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규와 아끼꼬(손진길 소설) 35

상규와 아끼꼬15(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15(손진길 소설) 임상규와 아끼꼬는 자신들의 결혼식 날짜를 이듬해 2008년 3월 22일 토요일로 잡는다. 그 다음날이 부활절 주일날이므로 3월 21일 금요일부터 부활절 휴가가 실시된다. 따라서 휴가기간에 결혼식 날짜를 잡는 것이 여러 친지들이 참석하기에 편리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때쯤 되면 2007년 10월 중순에 태어난 딸 임상아도 5개월이 되므로 품에 안고서 이동을 할 수가 있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그런데 미리 고려하여야 할 사항이 두가지나 있다; 하나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시집의 식구들이 참석할 수 있어야 하고 미국에 살고 있는 친정의 식구들도 참석하기에 편한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또 하나는, 내년 부활절 휴가기간에 친지들이 결혼식 참석을 하자면 그들에게 미리 결혼식 날..

상규와 아끼꼬14(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14(손진길 소설) 4. 호주 시드니에서의 새로운 삶 아끼꼬는 뉴욕에 살고 있는 조부 찰스(Charles)의 집과 부친 피터(Peter)의 집을 서로 비교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조부인 찰스는 조모인 케이트 맥도웰(Kate McDowell)을 자신의 은인인 천사로 여기고 그는 아예 미국 성씨인 맥도웰(McDwell) 가문의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조부 찰스는 그 직업이 하이스쿨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따라서 그는 오랜 세월 하이스쿨에서 미국의 역사와 더불어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질서 곧 ‘Pax Americana’의 세계사를 가르친 것이다; 요컨대, 조부인 찰스는 백인인 아내 케이트 맥도웰과 함께 살아오면서 자신도 백인 가문 ‘맥도웰’(McDowell)의 일원이라..

상규와 아끼꼬13(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13(손진길 소설) 찰스와 케이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이주를 한 때가 1957년 8월경이다. 그때 찰스 하야시 맥도웰은 26세이고 그의 부인 케이트 맥도웰은 29세이다. 뉴욕에서 찰스 맥도웰은 역시 하이스쿨 역사선생으로 일하고 케이트 맥도웰은 종합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게 된다; 그들 젊은 부부의 슬하에는 벌써 1남 1녀의 자녀가 있다. 그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을 때에 낳은 아들과 딸이다. 1953년생인 아들의 이름이 피터 하야시 맥도웰(Peter Hayashi McDowell)이고 1955년생인 딸의 이름이 한나 하야시 맥도웰(Hanna Hayashi McDowell)이다. 그 가운데 피터 하야시 맥도웰이 임상규의 아내인 1973년생 아끼꼬 하야시 맥도웰(Akiko Hayashi ..

상규와 아끼꼬12(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12(손진길 소설) 하루는 찰스 하야시가 병원 막사 후미진 곳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며 신세 한탄을 하다가 그만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여인이 바로 케이트 맥도웰이다. 그녀가 무슨 생각인지 서서히 찰스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녀가 따끔하게 한마디를 한다; “찰스, 이곳에서는 다리가 하나 절단이 되어 전역하고 있는 직업군인들도 많아요. 그런데 찰스는 걸음걸이가 불편할 뿐 멀쩡한 다리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절망에 빠져 있으면 그것은 사내가 아니지요… “. 그 말을 듣자 찰스 하야시가 조용하게 항변한다; “케이트, 나는 일본인 이민2세입니다. 동양인인 나는 이민국가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 이제 한쪽 다리마저 불..

상규와 아끼꼬11(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11(손진길 소설) 한국군이 기습적으로 북진을 실시하자 미군과 유엔군도 북진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한국군은 서쪽 루트를 타고 북진하여 가장 빠른 기간내에 북한의 수도인 평양을 점령하고자 한다. 1950년 10월 1일에 한국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시작하고 다음날 10월 2일에는 미군과 유엔군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을 보고서 평양의 김일성은 위기를 느낀다. 자신이 적의 포로가 되면 전쟁이 끝날 것만 같다. 따라서 그는 10월 13일 북쪽의 강계를 임시수도로 결정하고 그곳으로 피신하고 만다; 그러나 정예병에게 평양을 사수하도록 엄명을 내리고 있기에 북한군의 수비가 견고하다. 그것을 보고서 한국의 대통령 이승만이 한국군에게 특명을 내리고 있다. 외국군보다 먼저 기필코 평양을 점령하라는 것..

