대로 조우제가 성실하게 실천하여 보았더니 그 말이 사실임을 재삼 확인하고 있다. 그만큼 강집사가 고마운 것이다. 예를 들면, 같은 한국인이며 처지가 비슷한 장경옥과 마음이 통해서 작년에 결혼을 하고 금년에는 2세인 딸 한나까지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조우제는 알뜰히 벌어 모은 돈으로 3년전에 이민도시인 시드니의 외곽 북서부 라우스힐에 큰 땅과 집을 산 것이다;

 그러한 행보가 모두 강집사의 가르침에 따른 것으로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조우제는 새삼 강집사가 고맙다.

그런데 조우제가 강집사의 가르침을 착실히 따랐기에 그해 2006년이 다 가기 전에 큰 이익을 얻게 된다. 본래 조우제의 소유지 옆에는 큰 골프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골프장이 7월경 신도시의 중심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10월경부터 부동산업자들이 경쟁적으로 조우제를 찾고 있다.

도심에서 오피스청소업을 경영하고 있던 조우제가 자신의 모발폰을 계속 울리고 있는 리얼 에스테이트 에이전트’(real estate agent)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 그들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부동산에 고가의 시세가 매겨져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발견하고 있다.

그가 그 부동산을 구입한 때와 비교하면 7배나 급상승한 시세이다. 그것을 보고서 조우제가 오피스청소를 슈퍼바이저에게 일임해 놓고 며칠을 동분서주한다. 무엇보다 시청 도시계획과에 들러 라우스힐 지역에 대한 개발계획이 어떠한지 세심하게 살핀다. 그리고 이웃 프라퍼티(property)의 소유주를 만나서 그들의 의견을 청취한다;

아무래도 그 지역에 오래 살고 있는 이웃 오지(Aussie)사람들이 정확한 정보를 서로 간에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서 마침내 조우제가 결론을 내리고 있다; ‘7배가 아니라 10배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천만 불 이상 손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한번 버티고 볼 일이다!... ‘.

그때부터 조우제가 2달간 여러 부동산업자들의 속을 태우면서 초인적인 인내로 계속 버티고 있다. 그 결과 그해 말에 그는 천만불이 넘는 금액으로 그의 소유지를 매도하게 된다;

그러한 조우제를 보면서 아내 장경옥이 기어코 한마디를 하고 있다; “끝까지 버티고 있는 당신이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군요. 제가 그러했다면 벌써 7배를 받고 팔아 넘겼을 터인데요… “.

그 말에 조우제가 씨익 웃으면서 대답한다; “며칠 있으면 또 하나 놀랄 일을 보게 될 거예요. 한번 기대해보세요!... “. 그것이 무슨 뜻인가? 장경옥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하지만 조우제가 확실하게 말할 때까지는 기다리고 볼 일이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