상규와 아끼꼬10(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10(손진길 소설) 3. 일본계 미국인 아끼꼬의 고백 주후 2005년 11월 26일 토요일에 동생 임상민이 남은혜와 결혼식을 가졌다. 그들 신혼부부가 일주일만에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그때부터 형인 임상규는 집에서 행동하기가 다소 불편하다. 부모님과 동생 부부가 함께 살고 있는 파파토에토에 집에 마냥 머물고 있는 것이 옛날처럼 자연스럽지가 아니한 것이다. 따라서 임상규는 12월 9일 금요일 저녁부터 이틀간 주말을 온전히 아끼꼬의 마운트 웰링턴 집에서 지내게 된다. 두사람은 주말에 만나서 이제부터 호주 시드니로 가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진지하게 논의한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 도중에 12월 16일 저녁에 바깥에서 식사를 함께하고 집에 돌아오자 아끼꼬가 임상규에게 자신의 집안환경에 대하여 정확..

상규와 아끼꼬9(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9(손진길 소설) 임상규는 2005년 10월 15일 토요일 저녁에 마누카우에 있는 발렌타인 식당에서 동생 상민이의 상견례가 열린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미혼인 자신이 형으로서 참석하는 것이 별로 어울리지 아니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보수적인 한국사람의 심성인지는 몰라도 임상규의 마음이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14일 금요일 저녁부터 당일인 15일 저녁까지 파파토에토에 부모님의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마운트 웰링턴에 있는 아끼꼬의 집에 계속 머무르고자 한다. 한편 아끼꼬의 입장에서도 임상규가 어째서 이번에는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동안 자기와 함께 지내고자 하는지 그 속사정을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임상규의 마음이 울적할 것으로 짐작하고서 금요일 저..

상규와 아끼꼬8(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8(손진길 소설) 부친 임호준은 아들 임상규의 말에서 무언가 짐작이 되는 것이 있다; ‘사귀고 있는 여성과 결혼이야기를 했다가 무언가 일이 틀어진 모양이다. 그래서 아예 이곳을 떠나 당분간 멀리서 지내고 싶은 것이야. 그렇다면 이곳에 주저앉히는 것이 상책이 아니다!’. 그렇게 혼자서 생각한 임호준이 순순히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잘 알겠다. 여기는 상민이도 있고 또 우리 부부도 별로 많은 나이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 나름대로 한번 살아보려무나. 아직 젊은 나이이니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이야. 나는 찬성이다!... “. 그런데 정이 많은 모친 김영숙은 그것이 아니다. 장남이 부모를 두고 다른 나라로 건너가겠다고 하니 우선 그것이 섭섭하다. 쉽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그..

상규와 아끼꼬7(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7(손진길 소설) 마침 다음날이 금요일이다. 따라서 임상규가 로펌에서 그날의 근무를 끝낸 다음에 마운트 웰링턴에 살고 있는 아끼꼬의 집에 들린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임상규가 어김없이 찾고 있는 아끼꼬의 집이므로 두사람은 익숙하게 만나서 함께 만찬을 나누고 마치 부부처럼 밤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모습을 지난 7년간 지켜 보아온 이웃의 키위들은 두사람이 내연의 관계임을 환히 알고 있다. 그들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관계와 결혼식을 올리지 아니하고 혼인신고 없이 동거하고 있는 내연의 관계를 모두 남녀 파트너(partner)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에 별로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웃 간에 만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파트너를 소개할 때에 주저함이 없이 다음과 같이..

상규와 아끼꼬6(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6(손진길 소설) 임상규의 부친 임호준은 본래 충청도 소도시 출신이다. 임호준의 부친의 성함이 임강수인데 그는 젊은 시절부터 소방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40세가 되기 전에 일찍 사표를 내고 운수사업에 투신하여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만큼 사업수완이 있는 임강수이다. 그의 슬하에 2남 2녀가 있는데 그 중에 임호준이 차남이다. 임강수는 차남 임호준이 고향의 국민학교와 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을 보고서 그 앞길을 열어주고자 대전으로 보내어 명문 고등학교로 진학을 시켰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아니하여 임호준은 서울에 있는 명문 k대학교 공대에 합격하여 기계공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서울에 있는 큰 엔지니어링 회사에 입사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그 덕분에 나이 40세가 되자 부장이 되었다. 그는..